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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이 틀 때-최서해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최서해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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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으나짧은 여름밤을 빈대 모기 벼룩에게 쪼들려서 받아주는 사람도 없는 화증과 비탄으로 앉아 새다시피 한 허준이는 가까스로 들었던 아침잠조차 앵앵거리고 모여드는 파리떼로 흔들리고 말았다. 그러지 않아도 남의 집에서 자는 잠이니까 늦잠을 잘 수는 없는 일이지만 화나는 양으로 말하면 그 놈의 파리를 모조리 잡아서 모가지를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하면 소용없는 짓이려니와 되지도 않을 일이니까 그는 하는 수 없이 찌긋찌긋한 몸을 뒤틀면서 일어나 앉았다.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아침 햇볕은 벌써 마당에 쫙 퍼졌다. 그는 뒤가 다 나간 양말을 집어 신고 일어서서 허리끈을 바로 매었다. 고의적삼에서 흐르는 땀 냄새도 양말의 고린내에서 못지지 않았다. ‘이렇게 괴로운 줄 알았으면 회관에서 잘 것을…….’ 그는 잠 못 잔 것을 은근히 분개하면서 수세미가 다 된 두루막을 떼어 입고 밖에 나섰다.
"와 세수도 하지 않고 어디 가노?"
저편에서 세수하던 똥똥한 사람이 비누를 허옇게 바른 얼굴을 이편으로 돌렸다. 그는 밀양 사람인데 작년 겨울부터 이 집에 주인을 잡고 있다. 첫 두 달 밥값밖에는 갚지 못해서 주인에게 축출을 당했으면서도 여태 버티고 붙어 있는 사람이다.
"가 봐야지……. 자네 회관에 올 테지?"
허준이는 걸음을 멈추었다.
"와 그렇게 가노? 아침 묵고 가자구…… 들까……."
그 사람은 얼굴의 비누를 씻으면서 말하였다.
"참 뱃속 편한 사람일세! ……자네나 쫓기지 말고 얻어먹게…… 허허."
"누가 떼먹나…… 돈 생기면 다 갚을 걸…… 흐흐."
"허허."
이렇게 서로 어이없는 웃음을 웃다가 허준이는 대문 밖에 나섰다.
밤비가 지난 뒤의 아침 볕은 맑고 서늘하였다. 맞받아 보이는 집 뜰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포플라 잎새는 아침 볕에 유들유들 기름기가 흐른다. 어디선지 지절대는 참새의 소리가 상쾌하게 들렸다.
그는 엉터리로 유명한 밀양 친구를 다시 생각하고 혼자 벙긋하면서 밤비에 질척한 계산 학교 뒤 언덕에 올라섰다. 그의 눈 아래에는 서울의 전경이 벌어졌다. 서울에 흐르는 아침 빛은 연기에 흐려서 빛을 잃었다.
그는 어린 학생들이 뛰고 지껄이는 계산학교 마당가로 지나 계동 골목으로 떨어졌다.
재동 네거리를 지나다가 이발소 시계를 들여다보니 벌써 아홉 시 오 분 전이다.
"남과 약속해 놓고……."
그는 이렇게 혼자 뇌이고 거기 다녀갈까 하고 망설이다가 회관에 가서 세수나 하고 가리라고 걸음을 분주히 걸었다.
안동 네거리를 지나 중동 학교 앞으로 빠져서 청진동에 있는 회관 앞에 이르렀다.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는데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발을 멈칫하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아사쯔미에리에 캡을 쓰고 윗수염을 싹 자른 그 사람의 빨리 돌아가는 시선이 그의 온몸을 배암처럼 스치자 그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그의 바로 뒤에는 허준이와 같은 회 회원인 최라는 얽은 친구가 따라오고 최의 뒤에는 또 형사가 하나 따라섰다. 그의 가슴은 뭉클한 정도를 지나서 떨렸다. 그런 것은 매일 보다시피 하는 것이지만 어쩐지 보는 때마다 불유쾌하고 기연가 미연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죄였다.
골목으로 나가면서 두어 번이나 흘끗흘끗 돌아다보는 그 날카로운 시선은 무슨 위험하고도 크나큰 수수께끼를 던져 주는 것 같았다.
그는 그래도 태연한 낯빛을 지으면서 천천히 대문 안에 들어섰다.
큰 대문 안에 들어선 허준이는 어중이떠중이 삭일세로 들어서 오글오글 끓던 사랑채 앞을 지나 중문 안에 들어섰다. 벌써부터 더위를 몰아치는 볕발은 백여 평이나 되는 넓은 마당을 끼고 네겹 축대 위에 높이 앉은 회관 지붕 위에 이글이글 흐른다.
