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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비가 올 듯 흐린 오후,
무릎이 나온 추리닝에 삼선의 슬리퍼를 신고 라면을 사고 돌아오다가
옛남친과 마주친 적이 있나요?
그의 옆에서 다정히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너무나 투명한 피부의 예쁘장한 여자를 보고 뒷걸음을 치다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은 적이 있나요?
차라리 모르는 척 지나가주길 기도하는데
기어코 다가와 인사를 하는 옛남친과
경계심 대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는 그의 여자와
바닥에 떨어진 라면과 허공을 나르는 까만 봉다리.....
그리고.. 이 죽일놈의... 몹쓸...
내 눈물 한방울...........
아....정말 이럴땐 어떻게 해야하죠?
하나도 아프지 않은 척 반갑게 인사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안부를 묻고
마음에도 없는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해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와서는
라면국물에 코를 박고 콱 죽어버릴까요?
그런데, 하나도 괜찮지 않다면...
아직은 그와, 이름도 모를 그녀를 담담히 보는 것이 죽도록 아프다면.....
그 꼴을 볼 밖에야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면.....
하지만 혼자 죽기에는 뭔가 억울하고 분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정여리는 지금부터 나를 버린 옛남친을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게,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죽일겁니다.
못 할 것 같다구요?
두고보세요.
복수에 불타오르는 여자에게 못 할 짓이란 없으니까요......
엽기 실연극복 로맨스
옛남친을 소리없이 죽이는 방법
면회실에 문이 열리고 군복을 입은 성준이 들어왔다.
환하게 웃으며 벌떡 일어나는 여리,
은은한 화장에 레이스가 달린 사랑스러운 원피스까지 입었지만
무심하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성준은 자리에 앉아버린다.
보자기를 풀어 찬합을 열고 준비해 온 음식들을 펼치기 시작하는 여리.
성준에게 젓가락을 쥐어주지만, 쓱 한 번 훑어 본 성준이 테이블에 젓가락을 탁 하고 내려놓는다.
"왜? 별로야? 닭이라도 튀겨올 걸 그랬나보다..."
멋쩍게 웃으며 성준을 바라보는 여리.
"여리야...... 미안하다. 이제 그만하자. 나 지겹다."
"으응?"
"제대 한 달 앞두고서 이런 말 하기 진짜 진짜 미안한데... 우리 그만 헤어지자구..."
성준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너무나 뜻밖이라 가만히 그의 입술만 응시하는 여리.
찬바람이 쌩 하는 분위기에 다른 군인들과 면회객들이 다 나갈 때 까지도
여리는 잠자코 성준을 바라보았다.
기나긴 정적을 뚫고 드디어 그녀가 입술을 떼었다.
"혹시 반찬 때문이야?"
따귀라도 맞을 준비가 되어있던 성준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 해 봐도 모르겠어....
한 달에 세 번씩 면회도 왔고, 매일 매일 편지 썼는데...
.... 반찬 밖에 없는 것 같아."
이해가 안 된다는 여리의 표정에 기가 찬 성준이 뚫어지게 도시락을 본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넌 왜 면회만 왔다하면 계란말이냐?"
"좋아한다며... 계란말이. 나도 좋아하는 거구...."
기어들어가는 여리의 작은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툴툴대기 시작하는 성준.
"야! 좋아한다고 너처럼 삼시세끼 계란말이만 먹는 애가 어딨어?"
"알았어. 앞으로는 딴 거 싸올게"
역시 반찬 때문이었구나..... 하는 여리의 표정에 성준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는다.
"누... 누가 반찬 때문에 이러는 줄 아냐?"
"그럼 뭐 때문인데?"
"너... 그, 뭐냐. 나홀로 집에! 전국민이 질려하는 그 나홀로 시리즈를
넌 녹화까지 해서 보고 또 보고 테잎 닳도록 보고,
대사 하나 안 틀리잖아! 그것도 무서워."
