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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만 7년, 노동자 희망고문 줄일 방법 없나
2015.03.06 편집부 | labortoday
▲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노동자 생사여탈권을 법원 판단에 맡겨 뒀다는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지난 4일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대법원의 KTX 여승무원 관련 판결에 대해 한 말이다. 2006년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을 요구하며 3년 동안 코레일과 싸움을 벌였다. 그 뒤로 7년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으로 법정 공방을 이어 갔다. 여승무원들은 “법정 싸움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심과 2심에서 승소하면서 기대를 걸고 기나긴 세월을 버틴 노동자들은 단 몇 마디 대법원 판결로 무너졌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까.
대법원 판결로 9년 투쟁 부정당해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KTX 여승무원들은 빨리 복직해서 일을 하고 싶었다.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질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소송 기간이 길어질수록 일터에서 점점 더 멀어질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법정으로 가지 않고 철도공사와 협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런데 공사의 태도가 너무 완강했다. 해고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힘든 투쟁을 벌였지만 공사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변화 없는 공사의 모습에 지쳐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1심과 2심에서 이긴 사건을 대법원이 이토록 완벽하게 뒤집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동안 대법관들이 보여 준 자본 친화적 판례를 살펴보면서 혹시나 하는 우려는 있었지만 우리가 철도공사의 지휘를 받는다는 증거는 너무나 완벽했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공사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구구절절 드러난다. 법관 성향에 따라 우리의 9년 투쟁이 부정당한 것이다.
대법원은 우리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놨다. 지금으로서는 우리의 힘으로 다시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 말고는 다른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공사와 교섭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투쟁을 결의했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할 수 있는 것 같다.
신속한 구제 위해 노동법원 도입하자
김선수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코레일 승무업무 위탁을 합법도급으로 본 대법원 판결 이후 KTX 여승무원들이 다시 복직투쟁을 이어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이 자기권리를 찾는 게 왜 이렇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일인지 안타깝다. 사법부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한다면 노동자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우리나라 노동분쟁 해결 절차를 보면 문제해결까지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전문적이고 신속한 해결이 필요한데도 대법원까지 가려면 보통 몇 년씩 걸린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그 시간을 버티는 건 무척 힘들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신속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게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제도다. 하지만 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노동위원회 구제절차를 거쳐 최종 확정까지 5심(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을 거쳐야 한다. 5심까지 가서 부당해고로 확정됐다고 해도 임금지급 문제에서 다툼이 있을 경우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신속한 구제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전문법원을 도입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또 구제명령은 강제성이 없지만 법원 형태로 갈 경우 1심에서 판결하면 가집행할 수 있다. 신속한 권리구제가 가능한 것이다. 소송절차상 특례 도입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이다. 노동법원이 도입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대법원에 노동전담부를 두고 노동전담부는 참심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 대법관도 노동법에 정통한 전문가들로 구성해야 공정한 판결이 나올 것이다.
KTX 여승무원, 코레일이 결자해지해야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
대법원이 KTX 여승무원은 코레일 소속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여승무원들이 코레일 소속 노동자라고 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뒤집으면서 여승무원들의 아픔이 배가됐다. 승무원들의 정규직 꿈이 무산된 것도 안타까운 일인데 4년 동안 받은 임금을 코레일에 돌려줘야 할 상황이다. 소송비용에 그동안 받은 임금까지 경제적인 폭탄을 맞은 셈이다.
한국에서는 노사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이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노사 모두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발생하는 일이다. 돈이 많은 기업들은 소송을 통해 노동자를 녹다운시킨다. 노조가 대법원까지 가서 승소하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진다면 노동자들의 운신 폭이 더욱 제한된다. 독일과 프랑스 등 일부 유럽국가에는 노동법원이 있다. 노동법원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의 권리구제를 위해 단기간에 재판을 진행한다. 단기간에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에 소송비용이 적게 든다. 한국도 노동법원을 설치하거나 소송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노동을 보는 태도다. 사회 전반에 걸쳐 경제적인 논리가 우선되기 때문에 노사 간 민감한 문제에서 경제논리가 우세한 경우가 많다. 사회 담론이 엘리트 의식과 경제논리에서 비롯되는 현실에서 노동법원을 둔다고 한들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제도를 움직이는 국민이 변화해야 한다.
끝으로 법적인 측면으로 볼 때 KTX 여승무원들이 그동안 받은 임금을 코레일측에 돌려주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코레일이 대승적이고 결자해지하는 차원에서 풀어 가는 게 옳지 않나 싶다.
비정규직 노조활동 보장해야
박수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용자든 근로자든 입장이 달라 분쟁이 생기면 법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근로자들은 노조를 통해 집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그것조차 힘들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소송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
근본적인 문제는 비정규 근로자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를 찾을 수 없는 구조에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비정규직의 노조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견근로자나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가입한 노조가 사용사업주나 원청기업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노조의 단체교섭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해 현행법은 명확하지 않다.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원청 기업의 단체교섭 의무를 부분적으로 인정한다면 비정규직들이 파업을 하는 경우 원청 사업장 또는 시설을 부분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다른 고용형태의 근로자들의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용하면 된다. 2010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법원이 지난해 70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 여부, 그 사업장에서의 파업가능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보니 불법파업 성격이 확대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시간끌기 막을 제도 절실하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코레일 승무원들과 같이 장기간 소송전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기업들은 시간끌기를 통해 비정규 노동자들이 지쳐 떨어질 때까지 시간끌기만 반복한다.
기업은 소송이 길어질수록 비용과 시간 면에서 유리해진다.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코레일과 KTX 여승무원 사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코레일이 KTX 승무원들의 실제 사용자라는 뜻이다. 코레일은 1심 판결이 나오기 전에는 교섭에서 1심 결과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가 약속을 어기고 항소했다.
일반 기업도 아닌 공기업이 자신들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어긴 것은 지탄받아야 할 일이다. 결국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꼬박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과도 법원이 여러 형태의 간접고용을 위법한 것으로 보는 요즘의 추세에 어긋난다.
기업과 법원의 시간끌기를 제어할 만한 장치가 필요하다. 선진국과 같이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만을 취급하는 노동법원을 설립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법원이 생계 등을 이유로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노동자들을 위해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기업들의 소송 지연 횡포를 막을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에서 노동자 소송지연에 따른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