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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정한 다니엘
단 1:8-21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16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17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
18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
19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가 없으므로 그들을 왕 앞에 서게 하고
20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단 1:821 / [증명된 다니엘의 믿음] 다니엘은 왕궁에서 주는 음식과 포도주를 먹어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으리라 굳게 마음먹고 시종장에게 왕궁 음식과 술을 먹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9) 하나님은 시종장에게 다니엘을 아끼고 사랑할 마음을 주셨다. 10) 그래서 시종장은 다니엘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임금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다. 임금님께서 왕실 관례대로 너희들도 똑같이 왕실 음식을 먹고 마시라고 지정하셨기 때문이야. 너희가 만일 다른 젊은이와 똑같지 않고 얼굴이 빠져 있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만일 그렇기라도 한다면 임금님께서 나를 처형하실지도 모를 일 아니냐?' 11) 그러자 다니엘은 시종장이 자기와 세 친구인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맡아 보살피라고 명령한 감독관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 12) 저희들에게 열흘 동안만 채식을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물론 물도 마시게 해주시고요. 13) 그런 다음 우리 얼굴을 왕실 음식을 먹은 다른 젊은이들과 비교해 보시고 그 다음에 감독관님 마음대로 처분하시지요.' 14) 감독관은 이 네 젊은이의 말대로 열흘 동안 두고 보기로 하였다. 15) 열흘이 지났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열흘 동안 채식만 하였는데 계속해서 왕실 음식을 먹었던 다른 젊은이들보다도 더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더 건강하게 보인 것이다. 16) 그래서 그때부터 그들을 맡아 보살피던 감독관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왕실 음식 대신 채식만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17) 하나님께서는 이 네 젊은이들에게 남다른 지혜와 지식을 주셨다. 그들은 모든 학문 분야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특출한 재주를 보여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특히 다니엘은 환상이나 꿈을 해석해 내는 능력도 지니게 되었다. 18) 왕이 교육시키라고 한 3년이 지나자 시종장은 젊은이들을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데리고 갔다. 19) 왕은 이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우수한 젊은이들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왕은 이들이 다른 젊은이들보다 더 슬기롭고 학문이 뛰어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왕실에서 일을 보게 하였다. 20) 느부갓네살왕이 이 네 젊은이에게 이런저런 분야를 물어 보아도 그들은 나라 안에 있는 그 어떤 점쟁이나 마술사보다도 열 배나 더 지혜롭게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 왕실에서 일을 보게 한 것이다. 21) 다니엘은 바사 왕인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할 때까지 바벨론 왕실에서 일을 하였다.
왕은 다니엘을 바벨론 사람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그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여호와의 신앙을 지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따르는 일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절대 신앙인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의 몸과 마음을 여호와께 맡겼으며 하나님께서 남은 일을 하시도록 했습니다.
대담한 도전(8-16) 하나님은 다니엘이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했고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다니엘은 자기의 결정에 염려하고 있는 환관장에게 열흘간 시험해 보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환관장은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이라 여겨 다니엘의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채소(콩류)와 물로 열흘을 보냈고 마음을 더럽히는 산해진미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열흘이 지났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었습니다. 믿음으로 뜻을 정한 자에게 주어진 응답입니다.
하나님의 승리(17-21) 열흘간의 시험은 뜻을 정하고 나아가는 젊은이들의 출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3년의 교육 기간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17절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신앙과 영성 위에 지혜와 명철이 쌓여가고 세상의 학문이 더해졌습니다. 왕이 명한 기한이 차므로 왕이 이들을 대하여 보았습니다. 네 유대 청년들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의 박수와 술객보다 열 배나 나은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왕은 이들을 등용하여 왕 앞에서 섬기는 특권을 주었습니다. 21절은 다니엘이 정한 뜻이 어디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 말해 줍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그가 포로로 잡혀온 여호야김 3년(주전 605년)에서 고래스 원년(주전 538년)까지 70여 년을 바벨론에 살았고 그 후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10:1). ‘고레스 원년’이라 함은 바벨론, 메데, 페르시아 3대 제국시대를 거쳐오며 역사의 중심에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고레스 원년 포로 귀환을 목도하고 해방과 고국 귀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적용: 당신이 믿음으로 정한 뜻을 하나님이 함께 이뤄가시고 무엇을 그리고 어디까지 이르게 할 것인가를 내다봅니다. 다니엘과 같이 구별된 삶은 하나님이 일하실 통로입니다.
안데르센의 작품<인어공주>에서 아리엘은 목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다리를 얻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을 병들게 만드는 잘못된 거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근본적인 본성을 바꾸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본성의 중요한 내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죄의 문화와 환경 속에서 신앙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통해 성장하는 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설 교 >
뜻을 정하여
단 1:8~21
신앙과 삶은 양립할 수 있고 병행할 수 있는가?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믿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믿음을 지키면서도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또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청년들의 고민일 것이다.
이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다니엘이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면서 바벨론 제국과 페르샤 제국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 사람이다. 더구나 그 나라의 제 2인자격인 총리대신으로 정권이 두 번이나 바뀔 때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유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실력과 인품과 덕망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런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을 철저하고 순수하게 지켰다. 물론 중간에 그의 신앙 때문에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서 결국은 그 신앙을 인정을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아서 징계를 받아 그 당시 최강대국인 바벨론제국에 의해 나라가 멸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이때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귀족자녀들 중에서 똑똑하고 뛰어난 젊은 인재들을 선발해서 왕궁에서 교육을 받게 했다.
다니엘은 이때에 뽑혀간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여러 청소년들이 뽑혀 갔는데 오늘 본문에 다니엘과 함께 간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라는 세 친구의 이름이 나온다. 그들을 맡은 환관장이 이들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다 바꾸어 주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을 패망시킨 느브갓네살왕이 죽고 그 아들 벨사살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바벨론제국이 무너지고 나라가 메대와 파사로 나뉜 후에도 여전히 파사 국의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역사의 미래와 강대국들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받았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꿈을 해석하는 놀라운 능력도 가진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린 시절에 바벨론에 잡혀 와서 나이가 들어 늙을 때까지 변함없이 존경과 인정을 받았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오늘 본문에서 그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 다니엘의 신앙과 인격을 한 마디로 보여주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뜻을 정하여”라는 것이다.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바벨론 제국의 느브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에서 데리고 온 청년들을 왕궁에서 바벨론의 교육을 받게 했다. 포로로 잡혀왔지만 뛰어난 인재들을 등용해서 일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왕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주어 먹게 했다. “5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그 후에 그들은 왕 앞에 서게 될 것이더라.”
그러나 다니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신전에 드려졌던 제물을 먹음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이것이 다니엘을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가 어떻게 이방 나라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그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켰다.
그가 왕이 주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은 신앙을 지키겠다는 뜻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는 모든 고기는 일단 신전에 제물로 바친 후에 가져다가 먹었다. 그러므로 왕이 주는 모든 음식 특히 고기는 다 이방신에게 바쳤던 제물이었다. 그런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이방신을 섬기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래서 다니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왕의 음식을 먹지 않아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무리 포로로 잡혀와 있어도 믿음만은 버릴 수 없고 끝까지 순수하게 지키고 세상에 끌려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당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청소년들은 전쟁 통에 부모를 잃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부모는 대부분 이스라엘 나라의 왕족이나 귀족들이었기 때문에 바벨론 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바벨론나라로 잡혀왔다. 그리고 그 때 잡혀간 대부분의 유대 청소년들은 거세를 당해서 남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을 잃어버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참으로 비참하고 처절한 상황이며 어떤 희망과 기대를 가질 수 없고 그들을 생각해 주거나 지켜주거나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포로의 신분이기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즉시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때의 다니엘의 나이가 불과 13세 전후였다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결심은 열세 살의 어린 소년이 한 일이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대단하고 엄청난 일이었다.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세상을 살면서 믿음을 지키기 힘든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하기 위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올라가기 위해서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고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많지 않은가?
그런 때에 다니엘을 기억하라. 다니엘의 믿음을 생각하고 뜻을 정하라.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신앙이 약해지거나 오염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하라. 어떤 경우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하라.
둘째, 그는 삶의 순결을 지켰다.
6장에 보면 다윗의 정적들이 왕의 신임을 받는 그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그를 고발할 근거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의 삶에서나 직무에서나 아무런 허물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6: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킬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도 철저하게 잘 감당한 실력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에서도 부정이나 불의가 없었고 실수나 허물이 없었다.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생활에서도 순결함을 지켰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생활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믿음에 열심히 있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맡은 일에 충성하지 못하고 게으르거나 실력이 부족해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기도 한다. 또는 개인생활이 온전하거나 올바르지 못하고 비윤리적인 경우도 많이 본다. 신앙은 좋은데 인격은 그렇지 못해서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의외로 죄와 불의의 유혹과 공격에 쉽게 넘어가서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믿음이 좋으면 인격도 좋아야 한다. 믿음이 좋으면 삶도 좋아야 한다. 생활에서도 선하지 못한 것, 유익하지 못한 것은 피하고 버려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과 생각과 인격과 삶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 세상을 본받거나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 악하고 더러운 것은 흉내도 내지 말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요셉은 열일곱 살 때에 위대한 꿈을 꾼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살았다. 그런 그에게 중대한 위기가 찾아왔었다. 그가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에 주인의 아내가 젊은 그를 유혹한 것이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스물일곱 살 쯤 되어서 혈기방장하여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은 때였다. 그 유혹을 받아들이면 당장은 편안하게 즐기며 살 수 있었지만 요셉은 그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쳤고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만약에 이때 요셉이 그 유혹에 넘어갔더라면 그는 한 명의 히브리 노예로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결단하여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거룩하게 깨끗하게 지켰다. 창세기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세상에 살 때에 믿음의 사람들이 삶의 순결함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공격이 무척 많고 또 강력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세상 속에 살면서,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자신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처럼 단호하게 죄와 불의와 더러움을 거부하고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당장 손해가 오더라도 더러운 유혹에서 일어나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 거룩함과 순수함에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능력이 나온다.
셋째, 그는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졌다.
그는 신앙을 지킨다고 하면서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바벨론 제국의 모든 것을 마음을 열고 다 받아들이고 배우고 익혔다. 그래서 바벨론 제국과 문화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세상 속에서, 사람들 속에서 믿음으로 살고 깨끗하게 살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신앙의 순수함과 삶의 순결함을 지키려고 할 때에 자칫 잘못하면 사람들에게서 소외를 당하거나 세상에서 고립되기가 쉽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모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세상을 이길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다니엘처럼 세상 속에 살고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믿음과 삶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좁은 생각과 닫힌 마음을 버리고 열린 마음과 넓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실력을 갖추고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세상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자주 만나고 잘 어울려서 그들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 그래서 삶 속에서 사람들과 만나서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복음과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믿음의 순수함을 지키고 삶의 순결함을 지키라는 것은 세상에서 빠져나와서,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혼자서 살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적극적인 자세와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그 가운데서 믿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라.
이렇게 다니엘이 불신앙의 나라, 불신앙의 사회에 살면서도 믿음과 삶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키고 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
첫째, 그는 뛰어난 영성의 사람이었다. 그는 포로생활 중에도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의 정적들이 그를 넘어뜨리려고 그에게서 허물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하자 그의 신앙을 이용해서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왕의 허락을 받아 조서가 공포되었다. 그가 매일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잡아넣어 죽이려고 꾸민 술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왕명이 내려진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날도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고국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목숨이 위태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 때문에 기도를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믿음이 그를 지켰다. 경건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구하는 것이다. 그 쉬지 않는 경건생활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혜와 믿음의 능력을 주신다.
둘째, 그는 뛰어난 지혜의 사람이었다. 그는 포로로 살면서 왕이 주는 것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방신전에 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믿음도 확고했다. 이 두 가지가 부딪히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현실을 지혜롭게 잘 해결했다. 그는 무조건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버티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자기들을 관할하는 환관장에게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볼 것을 건의했다. 즉 자기들은 열흘 동안 야채만 먹게 하고 고기를 먹는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이 나빠지는지 아닌지 지켜보아 달라고 했다.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야채만 먹으면서도 다른 소년들보다 훨씬 더 얼굴이 윤택하고 건강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 씩 짝을 지어 전도하러 내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사나운 이리와 늑대가 우글거리는 곳으로 순진한 양을 보내는 것처럼, 사탄의 세력이 득세하고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하고 넘어뜨리려고 노리고 있는 곳으로 제자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셨다. 뱀이 얼마나 간사하고 간교한가? 하와를 유혹해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셨다. 뱀은 그 지혜를 사람을 죄를 짓게 하는 악한 일에 썼지만 제자들은 사탄의 계략을 간파하고 사탄의 유혹과 공격을 이길 수 있는 선한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다. 뱀같이 지혜로워야 비둘기같이 순수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아니면 간교한 사탄의 유혹과 죄의 유혹과 세상의 유혹에 끌려가서 범죄하고 만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말씀을 듣고 배울 때는 아멘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부딪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현실과 타협하고 세상에 끌려가게 된다. 아니면 포기하거나 패배하고 주저앉게 된다.