또 다시 몇 초의 정적이 흐르고 말 없이 성준을 바라보던 여리가 헤죽 웃는다.
"알았어. 그것도 안 볼게."
너무나 쉬운 퀴즈를 푼 듯한 여리의 표정에 할 말이 없어진 성준,
자리에서 일어나 여리의 앞에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한다.
"제발.. 응? 제발 여리야. 헤어져주라. 응? 부탁이야."
자신의 발치에서 애원하는 성준을 낯선 눈으로 보는 여리. 눈을 꿈뻑여본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했었던 남자였다.
좀 무뚝뚝하긴 했지만, 눈을 보면 진심이 느껴졌었는데...
그의 눈 마저도 이제는 끝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피스를 움켜잡는 여리의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성준이 젓가락을 놓는 순간부터 직감했지만, 자신의 예감이 틀리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깔깔 웃으며 장난이라고 놀랐냐고 물어봐주길 바라는데,
성준의 눈은 자꾸만 헤어지자고 말한다.
"시.... 싫어."
짧지만 단호한 여리의 말에,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무릎을 털고 일어나는 성준.
본능적으로 여리의 손이 성준의 손목을 움켜잡는다.
"가지 마!"
잠깐 움찔하던 성준이었지만, 이내 다시 차가운 눈으로 여리를 바라본다.
"니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놔줘."
그토록 좋아했던 성준의 낮은 목소리가 이리도 차가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여리.
"성준아, 나는......."
널 좋아한다고, 니 한 마디에 하루에도 열 두번씩 기분이 바뀔 정도로...
널 너무나 좋아한다고, 그리고 너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고....
그래서 이렇게 갑작스레 변한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고,
그러니 절대로 이렇게는 보낼 수 없다고...... 말을 하려 하는데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이것 좀 놔 봐! 내가 이 말 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여리의 손을 뿌리치며 한숨을 길게 쉬는 성준.
여리의 눈 앞에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신의 손목을 보여준다.
그제야 자신의 진심을 하나씩 꺼내놓는 성준을 보며
여리가 천천히 무너진다.
울먹이는 여리를 혼자 둔 채로 나가버리는 성준, 문이 닫힌다.
터미널에 서서 울지 않으려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여리,
늦가을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원피스를 입고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
한 손에는 비우지 못한 도시락통을 든 채로.........
"괜찮아. 울지 마. 울지 말자. 괜찮대도....."
주문을 외우듯 자신을 다독이는 여리.
핸드백에서 액체 멀미약을 꺼낸다.
지독한 멀미 때문에 시내버스도 못 타는 그녀였지만, 성준을 본다는 설렘에 늘 한달음에 달려왔었다.
여리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쓰디 쓴 멀미약,
주위에는 수많은 군인들과 그의 연인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맘껏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한모금 더 마시려는데,
그나마도 지나가는 커플의 어깨에 부딪혀 바닥에 흘리고 만다.
"저..저기요!"
억울한 마음에 소리질러보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에게 여리의 목소리가 들릴 턱이 없다.
그제야 정말로 혼자임을 알게 된 여리.
성준이 아니었다면 평생 와보지도 않았을 낯선 시골마을 터미널.
그 곳에 홀로 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해서
이렇게 차일줄도 모르고 긴긴 나날들을 손꼽아 기다렸던 자신이 너무 불쌍해서
참았던 눈물이 물 새는 수도꼭지처럼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너무나 가슴 아파서 차라리 못 들은 척 하려고 했던 성준의 마지막 말까지
누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 생생하게 재생된다.
"이것 좀 봐. 넌 손도 너무 세게 잡잖아. 많이 사랑해주는 건 고마운데,
넘치는 사랑...다른 말로 하면 집착이거든. 그거 사람 힘들게 하는 거야.
나 솔직히 많이 부담스러워.
