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병대와 특전사의 국군의 날 사건..
73년 10월 1일 여의도에서 거행된 건군25주년 국군의 날 행사는 해병대 사령부의 해
체를 목전에 두고 있던 해병대장병들에게 있어서는 착찹한 심정을 금치 못하게 한 행사
였다. 그 때 이미 약 400명의 전역 희망장교 중 약 300명은 9월 10일과 20일 두 차례
걸쳐 전역을 하고 그 나머지는 9월 30일과 10월 10일(이병문 사령관과 전속부관 각 국
감실장 및 의장대장. 헌병대 보안과장 등 10여명) 부로 전역을 하게 돼 있었으므로 부
대 내부의 분위기는 몹시 썰렁했고, 당시의 사령부 보안대장 임경섭 준장이 박 대통령에
게 앞으로 어던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했던 것처럼 장병들의 감정이 그만큼 악화되
어 있었다. 10월 10일 이병문 대장의 전역식을 마치고 그 날 부로 전역을 했던 사령부
의 마지막 의장대장은 이상우 대위(해간 36기)였고 서울지구 해군헌병대 보안과장은 김
무일대위(해간35기)였다.
그런데 해병대로서는 마지막 국군의 날 행사에 참가했던 그 날 여의도 5.16광장 행사
장에서는 액운이 끼어 있었던지 육군공수특전단 정예요원들의 예기치 못한 랜딩 실수가 발
단이 된 해병대 대원들과 특전사 대원들 간의 감정적인 충돌로 인해 특전사 요원
한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그 날을 마의 날로 기억되게 했다.
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즉 메인행사인 분열식이 끝난 후 휘나레를
장식하는 육군공수특전단 요원들의 고공낙하 시범이 진행되고 있던 중 로얄 박스의 랜
딩 포인트에 낙하해야 할 수 명의 특전사 요원들이 그 지점을 벗어나 그 부근에 있는 해
병대 행사부대 장병들의 일부 내무실 천막에 떨어진 것이 발단이 되어 해병대의 천막 감
시병들과 특전사 대원들(하사관) 간에 시비가 벌어졌다. 결국은 그 사소한 시비가 화근
이 되어 수모를 당한 특전사 요원들이 그들의 내무실로 가서 수십 명의 동료 대원들을
데리고 와서 해병대 감시병들에게 집단으로 폭행을 가했다. 행사를 마치고 부서진
천막으로 돌아와 감시병들이 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된 행사부대 대원들이 격분을
하여 때마침 행사를 마치고 그 천막 앞을 통과하고 있는 육군특전사의 지프차와 트럭을
세워 영문을 알지 못하는 특전사 요원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러한 경황에 지프차에 타
고 있던 특전사 요원 한 사람이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차에서 내려 대검을 뽑아 들자
같이 덤벼 든 해병대 대원 한 명이 그 대검을 탈취하기가 무섭게 그 대검으로 그
특전사 요원을 척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그러한 사고가 발생하자 육군헌병대와 해군서울지구 헌병대(장,윤웅섭 중령)에서
는 즉각 합동수사반을 편성하여 포항으로 내려갈 병력수송열차와 김포 여단으로 들어갈
병력수송차량을 밤늦게까지 세워 놓고 진상을 파악하는 한편 가해자의 검거에 나섰으나
결국 가해자를 색출해 내지 못함으로써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에서 언급되어 있듯 훗날(87년) 해병대 사령부의 재창설 서류에 결재를 한 특전사 출
신의 전두환대통령이 박구일 중장에게 특별히 지시한 그 3가지 사항 중 "싸움을 너무 많
이 하지 말라"고 했던 그 말은 특히 육군과의 사이에 벌어졌던 그와 같은 트러블이 재발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간곡한 충고의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
