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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군 신양면 황계리 산자락에 있는 '예산군 노인요양원'. 작년 8월 문을 연 이곳엔 치매와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예산군 노인 환자 50명이 입원해 있다.
깔끔한 황갈색 벽돌로 단장한 요양원 본관 옆에는 지은 지 20~30년은 된 듯한 창고 건물이 있다. 바닥은 나무판으로 돼 있어 걸을 때마다 '삐~걱' 소리를 냈다. '6-1', '1-1' 푯말이 걸려 있는 곳은 노인들의 기저귀 보관 창고로, '4-1' 푯말이 걸려 있는 곳은 세탁실로 사용된다. 이 요양원은 3년 전(2006년 3월)에는 '신양초등학교 황계분교장'이라는 간판을 걸고 있었다.
◆노인요양원으로 변신한 폐교
황계초등학교는 1970년에는 학생 수가 343명(6개 학급)에 달했다. 하지만 농촌 마을인 신양면에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면서 2005년엔 학생 수가 9명으로 줄었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이호(78) 할아버지는 "내가 젊었을 땐 동네 아이들로 학교가 바글바글했는데 이젠 동네에 노인만 남았다"고 말했다.
예산군 전체 인구(8만8144명)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0%(1만8575명)로 초고령사회 단계이다. 1982년 이후 예산군에서만 14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노인들은 늘고 아이들은 사라져 폐교가 늘어나자 예산군은 폐교를 노인요양시설로 바꾸기로 했다.
황계초등학교에 20억5600만원을 들여 신축 노인요양원 건물을 지었다. 환자 50명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간 지 한달 만에 정원이 다 찼다. 지금도 노인 환자 30여명이 대기 중이다.
◆칠갑산 산골 마을 폐교 창고는 목욕탕으로
전국적으로 고령화·저출산이 동시 진행된 결과 1982년 이후 전국에서 3246개 학교가 문을 닫았다. 전남이 683곳, 경북 581곳, 경남 501곳 순으로 농업이 번창했던 지역의 폐교 수도 많다. 폐교된 건물을 노인 관련 시설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충남 청양군 장편면 화산리의 경우, 1999년 폐교한 화산초등학교 자재창고를 개조해 작년 12월 '노인용 목욕탕'을 만들었다. 욕탕까지 갖췄지만 남탕·여탕 구분은 없다. 하루는 할아버지들이, 다음 날은 할머니들이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웃 동네까지 소문이 나 한달에 3~4번 목욕탕 문을 열 때마다 손님이 100명까지 몰린다. 화산보건진료소 전미숙(50·여) 소장은 "마을에 목욕탕이 들어서기 전까지 마을 어르신 중에는 평생 한 번도 목욕탕을 가지 않은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작구 노인 휴양소는 충남 태안의 폐교
농촌 폐교는 서울 등 지방자치단체의 노인복지시설로도 활용된다. 서울 동작구는 충남 태안 바닷가 주변 폐교를 사들여 '노인휴양소'를 지었다. 태안군 안면읍 신야리에 있는 '동작구 노인휴양소'(2001년 7월 개소)는 이 지역 폐교인 안중초등학교 신야분교(1999년 폐교)를 개조해 만든 콘도형 노인휴양 시설.
옛 교실은 객실로, 교무실은 관리사무실로 사용한다. 객실(79㎡·24평 기준) 사용료는 일반인 손님은 10만8900원이지만 동작구 노인에겐 3만8500원으로 '파격 할인' 해 준다. 지금까지 6만6505명이 다녀갔다. 김영란 동작구 주민생활지원과장은 "농촌 폐교를 활용한 덕에 예산을 대폭 줄여 노인복지시설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요양보험운영과 김기철 사무관은 "노인 관련 시설은 '혐오시설'이라는 인식이 강해 새로 지으려면 주민 반대가 심하다"며 "하지만 정부 소유의 폐교를 활용하면 주민 반대도 덜하고, 부지 매입비도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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