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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꿈
단 2:1-9
1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2 왕이 그의 꿈을 자기에게 알려 주도록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라 말하매 그들이 들어가서 왕의 앞에 선지라
3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하니
4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말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께서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는지라
5 왕이 갈대아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의 집을 거름더미로 만들 것이요
6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하니
7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하니
8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지연하려 함이로다
9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내게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하더라
단 2:1-9 / 느부갓네살왕이 바벨론을 다스린 지 2년째 되던 해 어느 날 밤에 꿈을 꾸고 마음이 매우 심란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2) 그래서 느부갓네살왕은 자기가 꾼 꿈을 해몽하라고 점쟁이와 마술사와 요술쟁이와 점성가를 불러들였다. 그들이 왕 앞에 나아오자 3) 왕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엊저녁에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마음이 심란하여 견딜 수가 없구나. 그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해 다오' 4) ㄱ) 그러자 점성가들이 아람 말로 아뢰었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소서. 소인들에게 임금님께서 꾸신 꿈을 말해 주시면 소인들이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ㄱ. 히브리어 성서에는 2:4 하반절부터 7장 끝까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다) 5) 왕이 점성가들에게 말하였다.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너희들이 내게 그 꿈까지 말해 주어야 한다. 물론 해몽까지도 말이다. 만일 내가 꾼 꿈을 알아내어 해몽하지 못하면 너희의 사지를 찢어 버리고 또한 너희 집까지도 모조리 거름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 6) 그러나 너희가 내가 꾼 꿈을 알아내어 해몽까지 해준다면 내가 푸짐환 상을 내리겠다. 또한 많은 상금도 주고 큰 영광도 누리게 하겠다. 자, 그러니 이제 내가 꾼 꿈을 말해 보아라. 그리고 해몽도 해보아라.' 7) 그들이 다시 왕에게 아뢰었다. `임금님, 아룁니다. 임금님께서 꾸신 꿈을 말씀해 주소서. 그리하면 소인들이 임금님께서 꾸신 꿈을 해몽해 드리겠습니다' 8) 그러자 왕이 입을 떼었다.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꾼 꿈을 너희가 내게 말해 주어야 한다. 이제 보니 너희가 시간을 벌려고 이러고 있구나. 내가 꾼 꿈뿐만 아니라 해몽까지 하라고 내가 너희에게 이르지 않았느냐? 내가 생각을 바꾸기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냐? 9) 내가 꾼 꿈을 말해 주어야만 너희가 내 꿈을 해몽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알 것 아니겠느냐? 만일 내가 꾼 꿈을 알아내지 못할 때에는 너희를 가차없이 처형해 버리겠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엉뚱한 말을 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모든 지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신이 꾼 꿈과 해석을 동시에 제시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꿈과 해석을 내면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번민과 지혜자들을 소집함(1-3)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었는데 그 꿈과 해석을 알지 못하여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려 지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번민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고백하였습니다. 당시 그 지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느부갓네살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며 번민하였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와 나약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꿈 해석은 지혜자들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그 꿈이 자신이 섬기던 ‘벨’ 혹은 ‘마르둑’ 신이 자신에게 어떤 길흉에 관한 특별한 계시를 주기 위하여 꾸게 한 꿈이었을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꾸었던 꿈의 정확한 내용과 의미를 알기위해 지혜자들을 불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요구와 지혜자들의 답변(4-9)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이 꾸었던 꿈의 내용과 그 해석을 내라고 지혜자들에게 요구하였습니다. 박수는 신전에서 일하는 성직자로서 우상의 제단을 관리하면서 우상 숭배의 방법 등을 가르쳤습니다. 술객은 마술사를 가리킵니다. 점쟁이는 술객과 비슷한 부류이며, 갈대아 술사는 신전 성직자 중 가장 높은 계급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부름을 받고 나온 지혜자들은 왕 자신이 꾸었던 꿈의 내용을 알려 주면 그 해석을 내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자라면 꿈의 내용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막무가내로 자신이 꾸었던 꿈의 내용과 그것에 대한 해석을 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자신의 명령대로 꿈의 내용과 해석을 내면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얻게 될 것이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들과 그들의 집을 모두 멸망시키겠다고 하였습니다.