이 집은 서울서도 이름이 있는 팔대가(八大家)인가 사대가(四大家)에 끼는 집이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에 어떤 대감댁으로 지은 집인데 흐르는 세월과 같이 이 집의 주인도 여러 번 변하였다. 한때는 서슬이 시퍼런 지벌의 주인이 오락가락하였고 한때는 광채가 찬란한 황금의 주인이 들락날락하였다.
이렇던 이 집에 상부회(相扶會)의 간판이 붙게 되고 십삼도의 젊은이들이 드나들게 된 것은 사 년 전 가을부터이다. 그 뒤로 이 집은 일반의 공유가 되다시피 일반의 출입이 자유로왔다.
중문 안에 들어선 허준이는 마루로 올라가면서,
"최가 어떻게 된 일이어?"
하고 마루 아래서 세수하는 이마 넓적한 사람더러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은 코를 킹킹 푸노라고 미처 대답을 못하는데 대청 마루 의자에 앉은 가냘픈 사람이,
"몰라 지금 들어오더니 좀 가자고 하는데 별일 없을 꺼야"
하면서 허준이를 본다.
"별일은 무슨 별일. 나도 일전에 영문도 모르고 이틀이나 눈이 멀게 갇혔다 나왔지……, 하하……."
늦잠으로 유명한 뚱뚱보는,
그는 누구에게라고 지목 없이 물으면서 두루막을 벗고 세수를 하였다.
"가긴 어디를 가? 아직도 오지들 않았어……."
허준이가 낮에 물을 끼얹는데 어떤 친구인지 외인다.
이 집 방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너무 적은 팔각종은 열점을 땅땅 친지 이슥하였다.
대청마루에 기어든 볕발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모두 볕을 피하여 그늘로 들어앉았다. 어떤 이는 벌써부터 땀을 흘리고 있다.
회원들 그림자는 차츰 많아졌다. 회관은 끓기 시작하였다. 한쪽에서는 이론 투쟁이 벌어지고 한쪽에서는 성강연(性講演)이 벌어졌다. 양키라는 별명을 듣는 키 크고 눈알이 노란 사람은 마룻 바닥을 텅텅 울리면서 댄스를 하고 있고 배지라고 온 몸둥이에 배만 보이다시피 된 사람과 늦잠장이는 볕발이 쨍쨍한 마당에서 볼을 던지고 있다. 이렇게 각인 각양으로 떠들면서도 거개 아침 먹을 걱정을 한마디씩은 하고 있다.
약속한 사람을 찾아가려고 대청 마루 한 귀퉁이에서 구겨진 두루막을 입는 허준이도 아침 걱정을 안 할 수 없었다. 가슴과 배가 수축이 되고 등이 휘이는 듯하였다. 호주머니 속에 든 돈(칠 전)이 있으니 호떡 하나는 염려 없지만 호떡도 한 끼나 두 끼지 벌써 사흘이나 쌀구경을 못 하니까 창자가 뽑히고 사지가 제각각 노는 듯이 허전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그 생활을 새삼스럽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갑자기 침울하여졌다. 두 어깨가 처지는 것 같으면서 가슴에 검은 안개가 스스로 돌기 시작하였다.
사람은 어디서든지 자기를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로서도 똑똑히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이다. 자기가 슬프면 모든 것이 슬퍼 보이는 것이요 자기가 기쁘면은 세상이 기쁜 것이다. 허준이도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의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은 그의 뱃속같이 허전허전하고 그의 가슴 속 같이 갑갑하였다. 육간 대청은 갑갑한 지하실이나 아닌가. 눈부시던 볕발도 흐릿한 석양빛 같다. 거기서 떠들고 뛰는 사람들까지 활기를 잃어 보인다. 모두 삼십 미만의 청춘들이면서 필 대로 못 피고 혈색 없는 낯반대기를 보이고 있다. 허준의 자신도 그 무리의 한 사람이다. 그는 거울을 대한 듯이 자기 그림자를 보았다. 두 뺨이 빠지고 광대뼈가 좀 드러나서 우뚝하고 두툼한 입술이 유난스럽게 드러나고 개기름이 번지르한 이마 아래 쑥 들어간 두 눈의 힘없는 동작이 너무나 똑똑히 떠올랐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옆에 놓인 책상에 기대였던 팔에 힘을 주면서 궁상에 싸인 그 그림자를 노렸다. 그의 얼굴의 근육은 긴장된 경련을 일으킨다.
"엑 버러지만 못한 목숨이 흠──."
그는 의자에 다시 주저앉으면서 비탄에 가까운 말로써 뇌였다. 무엇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잡아서 눈에 보이는 대로 깡그리 부수고 싶었다.
