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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보면 보석인 듯 주워서 보면 돌멩이인 것을
지금은 장미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계절이다.
개나리, 진달래가 잠깐 얼굴을 내 보이더니, 벚꽃에 쫓겨 금방 달아나 버리고, 벚꽃 역시 철쭉에 밀려서 잠간 동안만 모습을 보이고는 사라져 버렸다.
철쭉이 오래간다고 생각했는데 철쭉도 벌써 다 져버리고 장미의 계절이 되었다.
금년 들어서 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세월이 빠른지 꽃이 빨리 져 버리는지, 아마도 양쪽 다일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실제로는 세월도 옛날과 같은 속도로 흐를 것이고, 꽃도 지금이라고 더 빨리 지지 않을 것이 틀림없을 것인데, 다만 나 자신이 나이를 많이 먹어서 세월도 빠르고 꽃도 빨리 지는 듯이 느껴지게 된다.
그렇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자신을 위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데 실제로 달에 가거나 인공위성을 타고 올라가봐야 지구의 둥근 모습을 볼 수가 있지 지상에서는 둥근 것을 실감할 수가 없다.
지구의 모습은 우물 안에서 보는 모습과 들판에서 보는 모습이 서로 다르며, 바다에서 본 모습과 높은 산에서 본 모습이 다를 것이고, 비행기에서 본 모습과 인공위성에서 본 모습도 서로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쉽게 말해서 소경이 코끼리 만져본 소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으로 해서 우리가 코끼리는 기둥과 같이 생겼다고 강변하기도 하고, 또는 벽과 같이 생긴 것이 코끼리라고 하며, 그래서 코끼리는 코가 긴 네다리를 가지고, 꼬리가 달린 동물이라고는 절대적으로 동의를 하지 않게 되는 愚를 범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린 정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보석보다 돌멩이가 더 값지게 쓰일 때도 있을 것인데 보석이 아니고 돌멩이라고 실망 할 일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누구나 멀리서 보면 햇빛이 반사되어서 오색영롱한 것을 보고서 가까이 가서 보게 되면 유리조각 깨어진 것을 보고는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유리조각이 프리즘의 역할을 하여서 햇빛을 분산해서 실제로는 오색이 아닌 칠색의 무지개 색깔을 보였다.
햇빛은 원래 일곱 가지의 무지개 색깔이라고 하지만 그 일곱 가지 색깔이 섞이게 되면 색깔이 없어지고 투명하게 된다.
어릴 적 팽이위에 부채꼴 형으로 빨강, 노랑, 파랑, 이렇게 삼원색을 칠해서 팽이를 돌리게 되면 색깔이 없어지게 되는 것을 보았을 줄 안다.
그리고 삼원색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정리하면 빛의 삼원색을 섞으면 색이 없어지고, 물감의 삼원색을 섞으면 검은 색이 된다.
사실은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가지라고 우리는 배우고 듣고 왔지만, 실제로는 삼원색의 색깔이 경계가 분명하지 않게 그려져 있어서 우리는 편의상 일곱 가지 즉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이렇게 일곱 가지의 색깔이라고 하지만 더 세분하게 되면 스무 가지, 서른 가지, 백 가지의 색깔이라고도 할 수가 있다.
어떻든 우리는 유리 조각이 햇빛을 분산해서 오색영롱한 빛을 보고서, 호기심에, 기대감에 가까이 가 보지만 하잘 것 없는 깨어진 유리조각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던가?
멀리서 보면, 결혼 전에는 보면 선녀와 같이 아름답고, 지성과 지혜의 결정체로 보이던, 그렇게 숭고하기까지 보이던 여자가 결혼 을 하고 가까이서 보게 되면, 그리고 아이를 하나 둘 낳고 보면, 돈에만 욕심이 많은 속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질투심도, 증오심도, 시기심도 많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아주머니들은 용감성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지하철 내에서 빈자리가 나면 음속의 속도로 달려간다던가?