적용: 천하를 호령하던 느부갓네살 왕도 번민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였던 것처럼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유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기타 벨린. 감정이 일으키는 중압감이나 기분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이 감정이 관통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훨씬 미묘한 문제가 됩니다. 감정을 느끼며 넘기지 않으면 그 감정의 영향을 벗어나기 위해 이상한 짓을 벌이게 되며, 많은 중독증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삶의 어려운 문제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 설 교 >
다니엘 2:1-9 주석
=====2:1
본서의 서론격인 1장에 이어 본장부터 7장까지는 열방들에 대한 예언이 기술된다. 이 단락은 역사적으로 나타날 4개의 큰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함축하고 있는데, 차후 진행될 세계의 역사와 궁극적으로 도래할 메시야 왕국의 탁월성을 제시해 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본장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제시된 하나님의 계시와 다니엘의 신적 해석을 통해 인간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밝힌다.
느부갓네살이 위(位)에 있은 지 이 년에 -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의 교육을 받기 시작한 때는 느부갓네살 즉위 원년이었으며(1:1 주석 참조) 그 교육 기간은 3년이었다(1:5). 따라서 본 구절의 '즉위 2년'은 일견 1장에 언급된 사실과 연대기상 모순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나 이 또한 1:1에서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식 표현 때문에 생긴 오해로 바벨론의 연수 계산법은 즉위 원년, 1년, 2년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바, '느부갓네살 이년'은 실제적으로 그가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인 B.C. 603년을 가리킨다.
꿈을 꾸고...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 여기서 '꿈'(*할로모트)은 원어상 '할롬'의 복수형으로, 느부갓네살의 꿈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꿈이 연속적으로 반복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Stuart, Thomson). 이처럼 반복된 꿈은 느부갓네살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는데, 바로의 경우(창 41장)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계시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Kranichfeld). 또한 그의 번민으로 미루어 이 꿈이 느부갓네살에게 불행의 전조로 보여진 듯하다(nightmare, LB).
=====2:2
박수와 술객과 점장이와 갈대아 술사 - 이들은 27절에서 또 다른 류의 '박수'로 번역된 '가즈린'(* ) 곧 천체를 관측하여 점을 치던 점성술가 그룹과 함께 바ㅂ젤론에 상종했던 다섯 신분의 지혜자 그룹을 언급한 것이다(Delitzsch). '박수와 술객'은 1:20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점장이'는 애굽에서도 발견되는 마술사들로서(출 7:11;사 47:9, 12) 바벧로네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집단의 하나였다. 또한 '갈대아 술사'로 번역된 '카시딤'은 원어상 '갈대아인'이란 뜻이나 여기서는 좀 더 전문적인 의미에서 갈대아인으로 구성된 성직자 계급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들은 주로 천체의 변화를 종교적 의미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부류로 바벨론 내에서 가장 유력한 계급이기도 했다(Delitzsch).
=====2:3
꿈을 알고자 하여 - 본 구절에서는 왕이 자기 꿈의 내용을 알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 꿈의 의미를 알려고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갈대아 술사들은 이를 꿈의 의미에 대한 해석으로 이해했으나(4절) 왕은 꿈의 내용과 의미 모두를 말할 것을 명하고 있다(5, 9절). 이는 느부갓네살이 바벨론 지혜자들이 정확한 해몽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신의 도움에 의지하여 꿈의 내용까지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주관적인 요구를 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느부갓네살은 잔혹하고 무지몽매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Hengstenberg).
=====2:4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 1:4 주석을 참조하라. 본 구절에서부터 7:28까지는 아람 방언으로 기록되어 있다. 만세수를 하옵소서 - 앗수르 제국 당시부터 사용되던 왕에 대한 공식적인 인사이다(3:9; 5:10; 6:6, 21; 왕상 1:31; 느 2:3).