"허 여기서도 비통 철학(悲痛哲學)이 발작하는데──. 웬일일까? 이 사람! 갑자기……, 허허허."
옆에서 신문을 보던 친구가 허준이를 보고 커단 입을 벌렸다.
"자식 또 떠벌인다……. 담배나 있으면 하나 주게."
허준이도 웃으면서 그 사람 앞에 손을 내밀었다.
"담배는 주리마는 너무 그러지 말게……."
하고 그 사람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면서,
"으흠…… 네가 그렇게 걱정하는 때마다 이 아비의 마음은 봄눈 슬 듯하는 구나……, 하하하."
하고 커다란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이놈 버릇없이……. 흐흥."
허준이도 담배를 받으면서 점잔을 빼다 말고 웃었다. 좀 경쾌한 기분에 뜬 그는 담배를 붙여 물고 마당에 내려서니까 쏜살같이 오는 볼을 받던 늦잠장이가,
"자네 어디 가나? 밥 먹을 데 있으면 나두 가제."
하고 허준이를 쳐다본다.
"밥? …… 흥…… 참 밥 같은 소리 말게……."
그는 코웃음을 치면서 중문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정색으로 따라 서려는 그 친구의 얼굴이 눈앞에서 얼른 스러지지 않아서 가슴이 스르르하였다. 정작 대문 밖에 나서니 발끝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호떡 집에 다녀서가?’ 하고 망설이다가 그냥 발을 떼 놓으면서 ‘일요일이니까 늦어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약속한 시간이 있으니……’ 하고 청진동 큰길로 올라왔다. 등골을 지지는 햇발은 그의 기운을 더욱 흐뭇이 하였다.
왼편 길가에 있는 설렁탕 집에서 흘러나오는 누릿한 곰국 냄새가 그의 비위를 몹시 흔들었다. 그는 입안에 서리는 군침을 다시금 삼키면서 안동 네거리로 나와서 회동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걸음걸음이 그의 기분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만두어……."
그는 입속으로 이렇게 여러 번 외면서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이런 것 저런 것을 생각하면 그만 뿌리쳐 버리는 것이 자기 자존심을 위해서도 유쾌한 편이나 밥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 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호의를 저버린다는 것도 어쩐지 마음에 꺼림직하였다.
"별 걱정을 다 하오! 남의 걱정까지 언제 하고 있을 새가 있오……. 내가 굶고야 남 죽는 것을 생각할 여지가 있어야지……."
하던 어제 저녁 그 친구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남은 죽거나 살거나 나만 편할 도리를 채려야 할까?"
그는 가슴속에서 몇 천 번이나 되풀이한 의문을 또 번복하여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해답은 나서지 않고 그의 걱정을 비웃는 듯이 건너다보던 그 사람의 좀 경망스럽게 보이는 가느다란 눈이 머릿속에 때룩때룩 떠올랐다. 그는 몹시 불유쾌하였다.
그는 그 사람의 가느다란 눈이며 점잔빼는 태도가 항상 불유쾌하였다. 어떤 때는 자기의 존재가 무시나 되는 듯한 모욕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조촐한 꼴이 그 사람의 부인의 눈에 띄는 것은 더욱 불쾌하였다. 그는 그 사람을 찾아보고 나오는 때마다,
‘다시는 오지 말어야──. 그것 아니면 산 입에 거미줄 슬라구.’ 하고 몇 번 맹서하면서도 이렇게 찾아가게 된다. 그의 절박한 생활과 그리고 어디라 없이 흐르는 그 사람의 친절한 맛이 그의 발을 무겁게나마 끌고야 말았다.
그 사람이라는 것은 물산 회사의 주임으로 있는 김관호인데 허준이와 같은 고향 사람이다. 그 두 사람은 어려서 소학교에를 같이 다녔고 같은 장난 친구로 정답게 지내었었다. 김은 고향서 착실하다고 귀염받던 사람이다. 그가 소학교를 마치고 서울 와서 선린 상업에 입학하였던 것까지는 허준의 기억에 있으나 그 뒤 팔 년간의 소식은 알지 못하였다. 그 동안에 허준이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느라고 그가 몸을 던진 그 일 이외의 친구 소식은 들을 길도 없었거니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자기 소식을 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에 옛날 친구들의 기억은 점점 스러져서 어떤 이는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어쩌다 한 번씩 옛날 친구들의 그림자가 눈앞에 언뜻거리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것은 순간순간으로 그의 마음을 죄이도록까지 계속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봄에 경성역에서 김을 만났다.
