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율법--- 1888년에 전해진 기쁜 소식, 222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
육신과 성령은 반대가 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거스릴 율법은 없다(갈 5:22, 23 참조).
그러므로 율법은 육신의 일을 반대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한다.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 “율법 아래” 있다.
“법 아래” 있는 것은 법을 범하는 자라는 사실이며 또 다른 분명한 증거이다.
“율법은 신령”하므로 모든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는 자들은 율법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여기에서 다시 알 수 있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 하느냐 또는 않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경건을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아니하였다.
문제는 율법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갈라디아 형제들이 그들 스스로가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어리석은 가르침에 미혹되었을 때에
하늘의 보냄을 받은 사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집요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이것을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생애에서 그리고 갈라디아 형제들 자신들의 경험에서 보여주었다.
그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고 계속 성령 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잘 달렸으나
그들 자신이 성령을 대신하였을 때 즉시 그들의 행위들이 그들 자신들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이런 행위들은 율법과는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은 신령하다.
그러므로 누구나 신령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율법의 증거를 받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여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조건으로써가 아니고 그 결과로서 지켜야 한다.
흔히 매우 영적이고 완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으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나 그들을 인도하여 그렇게 행하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이며
그러므로 그것이 율법에 반대가 될지라도 죄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자신들의 육신의 생각을 성령의 생각에 대치하는 무서운 과오를 범하고 있다.
육신을 성령으로 혼돈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었다.
이것은 가장 악질적인 행위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거스려 말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다.
몹시 눈이 먼 사람들이므로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