=====2:5, 6
느부갓네살은 꿈의 내용을 알아내고 올바로 해몽하는 자에게는 상급을,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형벌을 제시한다. 이는 느부갓네살의 폭군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 여기서 '몸을 쪼갠다'는 것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자주 행해지던 형벌의 일종이다(삼상 15:33;마카비 하 1:16). 이러한 형벌은 개인적인 범주를 넘어 처벌자의 집에까지 미치게 된다. '거름터'(네왈리)는 '더럽다'란 뜻의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 '시궁창', '오물더미'란 뜻을 가진다(스 6:11). 따라서 그 집이 거름터가 된다는 의미는 단순한 집의 붕괴뿐만이 아니라 바알의 당이 무너져 변소가 된 것처럼(왕하 10:27) 그 가계가 극단적으로 비참하고 불명예스럽게 되리란 의미이다(Delitzsch). 70인역(LXX)은 본 구절을 '너희 집의 물건들이 모두 국고에 몰수될 것이다'란 직설적인 말로 번역한다.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 여기서 '선물'(마타나)은 의례적으로 주어지는 일종의 하사품을, '상'(네비즈바)은 보상의 형식으로 주어지는 물질적, 금전적 포상을, '영광'(예카르)은 인간적인 명예나 영예를 각각 가리키는 바, 이는 곧 물질적인 보상은 물론 그 직급의 승진까지를 포괄하는 것이다(46-49절).
=====2:7, 8
느부갓네살은 술사들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멸절시키겠다는 엄명에 겁을 먹고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잔꾀를 부린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주장을 고집한다.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 여기서 '천연하려'(제반)는 문자적으로 '얻으려'라는 뜻인 바, 본 구절은 '시간을 벌려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술사들의 반복된 요구(4, 7절)를 일축하는 말로서, 느부갓네살은 그들의 요구가 꿈의 해석에 대한 아무런 확신없이 단지 형벌이 두려워 시간을 벌기 위한 얄퍅한 심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Kliefoth).
=====2:9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 5절과 관련하여 왕의 뜻을 거스릴 경우에 당할 형벌이 오직 사형뿐임을 시사한다.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 '거짓말과 망령된 말'(키드바 우쉐히타)은 문자적으로 '거짓되고 타락한 말'이란 뜻으로, 악의적인 의도에 기인하는 '사악한 거짓말'을 가리킨다(Hitzig). 또한 '때가 변하기를 기다린다'는 뜻은 그러한 악의적인 거짓말을 통해 왕의 분노가 가라앉거나 새로운 상황이 조성되어 왕이 이 문제를 잊어버릴 때까지 또는 새로운 단서를 통해 그 꿈의 내용을 알게 될 때, 즉 희망적인 상황이 이를 때까지(hoping the situation will change, NIV) 시간을 벌려한다는 것으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왕의 억지가 배어있는 말이다. 한편 이러한 느부갓네살의 태도는 그가 분명히 그 꿈의 내용을 알고 있었음을 시시하는 것이다(3절 주석 비교).
느부갓네살 왕의 꿈
다니엘 2장 강해 / 박상훈 목사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왕이 그 꿈을 자기에게 고하게 하려고 명하여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매 그들이 들어와서 왕의 앞에 선지라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갈대아 술사들이 아람 방언으로 왕에게 말하되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1장 제일 마지막 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몸으로 장수할 수 있게 해주셨고, 또 아울러서 비록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 나라에서 높이 들려서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국을 위해서 기도한 그대로 다니엘은 조국의 광복을 보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다 고토로 귀환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건강하시고 장수하시고 마음속에 있는 기도의 제목들, 품은 뜻이 다 이루어지는 귀한 축복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임금부터 시작해서 고레스 왕 때까지 있었는데, 2장부터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임금 때부터 시작해서 고레스 왕 때까지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이 흥미진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펴봅니다.
오늘 2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임금 때 겪었던 첫번째 사건입니다.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이년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느부갓네살이 왕이 된지 오래 되었다는 말입니까? 얼마 안되었을 때라는 말입니까? 얼마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으로 아직까지 안정이 안되었을 때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왕이 되자마자 여러 나라들을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 나라들이 배반하지 않을까? 반역을 하지는 않을까? 세금을 제대로 바칠까? 이 큰 나라를 어떻게 통치해야 하나? 신하들은 내가 통솔하는 대로 잘 따라올까? 모반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뭐가 뒤숭숭합니까? 꿈자리가 뒤숭숭합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 지 이년에 무엇을 꾸었습니까?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느부갓네살이 있은 지 이년에 꿈을 꾸었다고 했는데, 이때 다니엘은 무엇을 하고 있는 중입니까? 예, 훈련 중이었습니다. 훈련기간이 몇 년이었습니까? 3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왕이 원년에 유다를 정복했고 그때 다니엘 등이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아직 훈련 중에 있었습니다. 그때의 사건입니다.
