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만의 만남, ‘우리는 한 형제’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 12일 공동 선언 발표… 두 교회 간 화해의 시대 열어
 | ▲ 동서방 교회 분열 후 거의 1000년 만에 얼굴을 맞댄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 수장.【아바나(쿠바)=CNS】 |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의 키릴 총대주교가 12일(현지시각)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고 두 교회 간 화해와 대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날 회동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1054년 상호 파문하면서 갈라선 이른바 ‘교회 대분열’ 이후 거의 1000년 만에 이뤄진 것으로, 그리스도교 일치 운동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두 수장은 이날 비공개 회담 후 총 30개 항의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두 수장은 먼저 신앙의 형제로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데 대한 기쁨을 표시하는 한편 인간적 나약함과 죄로 갈라져 사는 잘못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구했다.
이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의 희생물이 되어가고 있다”며 더 이상의 희생을 막아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또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범죄는 없다”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 간 대화와 종교 지도자의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새로운 삶을 찾아 떠도는 난민들과도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명식에서 “같은 세례를 받은 형제로서 격식을 차리지 않고 대화했다”며 “일치는 앞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중에 이뤄진다”고 말했다.
키릴 총대주교도 “우리는 전쟁에 반대하고, 인간 삶과 교회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날 회동으로 ‘함께 걷게 될’ 앞길이 활짝 트인 것은 아니다. 상대방 신자에 대한 개종 시도나 선교 경쟁을 할 경우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두 수장은 이를 의식한 듯 “우리는 형제이지 경쟁자가 아니다”라며 조화로운 공존을 다짐했다.
교황은 이날 멕시코 사목 방문 길에 중남미에 와 있는 키릴 총대주교를 만나러 잠시 쿠바에 내렸다. 교황은 기자들에게 “당대에 완전한 일치는 어렵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보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정교회는 그동안 공산 통치 시절에는 박해의 고난 때문에, 이후에는 가톨릭이 정교회 지역에서 개종 활동을 벌인다는 이유를 들어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았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는 “역대 교황님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만나 공감대를 이뤄왔지만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와의 만남은 여태껏 성사되지 못했다”면서 첫 만남의 의의를 설명하고, 화기애애했던 이번 만남을 계기로 가톨릭과 러시아 정교회의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했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신정훈 신부는 “전 세계 독립 정교회 가운데 가장 큰 러시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에 이어 제3의 로마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은 물론 교황님과 총대주교가 교회 현안에 공감대를 이뤄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평화신문 (2016. 02. 21발행)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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