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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로드숍 대신 아웃렛 ‘통임대’…명동은 변신 중
[위클리 리포트]《다시 생기 도는 명동
명동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화장품 가게, 소규모 점포 위주였지만, 최근 중대형 상가 건물이 늘었고 글로벌 브랜드나 대형 프랜차이즈도 연이어 입점 중이다.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관광 트렌드를 따라잡으려는 명동을 들여다봤다.》
25일 오전 중구 명동거리 초입에 위치한 올리브영 플래그십스토어에서 리뉴얼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박형기 기자
이달 25일 서울 명동에서 중심부로 꼽히는 유네스코길. 롯데백화점 본점 건너편으로 자라(Zara) 매장부터 명동성당에 이르는 이 거리에 새단장 중인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CJ 계열의 올리브영 플래그십스토어 건물은 공사 중이었다. 대형 건물 전체에 칸막이를 치고 다음 달 리뉴얼 오픈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거리 초입에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가 있던 건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공실이었지만, 최근 공사를 마치고 롯데면세점 쇼룸인 ‘LDF 하우스’가 들어섰다. 면세품을 둘러보고 온라인에서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공간이다. 이날 유네스코길에서 빈 점포가 있는 대형 건물은 단 2곳 정도에 그쳤다.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인 시기에 ‘유령 거리’나 다름없던 곳이 신축 건물이 들어선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명동에 돌아오면서 명동 상권이 달라지고 있다. 화장품 로드숍 등 소형 점포 위주였던 기존 건물을 신축해서 중대형 상가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와 프랜차이즈 등이 줄지어 입점하고 있다. 한때 ‘관광·쇼핑 1번지’였던 명동이 코로나19라는 바닥을 치고 올라와 생존을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위치가 좋다고 관광객이 찾아오는 시대는 지난 만큼, 오프라인 공간에서 단순 쇼핑보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 컴백한 관광객… “명동은 공사 중”
27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8월을 기준으로 명동 상권의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10만7000명으로 전년 동월(5만7000명)보다 약 2배로 늘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12월(7만240명)보다도 52.3% 많아졌다. 명동 유동인구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7만∼8만 명대에 머무르다 5월부터 10만 명대로 올라섰다. 이는 코로나19가 끝나고 엔데믹 시대 들어 관광객이 많이 몰린 영향이 크다.
이런 추세에 맞춰 명동 상가 건물을 재건축해서 대형화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유네스코길에 있는 신발 매장인 ABC마트가 대표적이다. 2층짜리 건물 세 동을 부수고 새로 올린 4층짜리 건물에 통으로 들어갔다. 기존에는 뷰티 브랜드 로드숍 등이 있던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으면서 연면적이 1280㎡ 규모로 2배로 늘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명동에서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수 있는 중대형 상가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어 당장 수익은 포기하더라도 건물을 신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유네스코길 한복판에는 1∼5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외국인 전용 K뷰티 아웃렛인 ‘망고비지’가 들어섰다. 기존에 1층 육포 전문점, 약국, 아이스크림 가게, 2층 부대찌개, 3층 분식집 등이 있던 곳을 지난해 다시 지어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국내 유명 화장품 브랜드를 총집합시켜놓은 것은 물론이고 블랙핑크, 슈퍼주니어 등 K팝 그룹의 각종 ‘굿즈’를 비롯해 홍삼 등 한국 특산품도 팔고 있다. 코로나19 전 명동 곳곳에 흩어져 있던 화장품 로드숍이나 소규모 상점 제품들을 한곳에 모아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도록 한 셈이다.
망고비지 바로 옆 건물도 코로나19 기간 기존 건물을 모두 부수고 다시 지었다. 기존에 설렁탕집 등 여러 음식점이 있었지만 공사를 끝낸 뒤엔 1층에 구제 옷가게, 2층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각 1곳만 통으로 들어왔다. 엠플라자 인근 명동8가길에 면해 있는 한 건물에는 올해 6월 이디야커피가 165㎡(약 50평) 규모로 들어섰다. 화장품 로드숍 2곳이 나눠 쓰고 있던 점포를 하나로 합쳐서 이디야 매장 1곳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명동은 구도심이어서 리모델링으로는 노후화된 내부 시설을 재정비하기 어렵다”며 “상업지역이라 용적률은 높지만 남산 때문에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건물을 높이 못 올리는 만큼 평수를 넓혀서 재건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건물이 비어 있던 시기를 오히려 재건축에 활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준석 제이에듀 투자자문 대표는 “명동이 코로나19 기간 공실률이 매우 높았는데 경매 물건이 거의 안 나왔다”며 “일반적으로 공실이 많으면 이자를 내지 못해 경매로 많이 넘어오는데 명동 임대인들은 그만큼 자금력이 풍부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 글로벌 플래그십스토어 속속 들어서
이처럼 명동 상권이 재편되는 흐름에는 중대형 점포 위주의 건물이 프랜차이즈 업체 등을 유치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이전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중심으로 인기가 높았던 뷰티 로드숍이 철수한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및 플래그십 스토어 등이 빠르게 메우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명동 애플스토어가 오픈한 데 이어 블루보틀(지난해 12월),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올해 1월), 피파1904(3월), 다이나핏(8월) 등 글로벌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줄이어 명동에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옛 KT서울중앙전화국 자리에 5성급 호텔인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이 문을 열었다. 3, 4성급 비즈니스 호텔 위주인 명동에 글로벌 호텔 체인 메리어트인터내셔널의 프리미엄 브랜드 호텔이 문을 연 것이다. 호텔 관계자는 “10월 기준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투숙률이 90%에 이른다”며 “외국인 비율은 그중 80% 수준”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브랜드나 대형 프랜차이즈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평당 임대료는 중소형 점포가 높지만, 대형 점포는 중견기업 이상이나 프랜차이즈 업체를 유치하기 용이하다”며 “자영업자에 비해 임대료가 밀리지 않는 등 임차인 관리가 용이해 건물주들이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명동에 유동인구가 몰리면서 상권도 활성화되고 있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최근 3개월(8∼10월) 명동 본점의 외국인 매출은 직전 3개월 대비 약 10% 증가했다. 명동 인근 호텔들은 90% 이상의 객실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상권이 다시 활성화되며 임대료도 오르는 추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명동상권의 중대형 상가 2분기(4∼6월) 임대가격지수는 직전 분기 대비 0.72% 상승했고, 3분기에도 0.20% 올랐다.
