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6년 4월 25일, 마체라타의 베네딕도회 수녀들의
성녀 가타리나의 작은 경당
성체 안의 주님을 의심하던 한 사제 앞에서
성체에서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 피는 성작과 제대 위 성체포를 적셨다.
67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성체포는 남아
신자들의 공경을 받고 있다.
마체라타(Macerata)의 성체 기적 피로 물든 성체포 1356년 4월 25일
1. 기적이 일어난 시기
1356년 4월 25일,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에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볼세나의 성체 기적이 일어난 지 약 93년 뒤입니다. 마체라타 교구의 공식 자료도 이 날짜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2. 발생 장소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주의 마체라타(Macerata)입니다.
당시에는 베네딕도회 수녀들이 소유한 성녀 가타리나(Santa Caterina) 성당의 작은 경당에서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적의 성체포(Corporale)는 마체라타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 e San Giuliano)의 성체성사 경당(Cappella del Santissimo Sacramento)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 경당은 1932년에 개축되었습니다.
3. 당시의 시대적 배경
1356년은 중세 유럽이 매우 격동하던 시기였습니다.
마체라타는 1320년 교황 요한 22세에 의해 교구 소재지가 되었고, 당시 교황령의 마르케 지역에서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1355년부터는 추기경 알보르노스가 교황령의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 마르케 지역을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당시에는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에 대한 신학적 논의가 활발했습니다. 마체라타의 사건은 바로 이 성체 신앙의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불과 93년 전인 1264년 볼세나 성체 기적 이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성체성혈 대축일(Corpus Christi)을 제정했다는 흐름과 연결해서 보면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4. 당시의 본당신부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당시의 본당신부는 미사를 봉헌하던 중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심각한 의심을 품었다고 전해집니다.
5. 당시의 교구장
니콜로 다 산 마르티노(Nicolò da San Martino) 주교입니다.
사제는 사건 직후 주교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고, 니콜로 주교는 피가 묻은 성체포를 성당으로 옮기도록 명령하고 정식 교회 조사를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교구장: 니콜로 다 산 마르티노 주교
6. 당시의 기적 내용과 현재 상황
미사 중 사제가 성체를 쪼개는 순간, 갑자기 성체에서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피는 제대 위의 성체포(Corporale)를 적셨고 성작(Calice)에도 흘러내렸습니다. 놀란 사제는 미사를 마친 뒤 즉시 주교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지는 작은 양피지 문서가 성체포에 함께 꿰매져 있습니다.
“Heic fuit aspersio sanguinis D.N.I.C. de calice die XXV mensis aprilis anno Domini MCCCLVI”
뜻은 대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성작에서 흘러내린 일이 주님의 해 1356년 4월 25일에 있었다.”입니다.
7. 교회의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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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다 산 마르티노 주교는 사건을 보고받은 즉시 성체포를 성당으로 옮기게 했고 정식 교회법적 조사(canonical process)를 명령했습니다.
“당시 주교가 정식 교회법적 조사를 명령했으며, 조사 문서 가운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제한적이지만 성체포와 동시대 양피지 및 후대의 교회·시민 기록이 남아 있다.”
라고 쓰면 아주 정확합니다.
8. 교회의 공식 입장
마체라타 교구는 오늘날에도 이 사건을 ‘마체라타의 성체 기적(Miracolo Eucaristico di Macerata)’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교구장 주교의 Corpus Christi 강론에서도 이 사건을 “마체라타에서 일어난 성체의 기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성체포는 현재도 대성당의 성체성사 경당에서 신자들이 공경할 수 있게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가톨릭교회 문화재 데이터베이스인 BeWeB에도 성체포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오랜 세월 이 사건과 성체포를 공경해 왔으며, 현재 마체라타 교구도 이를 성체 기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9. 현재 성체포 의 상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때 피가 묻은 성체포(Corporale)입니다. 이 성체포는 현재 마체라타 대성당의 성체성사 경당 제대 안쪽에 마련된 유물 보관함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가톨릭교회 문화재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함은 1647년 제작된 흑단나무·금장·수정 장식의 함이며 그 안에 귀중한 성체포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체포에는 14세기의 것으로 전해지는 작은 양피지 cartula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10. 뒷이야기
이 마체라타 성체포는 한때 매년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성대한 행렬로 모셔졌습니다.
14세기부터 성체포를 모시고 도시를 행렬했다고 전해지며, 1494년에는 마체라타에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형제회(Confraternity)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1556년에는 이곳에서 ‘40시간 성체조배(Quarantore)’의 경건한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역사의 격랑이 찾아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교회 탄압과 형제회 해산, 성체 행렬 금지 등으로 인해 1800년대 초부터 성체포의 공개적인 공경이 중단되었습니다. 성체포는 성당 안에 감춰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다가 1932년 다시 신자들에게 공개되어 공경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마체라타 교구는 이 역사를 직접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는 인연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입니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자신의 세계 성체 기적 전시회에 마체라타의 성체 기적을 포함시켰습니다. 2024년 마체라타 교구의 Corpus Christi 강론에서도 카를로가 이 기적을 소개한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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