2장 하반부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큰 신상을 보았는데 그 모양이 심히 두렵다고 했습니다. 꿈에 그런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는데 도무지 꿈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우리도 꿈을 꾸고 나면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개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당시 사람들은 꿈을 꾸고 나서 기억을 하면 그 꿈에 대한 해결이 있는데 신이 다 가르쳐준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꿈을 잊어버리면 신이 노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꿈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신이 노하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심히 괴롭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니까 어떻게 했습니까? "왕이 그 꿈을 자기에게 고하게 하려고." 느부갓네살 임금이 자기가 꾼 꿈이 무엇인지 꿈 자체를 기억나게 하려고 명했습니다. "명하여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부르매 그들이 들어와서 왕의 앞에 선지라." 바벨론의 모든 지식인들을 다 불렀습니다. 아직도 밤이 깊은 시간입니다. 새벽 2시나 3시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들어왔습니다. 왕이 부르는데 감히 지체하고 꾸물댈 수 있습니까? 즉시 왕 앞에 왔습니다. 왕 앞에 와서 어떻게 했습니까? 깊은 밤이라 왕 앞에서 졸았겠습니까?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왕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하나님 앞이므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경건하게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 인간의 생명을 영원토록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우리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그분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늘 경건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느부갓네살 왕 앞에 온갖 지혜자들이 다 와서 서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권력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포악한 임금이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바벨론의 박사들은 그 꿈을 알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다.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꿈 자체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신이 노했다는 것입니다. 그 꿈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고통 속에서 잠을 못 이룬다는 것입니다.
4절에 보니까 갈대아 술사들이 대표로 왕에게 말을 했습니다. 무슨 방언으로 말했다고 했습니까? 아람 방언으로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람 방언은 지식인들이 다 알고 있는 말이었습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 왔는데 그때 앗수르 왕의 신하였던 랍사게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 서서 큰소리로 하나님을 훼방하면서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말하는데 유다 방언으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무슨 말로 하고 유다 방언으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아람 방언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지식인들은 아람 방언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람어는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 나라가 섰을 때, 바사 나라의 국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환했을 때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람 방언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을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달리다굼"은 무슨 뜻입니까? "소녀야 일어나라." "에바다"는 무슨 말입니까? "열려라." "마라나타"는 무슨 뜻입니까? "주여 오시옵소서." "게바"는 무엇입니까? "반석, 바위"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헬라말입니다. 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입니다.
아람어로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말을 하는데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제가 물어봅니다. 지금 갈대아 술사들은 왕을 무엇처럼 여기는 것입니까? 사람은 만세수를 누릴 수 없습니다. 만년을 살 수 있는 것은 신밖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왕을 마치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까? 왕이 하나님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4장에 가서보면 알지만 느부갓네살 임금이 얼마나 추한 모습이 되었습니까? 교만했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정신이상자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쇠고랑 차고 소처럼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사람이 짐승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중요한 교훈을 말씀드립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믿어야 할 대상은 오직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누구입니까?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세요. 꼭 낙심하게 됩니다.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 늘 의지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러면 실패가 없습니다. 실수가 없습니다.
갈대아 술사들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계속 보십시다.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지금 신하들은 왕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왕은 꿈 자체를 알고 싶어하는데 신하들은 무슨 꿈인지 꿈을 먼저 말해주면 해석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신하들에게는 꿈을 해몽하는 책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돼지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생각납니까? 돈이 생각나세요? 옛날에 저의 어머니도 그러셨습니다. 돼지꿈을 꾸면 먹을 것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또 먹는 꿈을 꾸면 병에 걸린다고 합니다. 바벨론 박사들에게는 경험적으로 해몽에 대해 적어놓은 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이 꿈을 자세히 말해주면 그 책에 의해서 설명해주겠다는 말입니다. 왕은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느부갓네살 임금이 꾼 꿈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구를 기다립니까?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습니까? 다니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귀중한 가르침을 한 가지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다니엘을 위시해서 모든 사람이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중차대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사람은 그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그 위기를 통해서 더욱더 귀하게 쓰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저와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 41:10을 암송하시지요? 다 함께 암송해보십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굳세게 붙들어주시는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풀무불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구해주시고, 사자굴의 무서운 시험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비록 다니엘이 위기에 처해 있지만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함께 하시면서 오히려 이 일을 통해서 다니엘을 발탁하시고 다니엘을 귀하게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마세요. 오히려 그것은 더 큰 축복의 자리, 성공의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다니엘처럼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시는 가운데 오늘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꿈과 해석을 알게 하라(2:5~7)
2:8-13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여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오늘 본문은 느부갓네살 임금과 갈대아 술사들의 사이에 있었던 마지막 세번째 대화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결론이 어떻게 내려지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이름은 박사지만 다 사기꾼이라는 것입니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협잡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어떤 명령을 내렸습니까? 내가 꾼 꿈과 해석을 알게 하면 상을 주겠지만 만일 그것을 알게 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몸은 쪼개고 집은 거름터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박사들을 꿈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자꾸 시간만 지연시킨다는 것입니다. "꾸물꾸물 대면서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라는 말입니다.
