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이 시대의 아벨>(1983)-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비유적, 의지적, 긍정적, 역설적, 상징적
◆ 표현
* 청유형 표현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고 설득하는 효과를 냄.
* 힘든 여건 속에서도 결국 살아남아 열매맺는 자연에 빗대어 삶의 지혜로운 극복 방법을
제시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상한 갈대,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
→ 고통받는 존재,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 역경과 고난을 거쳐서 성숙해지는
존재 상징
*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모습
* 뿌리 깊으면야 → 삶(생명)에 대한 의지
* 새순, 꽃, 개울, 등불 → 새로운 생명력과 인생의 열매, 삶의 희망
*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디려는 각오와 다짐
*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 고통의 긍정적 수용, 고통을 견디려는 각오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 삶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홀로 일어서려는 강인한 의지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내포되어 있다.
* 지는 해 → 부정적 현실
* 뿌리 깊은 벌판 → 흔들림 없는 의지의 삶이 영위되는 세계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더욱 성숙해지고 견고해지는 공간
*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 고통과 시련은 거부한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 낙관적 가치관과 태도 반영
* 캄캄한 밤 → 암울한 현실
* 마주 잡을 손 → 고통을 함께 이겨 나갈 수 있는 존재. 동반자, 구원의 절대자
◆ 화자 :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
◆ 관련작품 : 부정적 상황의 긍정적 수용과 극복
→ 서정주 '무등을 보며', 김남조 '설일', 김종길 '설날 아침에', 박재삼 '흥부 부부상',
김광섭 '생의 감각', 박성룡 '과목' 등.
◆ 주제 : 고통의 수용과 그로 인한 내면의 성숙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내면의 고통을 대면하려는 의지
◆ 2연 : 고통에 대한 수용과 포용의 태도
◆ 3연 : 고통으로 인한 깨달음과 내면의 성숙
[시상 해설]
◆ 1연 : 비록 상한 갈대라도 하늘이 함께 해 준다면 한 계절은 넉넉히 견뎌낼 수 있고, 갈대의 뿌리가 흙 속에 깊숙이 박혀있다면야 비록 흔들리다 밑둥이 잘리는 고통과 시련을 겪더라도 다시 새순으로 돋아 오른다. 제 몸이 상한 가운데서도 계속하여 흔들림을 멈추지 않는 저 갈대처럼 세상의 풍파 속에서 상한 영혼이여, 우리도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에서 비록 흔들리더라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맞서 나가자.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수용하자.
◆ 2연 : 설령 뿌리가 없더라도 깊숙이 뿌리박지 못하고 바람 앞에서 흔들리는 부평초도 물만 있으면 꽃을 피어내지 않는가. 이 세상 어디서나 물은 흐르게 마련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져 있게 마련이다. 비록 고통이 내 곁에 붙어 있어 떠나지 않는대도 까지껏 외롭게 살아가리라 결심만 한다면 어디인들 못 가랴. 비록 고통 속이라도 한번 가기로 목숨걸고 결심하면 해가 지는 것이 나를 막아설 수 있겠는가. 어떠한 상황이라도 충분히 극복해 내지 않겠는가.
◆ 3연 : 고통과 설움이 가득한 현실에 얽매이지 말고 훨훨 털고 일어나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서도 바람은 불어오듯이 영원한 눈물도 없는 법이다. 영원한 슬픔의 비탄도 없다. 비록 현실이 캄캄한 밤과 같을지라도 하늘이 함께 해 준다면 늘 고통 속에서도 우리의 손을 마주 잡아 줄 손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상처받은 내면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이미지로 표현하여 내면의 고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즉, 내적 고통과 맞대면하여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내적 성숙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시는 상처받은 내면의 고통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시는 내면에 지극한 상처를 드리우고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을 노래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갈대의 흔들림'과 '뿌리 깊음'의 이미지와 뿌리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부평초'의 이미지를 통해, 고통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직접 대면하고 고통을 수용하여 더욱 값진 삶을 살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고통을 반드시 부정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이를 통해 더욱 강인해지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고통을 노래한 다른 시들과 구분된다. 이 시에서는 시의 전개에 따라 고통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더욱 성숙해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상한 갈대'와 '부평초'를 넘어 '뿌리 깊은 벌판'으로 옮겨가는 시인의 시선에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란 없으며, 따라서 고통을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을 초월하고자 하는 시인의 강한 의지가 배어 있는 것이다.
