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향이 넘실거리는 이 곳. 너무나 편안하다. 불안했었던것 같다. 살아가지 못하는 그 영혼이 되었을때도 그녀를 지킬수 없다는 것에 불안했고 이 몸에 있는 나를 알았을때도 무언가에 불안했었다. 하지만 지금. 너무 편안하다. 이 느낌이 어쩌면 그래. 어쩌면 자궁속의 태아의 감정이 아닐까?
편안함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몸을 뉘이고 있었으나 이젠 더 이상 나에게 묶어둘 ‘잠’이란게 바닦나 버렸나 보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앉아 있는 나. 이 방안… 송꽃이의 방안이다. 이 침대는 당현 그녀의 침대겠지… 이 향은 내가 300일 때 선물한 에스쁘아 샤워코롱의 향이였다.
이불은 걷어 침대에 내려왔다.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화장대 위로 액자가 놓여있다. 사진을 껴 넣고 유리 위로 작은 스티커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그 액자속의 사진은 나와 그녀가 장난을 치며 웃고있는 그 모습. 그때가 그립다. 손이 자연스럽게 생각에도 없이 움직였다. 액자속의 사진을 빼 주머니에 넣었다. 그녀의 사진은 없으니까. 하나쯤은 있어도….
액자를 내려놓으며 보이는 거울-
처음이였다. 이 몸의 얼굴을 본 건. 몸 여기저기는 볼 수 있었지만서도 거울로써 이렇게 정확히 확인 한 건 처음이였다. 피부는 허옇고 머리칼을 노랬다. 연갈색이 시간이 지나 물 빠진 느낌이랄까? 머리카락 전체가 이 색깔 인 걸로 보아 염색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몸도 좀 있는 것 같고 곱상하게 생긴 이 육체. 그러니까 이 몸 전 주인- 꾀나 인기 있었을 것 같다. 피식, 이런거 생각할 처지가 아니잖아. 민혁아… 이제 이민혁은 없어. 아니? 이 거울속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거야. 이민혁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저 거울속에 가두워 버려야 한다는걸 인정 할 수 없다.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
뭐라고 지칭해야 하는 건지… 작은 실소만이 입가에 머문다. 이 상황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서.
“아, 일어났네. 방에서 나와요.”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는 저 여자가 최송꽃 맞나? 머리도 손질하고 표정도 많이 굳고 민혁의 죽음으로 많이 아파했던 그녀이기에 죄책감이 든다. 나때문에 그녀는 아파했다.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런거다.
손짓하며 거실로 나가는 송꽃을 따라 나섰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
그녀와 만들었던 도자기도 보인다. 사진도 보이고 또… 같이 나누어 가졌던 조형물도 보인다. 이 집안은 온통 추억뿐이였다. 둘러볼 수록 시무룩해진다. 다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마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때문인지도 몰랐다.
“이거 줄께요. 병원으로 가요. 이거 이 분이 주는거니까 맘 편히 먹고 신고 가요.”
나에게 대뜸 신발을 내밀었다. 이건하…. 내 친구 놈이였다.
“송꽃아…. 나야…”
“어떻게 내 이름을 알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온 집을 쩌렁하고 울렸다.
“나 민혁이야…”
심장이 두근거린다. 떨리는 것 일까? 아니면 고조된 상황의 불안감일까? 집 안의 분위기가 묘했다. 송꽃의 표정이 변해간다.
“완전 미친놈이군.”
건하 놈이 몸을 밀치며 나가라고 소리쳤다. 어찌나 격하고 세게 밀었는지 몸이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 뒤로 들려오는 떨리는 송꽃의 목소리-
“어…어떻게 민혁이라는 이름까지…”
“나! 내가 민혁이야!!”
그녀의 다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미치도록 만져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정말 사묻치도록 나를 불러주기를… 그녀를 향해 웃어 볼 수 있도록…….
“이거 놔! 얼굴은 곱상해서 정신병자 같은 새끼가 어딜 들러 붙어!!”
남자의 목소리가 귓청을 울린다. 송꽃의 집. 베란다의 큰 창에서 붉은 노을이 슬픈 빛을 띄우고 있었다.
“…야아… 나아! 민혁이잖아! 응? 나아…….”
목소리는 흔들렸고 눈물이 흘렀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
파르르 떨고 경악한 표정의 송꽃.
나가라며 소리치는 건하.
끝까지 매달리며 울부짖는 나를 남자가 이끌어 버리듯이 내쳤다. 그녀의 집에서-
한참을 격하게 눈물을 흘리고 흘렸다. 내가 돌아갈 곳은 병원 거기 겠지. 하지만 자리를 이 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녀를 내 안에서… 내 영혼에서 흘려보내는 것 처럼 눈물만 흘리고 흘리고 또 흘리고 그러고 나서야 병원으로 힘 없이 발을 돌렸다. 그때는 이미 차디찬 달이 차올라 기울기 시작할 새벽 무렵이였다.
첫댓글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사랑하지 못한다는건 너무 괴로운 것 같아요.
집에서 쫓겨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