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속 핼러윈 “행사-모임 자제”
참사 1주기… 이태원 거리 차분
인파관리용 바리케이드 설치된 이태원 거리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이틀 앞둔 27일 오후 8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인파 관리용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모습. 지난해와 달리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분위기다. 일부 가게는 추모에 동참하기 위해 문을 닫기도 했다. 송은석 기자
“보고 싶다. 많이 고맙고 사랑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앞둔 27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사고 현장에는 추모 문구를 담은 포스트잇 수백 개가 벽 한쪽을 빼곡히 채운 상태였다. 한국어와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평안을 바란다”, “잊지 않겠다” 등의 글들이 붙어 있었다. 지난해 이태원 참사로 친구를 잃은 박모 씨(22)는 이날 포스트잇을 붙이며 “1년 전 먼저 떠난 친구가 생각나 들렀다”며 “가장 힘든 고3 생활을 같이 보낸 친구인데, 밝은 성격으로 주위를 밝히던 친구가 많이 보고 싶다”고 했다.
이날 이태원역 일대는 평소 금요일 저녁에 붐비는 것과 달리 한산한 분위기였다. 추모 분위기 속에 상인들도 핼러윈 장식품을 내걸지 않았다. 추모를 위해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상당수였다. 참사 현장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최재연 씨(40)는 “예년에는 밤샘 영업을 했지만 올해는 핼러윈 기간 오후 11시까지만 영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경찰, 소방 등은 인파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태원 대신 청년들이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홍익대 앞, 강남, 건국대 주변 등 주요 번화가 16곳을 집중 점검했다.
핼러윈 참사 1주기를 맞아 조심하는 분위기는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나타났다. 매년 핼러윈 인파가 몰리는 일본 도쿄 시부야역의 하치코 광장에는 27일 “시부야는 핼러윈 이벤트 장소가 아니다”라는 초대형 간판이 설치됐다. 시부야역 인근에서는 27일부터 31일까지 닷새간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길거리 음주가 금지된다. 시부야역 앞 명물 하치코 동상에는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울타리를 쳐 접근을 봉쇄한다.
핼러윈 장식 대신 애도 문구… 일부 가게 아예 닫아
이태원 ‘차분한 핼러윈’
“이태원 참사 1년… 깊은 애도”
홍대-강남-건대입구 등 분위기 차분
일부선 파티룸 빌려 소규모 행사
27일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에 ‘시부야는 핼러윈 이벤트 장소가 아닙니다’라고 쓰인 대형 안내판이 등장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깊은 마음으로 애도합니다. 10월 27∼31일까지 휴무입니다.’
지난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100m가량 떨어진 한 가게는 이 같은 글을 가게 입구에 붙였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주말 내내 추모의 뜻으로 가게 운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른 가게들도 운영 시간을 축소하거나 음악 소리를 낮추는 등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태원에서 5년째 술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A 씨(41)는 “오늘 예약자가 제법 있었는데, 막상 주말이 다가오니 ‘파티를 즐기기 어려울 것 같다’며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홍대 강남 건대입구도 ‘차분’
핼러윈 참사 1주기가 임박한 27일 이태원 홍대 강남 등 서울의 주요 번화가는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태원 주요 거리와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찼던 지난해와 달리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일부 골목에선 노란 조끼를 입은 경찰과 공무원들이 더 많이 보이기도 했다. 참사가 발생한 해밀턴호텔 뒤편 세계음식문화거리에는 일방통행 유도용 안전 펜스가 설치됐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도 인파가 많지 않아 통행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날 이태원 거리를 찾은 대학생 유모 씨(20)는 “너무 분위기가 한적해서 이태원이 맞나 싶었다. 지난해 참사가 발생했다는 게 잘 상상이 안 간다”고 말했다.
‘이태원 풍선 효과’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홍대, 강남역, 건대입구 등도 평소 주말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건대입구역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43)는 “예년에는 10월 한 달 내내 핼러윈 장식을 해놓고 핼러윈 복장을 직원들에게 착용시켰는데, 올해는 소품 등을 창고에서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남역에서 만난 학원 강사 사라 씨(33)는 “원래 이맘때 학원에서 항상 핼러윈 행사를 했는데 올해는 책 축제로 대체했다”고 전했다.
특히 서울 마포구의 권고에 따라 홍대입구역 인근 버스킹존 운영이 이날부터 31일까지 중단됐다. 평소 주말이면 각종 즉흥 연주가 흘렀지만, 이날은 공연 없이 차분한 분위기였다. 마포구 관계자는 “이날 외국인 유학생 4명이 핼러윈 분장을 하기 위해 메이크업 장비 등을 펼치는 걸 적발해 철수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 일부 대학생 ‘과 단위’ 핼러윈 파티 열기도
하지만 일부 청년은 자체적으로 핼러윈을 즐기기도 했다.
27일 서울의 대학생들이 술집이나 파티룸을 빌려 ‘학과 단위’의 핼러윈 행사를 곳곳에서 열었다. A대학의 과 학생회장인 유모 씨(20)는 “1년에 한 번뿐인 날인데, 작은 이벤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술집을 빌려 핼러윈 장식으로 파티장을 꾸미고 베스트 드레서도 선정하기로 했다” 고 말했다. 건대 입구에서 파티룸을 운영하는 김모 씨(33)는 “이번 주말 파티룸은 4주 전에 예약이 마감됐다. 평상시보다 훨씬 높은 금액이었는데도 다 나갔다”고 말했다.
이채완 기자, 도쿄=이상훈 특파원, 박경민 인턴기자 연세대 정치외교학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