부실부실 내리던 비가 겨우 개인 봄바람이었다. 허준이는 동경서 떠나오는 어떤 동무를 맞으려고 여러 동무와 같이 경성역으로 나갔다. 유난히 빛나는 전기불 아래서 들레는 사람들 틈을 이리저리 저어 나가는데 눈에 힐끗 뜨이는 얼굴이 있었다 얄팡얄팡한 . 뺨과 잔털이 나불거리던 이마만은 옛날의 면목이 스러졌으나 우선우선하는 가느다란 눈이며 날씬한 입술이며 가냘픈 몸은 의심 없는 김관호였다.
허준이는 입술을 움직이다가 나오는 소리를 침으로 막아 삼키면서 그대로 지나가려고 하였다. 반가운 품으로 말하면 "이게 웬일요?" 하면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었으나 말쑥한 양복에 중절모자를 신사답게 사뿐히 쓴 그 사람에게 몸에 어울리지도 않는──그거나마 어깨가 찢어지고 궁둥이가 드러나게 된 양복에 싸인 자기 그림자를 보인다는 것은 도리어 웃음만 살 것 같았다.
그는 자기의 약점이 폭로나 되는 듯이 은연중 몸을 송그리면서 돌아서 나가려는데 "이게 누구요!" 하는 익은 목소리가 분명히 고막을 울리자 마자 그 신사의 부드러운 손은 허준의 팔에 와 닿았다. 반가움에 흔들리는 소리와 같이 정다운 손이 와 닿을 때 허준의 가슴은 감격에 떨렸다.
"아 관호씨!"
하고 서로 잡은 두 사람의 손은 한참이나 풀리지 않았다. 허준이는 반가우면서도 그 사람의 눈이 조촐한 자기 몸을 슬쩍 훑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은 피차에 볼 일이 있으니 일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갈라섰다. 그 사람은 돌아서다가 다시 돌아보면서,
"밤에는 언제든지 집에 있으니 꼭 오셔요. 회사에 전화를 걸고 오시는 것도 좋으니 꼭 오시오"
하고 회사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까지 끄집어내 주면서 신신 부탁을 하였다. 허준이는 그 사람의 고정이 반가우면서도 그 사람의 눈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쩐지 자유로운 듯 하였다.
허준이는 그 뒤에 김관호를 찾지 않았다. 처음 만나던 그때의 생각에는 그 이튿날 전화라도 걸까 하였으나 하룻밤을 자고 나니 그 생각은 엷어져 버렸다.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의관에 궁상이 그득한 낯반대기를 빛나는 그 사람의 차림차림과 비기는 것이 어쩐지 재미가 없었다. 더구나 돈냥이나 만지고 밥술이나 편히 먹는 사람들 속의 한 사람일 김이 자기를 마음으로 대하여 줄 리는 없을 것이다. 명함을 주고 두세 번 오라고 하는 것은 사교에 익은 사람들의 행투일 것이다. 만일 자기의 정체를 알고 보면 김은 더욱 싫어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김과 자기와는 천척 장벽을 가운데 놓은 듯이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간혹 ‘그럴 리야 있을라구…… 그 사람의 태도와 표정이 진심 같은데……’ 하고 한번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기분은 그렇게 돌아서지 않고 멀어만 지는 것 같았다.
김을 찾아서 군졸한 ‘ 것이나 면하도록 해 볼까.’ 어떤 때에는 이런 생각까지 떠올랐으나 그는 곧 자기의 어이 없고 더러운 생각을 혼자 웃으면서 꾸짖어 버렸다. 그렇게 그렁저렁 한 달은 지나갔다.
어떤 흐릿한 날이었다. 그날 허준이는 후줄근한 옥양목 두루막을 입고 종로를 향하고 수표교 다리를 건너는데 저편으로 오는 가냘픈 신사가 있었다. 그는 그가 김인 것을 알았다. 그의 기분은 빚장이와 마주치는 듯이 흔들렸으나 어느새 맞다들게 되어서 피할 수도 없고 외면도 못하게 되었다.
‘나도 못생긴 놈이야! 만나면 어때……. 이 꼴이 뭐 어때…….’ 그는 속으로 혼자 푸닥거리를 놓으면서 용기를 내었으나 역시 기분은 돌아서지 않았다.
"오래간 만이올시다. 어디로 가시오."
그는 조금도 어색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고 모자를 먼저 벗으면서 빙긋이 웃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참 오래간 만인데요. 그런데 왜 한 번도 오시지 않아요? 퍽 기다렸는데……. 주소가 어데지"
하다가 그 사람은 다시 낯빛을 고치면서,
"그 뒤 주인은 어디로 정하셨어요? 나는 주인을 알어야 찾아나 가지요."