그러나 믿음이 좋다는 것이 무조건 고집을 부리고 밀어붙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혜가 있어야만 믿음을 잘 지키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죄와 불의와 타협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처럼 뱀같이 지혜로우면서도 얼마든지 비둘기같이 순결하게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지혜가 부족하다고, 지혜가 없다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고민만 하고 있지 말고, 더럽고 죄악 많은 세상에서도 깨끗한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셋째, 그는 분명한 확신의 사람이었다. 그가 환관장에게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열흘 동안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만 먹어도 믿음으로 살면 그들보다 더 건강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에게는 분명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받으시고 은혜 주실 것을 믿은 것이다.
신앙은 확신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의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과 믿음대로 이루어주시는 것과 기도한 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 확신으로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아들을 고치려고 데리고 온 사람에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자신 있게 고백했다.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선한 지혜가 생긴다. 확신이 없으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할 수 없다.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방법으로 살 때 승리하게 된다.
미국에서 한 고등학생이 South Western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이 대학의 선수가 되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드디어 그는 어렵게 그 대학의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다. 실력이 좋아서 곧 주전선수로 뛰게 되었다.
그런데 그 대학과 가장 라이벌이 되는 대학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연세대학교의 고려대학교의 경우와 비슷한 관계였다. 매년 한 번씩 한 번은 자기 학교에서 한 번은 상대 학교에 가서 경기를 가졌다. 항상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명승부를 펼치곤 했다. 그해는 South Western 대학에서 경기가 있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경기였고 전 졸업생들까지 다 모여서 마지막 경기를 관람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고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졌고 두 팀의 점수가 거의 비슷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팀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여기서 점수를 내면 이기고 못 내면 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작전을 짰다. 스크럼을 짜고 공을 받은 사람이 뒤에 있는 이 선수에게 패스하면 바로 그 자리에 touch down을 하기로 했다. 공격이 시작되고 작전대로 볼을 빼내어서 이 선수에게 패스를 했고 그는 공을 받아서 touch down을 했다. 극적으로 그의 팀이 이긴 것이었다. 온 졸업생들과 학생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서 환호를 하고 환성을 질렀다. 상대 팀은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고 어깨를 떨구었다. 그는 한 순간에 모든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고민이 생겼다. 패스를 받을 때 땅에 닿기 전에 받아서 touch down을 해야 하는데 그만 패스가 약간 짧아서 땅에 닿았다. 그리고 땅에 닿자마자 그가 받아서 touch down을 했다.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심판도 눈치 채지 못했다. 오직 자신만 알고 있었다. 사실은 반칙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만약에 가만히 있으면 그는 영웅이 된다. 그러나 만약에 이것을 밝히면 승패가 뒤집히게 되고 온 학교는 크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그가 “심판!”하고 소리를 친다. 그리고 말했다. “touch down이 아닙니다. 볼이 땅에 닿았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상대 팀 선수들이 “와”하고 소리를 지르고 상대학교학생들이 일어나서 환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학교 학생들과 졸업생들과 교수들은 그에게 야유를 보내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묵묵히 돌아서서 경기장을 나와서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기다리고 있던 동료 선수들이 고지식하다고 비난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대로 된 것이다. 그가 기도한 대로 그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것이다. “하나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임을 온 세상이 알게 하옵소서.”
그는 확신의 사람이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이 무어라고 하는지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대로, 자기가 가진 믿음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뜻을 정하고 말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오늘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사회 곳곳에 들어가서 뛰어난 실력과 분명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양심을 지키고 바른 질서를 만들어내고 진리와 진실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사람들이 되기 바란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순수하게 지키고 삶을 깨끗하게 지키며 살기로 뜻을 정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주시는 지혜와 확신과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라.
하나님을 믿습니다
단 1:8-17 / 김창환 목사(춘천온누리교회)
유혹에 타협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별하며 항거합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단 1:8)
예수님을 믿은 후부터 새로운 열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열정,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열정,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의 열정,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집중하며 거룩하게 살려는 열정, 더 성장하며 성숙하여 덕을 세우는 열정,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열정, 이러한 열정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성령충만을 사모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환경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믿는 바가 달라지고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경제적 궁핍, 불의의 사고, 재앙,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받는 고난과 고통. 사람을 잘못 만나서 가슴앓이를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험에도 압도적인 힘으로 함께 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하나님만 믿고 있습니까?
다니엘 1장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급변한 환경과 상황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나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유대를 멸망시키고 영토, 주권, 백성을 바벨론에 넘긴 이는 하나님이십니다.(2절)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복을 받는다고 약속받은 나라(신 28:1)가 왜 망했을까요? 하나님이 바벨론을 사용하여 불순종하는 유대를 전쟁을 통해 징계하고 포로되게 하신 것입니다.(신 28:15, 32~34)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전쟁입니다. 나라를 주관하시는 분은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만연한 나라를 전쟁, 질병, 재앙을 사용하시어 심판하십니다. 통치자를 바꾸기도 하시며, 나라 전체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기도 하십니다.(단 4:17)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부모에게 불효하는 거역과 학대, 살인, 간음, 성범죄, 동성애, 이혼, 도둑질, 우상숭배, 탐욕, 사기, 국민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 공직자들의 부정, 불의하게 일어나는 사건사고, 갑질, 인권침해, 노동착취, 해악을 주는 중독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무너뜨리는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국가가 법적, 도덕적으로 죄악을 두둔하려는 시도도 드러나고 있습니다.(롬 1:32)
전국에 예배당 건물 10만개가 있어도 그것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남북관계 등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열강과의 외교관계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도와 주셔야 합니다.
믿음을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세상
바벨론은 슬기로운 유대 소년들을 잡아와 훈련시키며 유혹했습니다. 당대 세계 제일의 바벨론 학문과 언어, 수학, 물리, 과학, 정치, 역사, 항해술을 가르치고 왕의 음식을 제공하였습니다.(5절)
바벨론은 정복한 나라의 청소년을 지도자로 만들어 그 나라를 다스리게 하여 반란을 막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 그룹에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벨론 이름으로 강제개명을 시킵니다.(6~7절)
어린 소년들이 조국의 언어와 문화와 전통, 무엇보다 신앙을 지킬만한 싹을 없애기 위한 훈련을 3년 동안 진행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세뇌교육을 통하여 바벨론화 하려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여 땅과 주권과 백성을 빼앗기고 포로된 상태에서 엄청난 혜택을 제공받아 바벨론화 하려는 치밀한 계획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쁜 것인 줄 알면서도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무덤덤해집니다. 죄 짓는 것도 습관이 되면 죄로 인식하지 않게 됩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지요. 예배, 기도, 봉사, 성경읽기, 헌신, 전도도 꾸준하게 해야지 중간에 멈추거나 미루면 육신의 편함으로 무감각해집니다.
바벨론은 유대 소년들을 바벨론화 시키는 세뇌교육으로 출세를 약속하며 집요하게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포기하면 돈, 땅, 직장, 집, 결혼, 유학 등을 보장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도가 줄고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어른세대가 걱정합니다.
저는 군선교를 40년 이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떤 대대에는 한 명의 예배자도 없는 곳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청년들이 군대에 가서 유혹에 패배한 경우가 클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유혹들, 믿음을 포기하게 하는 환경들, 교회를 떠나게 하는 수많은 시험들이 있습니다. 말씀보다 물질과 편안함과 문화와 시대풍조를 더 강조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유혹에서 어떻게 나와 내 집은 하나님만 섬길 수 있을까요?
타협하지 말고 믿음의 결단을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8절)
왕이 먹는 최상의 음식이 제공되었으나 다니엘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율법이 금하고 피가 섞여있는 부정한 고기와 이방신들에게 바쳤던 음식이었기 때문에 거절하고 채식만 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고의 권세와 부요를 누렸던 솔로몬에게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권력, 명품 옷, 여자, 돈, 땅,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음식이었습니다.(전 2:24)
인간에게 유혹이 많지만 가장 강력한 유혹은 음식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 첫 번째가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음식 문제였습니다.(마 4:3) 다니엘이 왕의 음식을 거절함으로 당하는 불이익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퇴출당하여 노예로 살거나, 출세가 막히고, 심하면 사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는 뜻을 정했습니다. 군인은 군인정신이 있을 때 강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정신이 살아있을 때 유혹을 이깁니다.
이후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9절)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도 계셨습니다. 교인들 중에는 예배당을 떠나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으로 알고 욕망대로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을 피해 살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데 큰 힘입니다. 이스라엘에 계셨던 하나님은 바벨론에도 계십니다. 어디서나 하나님 면전의식을 갖는 것은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니엘이 음식을 거부하자 환관장은 걱정합니다.(10절) “다른 소년들은 다 먹고 마시는데 너희만 특별나게 왜 그러냐? 너만 하나님 믿는 것이 아니다. 쟤네도 하나님을 믿지만 다 먹더라. 너만 유별나게 그리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어야 너도 살고 나도 살아남는다. 제발 주는 대로 먹어라”라고 호소했으나 다니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신감이 넘치고 용기가 생깁니다.(12~16절) 다니엘은 10일간 간절히 기도하며 채식을 했습니다. 열흘 후에 다니엘과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였습니다.(15절) 이후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지정된 음식과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었습니다.
건강과 음식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 중에는 다니엘 1장이 건강한 식단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 1장은 건강과 장수를 위해 채식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먹었던 음식대로 먹으면 건강하게 장수한다고 하는 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채식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노아홍수 이후 하나님은 모든 살아있는 동물을 채소처럼 먹으라고 하셨습니다.(창 9:2~3) 육식이 좋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채식이 좋은 사람은 채식을 하면 되고, 육식·채식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먹으면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종교적, 의식적 정결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채식하며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타협하지 않으면 사회생활 할 수 없고 따돌림 당하고 인간관계 실패한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음식문제는 작은 유혹에 불과합니다. 작은 유혹에 저항해야 큰 유혹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니 나중에 사자 굴에 들어가는 큰일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믿음은 어릴 적 받은 성경교육의 힘입니다. 요즘 교회마다 다음세대를 말하나 다음세대를 위한 예산과 일꾼을 배정하는 교회는 소수입니다. 다음세대가 다니는 학교와 대학교를 위한 기도조차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살기 힘든 시대입니다. 유혹에 타협하기 좋은 시대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것보다 사탄에게 맡기기 좋은 시대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손해보고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은 소년들에게 더 선물을 주셨습니다.(17절)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시고 선물을 주십니다.
신앙생활은 구별이며, 거룩입니다. 구별은 도피가 아닙니다. 핍박, 조롱, 유혹, 타협이라는 달콤함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만 믿고 순종합니다”는 믿음으로 살 때 더 힘이 납니다. 요즘은 세상이 교회를 향해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언제부터 ‘오직예수’와 ‘죄에 저항하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죄를 죄라고 말하지 못하고 타협하고 있습니다. 구별이 없으니 세상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를 얕잡아 봅니다. 세상이 타락하여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그리스도인)가 불법하고 타락하여 심판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속의 제자와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불의 불법 거짓에 불복종하고, 부정 거짓 우상숭배에 저항하는 교회가 됩시다. 유혹에 타협하지 말고 뜻을 정해 항거하여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가 됩시다.
