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지평선 축제에 다녀와서
박순옥 / 이슬향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는 하늘을 보며, 아리랑문학마을 개막식을 걱정했다. 개막식 은 밖에서 치루어지기에 비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걱정을 하였지만, 오후로 접어 들면서 하늘은 밝은 얼굴을 보여 주었다. 남편과 동행하는 길이 조금은 무거웠다. 소설 아리랑의 내용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일본사람인 남편과의 동행은 피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피해 다닐 수만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남편의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라는 내 뜻도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하여 주지않았지만, 남편은 분위기로 상황을 파악하고 아무것도 묻지않았고, 우리 문인들이 있는 곳에는 오지도 않았다. 교수님의 멋진 시 낭독과 함께 개막식을 무사히 마치고, 벽골제 지평선 축제장으로 향했다. 축제장으로 가는 길목은 생각 보다 많은 차들로 붐볐는데, 특별한 느낌을 받았다. 붐비는 차량들이 너무도 쉽게 옆에서 들어오는 차를 끼워 주는 것이였다. 분명히 벽골제의 주민일거라고 생각한다. 벽골제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일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개막식이 끝날 때까지 하늘은 기다려주었다는 듯이 개막식 동안은 오지않던 비가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성난 노도처럼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걱정을 하였지만, 도로가 붐비는 동안 차안에서 여유있게 차밖의 풍경을 그리고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감상 할수 있었다. 코스모스들도 벽골제에 오는 손님들을 반기는 듯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주차장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그처럼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 같이 그치고 하늘이 맑게 밝아졌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지방 축제가 난립하고 있다. 물론 지방의 경기와 활성화를 위한 방침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별로 내용이 없는 축제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나는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차장의 규모와 주차 되어있는 많은 차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여기저기 돌아 보는 동안 다른 지방의 축제와 전혀 다른 진행과 준비된 분위기에 두번 놀랐고, 개막식을 보고 세번 놀았다. 정식으로 개막식이 시작 되기 전, 주무대에서는 마침 일본의 자매도시 큐슈에서 온 어린천사들의 봉 무용이 한창 열을 올리고 있어, 남편의 얼굴에 조금은 안도의 기운이 돌고 있었다. 그리고 웃음 띤 얼굴로 " 여기서는 일본사람을 받아 줄것같군......받아 주지 않는다 해도, 아리랑문학 마을의 분위기보다 조금은 편한걸 !" 하는 남편을 보면서 오늘 동행 시킨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벽골제에 와서 달라진 남편의 표정을 보고 나도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항상 자신이 백제의 후손임을 자랑하는 사람이기에 벽골제의 지평선 축제는 여러가지로 많은 감회가 깊은듯하다. 벽골제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기에 아쉬웠지만, 뜨거운 열기만은 충분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계적인 축제임이 틀림없었다. 김제라는 도시를 재인식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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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쉬운 것은 금방 어두워져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여유는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지평선을 찾아 가봐야겠다. 코스모스가 지기전에 반드시 가봐야 겠다. 이렇게 큰 축제를 작년에는 왜 몰랐었을까? 작년에도 군산에 있었는데.... 그만큼 홍보가 부족한 것은 아니였을까? 벽골제를 보면서 군산은 왜 이만한 축제를 준비 할수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군산에 온지 이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군산을 생각하는 마음은 벌써 군산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축제의 열기에 휩싸여 11시가 지나도록 우리 두 사람은 그곳에서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젊은 사람들과 지평선 축제를 즐겼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하나가 되어 소리 지르고, 박수 치며 열정의 시간을 가져 본 것이 얼마만인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오랫만에 가져보는 시간 행복했다. 축제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내년에는 좀더 따뜻한 옷을 준비해야겠다. 많이 추웠었나 보다 모르고 있었는데, 막상 몸을 움직이니까 몸의 움직임이 둔하고 온몸으로 추위가 퍼져 올라 왔다. 따뜻한 어묵 국물이 이세상 어떤 산해진미 보다 맛었있고,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 주었다. 정말 특별한 맛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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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지평선 축제가 해마다 발전하여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나아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세계인들의 축제로 거듭나길 두 손모아 기도해 본다. 교수님이 안 계셨다면, 올해도 나는 이곳에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내년에는 내자신이 지평선 축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첫댓글 언제 부터인가 황금 들녘이 수런수런 익어가는 가을이 오면 김제지평선을 떠오르게 됩니다. 그만큼 그 축제의 정서가 우리 몸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성공적인 축제의 반증이라 생각합니다. 아리랑문학마을과 지평선에 다녀오셨군요. 저도 한번쯤은 교수님 따라 가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크답니다. 그런데 이슬향님의 글을 읽고 다소 위안을 찾습니다. 부군님과 밤늦도록 축제를 즐기신 모습이 부럽습니다. 행복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