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직 살아온길
1. 나는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참 불상한 인생이다.
아버지가 차산리서 화재를 보아 몽땅 망하고 월산리
62번지 누구나 들어가 살면 헛개비가 나오고 식구가
죽어나가 망해서 아무도 못사는 페가를 아버지가
헛개비가 어딧냐고 들어가 살다가 우리도 망햇다.
2. 내가 4살때 안방에서 할아버지 방으로 자러가는데
마루앞에 키가 석가래에 달 정도로 큰 사람이 서 있어
내가 울면서 안방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그날 저녁에
2살짜리 여동생 근직이가 없어저서 동네 사람들이 총
동원해도 못찾은 어린애를 달뫼산 중턱에서 찾아왓다.
3. 그 때부터 3년동안 식구들이 우환으로 할아버지.정직.
윤직. 한직누이. 엄마 까지 5식구가 죽어나가자 동내
사람들이 그것보라고 더 죽기전에 그 흉가집을 불태워
없애자고 여론이 들끓어 불사르고 집도 없는 거지가 되어
나 7살때 다 죽고 여동생. 나. 아버지. 3식구만 남았다
4. 동네 공회당에다 헌멍석을 얻어다 칸을막고 가마니를
깔고 6간 공회당에 불을 때면 쥐구멍에서 연기만 나오고
바닥은 덥지도 않고 공회당 아궁이에 솥을 걸고 식량이
없어 남이버리는 밀기울 끌여서 식혀 먹으면 구수하게 맛
있고 김매는데 다니며 심부름 해주고 밥 얻어다 먹었다.
5. 아버지는 50세가 넘어 늙은데다 일본사람과 사업하고
농사일을 할줄몰라서 시키지도 않고 내가 농사일 하는데
가서 심부름 해주고 얻어다 먹었다 그렇게 10여년을 살며
농사일을 하면서 국민학교 졸업하고 10리나되는 송라산에
화전밭을 만들어 콩과 조농사를 하며 나무를 해다 팔았다.
6. 아버지가 마님을 얻었는데 선볼때는 몰랐는데 졸음병
환자라 밥먹다도 졸고 불때다가도 졸아서 아무것도 못하고
내가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 만들고 바지 저고리 이불. 요.
버선깁고 안살림 바깥살림 혼자 하며 게모는 묵덕솜이불 하나
4식구가 덥고 자는데 종직, 장직, 수직,1명사산 애농사만 지었다.
7. 10세 전후애 4남매 해산관을 내가 다 하면서 똥기적이를
앞개울애 가서 얼음깨고 빨아다 화로불에 말려 입히면서
노인부모 봉양하랴 여동생과 간난애기 셋 거둬 맥여 입히랴
노동하여 7식구 먹여 살리랴 제사 모시랴 쌀밥은 기제사때나
보고 떡과 고기는 명절때나 보고 항상 씨래기죽 밀기울 죽이다.
8. 답내리 한지공장에 가서 일하다 한지뜨는 기술자가 되고
여동생근직이는 종이 말리는 기술자가 되어 둘이 열심히 벌어
밭1.250평사고 논 600평도사고 분배논600평 받아서 쌀밥도
먹고 안골 종중산애 낙엽송 목재가 많아 달밤에 동네청년 동원
하여 목재를 비어 기와집 9간 짓고 공회당에서 이사를 하였다.
9. 동생들이 커지면서 큰댁 박종선과 작은댁 유성근한테 나도 서울
취직좀 부탁하니까 않되어 무조건 서울 학생들 공부시키는데 쓰라고
종중에서 사놓은 방에서자고 취직을하러 다니다 병에다 소주와 인삼
한뿌리 넣은것을 보약이라고 팔아 오라고 하여 온종일 팔러 다녀도
아무도 사지않아 배가고파서 내가 먹고 회사에는 가지도 못하였다.
10. 또 보약회사 수금사원으로 들어가 장성광업소. 영월탄광등에 수금
다니다 본사를 같더니 지사에서 순 한문 초서 편지가 왔는데 읽을줄
몰라서 내가 읽고 답장을 써주니까 나를 총무과장으로 회전의자에
않처서 출세 하였구나 봉급도 많이받고 회장 손녀경리가 나를 좋아하다
회장 눈 밖에 나서 근무때 졸다가 근무 태만으로 사표내라 하여 쫓겨났다.