하나님께 더 잘 보인 사람
단 1:8-21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 이냐? 이 세상에 어느 것이 가장 귀 하냐? 하는 질문에 우리는 이 세상 에서 가장 귀한 것은 '내가 가장 귀 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 이 가장 귀하다 라는 것입니다. 이 번에 영국에서 인디팬던트 온 선데 이 신문에 사람값이 얼마냐?하는 기 사에서 한 사람의 값을 2억 8천 만 원으로 계산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이 신문에 서 근거를 잡은 것은 예를 들어 어 떤 사람이 교통사고가 나서 뇌사 상 태에 빠졌을 때, 신체를 이식하면 상당한 비용을 산출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진국의 의 학수준을 따라가지 못하여 몇가지 정도받게 이식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간이라든지 안구라든지 신장이 라든지 몇 가지만 할 수 있어도 엄 청난 유익이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 선진국에서는 이 신체를 한 200여 곳으로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거예 요. 뼈는 뼈대로, 살까지 전부 그램 으로 파는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배우들 입술 두터운 데에 이식 한다든지 코, 등 전부 부위에 따라 서 다 팔려요. 그래서 사람이 지금 은 공중분해가 다 될 수 있는 거예 요. 전부 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 로 귀는 귀대로 전부 가져다가 붙이 는 거죠. 그래서 계산하니까 2억 8 천 만원 정도가 나온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보면 가장 비싼 값어치로 환산이 됐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값 어치가 2억 8천 만원으로, 우리 한 사람이 그 정도의 값어치밖에 안됩 니까? 우리는 은혜 받고 내 자신을 보세 요. 얼마나 내가 귀하다 라는 걸 깨 닫게 되고, 은혜 받고 사람을 보세 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귀합 니까? 사람은 지구보다도 귀하고 천 하보다도 귀하고 이 땅 위에 모아 놓은 모든 금, 은 보화도 내가 귀하 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천하를 주고 도 바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 리 의복이 귀하고 아무리 음식이 귀 한들 생명만큼 귀하겠느냐는 거예 요. 사람만큼 귀한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입니다. 사람이 귀합니다. 아브라함 한 사 람을 통하여 천하 만민에게 복을 내 려 주시고 또한 바울 한 사람이 얼 마나 귀합니까? 예수님은 사람이 얼 마나 귀했으면 사람의 몸이 되어 이 땅에 오셨겠습니까? 천사가 되어 오 실 수도 있을 테고, 천사가 귀하잖 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천사가 안되 셨습니다. 사람이 되어 오셨어요. 왜? 사람이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 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이 특별히 흙을 빚어 만드신 우리 인 간,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신 우리 인간이 가장 귀하다는 것입니다. 우 리는 국가의 문제나 어떤 가정의 모 든 문제나, 앞날도 인간이 어떤 인 간이 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좌 우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의 앞날 도 우리 사람에 의해서, 기계도, 회 사도, 정부도 어떤 분야도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다윗같이 훌륭한 사람 한 분이 나오니까 전 나라에 정치, 경제, 사회, 교육, 평 화, 군사 모든 분야에 하나님이 그 땅에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지도가 바뀝니다. 국가에 번영이 왔습니다.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잘못하니까, 잘못된 지도자 사울이 오니까 온 이스라엘에 어려움이 왔 습니다. 국가는 비통과 가난과 환난 과 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나라를 이끌어 가는 핸들을 잡은 지도자를 우리는 잘 만나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길러 내야 합 니다. 지도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 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사람 가 운데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텐데 우 리는 좋은 지도자를 길러내는 이런 교육이 되고 가정이 되고 교회가 되 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의 앞날도 우리 교회에 어떤 지도자가 세워지느냐가 우리 교회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 의 목회가 어느덧 이렇게 이십 년이 되었으며 이제 남은 것은 그렇게 많 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그래서 내 후임자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는 지금도 많은 걱정을 합니다.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저보다 열 배 더 훌 륭한 분이 우리 교회를 맡아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좋은 지 도자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야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벨론이라 하는 나라에 다니엘이라고 하는 소년이 붙들려 갑니다. 여호야김 때에 붙들 려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였지만 그 전에 여호 야김 때에 느브갓네살에 의해서 많 은 젊은이들이 붙들려 갔는데 바벨 론 나라는 오늘 미국과 같은 그런 정책을 폅니다. 미국이 하는 일이 뭡니까? 세계의 우수한 인력을 다 데려다 자기 나라 정치, 경제, 교육, 문화에 전부 참여를 시켜서 미국이 라는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모두 힘 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고 기회를 만 들어 주는 것이죠. 바벨론은 그런 정책을 썼어요. 세계를 지배하면서 우리가 다 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역 관계없이, 나라 관계없이 훌륭한 사 람은 데려다가 그 나라 정치, 경제 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 다. 옛날치고는 아주 이 느브갓네살은 상당히 그런점에 대해서 관용하고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붙들려 간 젊은이들 중 몇 명을 그 가운데 특 별 심사를 해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 벳느고 다니엘 이런 네 친구들이 그 곳에 모든 과정을 거쳐서 요사이로 말하면 시험과 철저한 1, 2, 3차 심 사를 거쳐서 이 나라에 쓰임을 받게 되는 거예요. 요사이로 말하면 궁중 학교에 들어가는 거예요. 아주 놀라 운 기회가 열려졌어요. 다니엘이 그 래서 이 바벨론 나라에 발을 들여놓 아서 그 궁궐에 들어가면서부터 오 랫동안 쓰임을 받습니다. 느브갓네 살왕 때에 쓰임 받지요 벨사살왕 때 에 쓰임 받지요. 그 다음에 메대, 파 사의 다리오왕 때까지 아주 오랜 기 간을 한 임금도 어려운데 나라가 망 하고 다른 나라가 들어 왔는데도 다 니엘만큼은 계속 쓰임을 받는 거예 요. 대단한 일이잖아요? 요새 태조 왕건을 하는데 고려에 서 계속해서 또 나라가 넘어가는데 도 다니엘은 계속해서 쓰임을 받는 거예요. 그것도 보통사람이 아닌 총 리 자리에 나가는 거예요. 이 다니 엘이 이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어디 에 있느냐? 기초가, 기본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 기본이 잘되어 있 었어요. 다니엘 1장 3절에 보면 "왕족과 귀족 중에서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 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 비하며 학문에 익숙하며 왕궁에 모 실만한" 자격 있는, 모든 면으로 갖 춘 사람이었습니다. 기본이 잘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왕들에게 사 랑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습니 다. 모든 분들에게 훌륭한 지도자로 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귀한 것은 무엇이냐? 믿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신앙의 기초가 잘 되어 있었어요.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사람보다 왕에게보다도 전능하신 하나님 마음 에 더 드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 서 다니엘이 성공한 것은 어떤 이런 면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을 잘 믿은 것 때문에 다니엘은 큰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 는 모든 기본을 다 잘 갖추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신앙의 기본, 하나 님 외에는 내가 믿을 이가 없고 나 의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은 변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겠다는 이 한 가지 가 철저하고 분명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모든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 은 기본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 총리께서도 옷을 벗으 셨는데 오늘 아침에 1부 예배에 교 계의 여러 어른들이 오셔서 아침 식 사를 같이 하면서 내가 너무 더우니 까 '아 옷 좀 벗으시죠' 그랬더니 모 두 옷을 벗으면서 그래요. 옷을 벗 으라는 말은 사표 내고 나가라는 말 인데, 참 그랬어요. 요사이 옷 벗고 나가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서 요. 여러분, 높은 분이 옷을 왜 벗었 어요? 정치를, 외교를 잘못했어요? 장관들과의 무슨 회의를 잘못 주재 한 것이 아니에요. 아주 극히 유치 원생들에게 전달되는 그런 기본에 문제가 있어서 그 자리가 넘어지는 거예요. 아무리 좋은 빌딩을 짓고 높은 지 위에 올라가도 기초가 든든하지 않 으면 어느 때엔 가는 넘어지게 되어 있어요. 넘어지는 거예요. 위에 문제 가 아니에요 아래 문제예요. 기초의 문제예요. 신앙생활 하면서 어떻게 보면 성경도 많이 배워야 하는 것 같고 공부도 많이 해야 되는 것 같 지만 그러나 신앙의 가장 귀한 것은 기본이 잘 된 분이 큰 일을 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누구도 믿 지 않는 이 굳센 믿음 위에 서는 것 이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는 모든 일에 기본을 무시하는, 기초를 무시 하는 이런 흐름이 전체적으로 있습 니다. 성공만 하면 되는 거지, 위에 만 가고 출세만 하고 행복만 하고 잘 되면 되는 거지 그 아래는 별로 터 닦는 일에는 허송세월로, 낭비하 는 걸로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이 주변에 집들을 짓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개척을 하고 여기 있으면서 심방을 하러 늘 밖으로 나 가다 보면 공사하는 걸 늘 보니까요 우리 교회가 오고 나서 이 주변에 집들을 다 지었으니까요. 그런데 어 떤 날은 가다 보면 참 재미있는 것 이, 단독주택을 짓는데 그날 시멘트 를 바르고는 기초를 하루에 다 하는 거예요. 오후 되면 벌써 벽돌이 올 라가요 그 다음에 기둥이라든지 이 런 걸 안하고 그냥 위에 걸치고 하 는 거예요. 내가 보고 '아 참 저러면 안 되는데' 그래도 타일을 붙여서 깨끗하게 해서 집이 팔려 가는 거예 요. 3월에 팔고 6월, 7월에 비가 오 면 그 주변에 심방 나가다 보면 온 식구들이 물을 퍼내는 거예요. 지하 에서 그저 샘이 솟듯이 물이 펑펑 솟는 거예요. 보세요 집을 짓는 분도 그냥 팔 아먹으면 되는 거예요. 기초가 뭐 중요하냐 하는 거예요. 팔면 그만인 데. 사는 사람도 인테리어가 어떻고 문이 어떠냐 문고리가 어떠냐 샹데 리가 어떠냐 싱크대가 어떠냐 이것 만 보지 기초는 안보는 거예요. 사 는 사람도 기초를 안보고 집 파는 사람도 기초를 생각하지 않고 다 후 회하는 것이죠. 그래서 IMF가 오는 거예요. 어느 나라에도 안 오는 IMF가 자꾸 오려고 하는 것은 어디 에 있느냐, 당하고 또 당하는 이유 는 어디에 있느냐? 백 번이라도 자 꾸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기초를 무시하면 항상 당하게 되어 있는 거 예요. 모든 경제의 위기가 어디에서 와 요? 정치가 왜 무너지느냐? 기초가 든든하면 다른 나라 정당은 몇 백년 가도 안 무너져요. 별의별 변화가 있어도 기초가 든든하니까 어떻게 무너져요? 뿌리가 든든한데 어떻게 무너져요? 행복이나 건강이나 학문 이나 스포츠나 정치나 기업이나 어 느 것이든지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 다. 기본입니다. 건물이 공중에 떠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듯이 행복도 공중에 떠 있는 행복은 하나도 없습 니다. 행복도 진실과 근면과 절제와 사랑과 감사와 인내와 이런 철저한 기초를 닦아야 행복이 그 위에서 하 나 하나 만들어져 나가는 거예요. 어디 무슨 공중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찾아보지만 그런 행복은 길거 리의 행복이에요. 싸구려 행복이에 요. 그건 행복이 아니에요. 교인 한 분이 결혼을 했는데 첫날 밤에 헤어졌어요. 안 산 대요. 왜 그 러냐 하니까? 첫날밤에 이상한 요구 를 한다 그래요. 뭐가 이상하냐 그 러니까 그건 말을 못한다는 거예요. 이상한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첫날밤부터 무슨 다 끝장 내려고 하는 거예요. 사람이 하루하 루 살아가면서 둘이 그래야 되는데 오늘 우리는 기초, 터 닦는 사람 없 이 모두 공중에 떠 있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이렇게 많습니다. 기초 가 참 중요한 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 스승의 주일을 맞이해서 아 이들에게, 대학이 아닙니다. 초등학 교 공부 잘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교육은 어머니가 시키는 가정교육, 태어나서부터 가르치는 기본, 또 초등학교, 유치원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두 선생님, 집에 있는 어머니 선생님, 학교에 있는 학교 선생님 이 선생님 역할이 사람을 다 좌우하는 것입니 다. 나중이 아닙니다. 사람이 영어를 몰라서, 수학을 몰라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 안돼서 망하는 것입 니다. 초등학교 교육 안 배웠는데 위에 올라가서 제아무리 배워야 그 사람 실패하는 거예요. 기본을 놓치고 무슨 위에서 무엇 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인격적 인 기본, 더 말할 필요 없습니다. 도 덕적인 기본, 더 말할 것도 없습니 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을 존경하게 만들고 '선생님한테 인사 드려라' '너희 선생님 찾아뵈었냐'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도 꼭 그걸 가르쳐야 합니다. '너 선생님한테 인 사했냐' '방학에 선생님한테 찾아가 보았냐'. 여러분, 그런 절차를 무시 하고 이 세상에 대접받고 쓰임 받을 일은 없습니다. 자녀 잘 기르십시다, 잘 가르치십시다, 잘 길러내십시다. 기본이 다 좌우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승리는 기본 때문입니 다.