9절에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해석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석을 하기에 앞서서 꿈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이 꿈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처치할 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5절에 보니까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단순히 말로만, 위협적으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무엇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까? 자기가 만든 금 신상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절하지 아니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산 채로 붙들어서 집어던졌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펄펄 끓는 소각로에 사람을 통째로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 정도로 포악한 임금이었습니다. 능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로 겁주는 것이 아닙니다.
벨론 박사들을 다 죽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꾼 꿈과 해석을 영영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신에게 벌을 받고 노함을 입을 텐데, 그것에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신에게 벌을 받아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엉터리 같은 것들을 다 죽이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참 무서운 임금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보십시다. "너희를 처치할 법이 오직 하나이니." 왜 벌을 내리겠다는 것입니까? 이유가 두 가지 나옵니다.
첫째, "이는 너희가 거짓말과 망령된 말을 내 앞에서 꾸며 말하며." 지금까지 내가 꿈을 꾸고 나서 내 꿈을 해석해준 것은 다 거짓말로 꾸며서 헛된 말을 지절거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할 놈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무엇입니까? "때가 변하기를 기다리려 함이니라." 내가 지금 내고 있는 화가 사르러들 때까지 너희가 기다리려고 그런다는 말입니다. "이제 그 꿈을 내게 알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해석도 보일 줄을 내가 알리라." 해석에 앞서서 먼저 꿈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너희 말이, 너희 해석이 바르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면 갈대아 술사들이 자기들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세 가지로 인정을 했습니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술사들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첫째로,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무슨 뜻입니까? 왕의 꿈을 말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역사적인 전례가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고, 아무리 권력이 있는 왕이라도 이런 일을 과거에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은연중에 뭐하는 겁니까? 왕을 나무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잘못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왕이 꾼 꿈을 왕 앞에 보일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누구라는 것입니까? 신들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들의 영역에 속한 것이지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술사들이 느부갓네살 임금의 명령을 수행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말했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인간의 능력 밖이다. 두번째 이유는, 역사적인 전례가 없다. 세번째로 이것은 신이나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 임금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로, 만족스러운 대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두번째로, 자기가 지금까지 속은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도 분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언을 받고, 꿈을 꾼 것에 대해 해석 받은 것이 다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속은 것을 생각하니까 화가 납니다. 또 거기다가 한 가지 이유를 더 말하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갈대아 술사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왕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왕이 없었는데, 왜 느부갓네살 당신은 엉뚱한 것을 묻느냐고 왕을 나무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진노하고 통분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나라의 녹이나 축내는 쓰레기 같은 것들이니 다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그런데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지금 왕 앞에 서 있는 바벨론 박사들 사이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들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 아직도 다니엘과 세 친구는 훈련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박사들이 다 죽게 되었고, 뿐만 아니라 훈련받는 훈련생들도 다 쓸모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습니다. 아마도 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죽이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치 그 옛날 예후가 바알 신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몰살시켰듯이, 느부갓네살 임금도 한자리에 바벨론 박사들을 모아놓고 죽이려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훈련받는 사람들도 찾은 것입니다.
큰일났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우리의 친구 다니엘도 죽게 되었고 다니엘의 세 동무도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새벽기도 끝나고 쏜살같이 가지 마시고 우리의 친구 다니엘과 세 동무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해주십시다.
