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슈타포는 어디에나 있다.”
게슈타포 국장이었고, 140만명의 학살자, 하인리히 뮐러의 말이다.
게슈타포의 정식 명칭은, 정식명칭은 친위대(SS) 국가보안본부(제국보안본부, 제4국)비밀국가경찰국이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프로이센 주 내무장관인 헤르만 괴링이 기존 비밀경찰에서 반나치 성향 간부들을 숙청하고 재창설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게슈타포의 시작이다.
초대장관은 괴링의 조카사위인 경찰간부 출신 루돌프 딜스가 임명되었다.
1934년 하인리히 힘러가 게슈타포 장관으로 취임한 후부터는 친위대(SS) 보안국의 하부기관으로 편입되어 전국적인 비밀경찰기구로 발전했다.
1939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당과 국가의 비밀경찰기구들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관할 분야를 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친위대 산하로 국가보안본부가 창설되고 게슈타포는 국가보안본부 제4국으로 편입되었다.
2차 대전 중 프랑스에서는 파리 중심부에 게슈타포 사령부를 설치하고 레지스탕스들을 체포해서 고문을 가했다.
1945년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함에 따라 상부기관인 슈츠슈타펠과 함께 해체되었다.
이때 게슈타포의 절반은 그들의 악랄함에 치를 떤 연합군에 의해 즉결 처형되거나 자살하는 것은 물론 제3국으로 도망쳤다.
나머지 절반은 각국 정보기관에 포섭, 흡수되었다. 영국과 미국 정보부에서 일하게 된 자들만 해도 수백 명이나 되고 심지어 서독 방첩부대나 첩보기관에서 근무한 이들도 적지 않다.
동독의 슈타지로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CIA의 전신인 OSS에서 교관으로 활동했다.
OSS는 우리나라의 첩보기관을 교육 시켰다.
OSS에 교육받은 자들이 우리 군에서 보안대가 되었고 민간으로 가서 안기부가 되었다.
보안대와 안기부가 독재자와 학살자의 하수인의 DNA가 숨어 있는 것의 이유는 역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