남의 나라에서, 예를 들어 필리 핀 사람이 우리 나라에 와서 국무총 리 하는 게 쉬운 일이겠어요? 유대 인이 바벨론 나라,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에 가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쉬운 일이겠어요? 그러나 기본 만 잘 되면 어디에 가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기본만 잘 되면 아무리 어려운 자 리 관계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 에만 바로 서면 못 할 일이 없는 줄 로 믿습니다. 다니엘은 궁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임금으로부터 상에 좋은 음식이 내려오고, 오늘 본문에 보면 포도주가 매일 나오고 얼마나 맛있 는 음식들이 나오는지, 그러나 노예 로 있다가 남의 나라 포로로 붙들려 있다가 빵 한 조각도 얻어먹지 못하 던 다니엘이 상위에 차려 놓은 걸 보니 얼마나 좋은 것들이 가득 차 있는지,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도 먹 을 수가 없었어요 왜? 신앙으로 보니까 믿음으로 보 니까 먹을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 에 보니까 먹어서는 안될 거예요. 몸에는 좋은 음식이 분명해요 맛은 있어요 값도 비싸요 진수성찬이에요 귀한 음식이에요. 가득 가득 다 채 워져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신 앙을 가지고 보면 내게 맞지 않는 거예요. 하나님은 나를 귀히 여기는 거예요. 믿음은 나를 살리는 거예요. 음식 좋은 것 먹고 내 일생을 망치 는 것보다는 하나님 잘 믿어 내가 덜 먹고, 안 먹고 믿음 지켜서 길이 길이 오래 살고 복 받는 우리 성도 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좋 다고 다 먹는 것 아닙니다. 몸에 좋 다고 먹는 것 아닙니다. 제가 시골에서 양을 길러보니까 참 배울 것이 많아요. 제가 어려워 서 이제 양을 몇 마리 가져다가 젖 을 짜주고 했는데 이 양이 말이죠 그 많은 풀이 있지만 아무거나 안 먹는 거예요. 꼭 몇 가지밖에 안 먹 어요. 깨끗한 걸 먹고요 그래서 가 을이 되면 양이 먹는 풀을 따로 준 비해요. 아무거나 안 먹어요. 하나님 의 자녀 된 우리가 아무거나 먹으면 안돼요. 왜? 내가 귀하기 때문에 재 산도 귀하니까 따로 관리하듯이 재 산보다 귀한 내 생명도 관리해야 됩 니다. 내 영혼을 관리를 해야 해요.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나 가면 안 되는 거예요. 왜? 천하보다 귀한 이 생명을 가지고 내가 어디를 가겠어 요. 그래서 성도들은 길이 많아도 좁은 길로 가는 거예요. 먹을 것이 많아도 꼭 필요한 것만 먹는 거예 요. 오늘 우리시대는 극히 혼돈의 시 대입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 고 할 것, 못 할 것이 없습니다. 갈 곳, 못 갈 곳이 없습니다. 먹을 것, 안 먹을 것이 없습니다. 다 그저 되 는대로 살아가는 이 시대가 되었습 니다. 이것은 큰 위기요 우리의 잘 못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가는 길이 정해져 있고 먹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내 생명,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가지고 양도 아무거나 먹지 않습니다. 내가 양을 먹여보니까 침 을 탁 뱉으면 그 풀을 안 먹습니다. 얼마나 깨끗한 지요. 냄새 맡아보고 금방 알아요. 요만한 오물이 묻어도 안 먹어요. 깨끗한 것만 먹습니다. 우리는 양같이 살아야 할 줄로 믿습 니다. 생명이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 이 그래서 그런 사람을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제가 어느 교인 집에 갔는데 아주 잘 사는 교인이었어요. 가니까 대접 을 했는데 뭘 끓였느냐 하면 목사님 이 오셨는데 특별한 메뉴를 준비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는데 뭐가 나오느냐 하면 겨울에 어디에 가서 잡았는지 잠자는 개구리를 어디서 그렇게 많이 잡았는지 수 십 마리를 한 솥을 끓여 가지고 나 먹으라는 거예요. 그 성의야 고맙죠 그러나 내가 뭐 하러 개구리를 먹겠어요. 오늘 우리는 까마귀도 한 마리 없고 요 그래서 되겠어요? 겨울에 잠자고 있는 개구리를 산에 바위 다 뒤적거 려서 잡아 가지고, 이렇게 이 나라 에 먹을 것이 많은데 그거 다 놔두 고 개구리를 찾아 헤매어야 되겠어 요? 우리 나라 같이 먹을 종류가 많 은데 그래도 한이 안 차서 개구리를 먹어요? 개구리만도 못하게 말이죠.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새롭게 살아 야 할 줄로 믿습니다. 신앙의 기초를 잘 다지십시다. 출 세와 성공과 영광을 앞세우지 맙시 다. 다니엘은 그런 걸 앞세우면 거 기에 맞추어야 될텐데 절대로 그런 걸 따라가지 않았어요.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 보면 모세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거절하고 잠시 죄악의 낙을 누 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했다 그랬어요. 하나 님의 백성,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길은 잠시의 고난입니다. 그러나 이 생명과 그 이름과 그 영광과 그 축 복은 자손 만대에 영원한 줄로 믿습 니다. 죄악은 언제나 잠시입니다. 세 상은 언제나 잠시입니다. 영원한 길 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뜻대로 사는 길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유혹을 받 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여러분이 또 얼마 나 많이 충격을 받게 한, 뒤덮은 뉴 스가 있습니다. 그것은영자의 전성 시대가 또 왔습니다. 82년에 6천 4 백억 어음 부도를 이 간 큰 여자가 발행해서 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 은행장까지 올라간 장관 높은 지위에 있는 국회의원들이 32 명이 구속을 당했습니다. 이 한 여 자에 놀아나다가 피해 입은 사람도 수 만 명이 망해버렸습니다. 여러분, 6천 4백 억이면 지금 6조 4천 억보 다 더 많습니다. 82년에 6천 4백 억 이니까 얼마나 많아요. 자기가 챙긴 돈만 1천 6백 억을 챙겼습니다. 그 러다가 15년형을 받고 남편까지 모 시고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십 년만 에 나왔습니다. 특별히 나왔습니다. 그러나 92년에 나오자 1년 반만에 또 들어갔습니다. 똑같은 사기범으 로 또 들어가서 98년에 나왔습니다. 그 때는 사위하고 또 연결되어서 사 위하고 둘이 같이 그러더니 이번에 는 아들하고 둘이, 혼자 들어가지는 않아요 보니까요. 가더라도 누굴 데 리고 들어가요. 1년 10개월만에 다 시 구속되어서 사회에 이렇게 엄청 난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이 분이 다른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이 너무 좋았어요. 우 리 나라 여자 종합대학에, 일류대학 에 메이퀸도 했어요. 인물 좋고요 부모 잘 만나고요 머리 좋고요 다 좋은데 뭐가 문제냐? 기본이 문제예 요. 유치원 때, 초등학교 때 배우는 그거 모르면 아무리 올라가도, 아무 리 머리가 좋아도 모두 산산조각 나 는 거예요. 여러분, 기본이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 같이 기본을 무시하는 나 라가 없습니다. 인물만 좋으면 정말 되는 겁니까? 잘 살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다 되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처럼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 다는 것입니다. 어느 법조인을 만났 는데 우리 나라는 일본 사람에 비해 서 사기범이 천 배 많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라가 온통 거짓말쟁 이만 산다는 말입니다. 전부 사기꾼 만 이글거린다는 말입니다.
온 세계 가 일본은 물건도 믿고 사람도 믿는 데 우리 나라는 믿지를 않아요. 믿 을 수 없는 나라예요. 거짓말을 전 부다 은사를 받아 가지고 거짓말을 해요. 일본하고 우리와 비교해서 두드러 지게 드러나는 것이 두 가지인데 하 나는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시기 질투해서 법에다 무고혐의로 자꾸 투서를 하는 거예요. 이것은 7백 배 랍니다. 일본에는 그런 것이 없는 데 우리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 프잖아요? 반드시 그걸 신고하는 거 예요. 찔러 가지고 옆에 사람을 애 를 먹이는 거예요. 얼마나 비열하고 비인격적이고 기본이 잘못되어 있어 요. 우리는 십 년이 걸리더라도 이 제부터 이걸 빨리 해결해야 21세기 에, 2천 년 대에 후반부라도 세계를 향하여 쓰임 받는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기본이 안되면 안됩니다. 특별히 영 적인 기본, 신앙의 기본이 모든 문 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황 박사님이라고 우리 나라 암 학회에 최고의 권위자 이신 황 박사님을 만났는데 이 분이 이름이 황성주 박사예요. 식사를 같 이 하는데 이 분은 하루에 매일 암 환자만 70여명을 치료를 계속 하는 데 이 분 말씀이 그래요. 암은 금방 걸리는 암이 없고요 2년, 3년 전에 대체로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럴 때 아주 강한 스트레 스, 걱정, 고민이 있을 때 이것이 2 년 이후에 암으로 발전해서 나타난 다는 거예요. 그래서 암을 예방하는 약은 없고 마음을 담대하게 해서 어 떠한 충격 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 까짓 거 뭐, 그럴 수 있지 뭐, 괜찮다, 더 좋은 일이 있겠지 뭐, 할 수 있다' 이런 마음만 가질 수 있으 면 평생 암은 안 걸린 대요. 약이 없고, 그래서 일본에 있는 암 협회 회장께서도 '암은 치료하지 말아라' 는 책을 냈어요. 약이 없어요. 그래서 암을 예방하는 길도 자기 마음이에요 정신적이에요. 담대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안 온다 는 거예요. 그리고 암이 들어 왔을 때에도 이기는 길이 있는데 암이 진 행되다가도 어떤 사람은 일주일만에 확 퍼지는 사람도 있고 한달, 또 5 년, 6년, 10년 암하고 같이 사는 분 도 있대요. 그건 간단하대요. '암하 고 같이 살지 뭐' 그런 사람은 괜찮 대요. 그러나 암이 들어오자마자 암 고치려고 몸부림치고 '아이구 암이 다' 그러고 괴로워하면 이 암은 그 냥 잉크 물 번지듯이 번져 나간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런 마음을 갖는 길이 없다는 것이죠. 어떤 의지와 이성도 다 무너지는데 하나님을 믿 는 자만이 이걸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신앙만이 암을 이길 수 있 다는 거예요. 황 박사님 이야기예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하나님만이 나의 소망이요 예 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요 그가 나와 함께 하시면 두려움이 없다. 바벨론의 영광을 부러워하지 아니하 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제일로 생 각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승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불행 을 막는 길이 신앙입니다. 모든 범 죄를 막는 길이 신앙입니다. 불행하 지 않게 하고 또 불행한 자를 불행 에서 건지는 길이 신앙입니다. 하나 님을 잘 믿는 길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속에 들어갔지만 사자굴속에 서도 이겨냅니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깁니다. 실패하지 않도록 하지만 실패해도 실패에서 넘어진 자를 일 으키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 니다. 큰 믿음 분명한 신앙은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범죄하지 않도록 하지만 범죄한 데에서 넘어 지는 죄인을 회복시키는 것도 신앙 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 잘 들으시기를 바 랍니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기 독교에서 교도소를 할 수 있도록 지 금 법을 만들었어요. 기독교 교도소 를 만들라는 거예요. 이것이 어디에 서 나왔느냐하면 브라질에 휴마이더 교도소에서 교인들만 데려다가 월급 은 정부에서 주고 운영은 기독교식 으로 운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들어오면 벽에다가 예수님 사진 걸 어 놓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문 입구에서부터 그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가두어 놓지만 이걸 전부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하면 밥 먹을 때도 기도하고 먹고 저녁에 잠 잘 때도 찬송하고 잠자게 하고 전부 이 런 식으로 했는데 재범율이, 초범자 들이 아니고 재범자들만 가두어 놓 은 이 교도소에서 재범 율이 3% 밖 에 안 된다는 거예요. 다 새로워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 리 나라에는 재범 율이 얼마냐? 70%예요. 들어가면 더 큰 죄인으로 나오는 거예요. 고양이가 들어가면 호랑이가 되어 나오는 거예요. 감옥 에 들어갔다 하면 4범, 5범으로 계 속 고속도로같이 그냥 그대로 나아 가는 것은 사람이 한 번 범죄에 붙 잡힌 사람을 건질 자가 없는 거예 요. 가두어서 되는 게 아니에요. 힘으 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범죄하지 않게도 하지만 범죄한 자를 다시 죄의 구렁텅이에 서 건져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 리스도는 우리에게 건강을 주실 뿐 만 아니라 건강이 넘어질지라도 넘 어진 건강을 일으킬 능력이 주님에 게만 있는 거예요.
우리를 불행하지 않게도 하지만 불행한 사람을 다시 불행에서 건져 주실 분도 예수 그리 스도에요. 인간이 되게 하지만 못 된 인간, 쓸모 없는 인간도 다시 만 들어 내는 새로운 거듭남의 창조적 인 능력이 누구로부터 나타나느냐? 그리스도로부터 나타납니다. 주님만 이 약이요 소망이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주는 나의 큰 능력 주는 나의 큰 소망 내가 항상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주는 나의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본이 잘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사람에게도 잘 보여야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더 잘 보이는, 더 인정받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 같은 삶
다니엘 1:8-21 / 박신진 목사
성공적인 인생, 잘 살아온 생애란 어떤 것일까요? 송구스럽지만 제 나이도 환갑을 지나고 보니 이 문제를 전체적으로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지금의 자기 삶을 잘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제 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이죠. 더 젊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더 크게 멋있게 인생을 만들어 갈 수 있으니, 머물러 있지 말고 힘있게 더 달려야 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정말 성공이란 말 앞에 어정쩡합니다. 흔히 말하는 입신양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번 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사는 문제 앞에 우리가 서보아야 합니다.
본문은 다니엘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녀들이 다니엘과 같은 인물, 요셉과 같은 인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엄친아’라는 말이 요즘 많이 쓰이죠. ‘엄마 친구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엄마가 자녀들에게 “내 친구 아들은 ...” 하면서 잘나가는 아이와 비교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말을 제일 싫어합니다. 왜 기분 나쁘게 비교하냐 하는 것이죠. 그때 비교하는 대상이 엄마 친구의 아들, 즉 ‘엄친아’입니다.
한국의 기독교인 부모들이 생각하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 바로 다니엘과 요셉입니다. 바로 구약의 ‘엄친아’입니다. 요셉은 오랜 고대제국 에집트의 총리로 쓰임 받았습니다. 다니엘도 바벨론 제국의 총리로 우뚝 섰는데, 황제가 바뀌고 왕조가 교체되어도 재상 자리를 유지한 총리였습니다. 66년 총리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총리가 되었다가 1-2년 하고, 어떤 총리는 한 달도 못 채운 총리가 있는데 말이죠.
한국인으로서 큰 위치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세계은행총재로 있는 김용 같은 분들을 보세요. 이분은 기독교인이며 의사입니다. 미국의 명문 8개 대학을 아이비리그라 하는데, 그 중의 하나인 다트머스대학교의 총장을 역임했으며, 세계은행총재가 되어 재임되었습니다. 며칠 전에 한국에 들어와 문재인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습니다. 벌써 7년 째 IBRD라는 세계은행총재를 역임하고 있으니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바벨론 대국에 포로로 끌려갔는데, 거기서 총리가 되어 66년이나 유지합니다. 포로기에 우뚝 선 사람, 어려울 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인 사람, 존경스런 다니엘입니다. 그 다니엘 같은 삶의 비결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거창하게 성공적인 인생이 아니라도, 자기 위치에서 다니엘의 믿음과 삶을 배우면 후회 없는 인생이 될 것이라 여겨집니다.
