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논란을 보며 먼저 드는 생각은 서글프다는 것. APEC을 경유하며 자본가에 대한 환호 일색 분위기도 그렇고, 새벽배송 논란에서도 시장 찬가가 흘러나오고, 한국은 어디로 가나 싶어서.
새벽배송 노동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다는데, 그것을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치부하는 말들이 참 무섭다. 정히 쓰고 싶다면 그냥 입 다물고 새벽배송을 이용하면 되지 그걸 또 변명하겠다고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아득바득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것. 서글프다. 타인의 희생과 고통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그 사회가 멍들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새벽배송이 필요하다고 여기면, 배송 노동자의 임금 상승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도리 아닌가.
필수재란 그것이 없으면 공동의 삶이 굴러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경찰, 소방, 응급실, 혹은 도매시장이든 새벽 택시든 오랜 시간 우리 공동의 삶을 지탱해온 현장이다. 반면에 새벽배송이 없었을 때도 우리는 잘 살아왔다. 필수재, 필수서비스, 필수 노동이란 그런 것이다. 공공의 영역이든 시장의 영역이든, 마치 혈액과 뼈대와 같이 우리 사회의 기본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새벽배송이 없다고 우리 사회가 멈추지 않는다. 새벽배송 필수재론은 이윤을 위해 기업이 소비자들의 욕망을 조각해 형성한 허구의 관념이다. 워킹맘의 분유처럼 새벽에 필히 배송 받아야 하는 게 있다면, 새벽배송을 두둔할 게 아니라 새벽에도 여성의 노동력을 갈아넣어야 하는 불공정한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나? 평소 성차별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으면서 이럴 때마다 워킹맘 분유를 앞세워 새벽배송 불가피론을 떠드는 보수 언론이며 자칭 지식인이며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재의 새벽배송 시스템은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인간은 24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걸까? 자본은 이윤을 위해 24시간 내내 멈추지 않고 우리의 노동력을 공장공장공장장의 흐름에 기입하고 싶어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새벽배송을 계속 존치한다는 건 결국 우리의 삶과 노동이 24시간 쉼 없이 작동하는 자본 회로 속에 빨려 들어갈 개연성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오늘은 새벽배송이지만 내일은 당신의 노동 현장이 문제가 된다.
내가 새벽배송을 반대하는 건 내가 안전해지길, 내 노동이 24시간의 세계 속에서 혹사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밤에는 가급적 불을 꺼야 한다. 수십만 년, 수만 년 그렇게 지상의 삶이 진화했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에게 이롭다. 또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도 도시의 불빛이 작을수록 좋다. 하지만 모두가 자본가가 되기를 원하고 자본가를 응원하는 세계는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다. 새벽에도 과잉 노동과 과잉 서비스를 위해 불을 밝혀야 하는 세계는 반드시 착취의 24시간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