2:5~-7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왕이 된 지 이년이 되었을 때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특이한 꿈이었습니다. 두려운 꿈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깨어났는데 꿈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꿈이란 신이 자기에게 계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었는데도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면 신을 화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불길한 꿈이라도 꿈을 기억해서 꿈을 해석을 하면 불길함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고대인들은 믿고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두려운 꿈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번민하였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박사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내가 꾼 꿈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내가 꾼 꿈이 무엇인지 내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 술사들이 왕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자기가 꾼 꿈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갈대아 술사들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그 꿈을 우리들에게 말씀해주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왕과 갈대아 술사들 사이에 있었던 두번째 대화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갈대아 술사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명령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한번 이야기했으면 됐지 무슨 잔소리가 그렇게 많느냐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성격이 온유했겠습니까? 불 같았겠습니까? 불 같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꿈을 말하지 않으면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까?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해석을 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까? 무슨 꿈이었는지 꿈을 먼저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꿈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해석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석을 말하기 전에 먼저 꿈을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해석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만일 꿈과 그 해석을 알게 하지 아니하면 두 가지 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첫째로,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라고 했고, 둘째로는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벌은 고대 사회에 흔히 있던 것이었습니다.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하고 했습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이스라엘 임금 때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말렉 사이에 싸움이 붙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모든 것을 다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자기 공명심 때문에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살렸습니다. 나중에 한 선지자가 그것을 알고서는 직접 아각을 찍어 쪼갰습니다. 그 선지자가 누구였습니까? 아각을 찍어 죽인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사울 임금을 책망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한 선지자입니다. 예, 바로 사무엘입니다. 삼상 15:33 이하에 보면 나옵니다. 사무엘이 아말렉 왕 아각을 찍어 죽였습니다.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옛날 우리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벌이 있었습니다. 무슨 형벌입니까?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입니다.
두번째 벌은, "너희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흔적조차도 없이, 재기하지 못하게 완전히 파멸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왕하 10:27에 보면 예후가 바알 산당을 다 헐어버리고 거기다가 무엇을 만들었습니까? 변소를 만들었습니다. 거기다가 다시는 바알 산당을 세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반대로 6절을 보면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상을 내리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상들입니까?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물질적인 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큰 영광을 내린다고 했습니다. 왕이 신하에게 줄 수 있는 큰 영광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 앞에서 왕이 직접 상을 내리는 것도 큰 영광입니다. 또 신하의 지위를 높여주는 것도 큰 영광입니다.
또 있습니다. 제가 물어봅니다. 대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임금이었을 때 신하였던 다윗이 큰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를 주었습니까? 자기 딸 미갈을 주었습니다. 다윗을 사위로 삼은 것입니다. 이것도 신하에게 있어서는 큰 영광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딸이 있다면 딸 중 하나를 주어 사위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온갖 상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느부갓네살 임금의 명이 아무리 엄해도 갈대아 술사들이 보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리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하고, 아니면 아무리 큰 상을 주겠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꾼 꿈을 어떻게 알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누구만이 알 수 있습니까? 은밀한 곳을 살피시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해주시면 다니엘처럼 가능합니다.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 꿈을 말씀하여 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7절과 4절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4절에서 갈대아 술사들이 첫번째로 한 말과 7절의 두번째로 한 말을 보면 7절에 한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하나 더 들어가 있을까요? 7절은 "그들이 다시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왕은 꿈을 종들에게 이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왕이여 왕은 그 꿈을 종들에게 이르시면 우리가 해석하여 드리겠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무슨 단어가 더 들어가 있습니까? "청컨대"라는 단어입니다. "please"라는 말입니다. 왕이 죽이겠다고 하니까 신하들이 겁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에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별별 수단을 다 써도 사람은 남이 꾼 꿈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해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공중에 올라가시기도 하시고,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치기도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바다 위를 걸어가기도 하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밤중에 물위를 걸어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아주 힘들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머리 속으로 그림을 한번 그려보세요. 제자들이 힘들게 노를 젓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니까 밤중에 누가 물위를 걸어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유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겁을 먹고 벌벌 떨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베드로가 너무나도 반가워서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예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사람은 물위를 걸어갈 수 없는데 예수님이 허락하시니까,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시고, 예수님이 능력을 주시니까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도 물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하실 때 느부갓네살 임금이 꾼 꿈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석까지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재미 아니겠습니까?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바라보다가 물결을 바라볼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순간에 베드로는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급하게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이 자비와 긍휼의 손을 펴서 물에 빠진 베드로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실패를 하셨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복잡하게 풀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졌듯이 물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물에 빠졌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했으면 물에 빠진 것입니다. 왜 물에 빠졌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니까, 물질 바라보니까, 사람 바라보니까 빠진 것입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예수님,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예수님께 "주여, 나를 구해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펼쳐주셔서 우리를 다시금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베드로가 다시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손 붙들고 주님만 바라보시면서 물위를 걸어가시는 승리의 삶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위를 걸어가는 우리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물위를 걸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물위를 걸어가시는 우리의 생업과 기업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2강 죽게 된 다니엘과 세 친구(2:8-13)
시 50:15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저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얼마나 능력 있느냐 하는 것은 내일만 되면 알게 됩니다.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했는지 내일이 되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다.