● 다시 부활한 명동… “달라져야 생존”
2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명동 상권의 변화에는 달라진 관광 트렌드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K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다채로운 팝업스토어를 앞세운 성동구 성수동이나 잠실 일대, 전국의 드라마·K팝 관련 촬영지가 외국인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한국 관광의 큰 매력 중 하나인 쇼핑 역시 오프라인 매장에서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색적인 체험을 하며 브랜드 자체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양한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 쇼핑 명소로 매력이 컸던 명동 역시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국의 관광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면서 ‘중국인 큰손’에 의존하던 외국인 관광객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BC카드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내 오프라인 상점(BC카드 가맹점)에서 발생한 외국인 매출 건수 비중 1위는 일본이었다. 2019년 외국인 매출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이 3위(12.8%)로 밀려난 반면 일본(19.5%), 미국(16.6%) 등이 외국인 매출 1, 2위를 차지했다. 면세점과 뷰티 로드숍의 큰손이던 유커에게 더 이상 의존할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다만 화장품이나 의류 쪽 매장이 대부분인 명동 특성상 품목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명동은 아직도 한국을 대표하는 명소이지만,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곳”이라며 “상권 대형화와 현대화가 화장품과 기념품 쇼핑, 길거리 음식 외에는 다른 관광 자원이 없는 한계를 극복할 계기가 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동은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광장, 인사동, 경복궁, 덕수궁과 인접해 여전히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인 관광 상권”이라며 “명동 특유의 한국적인 문화를 토대로 한 구도심 느낌을 살리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다면 과거의 명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준 기자
탕후루부터 잡채, 스테이크… ‘노점 푸드코트’ 이색 체험
[위클리 리포트] ‘관광 1번지’ 명동은 변신 중
명물? 애물단지? 명동 노점상
26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눈스퀘어 앞. 길 양옆에 노점상 수십 곳이 나란히 밀집한 이곳은 평일 낮인데도 인파가 북적이고 있었다. 사방에서는 일본어와 중국어, 영어가 뒤섞여 들려 왔다. 붕어빵이나 탕후루 등 요즘 ‘핫’한 음식을 파는 곳에선 외국인 손님이 20여 명씩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음식을 산 사람들은 길가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음식을 먹기도 했다. 노점 메뉴는 떡볶이와 호떡, 닭강정은 물론이고 치즈 김치말이 삼겹살, 붕어빵 아이스크림, 추로스, 치즈 랍스터구이, 볶은 새우, 소고기 스테이크 등 다채로웠다. 이 일대는 흡사 ‘노점 푸드코트’ 같은 모습이었다.
명동 상권이 부활하면서 명동의 상징이었던 노점가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명동 노점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했던 당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며 직격탄을 맞고 대부분 자취를 감췄었다. 하지만 명동에 관광객들이 돌아오기 시작한 데다 최근의 K푸드 인기에 힘입어 영업을 재개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색다른 체험을 원하는 젊은 세대 관광객들에게 명동의 노점상은 ‘필수 코스’로 꼽히고 있다. 유튜브 등에서 ‘명동(Myeongdong)’을 검색하면 ‘명동 길거리 음식(Myeongdong street food)’이 자동 완성될 정도다. 미국, 일본 등 해외 유튜버들이 올린 명동 노점상 체험 영상 중에는 100만 회가 훌쩍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도 여럿 있다.
노점상들이 가판 위나 간판에 ‘오징어구이 1만 원, 군밤 5000원, 탕후루 5000원’ 등 메뉴별 가격 표시를 해놓은 점도 눈에 띄었다. 관할 지자체인 중구가 이달 1일부터 지역 상인들과 협의를 거쳐 명동 노점상에서 가격표시제를 실시한 데 따른 것이다. 외국인들은 가격을 물어보거나 별다른 흥정을 하지 않고 주문 내용에 맞게 바로 값을 치렀다.
일본 도쿄에서 온 직장인 나오키 씨(24)는 “가격이 쓰여 있으니 특별히 흥정하지 않고 구매해도 한국인들보다 더 비싸게 사게 되는 것 같지 않아 안심이 된다”며 “아까 한국 여학생들도 똑같이 탕후루를 5000원에 사갔다”고 말했다.
다만 가격표시제를 무시하고 ‘배짱 영업’을 하는 노점상도 있는 만큼 바가지요금을 근절하고 결제 수단을 다양화하는 등 관광객 편의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격을 표시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현금이나 계좌이체로만 값을 치를 수 있는 등 불편이 많고 위생 우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워낙 정보가 빠르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도 가격이나 분위기 등을 대략 파악하고 온다”며 “명동이 관광객이 2, 3번씩 찾는 매력적인 장소가 되려면 노점상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