다니엘은 나라가 망한 후에 적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가 당한 첫 시련은 창씨개명을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와 엘리트 친구들은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니엘이란 이름은 바벨론에 가서 ‘벨드사살’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다니엘이 익숙한 이름이지만 사실 바벨론에서 그는 벨드사살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란 바벨론 이름을 받습니다. 바벨론은 세계적인 인재들을 모아 자기나라의 행정관으로 썼는데,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바꾸고 바벨론 문화 쓰기를 강요했습니다.
명석하고 인물이 뛰어났던 그는 왕궁에서 일할 엘리트 소년으로 선발되어 3년 교육을 받은 뒤 바벨론 왕을 보좌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합니다. 천재교육을 받는 자들에게 주는 음식이 유대인의 율법에 저촉되는 음식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이 성경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부정한 음식, 금지된 음식들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런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돼지고기, 장어 등입니다. 정결음식을 지키기로 뜻을 정한 다니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공부를 뛰어나게 해서 전문 관료로서의 식견을 갖추게 되었고, 어떤 환상이든지 꿈이든지 다 풀 수 있는 통찰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잘 해몽해주고 왕의 옆에서 왕을 자문하는 매우 중요한 관리가 되었고 머지않아 총리가 되어 나라를 통솔합니다.
후에 다니엘을 시기하는 관리들의 미움을 받아 매일 기도하는 다니엘의 신앙습관이 모함을 받고 사자굴에 던져지고 풀무불에 들어가는 시련을 겪지만 인내로써 믿음을 지키며 승리합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맡은 일에서도 성공하였고, 신앙으로도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하나님만을 섬김으로 영적으로도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 뜻대로 살다 간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니엘의 인생에서 우리는 주님 뜻대로 사는 삶을 봅니다. 요즈음 무슨 일이나 사람을 보고 좋은 것을 본따 배우는 것을 ‘벤치마킹’한다고 하는데, 젊은이들은 성공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살기 위해 다니엘의 삶의 모습을 벤치마킹하기 바랍니다. 또한 나이고하, 형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같은 삶’을 우리 모두가 따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그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뜻을 정하고 그 뜻대로 사는 의지의 인물이었습니다. 뜻을 정했다는 것은 다니엘이 결단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꿈과 비전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꿈을 가지고 결단해야 합니다. 늘 편한 대로, 좋은 대로만 살면 절대 성공적인 삶이 되지 않습니다. 다니엘은 왕궁에서 훈련을 받는 입장이면서도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하고, 자기를 책임진 관리에게 왕의 음식이 아닌 자기가 정한 음식을 먹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도록 뜻을 정했다.’는 말은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는 결심이요, 인생의 꿈을 위해 의지력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개성과 욕망을 존중하는 시대입니다. 젊은이들에게도 무엇을 너무 강요하지 않는 시대이고, 훈련보다는 흐름을 따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나름의 행복은 추구하지만 아쉬운 점이 생깁니다. 뜻을 정하여 자기를 훈련하고 노력하는 것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꿈을 향하여 조금만 달려가면 될 텐데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은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고, 조금 더 크게 될 수 있는데, 그게 보이는데 의지력이 너무 약해 가닿지를 못합니다. 분명한 뜻을 정하고 그 뜻에 따라 살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가 금방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자기가 잘 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 하나님 뜻에 맞는 것을 뜻을 정하여 강하게 밀어붙이면 틀림없이 위대한 결과를 얻을 거예요.
우리 시대는 바벨론에 포로당한 이스라엘처럼 두 가지 문화에 포로 당했다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 물질문명과 쾌락문화입니다. 물질, 돈이면 다 되는 이 시대, 많은 것 큰 것을 숭상하는 이 시대에서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아름답게 다니엘처럼 살려면, 의지를 가지고 뜻을 정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교회에도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돈을 벌어 돈에 또 매이지 않고, 돈을 벌어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돈을 잘 씀으로써 돈에서 자유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 사람만 그렇게 살아도 이 물질문명 시대에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것입니다.
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쾌락을 숭배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인들까지 즐거운 것, 재미있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바르게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은 거부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의지를 가지고 바르고 참된 것을 위해 뜻을 정해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43년 동안 통치하는데, 광장에 왕의 동상을 세워 주고 모두 다 거기에 절하도록 했습니다. 그 우상숭배, 바벨론 문화를 이겨내기 위해 뜻을 정하여 지조를 지켰더니, 그 큰 나라를 다스릴 지혜와 권세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2.다니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다니엘을 지방의 통치자로 임명하려 하자 그를 시기하던 자들이 다니엘을 모함하려고 다리오 왕의 신상에 절하는 법을 만들어 공포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법을 알면서도 집에 올라가 전처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막을 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고발당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집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오히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꾸준하게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쁠수록 기도하라는 말처럼 바쁘고 잘 되고 지위가 높아질 때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중요한 인물이 되어 점점 바빠질 때에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사자굴에 들어갈 어려운 형편에 처하여서도 믿음을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합니다, 기도하면 역경 중에도 감사할 수 있어요, 기도하면 주님과 늘 동행하므로 지혜롭고 능력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시인하며, 깨어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때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일이 꼬일 때 기도하십시오! 화가 날 때, 슬플 때 기도해야 어려운 실패가 오히려 은혜의 방편이 됩니다. 낙심될 때, 상처받았을 때 여러분은 기도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의 땅 바벨론에서도 성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바쁜 행정관 업무 중에서 틈만 나면 기도했다는 얘기입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은 성공의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적 승리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3. 다니엘은 역경을 선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역경이 있습니다. 민족이 망해서 수만리 떨어진 외국으로 끌려가 포로 잡힌 인생을 사는 게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러나 그곳에서도 뜻을 정하여 살며, 매일 세 번씩 정규기도시간을 가지고, 주어진 시간과 상황을 오히려 인생 성공의 기회로 선용하여 바벨론 대국에서도 최고의 행정관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요셉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죠. 아리따운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습니다. 그래도 요셉은 이복형 10명을 잘 따릅니다. 형들이 들에서 양칠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도시락을 갖다주는 것은 요셉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 형들이 요셉을 웅덩이에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겨우 살려주면서 에집트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노예로 팔린 요셉은 형들에게 배반당한 상처가 있기에 주인 보디발에게 더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 상처 때문에 아마 더 충성했고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이 가정 모든 일을 다 요셉에게 맡길 정도로 신임을 얻게 되었을 때, 하필이면 주인 아내가 젊은 요셉을 유혹하는 겁니다. 요셉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일시적 쾌락에 인생을 넘길 만큼 어리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주인 아내는 요셉이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모함하여 요셉을 감옥에 가두고 맙니다. 형들에게 당하고 주인집 사모님에게 당해서 요셉의 인생은 바닥까지 굴러 떨어집니다.
젊은 나이에 이런 상처를 두 번이나 경험하면 인생이 망가질 수 있어요,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역경을 오히려 선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요셉, 우리가 따라 배울 만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역경을 만나되 그 역경을 통하여 오히려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이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일거에 에집트 총리가 됩니다!
다니엘도 그렇지요! 음식 문제가 유대인들에게는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음식을 가려먹은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청년엘리트들보다 열배는 총명한 거예요. 그들은 오히려 바벨론 왕국학교에서 개성을 가진 건강한 청년들로 부각되었고, 기도하는 습관으로 사자굴에 갇혔을 때 사자들도 마음대로 다루는 희안하고 유능한 청년들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도 바다에 파도가 치고, 높은 산에 바람이 불 듯이 역경과 시련의 바람이 시시때때로 불어옵니다. 그럴 때마다 역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잘 선용하여 더 나은 결과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역경에 맞서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의 뜻이 성취될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거나, 사람들의 인기를 한데 모아 누리거나, 세상에서 잘 나가는 성공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인생의 성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한번 뿐인 인생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하며, 나 자신도 평안하고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닐까요? 다니엘이 그러했듯이 여러분은 거룩하고 바르게 살기 바랍니다!
클리블랜드 대통령, 미국의 22대, 24대 민주당 출신 대통령입니다. 그는 뉴저지 북부 콜드웰의 장로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9남매 중 다섯 째였는데, 아버지가 시무하는 교회가 너무 작아서 수없이 많은 교회를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여러 개의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16살 때 그나마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는 대학을 나오지 못한 대통령입니다. 작은아버지 집에 가서 백화점 점원을 하고, 맹인학교 교사를 하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무원을 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한번은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집에 갑니다. 그런데 교회 앞을 지나다가 교회 앞에 쓰인 설교제목을 보았습니다. 그날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죄의 값은 사망”이었습니다. 여러분, 잘못 가던 길에서 죄의 값은 사망임을 깨달아 돌아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목사 아들로서 방탕하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죄를 지으러 가는 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길을 돌이켜 친구에게 자신은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 후에 그는 열심히 생활하고 신앙생활을 착실히 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버팔로 시의 시장이 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하러 버팔로 시에 가면 클리블랜드 대통령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뉴욕 주지사를 하고 대통령까지 됩니다. 1885년에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그 해가 아펜젤러 언더우드가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온 해입니다. 그가 당선되던 날, 감옥에서 한 죄수가 신문을 보고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었어요. 그러자 죄수는 신문에 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자기 친구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자기 인생이 더 크게 더 멀리까지 가도록 밀어붙였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역경을 만날 때 오히려 그 역경을 선용하여 발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젊은이들이여, 다니엘처럼 멋지게 사십시오. 노인들이여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인생은 70부터라고 하지 않습니까? 다니엘에게 주셨던 인생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임할 것입니다. 가장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은 때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멋지고 거룩하게 사십시오!*
세상속의 그리스도인
단1:8~21 / 이희준 목사
다니엘이라는 성경인물은 어렸을 적부터 교회를 다닌 성도들에게는 아주 익숙하고 유명한 인물일 것이다. 다니엘에 대해 유명한 사건 하면 생각나는 것이 사자굴에서 기적같이 살아난 거 하고, 다니엘의 3친구들이 풀무불에 들어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건이다. 그래서 다니엘 하면 기적의 인물, 포로생활중에도 총리라는 고지를 점령하여 영향력을 끼친 고지론적 인물로 기억된다.
그러나 다니엘서 전체를 놓고 볼때 다니엘성경은 단순히 몇가지 기적사건을 소개하는 차원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바벨론이라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잘 믿고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거짓되고 악한 세상에서 구별되고 정결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소개해 주는 것이 더 큰 핵심이라 할수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바벨론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BC586년(605년)에 유다왕국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완전히 패망하고 대부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동안 포로생활을 하는 가운데, 다니엘도 역시 포로로 끌려왔다.
유대왕국의 멸망과 성전이 파괴된 사건은 유대인 백성들에게 굉장히 혼란스러운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의식과 예루살렘성전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이 성전이 존재하는 한 유대나라는 영원할 것이고, 또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 유다왕국은 무너지지 않을거야, 우리에게 성전이 있기에 망하지 않을거야..’ 했는데 멸망하게되어 이게뭔가 너무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렇게 살면 너희는 이땅에서 망한다, 이렇게 살면 풍성한 삶을 통째로 빼앗긴다’ 일깨우시며 경고하셨었다.
어째튼 나라와 성전이 파괴되어 자신들이 믿고 있던 것들이 송수리채 무너진 혼란스러움과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 포로생활을 하게 된 비참한 상황이 본문의 상황이다.
1. 그런데 본문의 다니엘은 그런 혼란스러움과 포로생활이라는 비참한 환경속에서도, 얼마든지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니엘은 포로생활 70년 내내 바벨론에서 살았다. 청소년시절에 포로로 끌려와서 죽을 때까지 이방 땅 바벨론에서 보냈다. 그는 고국 예루살렘을 끝내 가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 전체가 어둠 침침한가? 아니다.
패배의식이나 좌절이나 굴욕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나? 그렇지 않다.
나라는 망했지만 그의 인생은 절대 어둡지 않다.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시고 평생 붙잡아주심을 경험하고 살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책임지셨다.
그 결과 그는 노예로 끌려간 신분에서 바벨론제국의 2인자인 총리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왕이 4명(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이나 바뀌는 와중에도, 제국이 바벨론제국에서 바사제국으로 바뀌는 와중에도 80여년동안 계속해서 총리직을 수행한 최장수 총리가 되었다.
1)다니엘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속에서도 영향력있고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그 비결이 뭘까 할때 8절이 답해준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2)다니엘은 뜻을 정한 사람이었다. 무슨뜻? ‘나는 바벨론에 살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땅에 산다는 이 정체성 이 신앙의 원칙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뜻을 정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는 것이었다.
바벨론나라 정책중의 하나가 포로들 중에 머리좋고 똑똑한 엘리트 청년들을 황실 장학생으로 선발하여 잘 대접해주고 교육시켜 바벨론의 충실한 신하로 쓰는 정책이다.
3~4절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사람 /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이것은 유다의 엘리트들에게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침으로 바벨론 정신과 문화를 심고, 유다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정책이다.
마치 일제 식민지때도 조선의 엘리트들을 장학금을 주며 일본 유학공부를 하게하고 돌아와서는 친 일본세력이 되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 정책이다.
그리고 황제의 음식과 포도주를 하사한다. 5절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년을 기르게 하였으니”
2. 나라는 망했지만 유대 엘리트 포로 몇사람들은 황실 장학생으로 발탁되어 성공의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 이 기회앞에 각자 나름대로 둘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첫째, 바벨론나라의 체제와 모든 문화를 거부한다, 둘째, 바벨론에 철저하게 동화된다!