다니엘처럼 세 친구처럼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다. 혹시 여러분이 다니엘처럼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기도합시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 위기가 변해서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 건져주시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이 아침에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이 아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13강 시간을 주시면(2:14~16)
2:14~16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우리가 어제 보았습니다만 바벨론 박사들이 끝내 느부갓네살 임금이 꾼 꿈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대단히 노했습니다. 바벨론의 모든 박사를 다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지금 훈련받고 있는 다니엘과 세 동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우리가 다니엘과 세 동무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자고 했는데 기도하셨습니까? 오늘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셔서 다니엘도 죽지 않습니다. 세 동무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살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왕의 명령에 따라 바벨론의 모든 박사를 죽이는 일을 맡은 집행관의 이름과 직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리옥입니다. 직분은 무엇입니까? 시위대 장관입니다. 다니엘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이 사람이 결국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오늘 본문에서 보겠지만, 느부갓네살 임금과 다니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보살펴주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우리를 해하고자 하는 아리옥과 같은 사람이 바뀌어서,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가 잘 되게 해주는 하나의 징검다리가 되는 귀한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을 경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원수같이 지내다가 어떤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가까워지고 아주 친한 이웃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원수가 있습니까? 그것이 오늘 다 풀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그 원수가 오히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고 나를 도와주고 모든 일에 나를 믿어주는 가장 좋은 친구로 변하는 귀한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4절을 보십시다.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러 나가매." 다니엘과 세 동무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리옥이 다니엘을 만났습니다. 그때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지금 아리옥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왔습니다. 다니엘은 겁에 질려서 벌벌 떨면서 말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낙심해서 풀이 죽어 어쩔 줄 몰랐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했던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지혜를 주셨고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그 위기의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아리옥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위기 속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 41:10에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두려워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다니엘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다니엘처럼 어떠한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5절을 보니까 다니엘이 명철하고 슬기로운 말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왕의 장관 아리옥에게 물어 가로되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하뇨." 당신이 그렇게 급하게 왕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하는 데에는 틀림없이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내게 알게 할 수 없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아리옥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잔말 마라. 내 칼을 받아라." 이렇게 말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리옥이 그 일을 다니엘에게 고하매"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니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나의 법관이시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법관이 되셔서 다니엘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리옥이 왕이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다니엘에게 말해주었습니다. 다니엘은 사명이 있습니다. 주인공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 주인공이 죽을 수 있습니까? 서부 영화를 생각해보세요. 주인공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수십 명이 총을 쏘아도,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도 주인공은 죽지 않습니다. 엑스트라는 빗나가도 죽지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엑스트라가 아닙니다. 주인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온 천하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주인공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남자입니다. 아주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으로 내가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는 사명을 마음속에 가졌습니다. 결국 죽기 전에 메시야를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시므온입니다. 이번에는 여자입니다. 결혼해서 7년 동안 남편과 같이 살다가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 뒤로 84년을 과부로 지냈습니다. 7년을 결혼해서 살고 84년을 과부로 살았으니까 그것만 해도 91년이지요? 결혼을 몇 살에 했는지 모르지만 결혼할 때까지 나이를 합하면 족히 100살은 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야로 금식하고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다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 안나입니다. 사명이 있는 사람은 그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절대 죽지 않습니다.
제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안나가 100살이 넘었는데 치매에 걸렸을 것 같습니까? 안 걸렸을 것 같습니까? 안 걸렸을 것 같습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시는 분은 절대로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제가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적으로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명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일을 다 하고 주 앞에 가리라는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그때까지 부르지 않습니다. 또 금방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기 때문에 다니엘이 죽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다. 16절에 보면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기한하여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 하니라." 기한을 늦추어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왕이 허락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2:8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분명히 아노라 너희가 나의 명령이 내렸음을 보았으므로 시간을 천연하려 함이로다."