그런데 그 여자가 욕심 많은 속물로만 이루어진 사람은 절대로 아니고, 꿈도 많고, 희망도 많은, 그리고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소질도 가졌으며, 반면에 욕심도, 질투도, 증오심도 가진 완벽한 사람이다.
그 많은 여러 가지 소질을 가진 사람이 결혼이라는 현실세계에 접어들면서 남편을 통제해야 하고, 자식을 길러야 되고, 돈도 모아야 하는 생활에 직면하게 되니 속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만 속물이 되는 것인가?
남자도 마찬가지로 속물이 된다.
남자도 꿈과 희망에 부풀어있는, 다정다감한 왕자와 같았지만, 결혼해서 가까이서 보게 되면 등에 처자식을 짊어지고 힘들어 하는 지친 노새와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많은 남편들도, 많은 아내들도, 선녀도 아니고, 공주도 아니며, 왕자도 아니란 것을 알고는 실망을 하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선녀를, 공주를, 왕자를 배우자로 맞이할 자격이 있는가도 한번 깊이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평범한 사람인데, 선녀나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면 밥도 할 줄 모르고, 빨래도 할 줄 모르고, 설거지도 못하며, 아이도 기르지 못하는 여자를, 시녀를 몇 명이나 고용을 해야 할 텐데, 그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능력이 있으면, 아내가 속물이라고 실망을 해도 좋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아내가, 남편이, 공주도 아니고 선녀도 아니고 왕자도 아닌 것에 대하여 무척도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배우자만 환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어려운 시험을 치열한 경쟁을 뚫고서 입사 혹은 채용이 되고나서 보면, 일은 지나치게 많고 보수는 일에 비해 턱없이 적다고 느낄 때가 누구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 현실이니 현실에 순응해야 한다.
평생을 어렵게 내 집 하나 마련하면 무척이나 좋을듯하지만 그것도 살다보면 별로 좋은 줄도 모르고 살게 된다.
우리는 끝없이 좋은 것은 자식을 키우는 일일 것이다.
지금은 자식을 키우는 것도, 끝없이 좋다는 말도, 옛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자식을 상대로 넘겨 준 재산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아버지가 하는 세상이고, 재산 상속을 빨리 받기위하여 자기의 친어머니를 살해해서 암매장하는 시대이고 세상이다.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은 아직도 죽는 날까지 자식사랑이 극진하며,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서 빨리 버리려고 뛰어가면 “얘야 엎어질라, 조심해서 가자!”라고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어머니의 마음이다.
사람은 풍족하면 지겨워하고 싫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으면 싫증이 나기마련이고, 아무리 듣기 좋은 소리도 오래도록 들으면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하였으며, 부모의 사랑을 적게 받은 자식이 부모의 소중한 것을 알고 효도하게 된다.
그래서 자식을 귀엽게 키워서는 안 되고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하였다.
뭐 자식을 엄하게 키워서 부모의 소중함을 알고 효도를 바라고 그러는 것은 아니고, 이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올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자식도 부모와 떨어져서 고생을 해 봐야 부모의 고마움을 알게 된다.
많은 아들들이 군대에 가서 고생을 하게 되면, 어머니가 얼마나 좋은 존재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며, 그래서 군대에서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그래서 사람은 조금 모자라는 조건에서 사는 게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먹고 싶은 것도 싫건 먹고, 입고 싶은 것도 원 없이 입고, 사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원 없이, 하고 싶은 것도 싫건 하게 되면 이제는 뭐 행하고 싶은 것이 없게 되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라는 게 도무지 없게 된다.