늦었지만 우리 이쯤에서 끝내자. 넌 멋진 여자니까 쿨 하게 보내줘."
성준에게 버림 받았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건,
그에게 쏟아부었던 자신의 사랑이.... 그에겐 사랑이 아니라 부담이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그 남자에게 이런 존재가 되었을까?
밀고 당기기 좀 하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머리쓰면서 연애하기 싫다고 마음 가는대로 마음껏 사랑할거라 당당히 말하던 그녀였는데,
지금 그녀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쉼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하는 여리.
빵빵-
"아가씨, 탈 거야? 말 거야?"
눈치없이 클락션을 울리는 버스기사때문에 정신을 차린 여리가 황급히 버스에 올라탄다.
자리에 앉아 버릇처럼 안전벨트를 매는 여리.
어쨌거나 이 지겨운 동네는 이제 빠이빠이인 거다....
더이상은 멀미 참으며 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와 함께 서글픔이 더 크게 다가온다.
"나쁜 놈... 쿨은 무슨 쿨? 지 이름도 영어로 못 쓰는 주제에......"
자기가 말해놓고도 우스운지 피식 웃어버리는 여리.
하지만 성준의 욕을 하면서도 성준이 생각나서 다시 눈물이 그렁해진다.
머릿속에서는 그동안의 추억들이 세피아효과처럼 빛바랜 기억으로 스쳐지나가는데
추억을 곱씹는 여리를 방해하는 누군가의 손길....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는 그 누군가를 쳐다보는 여리.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훤칠하고 선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손수건이라도 줄 생각인가 슬쩍 기대를 하는데, 남자는 전혀 다른 말을 내뱉는다.
"저기, 제 자리거든요."
어서 비키라는 듯 좌석표까지 보여주며 자신이 창 쪽임을 알려주는 남자....
나 지금 울고 있어. 안 보이니? 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묵묵부답인 남자는 그저 자리를 비켜주기만 바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창 쪽의 자리를 비켜주고 그 옆에 앉는 여리,
무심한 남자에게 원망섞인 눈초리를 보내며 또 다시 버릇처럼 안전벨트를 한다.
다시금 감정을 잡고 울 준비를 하는 여리...
그녀는 얼마 전에 3년 사귄 남자에게 무참히 차였다. (그것도 제대 한 달 앞둔 군인에게)
그리고 얼마 후면 지긋지긋한 멀미가 시작 될 것이다.
집에 가면 '차일 줄 알았다. 내가 뭐랬니?'로 시작되는 단짝의 설교를 들어야만 한다.
눈 앞에 펼쳐질 깜깜한 현실.
차라리 울자. 울어도 된다. 아니, 울어야 한다!
펑펑 울고 나면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아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울어보려는데...
또 다시 남자가 툭 치고는 말을 건다.
"저기... 그 안전벨트 제 거 같은데요."
믿기 싫어서 옆 자리를 더듬거려 보고는,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자신의 안전벨트를 발견한 여리.
손수건은 커녕 자리까지 뺏고 이제는 안전벨트까지 기어코 가져가려 하다니...
"오래살고 싶으신가 봐요?"
"..... 몸뚱아리가 밥줄이라서요."
대놓고 비꼬며 말하는 여리, 하지만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무심히 대꾸하고 다시 창밖을 보는 남자.
억세게 운세가 나쁜지 다시 찾은 여리의 안전벨트는 고장이 나서 채워지지도 않는다.
몇 번을 시도하다가 포기해버리는 여리.
우는 것을 포기하고 옆에 앉은 남자의 얼굴을 흘깃 훔쳐보기 시작한다.
모자를 써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다.
몸뚱아리가 밥줄이라는 그의 말 대로라면,
어디 건축자재를 나르거나 땅을 파는 일용직 노동자가 아닐까 싶지만,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나 곱상한 얼굴이다.
하지만 뭔가 고집스러워 보이는 꾹 다문 입술.
