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의 귀환
빈대가 돌아왔다. 올해 들어 프랑스 파리와 영국을 들썩이게 한 빈대가 이달 들어 인천, 대구, 경기 부천에 출몰해 경계심을 키웠다. 사실 수십 년 전만 해도 빈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해충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시작과 함께 주거환경 및 공중위생이 개선되면서 사실상 ‘잊혀진 해충’이었다.
이번에 발견된 빈대는 해외에서 유입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2016년 부산의 한 호텔과 해외여행객의 옷과 가방, 해외직구 택배에서 발견된 적도 있다.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번식됐다면 매년 피해 사례가 곳곳에서 보고됐을 테지만 아직 이런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빈대는 원래부터 해외에서 유입된 해충이었다. 학계에서는 고려시대쯤 중국에서 한반도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한다. 빈대가 국내에서 기록된 최초 기록은 1103년 고려 숙종 때 송나라 손목이 쓴 ‘계림유사(鷄林類事)’에서 ‘갈보(蝎鋪)’라고 빈대를 적은 대목이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주로 시골 벽지 등에서 민초를 괴롭혔지만 구한말 외국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한양까지 크게 확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 말기 학자인 황현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1895년인 고종 32년 9월에 한양에 빈대가 비 오듯 쏟아졌다고 적었다. 일제강점기인 1921∼1941년에는 실제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 화재 사건만 21건이었다고 한다.
참다 못해 집에 불을 지를 정도로 빈대는 사람에게 고통스럽고 끈질긴 해충이다. 빈대는 평생 흡혈하며 살아가는데 이, 모기, 벼룩에 비해 덩치가 훨씬 커 물린 자리가 무척 가렵다. 암컷은 평생 약 200개의 알을 낳는데, 성충이 무려 9∼18개월을 살 정도로 수명이 긴 편이다. 방제도 쉽지 않다. 이들은 낮에는 옷장, 침대 밑, 침실의 벽 틈이나 벽지 틈에 철저히 숨어 있다가, 밤이 오면 사람에게 몰래 접근해 자기 몸무게의 2∼6배의 피를 빨고 다시 숨어버린다. 은신했다가 흡혈하고 다시 은신하는 ‘치고 빠지기’ 전략을 쓰는 셈이다.
다만 이번에 국내에서 빈대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방역을 잘한다면 크게 확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약제에 내성을 지닌 빈대가 유입된다면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프랑스에서는 최근 빈대 급증 이유로 살충제에 내성이 생긴 점을 꼽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국제 교류가 늘면서 외래 해충 유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불행히도 현재로서는 공항과 항구에서 모든 짐을 육안으로 직접 살펴보는 것 말고는 빈대를 찾을 수 있는 검역 시스템이 없다. 빈대가 유입되거나 숨어 있을 만한 곳에 대한 사전 예찰과 방역을 계속하면서 해충이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빈대와의 싸움을 항상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한태만 국립공원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