그래서 마약을 하던지 자살을 하던지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모자람의 미덕이 참으로 중요하며, 그것은 老莊思想의 虛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친구도 완벽한 사람이기 보다는 어딘가 허점이 있는 친구가 친근감이 가며, 배우자도 마찬가지로 허점이 있는 사람이 사랑 할 여지가 더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좋은 점만 사랑 할 것이 아니라 나쁜 점까지도 사랑 할 수 있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랑이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등장하는 강포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나 영화 타이탄에서의 사랑이 참된 사랑이라고 하지만, 소설 토지에서 강포수의 사랑이 참사랑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강포수는 일자 무식꾼에 오직 아는 것이라고는 산에 가서 호랑이와 곰, 그리고 멧돼지 사냥만 할 줄 아는 사람이지만, 귀녀가 살인을 저지르고 옥살이를 하는데, 강포수가 귀녀가 보고 싶어 자주 찾아가지만 그토록 표독스럽게 그러는데도 끝까지 사랑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다.
그러고 귀녀가 죽게 되면 누구의 핏줄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그런 사랑이 참사랑이고, 숭고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강포수가 양반이고, 부자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그런 숭고한 참사랑은 기대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돌멩이가 보석보다 더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으니, 보석이 아니고 돌멩이라고 실망 할 일도 아니다.
그리고 나의 배우자가 왕자가, 공주가 아닌 것이 참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고맙게 여겨야 한다.
내가 신선일 때 선녀가 나의 배우자로 알맞고, 내가 왕자일 때 공주가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지, 내가 보통 사람인 속물인데 어떻게 선녀나, 공주나, 왕자가 나의 배우자가 될 수도 없거니와 되어서도 절대로 안 된다.
만약에 내가 비둘기인데 학을 아내로 맞이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내가 너구리인데 호랑이를 아내로 맞이해서도 안 된다.
상대방에게 불만을 가지기 전에 나는 참새인데 학과 같은 배우자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러고 상대방이 돈이 적은 사람이라고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그만 큼 채울 공간이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집이 없다고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살면서 집을 마련하는 즐거움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며, 이미 집이 있는 사람은 집을 마련하는 즐거움은 없는 것이고, 배가 잔뜩 부른 사람은 진수성찬을 먹는 즐거움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진수성찬이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리라는 생각이다.
아사 직전의 사람에게는 보리밥 한 그릇도 진수성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재벌들에게는 소를 한 마리 잡아놓아도 진수성찬이 아닐 수도 있다.
자신이 가장 맛있게, 유용하게 먹는 것이야 말로 진수성찬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인생은 등산을 하는 것에 비유 할 수도 있는데, 산 아래 있어야 등산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산 정상에서는 등산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다.
어느 명사가 말했듯이 부부 생활이라는 것은 커다란 항아리를 박살을 내어놓은 것을 부부 둘이서 합심을 하고, 정성들여 원래의 항아리모습으로 꿰어 맞추어 놓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는 본래대로 완성을 하였으면 그 항아리를 한번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이 세상을 하직하고 저세상으로 가게 되는 것이란다.
이 공식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벗어나는 부부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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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혹자는 말하기를 부부는 전생에 원수가
만난다는 말도 있지요
처음 만날 때의 그 감정 그대로 가는 부부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모든 것을 변하게
하는 군요 글 잘 보고 갑니다
아무리 미워하고 싸워도 가장 소중한 게 부부입니다.
정말 원수가 만났으면 상대방이 죽으면 좋겠지만
이 세상에서 자식 다음으로 죽을까봐 두려운 것이
부부(특히 아내)이지요.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없지요
친구나 부부도 마찬가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좋은 점만 바라본다면
지혜롭게 잘 살리라는 생각이
부족한것이 보임으로
겸손도 느껴지는 것같아요.
글 잘 읽고갑니다
날씨가 너무 덥네요
항상 건강 조심하세요.
청담골님께서 늘 좋은 말로서 답글을 달아 주시니
힘이 납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거나
피해를 주려는 사람은 경계를 해야 합니다.
청담골님의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글 잘읽고 갑니다.
멀리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 보면 비극이란 말도 다시 적어봅니다.
사실 희극이란ㅇ것도 비극이란 것도 보기나름이겠지요.
그저 짧은 인생, 되도록 좋은 면을 보면서 살아가는게 좋으리라고 봅니다.
맞습니다.
희극 비극도, 행 불행도 생각하기 나름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