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856
■ 3부 일통 천하 (179)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0장 호부(虎符)를 훔친 신릉군 (3)
후영(侯嬴)은 그렇게 수년 간을 지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정도 되면 신릉군(信陵君)을 위해 뭔가 조언을 해줄 법도 하건만
후영은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딱 한번, 조나라 재상 우경(虞卿)이 진나라의 수배령을 받은
위제를 위해 신릉군의 집을 찾았을 때, '우경이 어떤 사람인가' 라고 묻는 신릉군에게,
- 위제(魏齊)를 위해 조나라 재상직을 헌신짝처럼 차버린 우경을 모르신단 말입니까?
하고 호된 꾸지람을 내린 것이 고작이었다.이것을 어찌 신릉군(信陵君)이 모를 것인가.
그는 자신을 위해 아무런 조언도 해주지 않는 후영(侯嬴)이 은근히 섭섭하고 불만스러웠다.
하루는 후영과 단둘이 있을 때 자신의 심정을 피력했다.
"선생은 저를 위해 뭔가 일러주실 말이 없으십니까?"후영(侯嬴)이 대답했다.
"저는 이미 공자를 위해 힘을 다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것으로 부족하셨는지요?"
- 이미 힘을 다했다.신릉군(信陵君)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 후영(侯嬴)이 자신을 위해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가.우경의 일을 꾸짖은 것을 말함인가?
"이미 힘을 다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요?""제가 공자를 처음 뵌 날, 저는 이문(夷門)의
문지지기이면서도 공자께서 친히 수레를 몰고 오게 하여 한참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또 굳이 들르지 않아도 될 시장 거리로 나가 제 친구와 얘기를 나누며 공자를 오랫동안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자의 공손함과 인망이 얼마나 높은가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공자께서는 공손히 저를 기다려주셨고, 이에 사람들은 소생을 욕하고 공자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로써 공자의 명망은 더욱 천하에 드높아졌습니다. 저는 이것으로 충분히
공자께 보답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오, 오!~"
신릉군(信陵君)은 불현듯 머릿속이 환히 밝아오는 것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그 날 이후로 신릉군의 주변으로 많은 선비들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신릉군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제가 선생의 깊은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신릉군의 솔직한 사죄에 후영(侯嬴)은 다시 말했다.
"실은 공자를 위해 한 사람을 천거하고 싶습니다만, 아직 때가 아닌듯하여 미루고 있습니다."
인재 천거라는 말에 신릉군(信陵君)은 귀가 번쩍 트였다."천거하고 싶은 분이 누구신지요?"
"그날 제가 시장에 들러 얘기를 나누었던 주해(朱亥)라는 사람입니다. 비록 도살업자이지만
당대 보기 드문 힘과 결단력을 지닌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쓰실 데가 없을 것입니다.
미리 사귀어두시는 것은 괜찮을 듯 싶습니다만..........."
그 날로 신릉군(信陵君)은 주해를 찾아가 상객으로 모시고자 했으나, 주해(朱亥)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응하지 않았다.많은 재물을 보내기도 했으나 모두 되돌아왔다.
몸이 달은 신릉군(信陵君)이 후영에게 하소연했다.
"내가 그동안 별 수단을 다 썼지만 주해라는 분은 통 승낙하질 않는군요. 어째서일까요?"
"이상하게 여기실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해(朱亥)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현자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되면 세상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마십시오."
그러할 때 조나라 평원군(平原君)으로부터 질책성 짙은 원병 요청이 날아왔다.
BC 257년(진소양왕 50년, 위안리왕 20년)의 일이었다.- 한단성(邯鄲城)을 구해주시오.
신릉군(信陵君)은 매부인 평원군을 도와주리라 결심하고 이복형인 위안리왕을 찾아가 청했다.
"진비 장군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한단을 구하러 가다 말고 업(鄴) 땅에 머물러 있다고 들었습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진군 명령을 내리지 않으십니까?"위안리왕(魏安釐王)이 변명했다.
"조(趙)나라를 도우려다가 진(秦)나라의 노여움을 사면 공연히 우리만 손해가 아닌가?
사세를 관망하다 적당히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진격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이네."
집으로 돌아온 신릉군(信陵君)은 문객들을 모아놓고 분개했다.
"우리 왕은 지나치게 진(秦)나라 눈치를 보고 계신다. 왕께서 조(趙)나라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한단으로 가 진나라 군대와 싸우리라! 그것이 진정한 사나이의 길이 아니겠는가."
- 나라의 이익보다는 대의(大義).이것이 전국사군(戰國四君)이 각 나라 왕이나 신하들과 다른 점이었다.
의협(義俠)의 사상이다.신릉군의 죽음을 각오한 결의에 문객들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우리도 공자와 함께 행동하겠습니다."1천여 명의 결사대가 조직되었다.
그 날로 결사대는 대량성(大梁城)을 출발했다.결사 대장인 신릉군은 이문(夷門)을 지나면서
자신의 상객이자 문지기인 후영을 찾아가 작별 인사를 고했다.
"나는 한단성(邯鄲城)에 가서 죽을 작정이오."백발이 성성한 후영(侯嬴)이 대답했다.
"장하십니다. 공자께서는 부디 분투하시기를. 저 또한 함께 행동하고 싶으나 몸이 늙어
따라갈 수 없겠습니다."그뿐이었다.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냉정한 말이 있을까.
신릉군이 일부러 후영(侯嬴)을 찾아와 작별 인사를 고한 것은 그러한 말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죽음을 결심한 자신을 위해 뭔가 기책(奇策)이라도 들을까해서 였다.