게 된다
해병대와 특전사
최강이라는것은 그부대마다의특성이있기에 비교하기힘듭니다
상륙작전이나 대규모정규전에서는 해병대가잘싸울것이고
소규모의비정규전에서는 공수부대가능력을발휘하겠지요
해병대는 6.25전쟁전에창설되어 6.25와 월남전에서 혁혁한 전과.전공을거둔것은
국내외에서 인정받는사실입니다
한예로 대한민국의 국군이창설된후로 작전부대원전원 일계급특진된사례가 두번있는데
그모두를 해병대가기록한것입니다
6.25전쟁시 북괴군에밀려후퇴만거듭하던국군은 급기야 부산까지후퇴하여 위기를맡습니다
이에 국군수뇌부는 부산을방어하려면 거제도를빼앗기지않아야하기에 그임무를 해병대에게맡깁니다
임무를부여받은 해병대김성은부대장은 거제도를지키기위해서는 통영의북괴군을섬멸해야한다는 작전을세우고 야음을틈타 기습상륙을감행하여 대승을거둡니다
이 작전에서의승리는 6.25전쟁발발후 우리국군이처음거둔승리이자 빼앗겼던 우리땅을되찿은것도처음이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대승을거두자 미국의 종군여기자인 마가렛이 이렇게보도했습니다
귀신잡는해병대라고 귀신잡는해병대라는말은 이렇게만들어진것입니다
이작전에참가했던 해병대원모두는 일계급특진되었습니다
월남전당시 해병대1개중대[180명]가 주둔하던 전술기지에 월맹정규군2개연대[2000여명]가야음을틈타 공격해옵니다
중대장 정경진대위[11중대장] 는 중대를지휘하며 10배가넘는 월맹군을 4시간에걸친 혈투끝에 물리치고 전술기지를방어합니다
이 전투는 월남전사상 중대단위로는 최대의승리였습니다
세계유수의언론사들이 앞다투어보도합니다
신화를남긴 해병대라고...............
작전에참가했던 모든대원들은 일계급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지무공훈장 그리고미국의은성무공훈장도 수여받습니다
해병대가이룬 전과와전공은 세계어느부대보다많습니다
공수부대도 대한민국이자랑하는부대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전부대이고 정규전에서는 단독작전을수행하지못하는편제라서 큰전투에는참가해보지못했습니다
또한 창설된것도 해병대보다는늦습니다
주로 대간첩작전에투입되었지요
어느부대가 최강이다라고말하기보다 우리대한민국의 한부대라고보시면 되겠습니다
육해공군 모두휼륭한부대입니다
*국군조직법 제2조 2항은 ‘국군은 육군•해군 및 공군으로 조직하며, 해군에 해병대를 둔다’라고 명시돼 있다. 해병대는 국군의 근간이 된 법률에 등재돼 있는 부대인 것이다. 그러나 특전사는 법률이 아닌 육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첫댓글 예.. 맞습니다. 하지만 해병대는 전우애가 다른부대와는 좀 남달리 더욱 끈끈한것 같습니다. 그런 전우애를 잘 이어갔음합니다.
예.. 맞습니다. 하지만 해병대는 전우애가 다른부대와는 좀 남달리 더욱 끈끈한것 같습니다. 그런 전우애를 잘 이어갔음합니다.2
우리때 김포의 제1특전사가 있어 신촌 버쓰정류장에서부터 특전사와 가끔 마찰이 있었고 그때문에 포항의 수색대가 강화도를 맡게하며 사단을 떠났지요, 특전사와 눈에 안보이는 반목이 있었든건마는 사실입니다
우리해병대는 타군보다 인원이 적습니다, 그래서 똘똘뭉치며 단결이 잘되어있고 인원이 적다보니 = 소수정예요원 = 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해병대 전우회라고 하지만 공수특전단은 육군소속으로 전우회라고는 사용하지않고 동지회라고 쓰는데 단어자체도 전우회보다 한수 아래라고 보며,차원이 틀린다고 보면 됩니다,쉽게 말씀드리면 다같은 군복을 입어도 비슷하지만 ㅡ 호랑이와 ,고양이로 비교하면 되겠습니다, 쨉도안되며, 깜도 안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