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이야기
나는 텔레비전과 담쌓고 산다. 텔레비전 모니터를 켜 보는 건 날씨가 궁금해서다. 날씨도 컴퓨터에서 주간 일기까지 검색 가능해 더 거리가 멀어졌다. 출근을 하는 아침이면 자막에 시간과 날씨가 나오기에 모니터에 집중하던, 하지 않던 텔레비전이 켜둔 경우가 있다. 어쩌다 이른 새벽 종이신문을 펼쳐본 뒤 시간이 나 텔레비전을 켜 채널을 돌리다보니 종편 방송을 만났다.
재방송이겠지만 새벽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은 눈길이 갔다. 산골 오지에 혼자 사는 중년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암 수술로 생사 고비를 넘나들거나 아내와 이혼했거나 별거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스트와 함께 손수 채집한 청정 야채와 물고기로 찬을 지어 먹으며 지난날 잘 나가던 청춘을 회상했다. 그러고는 움막에서 밤을 새고 새날 아침을 맞았다.
날이 밝아오니 주인공은 방문객을 대동해 숲속으로 들어 약초도 캐고 버섯도 찾아냈다. 말 그대로 자연산이다. 어떤 날엔 괭이로 맨땅을 힘들게 파서 칡을 캐기도 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주인공 자연인이나 게스트로 동행한 연예인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칡이야 겨울에서 봄이 오는 길목에 캐는 것이지만 위치 선정이 잘못되었다. 내 판단으로는 쉽게 캘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칡을 캐려면 무작정 칡넝쿨만 찾아 괭이로 파서는 고생한다. 칡이 자라는 토질이 어떠한가를 먼저 살펴야 한다. 흙으로만 된 육산에 자라는 칡은 사람 손길로 캐기엔 힘에 부친다. 굴삭기로 뒤집으면 되겠지만 고작 칡 캐려고 중장비를 동원할 일은 없다. 그럼 어떤 곳에 자라는 칡을 캐기가 수월한가?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울 때 포인트를 잘 찾아야 하듯 칡 캘 때도 마찬가지다.
칡을 캐기엔 언 땅이 녹은 우수 이후 경칩 사이가 알맞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작정 흙만 파 뒤집으려면 무척 힘이 든다. 흙살이 절로 흘러내리는 침식이 진행 중인 계곡이면 좋다. 그렇지 않다면 적당한 크기의 바위덩이가 있는 산기슭이라도 된다. 괭이로 힘들게 땅만 판다고 해서 원하는 칡은 캐지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힘을 적게 들이고도 굵을 칡뿌리를 캐는 것이 중요한다.
지난 설을 앞둔 때 대학 동기가 안부 문자가 왔다. 설 쇠고 칡을 캐러 가자고 했다. 봄방학을 맞아 시간을 냈다. 이월 넷째 금요일 초등학교 관리자인 동기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동기는 내자가 운전한 차로 내가 사는 아파트 앞으로 왔다. 시내를 벗어나 창원터널을 지났다. 대청계곡 상류에 해당하는 약수산장 근처에서 차는 돌려보내고 칡을 캐는 연장과 곡차만 챙겨 산으로 올랐다.
겨우내 꽁꽁 언 응달 대청계곡은 빙판이 아직 덜 녹았다. 약수산장을 비켜 조금 더 숲속으로 오르니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둘은 작년 이맘때도 그곳에서 칡을 캐 갔더랬다. 낙엽활엽수가 우거진 숲으로 여름이면 계곡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불모산 송신소에서 화산 공군부대로 이어진 험준한 산세다. 지난해 칡을 캐 간 자리는 절로 생태 복원이 잘 되어 있었다.
칡을 캐려면 칡넝쿨이 굵어야 한다. 그냥 굵은 정도가 아니라 팔뚝 이상이어야 좋다. 칡넝쿨이 자라면 여름철 무성한 이파리들로 대개 그 주변 식생은 맥을 못 추고 녹아버린다. 땅에 뿌리가 뻗어간 둥치 근처를 살펴 캐기가 수월한지 판단해야 한다. 다른 잡목 둥치가 없고 바윗돌을 굴러 치우기 쉬운 경사지면 더 좋다. 순수하게 흙으로만 채워진 산언덕은 의외로 칡을 캐기 힘들다.
둘이서 힘을 모아 계곡 낭떠러지에서 바윗돌을 뽑아내고 굵은 칡을 한 뿌리 캤다. 땀을 흐를 정도 작업량이었다. 소진된 열량은 잠시 쉬면서 곡차로 보충시켰다. 이어 위쪽을 가 아까보다 더 굵은 칡넝쿨을 찾아냈다. 역시 맨땅을 파기보다는 돌덩이를 치워가면서 뿌리가 뻗친 방향을 살폈다. 아주 긴 칡뿌리였다. 세 번째 칡넝쿨에 도전했다. 자연인이 되어 두세 시간 남짓 땀을 흘렸다. 18.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