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 14-19
하나님이 가라사대
1. 본문 14절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입니다.
1) 모세는 이제 넷째 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하나님께서는 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이미 빛을 창조하셨지만 이제는 자연에다 새로운 질서를 설정하십니다. 태양은 낮에 빛을 비추게 하고 달과 별은 밤에 빛을 비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규정하신 이유는 우리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전에 창조하셨던 빛이 밤낮을 교대하여 지구에 비치도록 하기 위해 태양, 달, 별 등을 만드셨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에는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분산되어 있었으나(3절), 지금은 그 빛이 태양, 달, 별과 같은 발광체로부터 비친다는 것입니다. 태양과 달과 별들은 창조된 목적에 따라 빛을 잘 발함으로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2) “주야를 나뉘게 하라”는 말씀에서 모세는 인위적으로 해가 떠서 질 때까지를 낮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자연적인 날 속에는 본래 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낮과 밤의 교체가 계속되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과 밤이 구별되도록 정하셨으며, 이러한 의도대로 태양이 움직이도록 말씀으로 지시하시기 때문입니다.
3)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는 말씀을 상고하십시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철학적인 통찰력으로 불가사이한 신비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관찰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미개인들까지도 알아 볼 수 있는 것들과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태양과 달의 운행으로부터 두 가지 혜택을 얻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혜택이고, 다른 하나는 문화적인 혜택입니다. 자연적 혜택이라는 것을 농사짓는데 얻는 유익으로 봅니다. 물론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데는 인간의 기술과 근면성이 요구되지만 자연적인 혜택이 있어야 합니다. 즉 태양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여 땅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태양으로 말미암아 계절의 변화가 생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기억하기 위해 일자와 연한을 정하여 계산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재계식(lustra : 루스트라)과 올림피아기(olympiads)가 바로 계절의 변화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보통력입니다. 그들은 일정한 날짜를 정해 놓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보통력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보통력에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가 모두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가 태양, 달, 별들의 운행을 징조라고 부른 이유를 몇 마디로 설명하려 합니다. 사실 어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제멋대로 말한 예언하는 일에 이 구절을 구실 삼아 이용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갈대아 사람이나 광신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별들의 위치와 운행을 보고 모든 것을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태양과 달의 운행을 징조로 표현했기 때문에, 태양과 달의 운행을 보면 자기들이 알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쉽게 논박할 수 있습니다. 즉 그것은 우리의 상상에 따라 무엇이든지 유추해 내는 징조가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징조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여기에서 주장하는 징조는 자연의 질서에 속한 것뿐입니다. 여기에서 징조를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사44:25)”,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는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라 열방인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 말라(렘10:2)”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여기서 사용한 징조라는 말은 평범하게 쓰였음이 분명합니다.
(모아딤)이라는 말은 ‘어떤 때’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히브리인들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이 말은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장소를 의미하기도 하며, 또한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랍비들은 이 구절을 보통 자기들의 명절과 연관시켜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을 우선 ‘시간의 기회’ 라는 의미로 생각합니다. 또한 이 말은 ‘계절들’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박람회나 법정의 모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침내 모세는 태양과 달을 통해 우리에게 빛을 비춰 주실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선물들을 남용함으로써 그와 같이 훌륭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을 모독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 예술가이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배열하여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신 분이십니다.
2. 본문 15절은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을 다시 반복하는 셈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서는 하늘에 있는 태양이 얼마나 크며, 달이 얼마나 큰지, 혹은 작은지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해와 달이 어느 정도 밝게 우리에게 비추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택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세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하늘 위로 치솟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상을 비추게 하신 이 빛만을 바라보면 됩니다. 이러한 방법은 우리가 전에도 언급한 것으로써, 모세가 잘못 말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을 반박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별들에게 보다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두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달이 태양으로부터 빛을 받지 않으면 지구에 빛을 비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이 우리를 비춘다는 명백한 사실을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는 천문학자들의 주장처럼 달이 불명료한 물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캄캄한 물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달에게는 불의 요소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므로, 불타고 있는 물체일 것입니다. 따라서 달은 발광체입니다. 그러나 달이 우리에게 아주 밝은 빛을 비추지 않는 것을 보면, 태양으로부터 빛을 보충 받아 비추는 것이 분명합니다. 모세는 여기에서 달을 작은 광명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달이 우리에게 비추는 빛의 양이 태양의 무한한 광채에 비해 아주 보잘것없기 때문입니다.
3.본문 16절은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입니다.
1) 모세가 철학자들과는 달리 자연의 비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언급했었습니다.
첫째로 모세는 별들이 막연히 하늘 공간에 있다고 말하지만, 천문학자들은 하늘 공간을 세분하고 별들마다 특정한 자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모세는 두 개의 큰 발광체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은 토성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장 작은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달보다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도 제시합니다.
여기에서 모세의 말과 천문학자들의 말에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는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한 문체로 기록했지만, 천문학자들은 인가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연구를 비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어떤 몰지각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잘 모르는 것은 무엇이나 배격하려 합니다. 천문학은 좋은 학문일 뿐만 아니라 아주 유용한 학문입니다. 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임에 분명합니다. 따라서 천문학의 연구를 통해서 유익한 공헌을 한 학자들은 존경받아야 합니다. 또한 여가와 재능이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모세도 우리가 천문학적인 기술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문제를 연구하지도 않고 무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무식한 사람들도 가르쳐야 했기 때문에 이런 단순한 교육 방법을 택했을 것입니다. 만일 모세가 일반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도저히 알 수 없다고 그에게 호소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모든 사람을 위해 학교를 개방하여 모두들 익히 아는 내용을 택하신 것입니다.
만일 천문학자가 별들의 실제적인 크기에 대해 탐구하고 조사한다면, 달이 토성보다 더 작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는 다르게 나타나므로 이 사실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알기 쉬운 표현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손을 펴서 우리가 해와 달의 광채를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눈을 감고 이 사실을 부인하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달을 두 번째 발광체라고 설명한 모세의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근거는 없습니다. 모세는 우리를 모두 신비한 하늘 세계로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 눈에 보이는 현상을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천문학자들이 심오하게 연구하도록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달로 인해 밤이 밝아지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지도 않고 감사하지 않으며, 달빛을 악하고 배은망덕하게 사용하는 자들은 정죄받아야 합니다.
2) “주관하게 하시며” 라는 말씀에서 모세는 해와 달에게 어떤 주권을 줌으로써 하나님의 권능을 조금이라도 손상시키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은 하늘의 절반을 돌면서 낮을 주관하고, 달은 밤을 주관하는 통치 기능을 하나님께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양이 아직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있으며 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편 우리는 별들에게 이성과 지성이 있다고 하는 플라톤의 망상을 배격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을 사용하여 낮과 밤을 주관하신다는 단순한 해석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을 마치 자신의 수레처럼 사용하여 계절마다 적당한 빛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