그 사람은 대단 갑갑했다는 어조이었다. 그러나 그 어조는 퍽 다정스러웠다. 허준이는 대답에 궁하였다. 찾아 안 간 핑계는 무어라고 하며 주인은 어디라고 해야 좋을는지 망설이다가,
"그새 시골 갔다가 그저께 왔어요…… 주인은…… 저…… 하숙집은 아니고 어떤 친구집에 있는데 낮에는 늘 청진동 상조회에 있읍니다."
하고 어물어물하면서도 확실한 하숙도 없이 다니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이 퍽 부끄러웠다.
"네…… 오…… 저…… 이 윤 변호사 옆집 말이지요."
상조회라는 말에 그 친구는 벌써 모든 것을 알아차리는 듯이 대답하더니,
"그래 지금 어디 가시우. 별일 없으시우?"
하고 허준이를 들여다본다.
"황금정에 댕겨가는 길입니다. 별일이 무슨 별일이 있겠어요."
허준이는 심기가 좀 펴진 웃음을 지었다.
"바쁘시지 않으시면 우리 한 잔 합시다. 오래간 만이니 그 어간 이야기도 듣고 싶고……."
그 사람은 ‘어서 승락하고 나를 따라오시오’ 하는 눈으로 허준이를 보면서 도로 돌쳐서려고 한다.
“바쁘기야 바쁘진 …… 않습니다마는……."
허준이는 뒤끝을 흐리머리 하여버렸다. 그의 발은 무거우면서도 떨어졌다. 자기를 불쌍하게 보는 듯한 것이 고마운 듯하면서도 불유쾌하고 그렇게 따라가 먹는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처럼 하는데 거절하기도 안 되었고 먹는다는 힘에 끌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왼종일 점심은 둘째로 아침도 변변히 못 먹은 창자에서는 쪼르륵 꼴꼴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자 어서 갑시다. 볼일이 별로 없으신 담에야……. 오래간 만에 이야기나 좀 합시다."
그 사람은 허준의 주저거리는 뜻을 벌써 알아차린 듯이 더욱 친절하게 끌었다.
두 사람은 종로로 나왔다. 흐릿한 일기는 석양이 되면서 더욱 흐릿하여서 모든 것은 어둑한 황혼 속에 잠긴 것 같았다.
철수로는 늦은 봄이나 아직도 일기는 산산한데 날이 흐리고 석양 바람이 일어나니 이른봄처럼 쌀쌀하였다.
두 사람은 불어오는 바람에 몰려오는 먼지를 피하여 머리를 놀리면서 종로 큰길을 건너 섰다.
큰길을 건너 서서 몇 집 지나다가 어느 조그마한 중국 요리점으로 들어갔다.
검은 문장을 늘인 저편으로 흘러나오는 기름 냄새와 무엇을 지지는지 찌르륵찌르르하는 소리는 허준의 비위를 슬근이 건드렸다.
두 사람은 깊숙하고 조용한 온돌방으로 인도되었다.
"우리가 못 만난 지 퍽 오래지요?"
식탁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두 사람 사이에는 이야기가 벌어졌다.
"퍽 되지요……."
하고 허준이는 손가락을 꼽더니,
"팔 년인데…… 관호씨가 선린(善隣)에 입학하신 뒤부터이니까……."
하고 담배를 빨았다. 그의 어조라거나 태도는 김처럼 마음을 턱 놓은 것 같지 못하고 조심조심히 저편의 눈치만 살피는 듯이──어찌 보면 저편의 기분에 압박을 느끼는 듯이 어색한 것이 많이 보이는 것을 그 스스로도 느끼고야 말았다. 그것을 느끼고 몸가짐을 평범히 하려고 할수록 더욱 부자연하여 가는 것 같았다.
"참 그렇군……. 그때만 해두 지금보다는 철없는 때외다."
하고 빙그레 웃으며 담배끝에서 솟는 파란 연기를 보는 관호의 가느다란 눈은 옛날의 그림자를 보는 듯하였다.
”그런데 그새 어디 계셨오? 그 해 하기 방학에 내려가니까 그때 댁에서 들은 어디인지 이사를 하셨더군요!"
그는 다시 허준에게 시선을 주었다.
허준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객주를 하다가 남의 돈냥이나 지게 되고 견딜 수 없이 되었다. 그때 어떤 항구에서 물산 객주를 크게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허준의 아버지와 일찍부터 거래 관계로 정분이 두터웠다. 허준의 아버지는 그 사람의 도움으로 그 해(김관호가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던 해) 늦은 봄에 그 항구로 식솔을 데리고 가서 어떤 해산업자(海産業者)의 일을 보아 주고 허준이는 물산 객주에서 상심부름을 하였다.