1)어떤 유대인 포로지만 황실 장학생은 바벨론의 모든 문화도 다 거부하고, 바벨론 나라체제를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을 바벨론 분리주의자라고 할수있다.
‘우린 바벨론과 상관없이 살겠다, 바벨론의 학문이고 방언이고 왕의 진미 포도주도 다 거부한다!’
이것을 요즘으로 해석하면 나는 예수믿으니까 세상문화와 담 쌓고 살겠다고 하는, 세상문화에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는 신자들이다. 세상문화는 다 사탄문화니까 대중문화는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자! 이런 거죠.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TV도 안본다. 황금빛 내인생도 안보고, 나혼자산다 개콘도 안본다. 영화도 잘 안보고 라디오는 CBS, 극동방송 이런 것만 듣는다. 대중가요는 사탄문화라 생각하고 찬송가만 부른다.
이런 극단적인 자들을 소위 수도원주의 또는 분리주의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 썩었어, 세상속에 있으면 함께 썩게 되니까 우리는 세상과 떨어져 살자는 것이다. 이처럼 바벨론에 철저하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2)또 어떤 황실 장학생은 대세를 따르자고 생각했다. 이것은 바벨론 동화주의자들이다.
‘이미 우리 민족은 망했어, 성전도 무너졌어, 우리가 하나님을 믿었지만 바벨론제국앞에 하나님은 너무 약하고 초라한 것 같애, 그러니 바벨론이 주는 혜택을 누리자, 바벨론의 학문과 방언을 익힐 뿐 아니라,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도 먹고 바벨론의 신하가 되는거지 뭐, 그렇게 살면 되지 나라도 망한 주제에 유별나게 할 필요가 뭐 있어?.... 생각한다.
이들은 세상문화와 적당히 동화되는 것이 대세라고 믿고 받아드리는 자들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예수믿는 티를 전혀 내지않고 조용히 주일날 교회만 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때 술자리 가면 술먹고 담배피는 자리에서는 담배피고, 적당히 음란문화도 즐기고, 거짓말 해야할 상황이 되면 좀 캥기지만 거짓말도 하고, 시험치면 누구나 하니까 컨닝도 하고, 직장상사가 불법을 요구해도 그냥 시키는대로 하자, 적당히 세상것 즐기며 동화되어 살자 세상에 파묻혀 살자... 좀 찔리죠?
그래서 세상에서 모나게 살것 뭐있냐 좀 편하게 살자... 아마 대부분의 유대인 엘리트 포로들이 이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벨론나라에서의 삶이 극단적 분리주의와 타협적 동화주의라는 이 두 이원론적 태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자세가 아니다.
3. 그러면 성경적 방법은 뭐냐? 오늘 본문에 다니엘과 3친구를 통해서 새로운 성경적 방법을 제시한다.
그 새로운 방법이 무엇인가를 알기에 앞서, 다니엘과 3친구는 바벨론 포로생활이라는 환경을 어떻게 받아드리고 있느냐면? 바벨론 포로라는 징계를 통해서 유대민족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드렸던 사람들이다.
이것은 유대민족이 멸망직전에 활동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다.
렘29:10~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바벨론 제국이 타락한 유대나라를 징계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정권이기에 저항하지 말고 항복해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과 3친구는 바벨론 포로라는 이 상황에 뭔가 하나님이 하실 깊은 뜻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렇다 이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바벨론 포로생활은 인정하면서도,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하나님백성의 신앙의 원칙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자세다.
1)먼저 받아드릴 것을 받아드린다. 바벨론의 체제와 포로생활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것을 보라.
(1)다니엘과 3친구는 바벨론 체제의 문화와 이름 개명을 받아드렸다.
7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바벨론 정책에 대해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하지 않고 받아드리는 것이다.
②또 다니엘은 믿음좋은 3명의 친구들끼리만 어울린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된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채식만 먹겠다고 부탁할때 환관장이 이렇게 말한다.
10절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이것은 자기 목숨이 달린 문제다. 그럼에도 무조건적으로 ‘안돼’가 아니라, 대화하며 다니엘의 입장을 생각해서 다니엘의 요구대로 열흘동안 채식만 주어 먹도록 해준다. 포로주제에 주면 주는대로 먹지 하고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배려해주는 모습을 볼때, 이 둘사이에 이미 좋은 사귐이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수있다. 다니엘은 바벨론 나라속에서 이방인들과 단절하며 분리주의자로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3)이처럼 함께 어울러 생활하는 것은 환관장하고 만이 아니다. 제국(바벨론→바사)이 바뀌고, 왕이 4명(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이나 바뀌는 와중에도 계속 총리직을 수행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방인들과 계속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는 것을 증거한다.
이처럼 다니엘은 세상과 담을 쌓고 분리주의자로 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과 일치하여 동화되어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않았다.
세상과 담 쌓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울리며 살았고, 그들에게 파묻혀 동화되어 산 것이 아니라 바벨론과 이방인들을 변혁시키는 ‘변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았던 사람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어울려 살면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뉴욕이나 런던같은 대도시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유대인들만이 모여 사는 게토라는 구역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게토와 같은 곳에서 예수믿는 우리들끼리만 모여 살아야 하나? 아니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사랑의교회 고옥한흠 목사님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주님도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세상의 소금이니’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서 산속에 가서 사는 수도사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야 될줄로 믿는다.
2)이처럼 다니엘과 3친구는 바벨론 국가의 제체와 포로생활은 인정하고 받아드렸지만, 그러나 거부할 것은 단호히 거부했다. 그것이 바로 왕이 주는 음식만큼은 거부했다.
왜 거부했느냐면, 당시 왕의 진미는 모두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들이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진 왕의 진미를 먹는다는 것은 바벨론의 우상 섬김에 동참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으 백보 양보한다해도 우상숭배에 동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바벨론의 고기들은 대부분 율법에서 금하는 부정한 음식들이었다.
그러므로 왕의 진미는 신앙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왕의 진미를 거부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거부는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누가 감히 대 바벨론제국의 왕이 내린 음식을 거부할수 있겠는가? 거부하다면 당장 황실 장학생에서 박탈되고 왕의 명령을 거부한 죄로 시드기야 왕처럼 두눈이 뽑혀 개처럼 끌려다니거나, 평생 감옥에서 썩든지 당장 죽을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으로써 이것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절대 굽히지 않고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자세를 가진 것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 바꿀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거부하며 살아서도 안되고 그렇게 살수도 없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이것만은 포기할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신앙의 원칙’때문에 내가 이렇게 행동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우리교회 권찰님 한분이 직장생활을 하게 될것 같은데 야간에 할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그러면 새벽기도회든, 주중 저녁예배를 빠질수 밖에 없겠네요? 그랬더니 ‘아니예요, 예배는 절대 빠질수 없지요, 다 조절해서 일할겁니다’.
예배는 절대 빠질수 없다는 신앙의 원칙이 확고하게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또 한집사님은 다른날 새벽기도회는 안나와도 주일날 새벽기도회 만큼은 반드시 참석한다. 출타했다하더라도 어김없이 토요일날 올라오든지 주일새벽에 맞춰 올라와 참석한다. 주일 새벽기도회만큼은 포기할수 없다는 신앙의 원칙이 있는 것이다.
저는 이 집사님이나 좀전의 권찰님의 신앙원칙을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다 적용하라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 이것만큼은, 여기까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절대 양보할수 없다는 이 원칙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원칙의 기본이 바로 주일만큼은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원칙이 내 모든 수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닐까?
그 원칙이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써 1인 1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뜻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이 점진적으로 목표치가 성장해 가도록 더전 해야한다.
바로 다니엘은 이런 신앙의 원칙을 지키기위해 ‘뜻을 정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뜻을 정해서 신앙의 원칙을 지켰던 다니엘과 3친구가 불쌍한 존재가 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만큼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복을 누린자가 어디있나?
채식만 먹어도 피부가 더욱 윤기가 가득하고 시험을 봤더니 10배나 뛰어나고 4대에 걸쳐 총리가 되고, 사자굴에 들어가도 풀무불에 들어가도 죽지않고 책임져 주셨던 놀라운 축복을 누렸다. 신앙의 원칙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모두에게도 이런 신앙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며 신앙생활하여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복을 받게 되기를 축복한다.
다니엘과 3친구를 보면 ‘바벨론국가의 체제와 문화를 거부할 것이냐, 아니면 동화하여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주의로 살 것이냐’라는 극단적 이원론적 태도로 신앙생활하지 않았다.
①바벨론 이방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지만, 하나님 백성으로써 정체성을 지키는 것만큼은 어떤 손해와 위협이 있다해도 포기할수 없다는 원칙을 가지고 살았다.
②이러한 원칙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바벨론정권이 무너지고 바사제국이 들어서서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도, 다른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말라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보란 듯이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3번씩 기도했다. 결국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지만, 이 신앙의 원칙,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또한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거나, 세상에 파묻혀 동화되어 세상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비록 우리의 삶이 바벨론 포로생활과 같이 먹고사는 문제도 힘들고 특히 우리 신앙을 지키며 사는 것이 힘든 현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의 원칙을 포기하거나 무너뜨리지 말자.
도리어 신앙 원칙의 목표치를 점점 높여가며 우리 신앙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수 있기를 축복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니엘과 3친구와 같이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
다니엘서 1장8절~21절 / 양은익 목사
2016년 우리가 품어야 할 꿈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늘 주님을 믿는 자다운 언행과 성품과 윤리와 도덕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축복이 모든 축복 중 가장 우선 되어야 하는 축복입니다.
하나님 자녀다운 성품과 윤리관으로 우리는 교회 밖의 삶에서 세상을 비추는 빛과 소금 역할을 해야 합니다. 교회 밖의 삶에서 이 중심이 무너질 때 우리는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던 사람이 교회 밖에서 ‘죽여 죽여’하는 이중적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친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긴박한 소명은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소명은 개인의 어떤 성공을 위한 애씀보다 급합니다. 하나님께 구할 모든 축복 중 가장 먼저 구해야 할 축복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의미는 교회 다니는 티를 드러내자는 뜻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자는 의미입니다. 이 정체성을 잊을 때 우리는 익명의 가면을 쓴 체 세상의 방식대로 처절히 싸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시편 139편에서 시인은 고백합니다.하나님은 자신의 삶을 샅샅이 살피시고 주님 눈을 피해 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고 합니다. 이 말씀이 든든합니까? 아니면 많이 불편합니까? 만약 불편하다면 다시 삶을 돌아봐야 합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려면 삶의 두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첫째 뜻을 정해야 하고 둘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1. 뜻을 정하라
언제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다는 확고한 마음의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다짐이 없으면 나는 상황에 따라 바뀌는 카멜레온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온 유대 청년(다니엘과 세 친구)이야기입니다. 이방 땅 바벨론에서 창씨개명시키고 유대 청년들을 유대 민족 개조의 전사로 삼기 위해 왕이 먹는 포도주와 맛난 음식을 제공하며 성공이 보장된 당시 상황에서 이 유대 청년들은 지금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고지식한 융통성 없는 행동을 합니다.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환관장에게 좋은 음식을 주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10일간 물과 채식을 주고 왕의 음식을 먹은 소년들과 본인들을 비교해 달라고 합니다. 15절을 보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흘 후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은 다른 소년보다 더 좋아 보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채식을 찬양하는 사건이 아닙니다. 채식과 물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는 징표의 음식으로 본문에 쓰인 것입니다. 8절에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라고 했습니다. 굳은 다짐을 한 것이고 이 다짐이 내 안에서 강력한 내적인 힘을 준 것입니다. 익명의 삶으로는 이런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의미 없이 생존을 위해 연명해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확고한 중심을 갖고 모래 위에 세운 성이 아닌 반석 위에 든든히 세운 집에 거하며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켜가는 능력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의 뜻이 확실할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워 나갈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신뢰하라
끊임없는 신뢰,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뢰로 우리는 세상의 압력과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하나님에 대한 강한 신뢰로 용감한 행동을 할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 20절에 다니엘의 신관이 나옵니다.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시기도 하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기에 왕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신관은 어떻습니까? 나의 하나님은 교회에만 계시고 나의 소원만 겨우 들어주시는””small God”입니까? 전 우주를 좌지우지하시는 “big God”입니까? 바울의 신관은 사도행전 17장 24절 27절. 바울의 아테네에서 행한 설교에 나타나 있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천지의 주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올바른 신관을 갖고 절대적인 신뢰를 하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위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잘 알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올바른 신관과 확고한 세계관을 가졌기에 조금의 흐트러짐없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며 용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통독의 기회를 통해 하나님을 좀 더 잘 알고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읍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가 있을 때 우리는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삶이 복잡하고 너무 바쁘다고 하시는 성도일수록 올 한 해 반드시 성경통독을 하셔야 합니다. 실패하면 삶은 더 복잡 미궁 속에 빠지고 더 힘들어집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당장 나에게 금전적 손해와 작고 큰 어려움이 몰려올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도 올 것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의 역사입니다. 끊임없이 타협한 역사입니다.이스라엘의 역사는 또한 우리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떡하셨읍니까? 그분의 뜻대로 결국은 구원의 반열에 우리를 올려놓으셨습니다. 때론 채찍을 드시기도 하셨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끌어안으시고 우리를 인도해가십니다. 우리는 잘나가고 성공하는 시기에는 큰 성장을 못 합니다. 우리가 크게 성장하는 시기는 내게 큰 아픔이 닥치고 내가 실패할 때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별로 줄것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것에 집중하십시오. 올 한해 전교인 모두 성경통독을 통해 신앙이 크게 성장하는 한해되시길 축복드립니다.