나는 부모유산 하나없이
가난하게 10여년을 살았다
1. 7살부터 살림을 물려받아 밥해먹고 빨래하고 내 여동생과 계모가 낳은 동생3명
해산관 내가 다 하여 암죽 먹이고 똥걸래 얼음깨고 개울에 가서 빨아다 화롯불에 말려
입히며 늙은 부모 모시다 두분 한갑 해드리고 돌아가시어 장사지내고 3년상 치르고
여기저기 조상묘 이장하여 안골 종중산에 명당 자리잡아 가족묘지 만들고 2층 재실짓고
길 넓히고 주차장 만들고 물놀이터 만들고 향나무 30그루 식목하여 잘 자라고 있다.
2. 물려받은 재산 하나없이 노부모 모시다 한갑 해드리고 돌아가시어 장사지내고 3년상 소상.
대상.치르며 동생4명 길러 출가시키고 내가 결혼하여 2남2녀 길러 교육비며 종가댁 종손이 동네
월산. 답내 .한산이가 집성촌 경조사 부조 돈이며 나혼자 품팔고 땔나무 해다팔다 한지공장에서
기술을 배워 한지공장을 운영하며 서울에 한지 초배지 장판지 도매하다 중앙지업사를 운영하면서
영장 기피로 형무소 살고 나와 아내는 돌아지 까서 경동시장에 팔고 나는 대성탁자에서 일을했다.
3. 대성탁자에서 일하면서 운전면허를 따고 엘프1.4톤 트럭을 활부로 사서 교자상을싣고 무조건 유기점
소비조합에 다니면서 호마이카상 도매를 내가 최초로 시작하여 15년동안 전국에 팔아서 월 1.000여만원
씩벌어 서울 시골 두집살림 하면서 4남매를 길르다 시골놈들 어음사기로 번돈 다 날리고 시골받도 팔아서
부도수표 정리하고 놀다가 전기난방을 연구하여 가락시장과 마장동 우시장에 물철판 의자를 전기판넬로
해주며 전기난방을 연구하여 대힛트를 치다 판넬이 기계화생산되어 하절기 덤핑이 나와서 그만 두었다.
4. 나는 무1푼 촌 놈이 나혼자 노부모 모시다 장사 지내고 3년상 치르면서 어린동생 4명길러 출가시키고
나 결혼하여 4남매 길러서 대학졸업 결혼 출가시키다 보니 내 인생 한갑이 넘어서 4남메 자식덕택
으로 구리시 인창동에서 두내외 4남매 우환없이 건강하고 동생 4남매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읍니다.
5. 안골 종산에 가족묘를 보는 사람마다 명당이라고 하더니 산소쓰고. 길 넗어지고. 주차장. 2층 재실
생기고 물놀이터 생기고 한가할때는 놀러가서 밥 해먹고 자며 놀수있는 별장처럼 매우 좋으며
동생4남매. 두내외. 2남2녀. 가족들 모두 우환없이 무병장수 행복하게 사니 명당인가 합니다.
6. 나는 중3때 IQ140으로 성적은 항상1.2등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사업을 자주 바꿔서 실패 하였다.
나는 젊어서 전국에 15년간 호마이카상 도매하여 매월 1.000여만원씩 번돈 10억 부도 맞어 실패.
돈 복을 타고나지 못했는지? 젊어서 사업3번 실패 하였지반 아내가 4남매를 잘 길러서 행복하다.
7. 나는 11살부터 교회를 다녀 20세에 집사가되고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 종교철학 인생철학을 연구
하고자 수많은 책을 주경야독으로 공부하며 장로교. 대순진리회. 여호와증인 .침례교. 감리교. 남묘
호렝계교. 신천지예수교. 70년동안 7개교회를 다녀 보았지만 모두가 자기교회가 제일이란다.
제가 운영하는 국민건강 교육센터 에 2.000가지 글을 올려서 2.000명에 회원도 생겼으며
나는 회원들에게 모범 인생을 살고자 세상에서 나를 욕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게 처세를 하며산다.
인생은 건강. 돈. 시간. 가정. 친구. 5가지를 명심하고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별지 이준직 초년고생 자서전 참고*
국민건강 교육센터
회장 이준직
010-9836-7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