그렇게 이사한 이듬해에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가정을 헤치고 말았다. 그러자 이어 해산업하던 사람이 어찌어찌 파산의 비문에 빠지게 되니까 그의 아버지까지 그 물산 객주에 목을 매게 되었다. 부자가 다 같이 한 사람의 심부름을 하게 되니까 서로 보기가 안 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자식의 정이나 자식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정이나 틀릴 것이 없었다. 서로 쳐다보고 내려다보면서 시선과 시선으로 괴로운 처지를 위로도 하고 호소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지내다가 이사한 지 삼 년 되던 해 허준이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네 생각대로 해라마는 부디 몸조심해라."
하고 그 아버지는 목메인 소리로 자식에게 부탁하면서 자식의 뜻을 꺾지 않았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자마자 마침 어떤 탄광으로 가게 되었다.
"그 뒤로는 이렇게 정처없이 떠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작년 여름에 서울로 왔어요."
하고 간단히 설명하면서도 사상 단체에 들어서 사상운동을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같이 생각될뿐더러 무슨 자랑이나 하는 것 같기도 하여서 그 이야기만은 피한 것이었다.
"그러면 춘부 어른께서는 지금도 그 객주에 계시겠지요?"
김은 초장을 접시에 따르면서 말하였다.
"네 지금도 거기 계셔요.“
"인제는 퍽 늙으셨겠네……“
하얀 손에 잡았던 장그릇을 놓고 허준이를 건너다보다가 다시 창문을 내다보는 김의 눈은 백발이 성성한 어떤 늙은이의 그림자를 연상하는 듯 하였다.
”늙으시구 말구……. 지금 육십이 가까우신데 고생까지 닥치니……."
하고 담배를 빨아 연기를 내뿜는 허준의 눈앞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스르르 지나갔다.
이때 술과 안주가 들어왔다. 허준의 비위를 흔드는 중국 요리의 걸쭉한 냄새와 억센 술 향내는 방안에 쓰르르 퍼졌다.
하얀 술이 찰찰 넘는 술잔은 저 손에서 이 손으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너게 되고 따라서 안주 접시도 젓가락의 침입을 받게 되었다.
따끈한 술이 두 사람의 창자를 축이면서부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좀 서먹서먹한 기분은 스러지기 시작하였다. 서로 옛날이 그리워지고 옛날의 정분으로 돌아가지는 것 같았다. 서로 지금의 지나가는 형편 이야기도 하고 또 어려서 소학교 다닐 때 서로 싸우고 벌 받고는 그날 오후에 낚시질을 같이 갔던 이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생활이 그렇게 곤궁하시구셔야……."
하고 좀 머뭇거리던 김은,
"무슨 일이 되시겠오……. 하시는 운동이야 누가 비난을 하겠습니까……. 마땅한 일이지요마는 의식 문제에 쪼들리게 되면 언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있어야지요."
하면서 술잔을 들었다. 허준이도 따라서 술잔을 들면서
"참말 그래요……. 하지만 무어 어떡하는 수가 있읍니까? 그래도 목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애쓰고 애쓰노라면……, 허허허…….“
허준이는 자기의 정색한 어조가 흐느러진 주석의 기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느꼈던지 웃어버렸다.
"어떻게 의식──넉넉지는 못하더라도 다소 의식 걱정은 없으셔야 하실텐데……."
하고 김은 매우 걱정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준에게는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 같았다. 이날 이때까지 의식 문제의 해결을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 지금의 환경 속에서는 도저히 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허준의 생각에는 김의 걱정이 헛된 걱정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디 그렇게 쉽게 됩니까."
하고 허준이는 지나가는 말처럼 뇌여버렸다.
"어디나 취직하실……. 물론 허준 씨의 운동에 거리낌 없을 만한 직업이 있으면 혹 붙잡을 의향이 없으신지?"
김은 취중에도 저편의 의사를 상치나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어조로 물으면서 술에 흐린 눈으로 허준의 안색을 살폈다.
"글쎄요 어디 그런 자리가 있어야지……."
허준이는 혈관에 흐르는 술기운을 겨우 지탱하면서 흐리머리하게 대답하였다.
”가만 계셔요 ……. 어디 봅시다."
하면서 김은 뽀이를 불러서 요리값을 치러 주었다. 조그마한 돈지갑에서 십 환짜리가 나오는 것이 허준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한 장이면 자기네는 한 달이나 살아갈 것이다. 배곯던 동무들을 뒤두고 혼자 잘 먹은 것이 미안도 하고 술을 주지 말고 돈으로 주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도 일어났다.