바벨론에서 승리하는 길
다니엘 1:1-21 / 서은철 목사
어떤 사람이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 세계를 정복하게 되었습니까?" 그러자 그는 한 마디로 "내가 망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소"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는 전쟁에 임할 때 망설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과감한 결단력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큰 제국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을 앞에 두고 결단내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것, 가져야 될 것과 갖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라야 이 세상에서도 성공할 수가 있고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다니엘서 1장에는 결단력 있는 한 소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소년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대 청년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 기록된 것으로 6가지 스토리와 4가지 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언서이면서 신학서입니다. 다니엘서에는 바벨론제국의 흥망성쇠와 페르시아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예언을 비롯하여 오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재림에 대한 예언이 담겨있습니다. 다니엘서의 신학적인 주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인류역사의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멸망할 즈음에 바벨론으로 끌려온 청년이었지만, 모든 학문과 재주에 뛰어난 학자였습니다. 절망적인 시대에 비전에 불타는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약 70년 동안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다리오왕을 섬기는 고급관리였으며, 페르샤 제국을 세운 고레스 원년까지 고관직을 지낸 탁월한 정치가였습니다. 또 원수들이 고소할 틈을 찾지 못할 만큼 허물이 없고, 고결한 인격을 가진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그가 포로로 끌려온 초기의 모습이 아름다운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다니엘은 포로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믿음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믿음의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첫째, 우리에게도 바벨론이 있습니다(1,2).
1절에 나오는 여호야김은 애굽이 세운 꼭두각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신흥제국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략했습니다. 여호야김이 사로잡혔고,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유대의 젊은이들이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이때에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바벨론으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왕하 24:1-4, 대하 36:5-7). 이때 다니엘의 나이가 15-6세 정도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가장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원수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거세를 당하고 느부갓네살 왕을 섬기는 내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유다가 망하고 부모는 살육당하고 청소년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요? 2절을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징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반면에 언약을 어기는 백성들에게는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것도 언약에 신실하신 것입니다. 언약의 백성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을 결코 용납지 아니하십니다.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만큼 택한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말라기에 보면 당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 언제 우리를 사랑했습니까? 언제 당신이 우리를 보호해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하며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주께서 하신 일이라고 영접했습니다.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아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셨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포로로 잡혀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영접했습니다. 조국이 멸망하고 자신이 포로로 잡혀온 이 참혹한 현실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영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참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그 참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구원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고난의 풀무불 속에서 견딜 수 있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바벨론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으로 흩어져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바벨론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했습니다. 계시록에 의하면 바벨론은 세상 권력자들이 지배하는 곳이요, 음란과 온갖 더러운 영들이 깃드는 곳입니다(계 18:2). 우리가 현실적으로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다니엘처럼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고통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해서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원수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모든 일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영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수치를 당하고,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데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속이 터져도 우리는 주님 앞에 나가서 ‘선하신 주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잘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 순간부터 우리 영혼이 소생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사랑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덧입게 됩니다. 가장 참혹한 바벨론에서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할 때 그때부터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모든 현실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곳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을 터득할 수 있습니다.
지금 포로로 끌려가는 다니엘처럼 현실이 어렵고 암담한 상황에 처하신 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신 분이 주님이심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원수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불신자의 손에 붙여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해서 만사형통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혹하리만큼 힘든 광야를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당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자신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자신이 당한 일이 너무 억울하여 잠이 오지 않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귀양살이를 하면서도 그 믿음을 가졌을 때 하늘 문이 열릴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3-8)
느부갓네살 왕은 정복자였습니다. 그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환관장 아스바나스에게 명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쓸 만한 자들을 뽑아 내시로 키우도록 명했습니다. 예루살렘의 고급 두뇌들을 뽑아 바벨론 제국에 봉사할 지도자들을 키우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을 뽑으라고 했습니까? 3,4절을 보십시오. 첫째는 왕족이나 귀족 출신으로서 가문이 좋아야 합니다. 둘째는 신체적으로 흠이 없고, 핸섬해야 합니다. 저같이 키가 작아도 안 됩니다. 김성훈 형제같이 잘 생겨도 안경을 끼면 안 됩니다. 코뼈가 약간 비뚤어져도 안 됩니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조금도 신체적 결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셋째는 모든 재주에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한 지적으로도 우수한 두뇌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만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선발된 사람들에게는 어떤 특권이 주어집니까? 5절을 보십시오. 선발 기준이 까다로운 만큼 그들에게 주어지는 특권도 컸습니다. 그들에게는 당대 최고의 학문인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합니다. 그들은 당대 세계를 제패한 강대국에서 최고의 학문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왕이 지정한 왕의 진미와 왕의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공급하여 3년을 훈련받도록 하였습니다. 식민지 국가의 포로로 잡혀온 노예들에게 왕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왕의 호의요, 특별한 배려였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는 자체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기에 선발된 사람은 특별한 은총을 덧입은 자들입니다. 6절을 보면 그들 중에 유다 자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뽑힌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들은 세상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혀 왔지만 채찍을 맞으며 중노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황실 장학생으로 왕궁에서 왕이 먹는 진미를 먹으며 선진국에서 마음껏 학문 연구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년 후에는 왕의 특별자문위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래가 보장되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미국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하바드 대학을 졸업하고, 백악관에서 특별보좌관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된 것과 같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세상 권세와 명예를 얻을 수 있고, 멘션 아파트에서 선진국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왕의 진미를 먹게 함으로서 유대인의 신앙적인 순결을 빼앗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습니다. 포로들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줌으로서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바벨론의 문화생활에 젖어들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레서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며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 숨은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맡은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모두 바벨론 우상의 이름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다니엘은 벨드사살로 바꾸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재판관이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벨드사살이란 바벨론의 최고의 신인 ‘벨이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개명했습니다. 하나냐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드락은 곧 ‘말뚝’신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미사엘은 메삭이라고 바꾸었습니다. 미사엘은 ‘하나님 같은 분이 어디 있느냐’는 뜻인데 메삭은 ‘아쿠 같은 분이 어디 있으랴’는 뜻입니다. 아쿠는 달신의 이름입니다.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습니다. 아사랴는 ‘하나님은 도우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벳느고는 곧 지혜의 신 ‘느고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이들의 본명은 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름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름 속에는 조상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민족혼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부모들의 희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바벨론의 신들의 이름을 중심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창씨개명을 서두른 것은 그들에게서 이스라엘의 혼을 빼앗고, 그들을 바벨론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는 일제시대 때 내선일체라고 주장하며 강제로 창씨개명을 시킨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침략자들에 의해 창씨개명을 당해도 아무도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 때 대부분의 이스라엘 청년들은 절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졌을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영리한 사람들은 기회주의자가 되고, 이기심으로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바벨론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느부갓네살 황제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느부갓네살은 누구일까요? 문화 대통령입니다. 불신세상의 문화를 이끌어가는 주체세력입니다. 연예인일수도 있고. 매스 미디어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 땅에는 김일성 어버이 수령이 그 한 가운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든 문화가 그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중심에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중심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십니까? 아니면 세상의 문화들이 자리잡고 있습니까?
이 바벨론에서 우리는 취직시험에 합격하여 경재적으로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후에 영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하고, 큰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창시개명을 하여 민족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상 연락을 즐기느라고 허우적거리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물질주의의 누룩에 떠서 쓸모없이 되어버린 분들도 있고, 세상 재미에 빠져서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온 세상이 타락했는데 나혼자 믿음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또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처럼 살라’ 속담처럼 바벨론에 왔으니 이곳 풍속대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축복의 날에 어떤 결단을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이 비극적 상황에서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창조적 분리(creative separation)를 선택한 것입니다. 왕의 진미에는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짐승을 잡아 만든 음식이 많습니다. 또 왕의 진미는 우상의 제단에 바쳐진 음식들입니다. 포도주는 우상에게 먼저 붓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어릴 때부터 율법에 익숙한 생활을 해 온 다니엘의 신앙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양심을 더럽히는 일은 결국 자기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먹는 것과 같이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자기 영혼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일은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샘물을 지키는 것과 같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하기고 결심했습니다.
우리도 바벨론에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단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결단은 결단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여름수양회 때 은혜를 많이 받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겠다고 결단합니다. 그러나 그런 결단은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구체적인 결단을 했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아니하기로 결단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의도를 잘 알았습니다. 자기의 신앙을 상대화하고, 바벨론화시키려는 왕의 뜻을 간파했습니다. 만일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구체적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대세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체적으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할 것을 결단했습니다. 결단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결단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칼로 물을 베는 것과 같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크고 엄청난 결단을 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작은 믿음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인 결단이었습니다. 왕이 주는 음식 중에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고, 채식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작은 결단으로 자신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그 시대를 이겨 내고자 했습니다. 다니엘의 작은 결단은 시시해 보입니다.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먹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결단이 다니엘로 하여금 자신을 이기고, 그 시대의 죄악에 휩쓸리지 않고 승리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선교사로 가서 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김치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가운데 김치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랬더니 영안이 밝아지고 그 나라 음식에 적응할 수 있었고, 그 나라 사람을 사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습관적인 죄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끊어야 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QT, 하루 10분의 기도, 1주일 한번의 가정예배, 자녀를 위한 기도, 정직하기, 십일조, 먼저 인사하기, 주일예배참석, 등 아주 구체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이 바벨론에서 물들지 않고 믿음의 순결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둘째로 결단 후에 따르는 어려움을 각오해야 합니다.
믿음의 결단 후에는 반드시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핍박이 따른다고 했습니다(딤후 3:12). 그러므로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를 거절할 경우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까요? 맛있는 음식을 영원히 못 먹을 수 있습니다. 왕의 진미에는 궁중 전골, 탕수육, 해물잡탕 등 진기한 요리가 많습니다. 또 포도주도 몇 십 년씩 묵은 것이 나올 것입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평생 못 먹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동료 친구들로부터 소외되기 쉽습니다. 자기가 무슨 성자라고 저렇게까지 하는가 하는 비웃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를 입힌다고 핍박하는 친구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잃게 되고, 외톨이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험은 왕의 특별한 호의를 거절할 때 따르는 왕의 진노입니다. 이로 인해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고 처형될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행동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다가 출세 길이 막히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로 인해 동족들에게 큰 화가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모든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할 것을 결단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우리를 기독교라고 한다. 가톨릭에 대항해서 나왔다고 해서 개신교, protestant 라고 합니다. 이는 잘못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니엘은 거룩한 저항을 시작한 것입니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성경은 라틴어 성경 수사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일반 평신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제들 중에도 성경을 읽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영국의 윌리암 틴데일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기로 결심하고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이 보통 사람들의 언어로 번역되어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명쾌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나는 교황과 그의 모든 법에 도전하는 바이며, 만일 하나님께서 목숨을 살려주신다면, 앞으로 몇 년 내에 쟁기를 끄는 소년으로 하여금 교황보다 더 많이 성경을 알 수 있게 할 것이오."
가톨릭에서는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알면 나중에 괭장히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능 이유였습니다. 그런 핍박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번역을 하다가 1536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2년 후에 정권이 바뀌어 그의 성경이 영국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었습니다. 1611년 제임스 왕 시절에 많은 학자들을 모아서 그의 성경 번역을 마무리했습니다. 그 성경이 바로 KJV입니다. 이 번역은 영문학상, 신학적으로 가장 실뢰할 만한 유명한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저항 정신이 영국으로 하여금 명예혁명 가져오게 했다. 영국을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에서 승리하려면 다르게 사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죽은 물고기는 세상의 죄악된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물고기는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우리가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시대의 죄악에 거슬러사는 믿음을 가질 수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결단은 당장에 내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뜻을 정하고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마는 지금은 아니야, 다음에 하지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일차일 하다가 서서히 세상의 죄악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보십시오. 분위기를 봐서 왕의 진미를 먹어보다가 뜻을 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처음부터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거절했습니다. 거대한 바벨론 제국에서 다니엘의 존재라는 것은 거대한 바다에 있는 한 마리 물고기와 같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왕의 진미를 거절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을 처음부터 뜻을 정함으로 뜻 있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셨습니다. 환관장은 왕의 지정한 음식을 거절하고, 얼굴이 초췌하여지고 다른 소년들보다 못하게 되면 자신의 목이 위태롭다고 했습니다(10). 환관장은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감독관에게 돌이켜 간청했습니다. 12,13절을 보십시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그래서 감독관이 다니엘의 말에 동의하여 그들에게 열흘 동안 채소와 물만 주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더 나아보였습니다. 이 일은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심으로 다니엘을 도와 주셨습니다.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믿음의 결단을 기뻐하시고, 구체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에게는 모든 것 외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영적인 것을 알게 하는 영적인 눈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3 년이 지났습니다. 왕의 앞에서 서서 면접시험을 보았습니다.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셔 서게 하였습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알게 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계속하여 바벨론 왕궁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상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하고, 투쟁하는 자를 반드시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믿음을 축복하십니다.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도와주십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더욱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십니다. 공부도 제일 잘 하게 하시고, 영적인 분별력도 주십니다. 명예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 뜻을 정하고 결심하고 실천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세상을 이길 지혜와 힘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계산 없는 다니엘
다니엘 1장 8절-21절 / 진광교회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1. 나는 얼마나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한결같이 자기 중심적인 자기 경험과 지식의 범위 내에서 계산을 하면 살아간다고 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더더욱 안들으려고 하지요. 얼마나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그 종류들을 한 번 잠깐 살펴 봅시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는 것, 거지가 거지 생활하는 이유, 어린 아이가 울 때,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의 품목과 마진 폭을 결정 할 때, 믿는 성도들이 주일을 어길 때, 성경을 보지 않을 때, 기도를 하지 않을 때, 예배를 빼 먹을 때, 전도를 하지 않을 때, 나눔과 섬김을 온전히 못할 때,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 할 때, 우상을 만들고 섬길 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길임에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따라 갈 때, 연애 할 때, 거짓말 할 때, 미워 할 때, 농담 할 때, 새벽 기도를 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을 마음, 힘, 뜻, 목숨 다하여 사랑하지 않을 때 다 한결 같이 자기를 자기가 위하는 길이 어떤 길이냐를 계산하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러면 우리 자신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은 얼마나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 봅시다. 지금까지 경험하고 지식하고 들었던 수 많은 말들을 나의 지식의 토대로 삼아서 얼마나 계산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요?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자기식의 계산 없이 살아갔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입니다. 아니 너무도 당연한 길을 걸어갔으며 정상적인 길을 걸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요?
