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해병대에서 낙하산 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 제대 뒤에도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해 행글라이더를 타고 하늘 날기를 즐기다가 토함산 상공에서 추락해 장애인이 된, 덩치 좋고 얼굴 반반한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 남자, 사고 후 5년 동안 이른바 ‘집구석’에서 꼼짝 않고 누워 지냈다. 술 마시기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고, 하늘 날기를 좋아했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하반신 불구 장애인이 되었으니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으리라.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 안에 누워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고독과 외로움이 아니라 무덤 같은 무감각이었다.
‘자살 여행’ 택시비를 마련하기 위한 성서 백독 아르바이트
모든 것에 무감각 했으니 살 이유가 없었다. 덩치 좋고 얼굴 반반한 이 남자, 마침내 죽기를 결심한다. 그런데 나름 효심이 지극한지라 부모님이 계신 서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고향 대구로 내려가 앞산공원에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소주에 수면제를 적당히 섞어 마시고 죽을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오호 통재라! 고향 대구로 내려갈 길이 막막했다. 그 이유인즉슨, 대구로 가려면 부모님이 없을 때 살짝 택시를 불러 타고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남자 택시비가 없었던 것이다. 온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이 남자에게 돈이 필요할 리 없었으니 아무도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살 여행을 위한 택시 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을 무렵 구세주가 나타나셨다. 매형이었다. 매형 가라사대, 성서를 읽으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이 남자, 웬 떡이냐는 생각에 그날부터 열심히 성서를 읽기 시작했다. 죽기 위해 죽기 살기로 성서를 읽었던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일요일 날 교회에 가지 않는 유일한 자식이던 이 남자, 자살 여행의 택시비를 마련하겠다는 불순한 목적으로 성서를 읽기 시작했는데, 죽기 위해 시작한 성서 읽기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면서 조금씩 무감각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고 후 5년 만에 마침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장애인들이 살기에 너무나 불편한 세상, 이 남자를 투사로 만들다
장애인의 몸으로 5년 만에 세상에 나온 이 남자,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살기 힘든지 몸으로 직접 경험하게 된다. 그 불편함은 이 남자로 하여금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만들고 만다.
이 책의 1장과 2장에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불편한지, 그리고 그 불편함들을 없애기 위해 그가 얼마나 힘겹게 싸웠는지, 그리고 초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수많은 중증 장애인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들 장애인 야학을 만든 이 남자가 세상의 두꺼운 벽을 향해 얼마나 소리치고 외쳤는지가 잘 나와 있다.
그렇다고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다. 장애인에 대한 문제제기들이란 것이 무겁고 터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 남자는 그런 문제들을 웃음과 유머로 승화시키고 있어 킥킥거리며 웃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장애인 문제에 깊이 공감하면서 장애인 문제 한복판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금은 ‘분노’하기도 한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 보너스다.
우당탕탕 노들야학, 좌충우돌 봉숭아 학당
3장은 이 남자가 17년째 교장으로 장기 집권하고 있는, 노들야학 교사들과 학생들, 그리고 노들야학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글이다. 형식은 3장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부록인 셈이다. 3장은 지금 노들야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중증 장애인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니만큼 곳곳에서 처절함과 애절함이 넘쳐날 것이라는 선입관은 갖기 마시길. 한 번이라도 노들야학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치 80년대 대학 동아리방에 들어간 것처럼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곳이 노들야학이다. 오죽 했으면 노들야학에는 복도의 휴지통도, 교실의 칠판도 살아 꿈틀거린다는 소문이 있을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노들야학 수업 모습이 봉숭아 학당을 닮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부도 안 하고 놀기만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서는 큰일 난다!
하지만 3장 곳곳에는 장애인들이 처한 부조리하고 불편한 진실들이 곳곳에 흔적을 남기며 또아리를 틀고 있다. 따라서 3장을 읽으면서도 가끔은 분노하고, 가끔은 가슴 뭉클함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삶의 지평을 넓히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무척이나 공헌할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