이때 반짝하고 전등이 켜졌다.
허준이는 옆에 놓았던 모자를 집어쓰고 일어나려는데,
"여보 형! 이렇게 드리는 것은 실례지마는……."
하면서 김은 십 환 지폐 한 장을 허준에게 건넨다.
"천만에……. 이건 너무나 미안합니다."
허준이는 그것 받기를 주저하였다. 욕심대로 말하면 더도 말할 것도 없지만 그 돈 십 환이 자기를 구속하고 자기를 불쌍히 보는 듯이 불쾌하기도 하였다.
"약소합니다마는 구급이나 하십시요. 차차 피도록 되시겠지요. 조금도 상심치 마세요."
하는 김의 취한 어조는 정답게 떨렸다.
"너무나 미안합니다. 참 잘 쓰겠읍니다."
허준이는 여러 번 사양하다가 받았다. 그의 가슴은 김의 우정에 대한 감격과 자기의 처지에 대한 설움에 울렁거렸다. 돈의 구속을 모르는 듯이 느껴지는 김이 어쩐지 자기보다 빛나 보이는 듯하였다. 자기의 존재는 너무도 미천한 것 같았다. 고르지 못한 모든 것이 새삼스럽게 원망스러웠다. 그는 이양의 흥분을 느끼면서 일어났다.
"내일은 내가 인천 다녀와야 하겠읍니다. 모레 오후에 만납시다. 이번은 꼭 오셔요. 저녁이나 같이 잡수면서 직업 이야기도 하고……."
안동 네거리에서 갈릴 때 김은 말하였다. 허준이는
"네 가지요……. 자 또 뵈옵겠읍니다."
하고 청진동 편으로 취한 다리를 옮겨 놓았다.
그의 취한 생각은 오락가락하였다. 스스로 우러나오는 계급 감정으로 김의 생활에 일종의 반감도 일어나거니와 부러운 생각도 스르르 머리를 들었다. 소학교 시절의 성적은 김보다 자기가 나았던 것이다. 자기도 파산의 비운에만 빠지지 않고 김처럼 전문학교까지 마쳤더면 지금은 상당한 자리에서 상당한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흔드는 때 그의 눈앞에는 어떤 중류 가정의 생활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허허 미친놈이로군."
하고 그는 그 얼없는 생각을 웃어 버리려고 하였었다. 그런 생각이나마 하는 것은 여러 동무를 배반하는 것같이 부끄러웠다. 자기 홀로 편안한 생활을 하려는 것은 무슨 죄악같이 느껴졌다. 친하던 모든 친구들을 차 버리고 홀로 배나 부르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기 손에 돈만 들어온다면 처지를 같이한 천하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한 그의 발은 기계적으로 회관문 앞가지 이르렀다. 그는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으려다가 호주머니 속에 있는 십 환짜리를 다시 만져 보았다. 그것은 여러 사람에게 들키는 날이면 그 자리에서 없어질 것이다. 그는 아까운 생각이 스르르 들었다.
‘어떤 밥집에 맡겨 두고 혼자 다녀…….’
하고 다시 돌아서려 하였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깨가 축 처지고 낯빛이 해쓱한 동무들이 눈앞에서 알찐거렸다.
‘내 손에 돈만 들어와 봐라. 구차한 사람을 다 주지.’
하고 아까까지도 뇌이든 자기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여러 해 쪼들린 생활에 인색하여지는 자기의 마음이 미웁고도 슬펐다.
"여러분 우리가 한 끼 굶더라도 이 돈은 박군의 여비로 씁시다. 박군을 돌려보내야 하겠으니 말이에요."
허준이가 집어내놓은 십 환짜리를 여러 동무가 서로 빼앗아 가면서 좋아라고 뛰는 때에 간부의 한 사람인 키가 자그마하고 얼굴이 비쩍 마른 사람이 썩 나서면서 말하였다. 그 말 한 마디에 방안은 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하였다. 빛나던 얼굴들은 모두 스르르 흐리는 듯하면서 일종의 긴장한 빛을 띠었다.
"그럽시다."
하는 듯이 아무도 이의가 없었다. 일을 위하여 주림을 참는 그 모양들을 보는 허준이는 자기의 인색한 생각을 다시금 후회하였다.
이틀 뒤였다.
허준이는 오후 다섯 시에 김관호를 찾았다. 김의 집은 허준의 상상에 떠오르던 그러한 기와집은 아니었다. 땅에 꼭 들어붙은 듯한 초가집이었다.
