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6. 큐티
마태복음 17:14 ~ 20
산을 옮기는 믿음
관찰 :
1) 변화산 아래에서 있던 일
- 14절.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 15절.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 16절.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 변화산의 그 놀라운 은혜의 순간과 산 밑에서의 믿음이 없으므로 치유가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상반되어 대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본질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 변화된 것과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인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극한의 체험이 묘사된 것과 대비되어 산 밑에서는 간질병 들린 한 아이와 아비가 와서 치유함을 구하지만 능히 고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 한 사람이 예수께 왔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자신의 간질병 들린 아들을 치유해 줄 것을 믿고 나아온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함으로 낙망하고 시험에 들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2) 책망하시는 예수님
- 17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예수님이 그렇게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능력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자들을 나무라시는 말씀입니다.
- 예수님은 가이샤라 빌립보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가르쳐주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본질이 변형되는 놀라운 이적을 체험하도록 보여주셨습니다. 이미 제자들을 파송해서 질병을 낫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경험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영적인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주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과 위임을 받았기에 믿음으로 행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 주님이 능력으로 자신을 증거하시는 일을 다시금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이 오라고 하니까 자녀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데려왔습니다. 이 작은 믿음도 주님은 소중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 18절.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 예수님께서 귀신을 나가게 하시고 아이가 즉시로 낫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런 일을 하지 못한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본을 보이고, 파송하고 했음에도 아직도 믿음이 없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 19절.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 20절.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초막 셋을 짓고자 하는 것이 아직은 이들의 믿음의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지 못함에 대해서는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믿음의 본을 그렇게 보여주셨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믿음이 없었던 것에 대해서는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 주님은 기도를 강조하셨습니다. 많이 본을 보여주시고 강조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듯이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친히 기도를 가르쳐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음이 없이 기도하는 제자들에 대한 책망이 변화산 아래에서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가르침 :
1) 기도에 대해서 주님이 강조하셨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이고, 그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중요했습니다. 자신들의 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들이 간질병 걸린 아이를 치유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이 기도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명령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제자들이 볼 때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나 자신들이 하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왜 똑같이 했는데 자신들은 쫓아내지 못했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에 대해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진짜로 일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임을 믿어야 진실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이 아주 작은 겨자씨 만하다고 해도 산을 옮길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의 문제는 자신들의 내재하는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능력전이로 인하여 병도 고쳐보고, 귀신들도 내쫓아보고, 연약한 자들을 온전케 하는 일들을 이미 해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전에 하던 대로 했는데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 즉 참된 믿음, 하나님이 일하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서 하려고 하니, 하나님의 능력과는 다른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의 제자들이 별별 노력을 다했지만 아이는 치유되지 못했고, 아이의 아비로부터 조롱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3) 산을 옮기는 믿음이라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철처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시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그 도구가 될 뿐임을 인식하고, 나는 죽고 예수만 사는 중심으로 간구할 때 일어나는 믿음입니다. 결국 여기서도 내가 죽어야만 많은 열매,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 안에서 일하심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사역을 한다고 해도, 그 중심이 내가 되고, 나의 자아의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열매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열심히 하는 일이 더 악하게 만들고 말 뿐일 것입니이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스타일로, 하나님의 스케일로 일어나게 됩니다.
2) 참된 믿음의 기도는 그렇기에 나를 죽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기로 약속한 사람들과의 기도를 잊지 않겠습니다.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는 기도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성령님이 일하시도록 나를 통로로서만 사용하실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