2. 다니엘의 삶
1) 삶의 방편을 계산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다니엘은 자기의 삶의 방편을 자기 나름대로의 계산으로 하지 않고 '너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더럽히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뜻을 정하였습니다. 삶의 법칙을 정한 것입니다.
2) 주변 환경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 길은 다니엘 자신뿐만 아니라 자기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환관장에게도 매우 위험한 선택의 길이었습니다. 환관장이 말 합니다.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단 1:10) 자기 자신만 위태하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관장의 목숨과 지위까지도 어떻게 될지 전혀 계산할 수 없는 선택의 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쯤 되면 계산을 하면 할수록 앞이 캄캄하니까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말지요.
옛날 일제시대 때에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신사참배를 하고 감옥에 들어가지 못한 원인은 자기의 장래와 가족을 생각하니 그 길이 우상을 섬기는 죄인의 길임을 알고도 대부분의 주의 종들과 믿는 성도들이 그 길을 걸어갔던 거울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전도하러 다녀 보면 늙은 노인들 중에 예수 믿으면 안 믿는 며느리 자식들에게 밥을 못 얻어 먹을까 싶어 걱정이 되어서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 입니다.
또 취직 시험, 임용 고시나 각종 자격 시험을 주일날 치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도 치르지 아니하면 부모나 주변 환경들로부터 오는 후한이 두려워 양심을 짓누르고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면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시험 한 번 치르는 주일 어기고라도 더 나은 결과로 주님을 더 잘 섬기면 되지 않는다고 아주 그럴듯하게 변명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다음 성경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을 해야 하나요? 다 인간적인 생각이요 계산이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확정을 짓고 실행에 옮기도록 합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사 58:13)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인간의 선한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행위는 아각 왕이 아말렉의 모든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라고 명령이 내려 졌을 때 그것을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 살진 소와 임금을 살려 두고 그것으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악한 생각을 한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유명한 말씀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예수 열심히 믿고 싶은데 부모님들이 반대를 하니까 정상적으로 믿지 못하는 주일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들 또한 다 자기식의 계산대로 살아가고 있는 거울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문제에 걸려 있지는 않는지요? 이 문제는 하나님을 어느 수준으로 인정하느냐? 온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서 결정이 됩니다.
3) 미래에 대한 계산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부탁을 합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단 1:12-13)
열흘 동안 채식과 물로만 먹은 다음에 얼굴과 몸이 초췌해 지든지 윤기가 나든지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라고 부탁을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공부하는 이 기관에서 잘리든지, 아니면 죽임을 당하든지 그것은 전혀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처분하소서라는 말을 다른 성경을 찾아 보면 사무엘하 19장에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종 나를 내 주 왕께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삼하 19:27-28)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왕의 처분대로 죽여도 좋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같은 장 31절 이하에 보면 길르앗 사람 80세 된 바르실래가 "청컨대 종을 돌려 보내옵소서 내가 내 본성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컨대 저로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옵시고 왕의 처분대로 저에게 베푸소서"(삼하 19:37)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왕이 왕의 종 김함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게 해도 좋고 안 건너게 해도 상관하지 않겠고 왕의 마음대로 처분하세요 할 때에 '처분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모든 경우는 그들의 장래에 대해서 계산하지 않겠고 상대방의 자율,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기겠다는 것이요.
그런데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는 결단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다가 장래가 불투명하다는 계산을 하고 보니 고기 잡으러 다시 과거의 삶을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장래에 대한 계산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롯의 사위들은 소돔에서 나오라는 메시지를 듣고도 그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것은 그곳에서 떠난 삶을 어리석고 무식한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계산을 했었기 때문에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장래에 대해서 어떤 계산을 하고 살아가는 지요? 다니엘처럼 모든 것의 주권자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섭리대로 온전히 맡기고 아무런 계산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요?
아니면 이런 저런 계산을 해 보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인 줄 알면서도 이번에는 할 수 없다. 다음에 순종 잘하면 되지 않고 슬거머니 꽁무니를 빼는 계산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신앙 생활에 대해서도, 직장에 대해서도, 공부에 대해서도, 교회에서 각종 직분을 맡음에 있어서도 계산을 해 보니 장래에 유익일 될 것 같으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는 계산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와 은사가 무엇인지 찾아 보고 그에 따라서 인도하는 대로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지 않고 나의 은사와 상관 없지만 내게 더 많은 박수와 칭찬과 명예와 각종 진로가 보장 되기 때문에 내가 갈 길을 아니지만 나는 가고야 말겠다는 발람과 같은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 가는 계산적인 삶을 살아 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이 다니엘의 미래에 대한 계산을 하지 않고 전적 하나님께 맡기고 걸어간 걸음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걸어간 걸음을 그대로 본받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3. 하나님의 응답
1) 긍휼을 입음
①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
그 때에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 1:9) 고 말씀하신대로 환관장이 그대로 시행에 옮깁니다.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단 1:14~16)
하나님께서는 환관장을 다니엘을 통한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과정에 일등 도우미로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다니엘 자신들도 놀랐을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고 채소와 물만 먹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실상적으로 이루어 주리라고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깊이 우리 자신들에게 명심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님의 형상대로의 온전한 사람을 만들어 감에 있어서 감당치 못할 시험은 절대로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앞이 캄캄하고 계산이 안 나오고 온통 도와 주는 도우미는 없고 방해꾼들, 원수들만 둘러 보이는 것 같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환경으로만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감당치 못할 환경을 안 주실 뿐 아니라 피할 길도 친히 예비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친절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읍시다. 다니엘에게는 환관장이라는 일등 도우미를 통해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고 시험의 과정을 잘 통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② 길이 형통하고 평탄케 해 주신다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단 1:15-16)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습니다.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은 소년들보다 "더욱" "더욱" 얼굴이 아름답고, 살이 윤택하여 졌다는 사실입니다. 시온의 대로가 열린 것이지요. 누가 이런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까? '사람이 할 일'인 더럽히지 않는 일을 작정하고 순종하는 일을 그들이 해 나 갈 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 그들을 책임 지시고 윤택하게 영양가 넘치는 진미와 포도주를 먹은 다른 소년들보다 더욱 더욱 아름답고 윤택하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약속을 철저하게 이행을 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전지 전능자 하나님이 하실려고 하면 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 합니까? 온전히 믿는 자들이 됩시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계산과 상관 없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루어 나가는데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온전히 이루어 나오셨고, 나가시고 계시며, 앞으로도 이루실 줄로 믿고 계산 없이 따라 가는 복 있는 자들이 됩시다. 그분이 인도하는 길에는 아무도 손도 못댑니다. 방해를 하다가는 아말렉과 같이 사람도 짐승도 다 진멸을 당할 뿐입니다. 아멘! 아멘!
2) 열 배나 뛰어난 결과
① 준비된 사람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다니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순종으로만 자신의 삶의 목표, 방편, 미래도 다 맡기고 살아 왔는데 결과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총리로서 갖춰야 할 필요한 지혜, 학문, 재주, 명철을 다 더해 주셨습니다.
6장 4절 이하에 보면 그를 시기한 총리들과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여 죽이기 위해서 흠을 찾을래야 흠과 허물이 조금도 없는 완벽한 준비되 총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울러 총리의 자격이 어느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을 갖췄다는 것을 더 명확히 알리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상과 꿈을 해석하는 은사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다 죽임 당할 총리들과 방백들을 살리고, 자신은 더욱 실력을 인정 받는 놀라운 실력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성장 준비 시켜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신앙 생활은 너무나 단순합니다. 여러 가지 복잡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칙을 따라서 맡겨진 임무에 충실히 감당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엄청난 임무를 맡겨도 능히 잘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실력자로 하나님께서는 책임지고 준비 시켜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도록 합시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도 목동 생활을 열심히 하였는데 그 때에 익힌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을 눕히는 실력을 기르게 되었고, 왕으로 세웠을 때에 넉넉히 그 위치를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실력 준비를 목동 생활 충성되이 잘 감당하는 거기서 다 준비 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의 일에 비교하여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분수를 잘 모르는 것이요, 하나님의 깊은 의중을 깨닫지 못하는 증거 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직분 잘 감당 할 때에 이후의 어떤 자리, 실력, 영광을 다 주어도 능히 감당 할 수 있는 기회 인줄 알고 감사함으로, 만족함으로 마음, 힘, 뜻, 목숨 다하여 영감과 진리를 따라서 순종하는 생활의 고삐를 늦추지 맙시다.
② 사람이 봐도 알 수 있는 놀라운 결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단 1:17~20)
이제 기한이 다 되어서 느부갓네살 왕과 면담을 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채식과 물로 연명하고 공부한 그들에게 다른 소년들과 온 나라 박수, 술객보다 십 배나 뛰어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자들로 성장하였음을 왕이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 결과 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할 수 없고, 역사 통계, 과학에 맞지 않는 일이라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든지 하고도 남음이 있는 줄로 확고하게 믿읍시다.
하나님에게만 인정 받은 사람이 아니라 왕에게도, 누가 봐도 총리로 세우지 아니 할 수 없는 뛰어난 실력자로 이미 거듭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다른 사람이 안 알아 주니, 인정을 안 해 주니 하고 남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과연 다니엘과 같은 계산 없이 하나님의 명령 따라서 실력 준비를 얼마만큼 열심히 잘 하였느냐 하는 것을 중간 중간 점검해 보도록 합시다.
따라서 주님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고 말씀하셨습니다.
③ 장수 총리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있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은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올 때 느부갓네상 왕(주전 605년), 벨사살 왕, 다리오 왕(주전 530년)으로 이어지는 기간에 왕은 바뀌어도 총리는 다니엘은 총리 생활을 그만 두지 않고 계속적으로 바뀌지 않고 하였다는 것(약 65년 이상으로 추정함)은 얼마나 다니엘이 신실한 총리였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 나라 총리는 몇 일에서 1, 2년 길면 3년 가는 것이 보통인데 그의 총리 기간은 놀라운 장수 총리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6:28)고 말씀 해 주시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다니엘이 격은 모든 환경들과 과정들을 우리는 성구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4. 계산하지 말고 사는 자가 되자!
1) 이제부터 우리는 내게 대한 오늘날 내게 명하는 하나님의 뜻, 성령의 인도를 찾고 정합시다!
그 뜻이 내 계산과 경험과 지식과 내가 처한 환경에 맞지 않고 어울릴 것 같지 않더라도 온전히 선하시고 인자하심이 무궁하신 하나님만 믿고 죽을지 살지, 성공할지 실패할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지 못 받을지, 내 옆의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올지 계산 하지 말고 즉 삶의 방편, 주변 환경, 미래에 대한 계산을 하지 말고 온전한 순종으로 실행에 옮김으로 자신을 더럽히거나 자살과 자멸하는 걸음을 걷지 않도록 합시다.
2) 하나님의 응답을 확고히 믿읍시다!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절대로 주시지 않으며, 내게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나갈 때는 꼭 필요한 도우미(사람, 물질, 일, 각종 환경)들을 붙여서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도록 인도 해 주심을 믿읍시다.
그리고 반드시 다니엘에게 열 배나 뛰어나는 지혜와 총명과 이상과 몽조를 해석하는 지혜를 주셨듯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각종 은혜와 신령한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 속에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 지를 다 아시는 그분께서 우리가 갖춰야 할 실력과 인격의 구비됨이 다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나사로처럼 평생 안 채워 주셔도 상관하지 말고 끝까지 계산 없이 살아가도록 합시다.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스런 구원으로 우리와 함께 해 주실 줄을 믿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사 49:23)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 37:25)
총리가 되는 복,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실력과 인격, 그릇됨과 허물이 없는 온전한 인격, 장수 총리의 복은 다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금생 내생에 필요한 복을 온전히 풍성하게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계산 없이 삽시다! 잔 머리 굴리지 맙시다! 모든 의심 떨쳐 버립시다! 뜻을 정하고 순종으로 삽시다! 끝까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삽시다! 승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