찬찬히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달리던 고속버스가 갑자기 멈춰선다.
끼익ㅡ
귀를 파고드는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가 들리고,
짧은 순간 여리의 머릿속엔 수많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 학창 시절... 성준을 만난 대학교 신입생 시절.... 차이던 순간.... 안전벨트도 없는 지금의 자신...
이렇게 사람이 죽는구나....
눈을 질끈 감는 여리.
하지만 그 뿐이었다.
버스 기사는 끼어든 차에게 신경질적으로 클락션을 울렸고,
무사한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안전벨트를 안 한 승객들은 미끄럼틀 타듯 엉덩방아를 찧었으며
여리는.... 자신의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는 남자의 팔뚝을 보게 되었다.
"고... 고마워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창밖을 응시하는 남자였지만,
여리는 분명히 보았다. 몇 초간의 순간... 여리를 감쌌던 그의 팔과, 불안이 가득한 눈빛을...
일순간의 긴장이 풀리자 이제는 멀미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버스가 코너를 돌 때마다 울컥 치미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내던 여리.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 느끼는 순간, 남자가 머리를 숙이며
"괜찮아요?"
그와 동시에 재빠르게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낚아 채서 자신의 안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는 여리.
잠시 후 버스가 멈추고 .. 쫓겨나듯 내리는 여리와 남자.
"저..저기요! 나는 왜..."
불만 가득한 남자가 버스기사에게 항의를 끝내기도 전에 쌩 하고 가버리는 버스.
멀뚱히 그 곁에 서서... 남자의 모자를 두 손으로 쥐고 있는 여리..
"언제까지 그거 들고 서 있을 거예요?"
더러워죽겠다는 남자의 표정에, 여리가 안면근육을 최대한 이용해서 가장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미안해요. 똑같은 걸로 사드릴게요."
대꾸도 없이 연신 핸드폰만 눌러대는 남자, 어지간히 이 상황이 짜증나는 표정이다.
"여보세요? 형! 빨리 좀 와줘! 나 모자도 없단 말이야!! 뭐? 두 시간?"
모자를 잃은 것이 그렇게 징징댈 정도로 억울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지금은 싸워봤자 손해라는 생각에 잠자코 입을 다무는 여리.
"저기, 저 쪽으로 좀 가 봐요."
멀찍이 손짓하는 남자의 주문에 엉겁결에 뒷걸음질 친다.
"왜...요?"
"냄새나요."
봐서는 안 될 것들이 가득 담긴 남자의 모자를 들고서 길가에 주저앉는 여리.
주섬주섬 두 손으로 흙을 파기 시작한다.
모자를 묻고 흙을 덮는 여리를 보고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같이 묻어주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구경만 하는 남자가 못내 서운한 여리는 그가 눈치 못 챌 만큼
가끔 그를 노려보았다.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는 남자, 아뿔사.
그제야 여리는 남자가 누군지 알아챘다.
맨얼굴보다 선글라스 낀 모습이 더 익숙한,...
몸값이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비싸다는, 어마어마한 인기의 영화배우... 강지후.
"가...강지후!"
자신도 모르게 지후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여리,
그 순간 새빨간 스포츠카가 지후의 앞에 서고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 타는 지후.
뻥찐 여리를 두고서 스포츠카가 그대로 달린다.
"자...잠깐만요!"
작별인사를 하듯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지후.
"나도 데려가야죠........이 나쁜...놈...아.."
눈 깜짝할 새 쌩 하고 사라진 스포츠카,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여리....
이별보다 빠르게, 그가 사라졌다.
첫댓글 재밌네요~
ㅎㅎ재밌어요~
와우 다음편 기대할게요~^^
ㅎㅎ 담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한데요...^^
재밌어요ㅋ
재미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재미있땀
오~ 넘 재밌어요. 담편 보러 서둘러 갑니다~!!
재미있어요~~~
앞으로가 기대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