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나의 중심에는, 우리의 중심에는 누가 자리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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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5/연중 제3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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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 23장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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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등지고
사제가 되고 나서는 십자가를 등지는 시간이 월등히 많아졌습니다. 미사를 집전할 때, 전례를 주례할 때, 강론대에 설 때. 모두 제대 뒤 성전 벽의 십자가를 ‘등지고’ 서게 됩니다. 그런 날이 지속되다 보니 큰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인사가, 신자들의 존경이 십자가의 예수님이 아닌 나를 향한 것 같다는 착각 말입니다. 강론을 할 때도 예수님의 말씀을 풀이하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잔뜩 늘어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몇몇을 보며 ‘역시 내 말이 옳아!’라고 여겼습니다. 또 ‘좀 더 화려한 동작으로 미사를 집전하면 사람들이 나를 더욱 거룩하게 보겠지’ ‘좀 더 고상한 단어를 사용해서 강론을 하면 사람들이 나를 지혜롭게 여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저를 드러내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제 안에는 허전함과 허무함이 커져만 갔습니다. 그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중심이 아닌 미사는 결코 거룩할 수 없고, 예수님의 말씀이 중심이 아닌 강론은 결코 신자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저와 비슷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찬사가 하느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좀 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옷자락 술을 길게 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스승이라 불리길 원하고, 좋은 대접을 받길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알맹이가 빠져버린 삶에서 허전함과 허무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는 착각에서 벗어나야겠지요. 스승이라고, 아버지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를 드러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닌, 정말 드러나셔야 할 분을 드러내게 하라는 따끔한 충고의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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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우 알베르토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3년 11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