■ '갈대'와 '부평초'의 이미지
보통 시에서 '갈대'는 외유내강을 의미하는 소재로 자주 사용된다. 이 시에서도 이러한 의미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때의 '갈대'는 좀 더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갈대'의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같은 시에서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 '부평초'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부평초'의 표면적 의미는 뿌리 없이 호수나 개울을 떠다니며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이때 '부평초'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근원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도 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부평초'의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갈대'의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이때의 '갈대'역시 '온갖 세파에 멍이 들었을지언정 뿌리 깊음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평생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만은 잃지 않은 존재'라는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작가소개]
고정희 : 시인
출생 : 1948. 전라남도 해남
사망 : 1991. 6. 9.
가족 : 5남 3녀 중 첫째
학력 : 한신대학교 학사
데뷔 : 1975년 현대시학 등단
수상 :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경력 :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관련정보 : 네이버[지식백과]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작품 : 도서, 기타
<정의>
1948-1991. 시인.
<개설>
1975년『현대시학』에 「연가」, 「부활 그 이후」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고정희는 타계하는 해인 1991년까지 모두 열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다.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1979) 이후 『실락원 기행』(1981), 『초혼제』(1983), 『지리산의 봄』(1987), 『저 무덤에 푸른 잔디』(1989), 『아름다운 사람 하나』(1990) 등으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여정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를 통해 어떤 가혹한 억압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의지와 생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형상화하였다. 특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하여 전통적 남도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 당대 민중의 아픔을 드러내고 위안하는 장시 형식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새로운 양식적 자각도 보여주었다. 자신의 시의 모체가 되어온 지리산 등반 도중 실족으로 타계하였다. 유고 시집으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가 있다.
<생애 및 활동 사항>
전라남도 해남에서 5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75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전남일보』 기자와 광주 YWCA 대학생부 간사 그리고 크리스천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와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을 역임하였고,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고정희는 한국신학대학의 모토인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자유, 사랑, 정의 실천의 정신으로 대학생 문화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에도 혁혁한 족적을 남겼는데, 남녀노소가 서로 평등하고 자유롭게 어울려 사는 대안 사회를 모색한 여성주의 공동체 모임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참여하여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런 이력이 토대가 되어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을 맡아보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시인이었다. 그는 시와 여성주의를 결속한 독자적 시세계를 보여주었고, 여성의 시선과 경험으로 여성만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결국 그는 자유 의지를 바탕으로 한 실존적 고통을 승인하면서, 메시아니즘을 핵심으로 하는 앙가주망의 시학을 펼쳤고, 내면 성찰과 남은 자의 그리움을 표상하는 시세계를 남겼다. 거기에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시선이 결합하였다. 물론 그가 내놓은 열 권의 시집은 제각기 조금씩 다른 양식과 정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이 이러한 성격 규정과 배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독교 정신 또는 이념이라는 것이 편협한 종교 도식이 아니라 넓은 현실의 세계를 면밀하게 살펴내는 적극적 인식의 한 패러다임임을 시사하는 훌륭한 예증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시적인 족적을 남긴 그는 생애 마지막 작품을 다음과 같은 시로 남기고 갔다.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두고/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사십대」) 마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이 작품은, 사랑과 성찰의 모습이 잔잔하게 다가오는 시편이다.
<의의와 평가>
고정희는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이래 15년간 『실락원 기행』, 『초혼제』, 『지리산의 봄』, 『저 무덤 위의 푸른 잔디』,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여백을 남긴다』 등 모두 열 권의 시집을 발표하였다. 고정희의 시세계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상 실현을 꿈꾸는 노래로부터 민중에 대한 치열한 사랑과 관심, 여성주의적 시선과 경험에 입각한 선구자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탐구의 편폭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시편에서 목숨 있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노래하였다. 전통적 남도 가락과 씻김굿 형식을 빌려와 민중의 고난과 저항의 모습을 형상화하기도 한 그는 자유, 민족, 민중, 그리고 여성의 해방을 위해 노력한 시인이다. 198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나타난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였고, 민중적 관점에서 시를 지속적으로 쓴 시인이었으며, 기독교 정신의 시적 형상화에서도 선구적 업적을 남겼다. 애상과 연성을 위주로 씌어졌던 한국 여성시 계보에 굵은 목소리와 강인한 의지를 이채롭게 던진 몫도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고정희론」(송현호, 『한국 현대시 연구』, 민음사, 1989)
「연시와 통속성의 문제」(박혜경, 『한길문학』 1991. 봄)
「고정희 시에 나타난 종교의식과 현실인식」(유성호, 『한국문예비평연구』 1집,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1997)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고정희 [高靜熙]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