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지움Belgium에 핀 연이 꽃
금선주
네덜란드에서 남편이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친하게 지내던 연이 씨가 부탁이 있다면서 내가 살던 바세나르로 찾아왔다. 그날은 마침 하던 일이 가까운 헤이그에서 끝났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안부가 궁금했는데 나를 만나자, 그녀는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뜨고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살며시 반지 낀 손을 내보였다.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나보다 여섯 살이 많아요.”
연이 씨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연애의 무덤 속으로 또다시 걸어 들어가는 건 아닐까 하던 마음속 우려는 그녀의 금빛 미소에 사라졌다. 앞날에 펼쳐질 희로애락쯤이야 누구나 겪는 인생사라는 생각에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결혼식에 꼭 참석해달라고 했다. 신랑이 마련한 신혼집이 있는 벨지움에서 하는 결혼식이어서 나는 네덜란드에서 하객을 한 사람이라도 더 데려가 축복해 주고 싶었다.
남편 회사에서 외주 관광안내자로 일하는 연이 씨는 산뜻한 인상으로 친절하고 다정다감했다. 그녀는 나에게 소탈한 성격이 좋다며 다가왔고 나 역시 그녀의 다정함에 이끌려 서로 친해졌다. 연이 씨는 한국에서 다국적 기업에 근무하다가 네덜란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20년 전만 해도 외국인과 그것도 여섯 살이나 어린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그녀의 결정에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한 그들은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살갑고 착했던 남편이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로 타박이 늘더니 밖으로 도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중 비가 내리는 네덜란드의 날씨는 바람이 많고 을씨년스러울 때가 많았다. 추운 날씨를 핑계로 전남편은 사우나에 자주 가는 눈치였다. 네덜란드의 목욕탕은 남녀 혼탕이었다. 대학 근처의 사우나에 주로 다니더니 남편의 육 년 연하인 그녀와는 무려 열두 살 차이의 네덜란드 여성과 눈이 맞고 말았다.
연이 씨에게는 누나 같고 엄마 같은 모성애에 반했다며 결혼하자고 졸랐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을 남자로 인정하지 않고 아기처럼 보살피는 과잉 애정에 숨이 막힌다고 했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었던 그의 정직함이었다. 그녀가 딸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며 남편의 마음을 돌려보려 애썼지만, 개인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네덜란드 남자답게 그는 자신 입장만 고수하며 두 번 다시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홀로 섬에 버려진 듯했을 그때의 참담함이 연이 씨에 젖어 드는 목소리에서 고스란히 전해져 와 내 가슴까지 아렸다. 나는 그저 그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 줄 뿐이었다.
문화의 다름과 개인 인생관의 차이를 뼈저리게 인식한 그녀는 눈물을 닦고 꿋꿋이 살기로 결심했다. 딸을 위해서라도 전남편이 찾았다는 새로운 사랑도 인정했다. 그녀의 깨달음과 수용적 태도는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해가 바뀌고 때는 무르익어가는 봄이었다. 화사한 목소리로 연이 씨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 스치는 들판에 알록달록 튤립이 피어나서일까? 내 마음이 더 달뜨고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광장 건너편에서 그녀가 뛰다시피 다가왔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선량해 보이는 남성이 상기된 얼굴로 뒤따르고 있었다. 벨기에의 변호사인데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은지 나에게 선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늘 헌신적인 그녀의 태도가 고마웠기에 성의를 다해 그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악수하는 태도와 목소리에서 신뢰감이 느껴졌고 반듯한 이마도 성실해 보였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사이로 히아신스 꽃향기를 실은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결혼식 날 하객들을 자동차 가득 태우고 네덜란드에서 세 시간을 달려 벨기에에 도착했다. 결혼식장으로 꾸며진 집안은 꽃향기로 가득했다.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은 넓었고 장미와 천리향 그리고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나고 있었다. 신랑은 싱글벙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이미 장성한 신랑 측 아들과 딸이 아버지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모습이 어여뻤다. 연이 씨의 딸과도 잘 어울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수줍어하는 연이 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새색시였다.
눈에 띄는 복장의 사람들이 보였다. 신랑 가문의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격조 있고 품위있는 모습들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그들은 왕족이었다. 유럽에는 아직 입헌 군주제의 나라가 많은데 우리가 벨기에라고 부르는 벨지움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이제 왕가의 일족이 되었다. 왕족이 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을 거리고 그녀는 말했지만, 우리는 신기하기만 했다.
후원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으며 은이 씨의 앞날이 꽃길처럼 아름답게 이어지기를 소망했다. 두 사람이 다 가슴 아픈 이혼을 경험했기에 서로 위로하며 잘 살아가기를 축복했다. 결혼식 피로연까지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제가 잘 살아갈 힘은 여러분들의 응원이에요. 정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