허준이는 친히 나와 맞아 주는 주인의 인도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마당 바른 편 장독대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 주인 아씨의 눈에 조촐한 꼴을 보이는 것은 기운이 한풀 죽는 것 같았다. 주인 아씨는 신여성인 듯싶었다. 트레머리 한 것이라거나 짧은 치마라거나 섬돌에 놓인 여자 구두를 보면 신여성임이 분명했다 그가 신여성이거니 생각하매 그의 눈이 더욱 시렸다.
저녁상에는 반주가 있었다. 몇 잔 술에 얼근한 두 사람은 상을 물린 뒤에 밤 열시까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가 나중에는 허준의 취직할 이야기로 들어갔다.
"만일 의향이 계셔서 우리 회사로 오신다면 한 달에 육십 원──지금 있는 이는 오십 원이지만──은 드리도록 주선하겠읍니다."
하고 검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어서 허준의 의사를 다시 살핀다. 김의 말 눈치를 보면 벌써 자기네끼리 이야기가 있은 모양 같다. 허준이는 겉으로는 반승낙이나 하여 놓고도 속으로는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웠다. 몸이 어디 가 매이는 날이면 자기는 운동의 소임을 다할 수 없는 날이다. 그러나 굶고 앉아서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우리는 직업을 붙잡을 수 있거든 붙잡읍시다. 그리고도 힘만 모으면 일을 할 수 있읍니다."
하고 서로 말한 바도 없는 것은 아니나 직업을 붙잡는 날이면 어쩐지 그 기반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월 수입 육십 원이면 세 사람은 살 수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의 목숨을 지탱한다는 것은──세 사람의 힘을 우리 운동선에 보탠다는 것은 여간한 도움이 아니다. 그리고 그처럼 친절히 주선해 주는 김의 우정을 물리치는 것도 그로서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 일은 내 힘으로 할 수 있을까요?"
허준이는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을 들었다. 우뚝한 콧날은 전등불에 빛났다.
"그걸 못 하셔요……. 넉넉하외다. 우리 회사 소유의 집이 많은데 모두 삯 월세로 주었지요. 그 세전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김은 그만한 일은 손쉬운 것이라는 듯이 말하였다.
"이때까지 그걸 받는 사람이 없었어요?"
"왜…… 있었지요. 한데 그 사람이 잘 받지 못해요……. 그러구 궐자는 어떤 것은 받고도 못 받았노라고 하고……. 그런 무정한 일이 있으니까 쫓아 내야지요."
하고 담배 연기를 내뿜으면서 전등을 쳐다보는 김의 가느다란 눈은 교활하게──허준에게는 그렇게 보였다──빛났다.
"그러면 그 사람 대신 제가 들어가는 셈이외다 그려, 허허."
하고 허준이는 어색한 웃음으로 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하였다.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요."
"그러나 내가 살려고 남을 어떻게 쫓읍니……."
허준이는 말끝을 흐리머리하였다. 그의 가슴은 묵직하여졌다.
"별걱정을 다 하시오……. 남의 걱정을 하시다가는 제가 죽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렇지만 그건 좀 문제인데요."
"아무 상관 없어요. 그 사람은 아무래도 나갈 사람이고 그 대신 허준 씨가 아니면 다른 이라도 쓰게 된 형편인데 무슨 거리낄 것이 있겠어요……. 아무 걱정도 마시오. 언제 남의 걱정을 다 하십니까?"
하고 허준이를 건너다보는 김의 눈은 경망스럽고도 교활하게 돌아갔다.
그 뒤에도 세 번이나 만났으나 문제는 낙착을 짓지 못하고 있다가 오는 일요일에는 가부간 확답을 하기로 하고 갈렸다.
허준이는 지금 그 약속대로 김을 찾아가는 것이다.
일은 다 된 일이다. 허준이가 오늘 가서 김에게 명확한 대답 한마디만 하면 일은 다 된 일이다. 그러나 뒤가 몹시 켕긴다. 그도 없는 사람인데 없는 사람에게 가서 집세를 조른다는 것은 그로서 차마 할 수가 있을까. 그의 눈앞에는 그의 동무되는 김이 집세에 쪼들리는 꼴이 떠올랐다.
‘못할 일이로군.’
그는 생각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나 그것뿐인가. 아직도 두 눈이 띠퉁 거리는 사람을 쫓아내고 그 사람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더구나 못할 일이었다. 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은 허준이가 들어가려고 아무 허물도 없는 것을 쫓는 것은 아니다. 허준이가 들어가든 말든 어차피 쫓겨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나 속도 모르고 자기를 원망하기도 쉬운 일이다. 모든 조선은, 운동 선상에 나선 사람으로서는 생각이 못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무겁게 하였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