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부채 보낸 뜻을 나도 잠깐 생각하니
가슴에 붙는 불을 끄라고 보내도다
눈물도 못 끄는 불을 부채라서 어이 끄리
『고금가곡』에
작자 미상으로 전하는 노래이다.
이 시에서야 부채는
그리운 임이 보내 준 것이지만, 예전에는 여름철 선물로
부채가 으뜸이었다.
부채가 여름살이에
요긴했던 까닭은 무엇보다 더위를 몰아내고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데 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킬 뿐 아니라
먼지 같은 오물을 날려 청정하게 하므로, 재앙을 몰고 오는
액귀나 병을 몰고 오는 병귀 같은 사(邪)도 쫓는다고 믿었다.
옛날에는 단오에 부채를
선물하는 습속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이 부채를 염병을 쫓는
부채라는 뜻으로 벽온선(僻瘟扇)이라고 일컬었다.
악마를 쫓고
신명을 부르는 굿에서도 부채는 필수인데, 이때 부채는 삿된 것을 쫓고
신을 부르기 위한 상징적인 도구이다.
또 신랑이 신부를 맞기 위해
장가가는 날 백마에서 내려 신부 집 문을 들어설 때 얼굴 아래를
가리는 파란 부채나,
신부가 초례청에 나올 때
수모(신부 곁에서 단장 등을 돕는 여자)가 신부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빨간 부채는
신랑 신부가
처녀 총각이라는 동정의 표상으로서 부채를 거둠으로 동정을
주고받음을 상징한다.
국상이나 친상을 당하면,
소선(素扇)이라 하여 그림이나 글씨가 없는 부채를
2년 동안 지니고 다녔다.
이것은 군부(君夫)를 잃은
죄인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 하여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또 양반집 부녀자는
얼굴을 남에게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외법 때문에 낮 외출을 삼갔는데,
부득이 외출할 때는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이 풍습이 해이해졌던지
태종 14년에 부녀자가 부채로 얼굴 가리는 것을 금하고 대신 모자 앞에 발을
드리워 염모(簾帽)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도록 하였다.
이 염모는 머리에서
상반신을 덮어씌우는 장옷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 바깥나들이를 할 때
부채를 들고 다니는 여자는 기생과 무당에 국한되었고 여염집 여자가
부채를 들고 다니면 수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신분이 높고 낮음에 따르는
번거로운 법도를 배려하여 신분을 가리는 상징적 도구로 부채가
이용되기도 하였다.
즉, 양반 신분의 사람이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 신분이 낮은 상민이나 천민은 길을 비켜
읍하고 서 있거나 말을 탔으면 말에서 내렸다.
이때 신분이 낮은
상대방의 번거로움을 덜어 주기 위해 양반이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려 신분을
은폐하고 지나가면 읍하거나 말에서 내리지 않아도 되었다.
양반이
겨울에도 부채를 들고 다닌 것은 이 때문이었다.
또 결의나 서약을 할 때
마음을 묶는 증거물, 즉 결의의 상징으로도 부채가
이용되었다.
쥘부채인 접선(摺扇)은
다수의 부챗살이 한데 결속되어 있으므로 일심동체를
다짐할 때 사용되었고,
부챗살 하나하나에
결의자가 이름을 쓰거나 시구를 한 구절씩 써 보관함으로써
변심을 경계했다.
이런 부채를
일심선이라 했다. 단심선이라는 부채는 자신의 충성이나 효성, 의리의
일편단심을 알리려고 부채에 그 뜻을 적어 보낼 때 사용했다.
쥘부채
부채는
축재 또는 뇌물로서도 효용이 컸다.
성종 24년 10월 대사헌
허침이 임금에게 사치를 경계토록 하는 상주에 “부채 값이
무명 8~9동에 이르고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무명 1동이
50필이므로 400~500필이나 되는 고가의 부채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령이나 무관 등은
반드시 부채를 휴대했는데 이는 더위를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가락 대신 지시, 지휘하기 위한 도구였다.
부채를 내리침으로써
응징 또는 견책을 표하고, 접었다 폈다 함으로써 아랫사람에게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하자,
견훤이 하신(賀臣 : 축하의 뜻을 전하는 신하)을 보내 축하하고
왕 3년에는 공작선을 바쳤다.
이는 견훤이
고려 태조의 통치권을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부챗살은
10골에서 60골까지 다양하다.
단옷날을 앞두고
임금에게 부채가 진상되면 임금은 그 부채를 신하들에게 하사했는데,
벼슬의 품수에 따라 부챗살의 골수를 맞추어 냈다.
따라서
부챗살이 촘촘하고 성긴 정도로 벼슬과 신분을
어림할 수 있었다.
정선 「도서여가」의
일부 한 선비가 부채를 들고 마루에 앉아
꽃을 보고 있다.
부챗살의 골수뿐 아니라
부채 끝에 다는 패물로도 신분을 식별했다.
비취나 호박,
서각(犀角) 등을 단 것은 품수가 높고, 옥이나 쇠뿔이면 중간,
쇠붙이면 낮은 신분이었다.
또 3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하사하는 부채에는 내의원에서 만든 옥추단에
구멍을 뚫어 다는데,
가지고 다니다가
복통이나 곽란 등이 생기면 이 선초(扇貂)의 옥추단을 긁어
타 마심으로써 응급 처치를 하였다.
민요에
“가을에 곡식 팔아 첩을 사고 오뉴월이 되니 첩을 팔아 부채 산다.”
라는 가사가 있다.
여름에는
무엇보다 부채가 제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규방 문화,
2006.2.20, 현암사)
[출처] 부채
[출처] 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