그런데 후영(侯嬴)은 어떠한가.- 늙어서 따라갈 수가 없겠습니다.고작 이 말뿐이 아닌가.
얼떨결에 작별을 고하고 이문(夷門)을 떠나오긴 했지만 신릉군(信陵君)은 마음이 우울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죽으러 가는 몸이다.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나를 만류하거나 계책을 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후영(侯嬴) 선생은 늙음을 핑계로 자신만 살고자 했다. 내가 그동안 선생을 위해
쏟은 정성을 봐서라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뭔가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괘씸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여 도저히 그대로 길을 갈수가 없었다.
"수레를 돌려라!"신릉군(信陵君)은 1천 결사대에게 잠시 기다리게 한 후
후영(侯嬴)을 만나기 위해 다시 이문(夷門)을 향해 달렸다.
857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57
■ 3부 일통 천하 (180)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0장 호부(虎符)를 훔친 신릉군 (4)
이문(夷門) 앞에 이르렀을 때 신릉군(信陵君)은 주춤했다.후영(侯嬴)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지었다."역시 돌아오셨군요.""선생은 내가 돌아올 줄 아셨습니까?"
"당연하지요. 제가 그렇듯 변변치 못한 전송을 해드렸는데, 공자께서 그냥 떠나실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릉군(信陵君)은 솔직하게 말했다."사실 선생에 대해 섭섭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자 이렇게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선생께 무슨 잘못을 범했는지요?"
후영(侯嬴)은 다시 한 번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신릉군을 이문(夷門) 옆 한편 구석으로 데리고 가 말했다.
"공자께서는 지금의 1천 결사대로 한단성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공자는 그렇게 죽기를 원하십니까?"
"저인들 어찌 죽기를 바라겠습니까만, 평원군(平原君)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이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바라건대, 선생께서는 제게 좋은 계책을 일러주십시오."
"좋습니다. 제가 공자를 위해 군사 10만을 드리겠습니다."
10만 대군이라는 말에 신릉군(信陵君)은 자신도 모르게 후영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 정도 병력이라면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그런데 선생께서 무슨 수로 그 많은 병력을 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지금 업(鄴) 땅에는 진비(晉鄙) 장군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머물러 있습니다.
공자는 그 10만 대군을 취하여 한단성으로 달려가십시오.""...................?"
신릉군(信陵君)은 후영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한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후영(侯嬴)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병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호부(虎符)가 필요하지요."
호부란 나라의 군사를 출동시킬 때 쓰는 일종의 부절(符節)이다.길이는 여섯 치로 두 쪽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왕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가 지닌다.
부절(符節)의 모양새가 호랑이 형상을 하고 있어 호부라고 불린다.
두 개의 부절을 합쳐 맞아 떨어질 때 비로소 병력을 움직일 권한을 갖게 된다.병부(兵符)라고도 한다.
"그 호부(虎符)만 있다면 진비의 10만 대군을 공자의 병력으로 삼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후영은 쉽게 말하고 있지만 신릉군(信陵君)은 아직도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호부(虎符)는 왕의 침소 깊숙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왕께서 조(趙)나라를 도울 마음이 없는데,
그것을 내게 내줄 리 없지 않습니까?"신릉군의 반문에 후영(侯嬴)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거야 훔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옛?""제가 알기로 지금 왕께서는 여희(如姬)를 가장 총애하고 계십니다.
그런 여희라면 얼마든지 왕의 침소를 들락거릴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여희를 시켜 진비가 지니고 있는
호부와 짝이 맞는 호부(虎符)를 훔쳐내십시오."
그제야 신릉군(信陵君)은 어렴풋이 후영이 말하는 바를 알수 있을 것 같았다.지난일이었다.
여희(如姬)의 아버지가 어떤 사내에게 살해를 당했다.
여희(如姬)는 원수를 갚고자 3년 동안 백방으로 살해범을 수소문했으나 끝내 범인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다.
위안리왕에게 부탁하여 수사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여희(如姬)는 신릉군을 찾아와 울며 매달렸다.- 부디 아버지의 원수를 찾아주십시오.
- 알겠습니다.노력해 보겠습니다.이렇게 대답한 신릉군(信陵君)은 그 날로 문객들을 풀어 거리로 내보냈다.
원래 신릉군은 위(魏)나라 제일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방면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 찾아냈습니다.여희의 부탁을 받은 지 보름만이었다.
신릉군(信陵君)은 여희에게 보고후 그 자의 목을 베어 여희에게 건네주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여희(如姬)는 감격하여 말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자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시키실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후영의 얘기를 듣는 동안 신릉군(信陵君)은 그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렇다. 여희라면 나를 위해 호부(虎符)를 훔쳐내줄 것이다.'
그 호부를 훔쳐내기만 하면 업(鄴) 땅의 10만 대군은 고스란히 신릉군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신릉군(信陵君)은 안개 속을 헤매다가 밝은 햇살을 본 듯했다."과연 선생은 현자(賢者)이십니다."
그 길로 궁으로 들어간 신릉군(信陵君)은 비밀리 심복 내관을 통해 여희에게 부탁했다.
- 왕의 침소에 보관되어 있는 호부(虎符)가 필요합니다.여희(如姬)는 전국시대의 여인답게 의리가 있었다.
- 신릉군(信陵君)은 나의 은인이다.어찌 보은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여희(如姬)는 위안리왕이 술에 취해 잠자는 사이 호부를 훔쳐 내관에게 건넸고,
내관은 다시 그것을 신릉군에게 전했다.
858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