'소녀 : 영감님, 올해 몇 이슈?
영감 : 나, 그림자하고 둘이다.
소녀 : 아니, 나이를 몇이나 잡수셨느냐 이 말이에요?
영감 : 정월 초하룻날 한 그릇 먹고 여태껏 안 먹었다.'
1935년 1월 3일 종로 거리 축음기 상회에서 흘러나온 漫談 '익살맞은 대머리'를 들으며
60대 노인 일행 등 10여 명이 박장대소한다.
'만담의 천재'로 불리던 신불출(영감역)과 윤백단(소녀역)의 '길거리 축음기 공연'이 새해 벽두부터 장안의 화제였다.
양력설을 쇠던 일제 시절이다.
다음 해인 1936년 잡지 '삼천리'에는 당대 명사들의 미리 쓰는 '나의 묘비령'이 실렸다.
압권은 신불출의 '잘 죽었다' 한마디였다.
해방 이후 최대의 만담 스타는 장소팔.고춘자 콤비였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만담은 속사포처럼 빠르면서도 말뜻이 귀에 쏙쏚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토박이 말의 보고다.
장소팔.고춘자의 '민요 만담'이 라디오방송을 타기 시작한 때는 1956년, 올해로 '민요 만담' 탄생 60주년을 맞는다.
장소팔과 고춘자, 홀쭉이 양석천과 뚱뚱이 양훈 등의 '대화 만담' 전통을
장소팔의 차남인 장광팔과 연극배우인 소춘자 콤비가 이어가고 있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등장화기 전부터 인기를 휩쓴 만담은 조선시대의 才談이 뿌리다.
]한국만담보존회는 올겨울에 1897년 고종황제 즉위식 때 했던 '박춘재 재담'을 재현하는 시연회를 계획중이다.
실제 중국 北京과 延吉, 일본 東京 재담꾼들을 즉위식 축하 사절 역으로 출현시키기 위해 각국 재담꾼들과 접촉 중이다.
곧 설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핏발 선 대립이 우리의 표정을 어듭게 한다.
설에는 '사린다(조심한다)'는 뜻도 있따.
청와대가 야당 대표가 보낸 대통령 생일 축하 蘭을 거절하다 뒤늦게 받은 일은 '사리지' 못한 팃이다.
여야가 상대 진영을 용렬한 말로 비난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조선 시대 왕들은 설에 신하들에게 덕담을 건네면서, 새해 선물로 호랑이와 닭 그림을 주었다.
대문에 붙은 호랑이의 익살맞은 표정을 보면서, 사람은 웃고 악귀는 달아나라!
새해를 웃음으로 여는 미풍양속처럼 정치권도 '비수 정치' 대신 '웃음의 정치'를 펼쳐보자.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경제야 살아나라'는 덕담을 건네면서.
'총선 필승' '살아 돌아오라'는 인사는 이제 신물이 난다. 예진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