다른 바벨론 박사들이 시간을 늦추어달라고 했을 때 왕이 허락했습니까? 안했습니까? 안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기한을 늦추어 주면 말해 드리겠다고 했을 때는 허락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겠습니까?
물론 왕은 다니엘의 모습 속에서 자신감에 차 있고 성실하고 진실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임금의 마음을 움직여주신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다니엘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법관이 되셔서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는 복된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14강 은밀한 것을 보이신 하나님(2:17~19)
2:17~19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박사들을 다 불러모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박사들은 "안 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고 하면서 세 번이나 할 수 없다고, 왕의 꿈을 가르쳐줄 수 없다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달랐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단지 기한만 늦추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과연 어떠한 태도가 신앙적인 태도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참 어려운 난관에 부닥칠 때가 있습니다. 쉽게 좌절합니다. 낙심하거나 포기합니다. 꼭 하나님 없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능력 주시면 다니엘처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우리가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널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또 다니엘처럼 사자굴 속에 던져져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풀무불 속에 던져져도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얼마든지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임금을 만나는 동안, 다니엘의 세 친구는 아마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겠습니까?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초조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되는지 보십시다. 17절입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동무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고하고."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고했습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에게 다 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니엘처럼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18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에스라, 느헤미야, 다니엘서를 보면 포로시대, 또 포로시대 이후에 하나님을 가리켜 특별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에스라서, 느헤미야서에서 많이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은밀한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느부갓네살 임금이 꾸었던 꿈과 해석입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이 나옵니다. "이 은밀한 일에 대해서 내게 알려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면 다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에게 물질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 창고문이 활짝 열립니다. 여러분에게 건강의 어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면 끝나는 것입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대인관계가 어렵습니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원수가 변해서 친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면 다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놀라운 긍휼을 다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 무슨 말입니까? 바벨론의 다른 박사들은 죽든지 말든지 상관 없고 나와 내 친구들만 살아나면 된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모르긴 해도 이미 살육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바벨론 박사들 가운데 이미 몇이 죽임을 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가 이미 죽은 사람들처럼 살육을 당하지 않게 구하게 했습니다. 누구에게 구하라고 했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구하게 했습니다.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의 문제 해결 방법이 나옵니다. 하나는 누구에게 구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벧전 5:7에 보면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다 맡기라고 했습니다. 90% 정도는 맡기고 10% 정도는 내가 염려해야지요? 그게 아닙니다. 99%는 맡기고 1%는 내가 염려해야지요? 그게 아닙니다. 염려를 다 맡겨 버리라고 했습니다. 100% 몽땅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시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다 주님께 맡기시는 이 아침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을 얻게 됩니다.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만 그 문제를 가지고 끙끙 앓고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했습니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세 친구에게 그것을 다 이야기해서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에게도 육신의 가족이 있고, 믿음의 가족이 있습니다. 나 혼자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지 말고 함께 나누라는 것입니다.
갈 6:2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을 서로 지라고 했습니다. 그리해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서로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첫째,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둘째, 믿음의 가족들에게 조언하고, 함께 기도하자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라고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이 밤에 잠을 잤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것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밤에 잠을 잘 잤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예수님처럼 갈릴리 거센 풍랑에서도 고요히 잠을 청할 수 있는 평안이 다니엘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편안히 발 뻗고 잠 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또 물어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잠자지 않는 분이 계셨습니다. 다니엘은 평안히 잠을 자도 주무시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역사하십니다. 양쪽 다 잠을 안 잘 필요가 있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나는 자도 하나님은 주무시지 않습니다. 양쪽이 다 뜬눈으로 밤을 새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르지만 평안하게 주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깨어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잘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이 꿈을 꾼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꿈을 꾸었다면 자신의 심리 작용에 의해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라고 했습니다. 그 이상을 누가 보여주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서 꿈을 꾸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밤에 이상으로 나타나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하나님께서 이상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다니엘이 응당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하늘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도 역시 귀를 기울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기도 제목들이 다 응답되어 다니엘처럼 여러분 마음속에 찬송이 충만한 이 하루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