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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을게요”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 물결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해밀톤호텔 서쪽 골목길 참사 현장에 마련된 ‘추모의 벽’에서 시민들이 포스트잇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적고 있다. 희생자 유족들은 이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열린 추모기도회에 참석한 후 이곳에서 헌화하고 중구 서울광장으로 행진했다. 유족들은 서울 광장 추모행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박형기 기자
尹 “작년 오늘은 가장 슬픈날”… 7000명 서울광장서 ‘핼러윈 추모’
[이태원 참사 1주기]
尹, 추모식 대신 영암교회 추모 예배… 대통령실 “추모 마음 어디서나 같아”
이재명 “정부, 이 자리 외면” 불참 비판… 개인자격 참석 인요한은 발언 안해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 예배에 참석해 눈을 감고 추모하고 있다. 왼쪽부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 대통령,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맞아 “지난해 오늘은 제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며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등 주최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 불참하는 대신 오전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 추모 예배에 참석해 추도사를 통해 위로를 전달했다. 추모식 주최 측은 윤 대통령의 자리를 비워 뒀다.
이날 저녁 추모식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4당 대표들은 추모식에 불참한 윤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다. 여당에선 인요한 혁신위원장과 김예지 최고위원, 유의동 정책위의장, 이만희 사무총장 등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일부 참가자는 인 위원장을 향해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 “도망가지 말라”며 욕설하거나 담뱃갑을 던지기도 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약 70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 대통령실 “정치적 논란 피하기 위한 것”
검은 넥타이에 검은 양복 차림을 한 윤 대통령은 이날 추모 예배 추도사에서 “우리는 비통함을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며 “우리에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국민들이 누구나 안전한 일상을 믿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바로 그 책임”이라며 “반드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그분들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추도 예배에는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정부와 여당,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이날 오전 열린 고위당정협의회를 마치고 윤 대통령과 함께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은 “영암교회는 윤 대통령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다녔던 교회”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성탄절에도 윤 대통령은 영암교회를 찾아 성탄 예배를 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식은 정치집회 성격이 짙다고 판단해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추모가 중요한 날인데 가급적이면 정치적 논란을 최대한 피하면서도 대통령 이동에 따른 경호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과 부작용들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만나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은 전국,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똑같다”라며 “이태원 사고 현장이든 서울광장이든 성북구 교회든 희생자를 추도하고 애도하는 마음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 참석자 일부, 추모식 참석 인요한에게 욕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가운데 줄 왼쪽부터)이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식에서 묵념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이날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 대표는 추모식에서 “유족들의 절절한 호소는 오늘도 외면받고, 권력은 오로지 진상 은폐에만 급급하다”며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들은 오늘 이 자리조차 끝끝내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날 진상조사 기구 설치 등을 담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개인 자격으로 참석한 국민의힘 인요한 위원장 등을 비롯한 여당 참석자들은 별도로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인 위원장은 이 대표가 옆자리에 오자 일어나 악수를 하기도 했다. 인 위원장이 1부 추모식이 끝날 때까지 1시간 30분 넘게 자리를 지키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참석자 일부로부터 “윤석열 정부 사과하라”며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한 남성이 인 위원장의 어깨를 밀쳐 휘청이기도 했다.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은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 고위당정협의회에서 회의 시작 전 묵념으로 희생자의 명복을 빌었다. 김기현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더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여당은 주최자 없는 축제의 안전 관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했다.
윤명진 기자, 전주영 기자, 주현우 기자
곳곳 안전펜스 치고 일방통행… 달라진 이태원 거리
[이태원 참사 1주기]
안전관리 경찰 인력도 대거 배치
행인들 작년 4분의 1 정도 모여
홍대 일대엔 9만2000여명 몰려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에 인파 관리용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가운데 시민들이 일방통행을 하고 있다. 이태원 일대는 상대적으로 한산했지만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는 이날 오후 8시 기준으로 9만∼9만2000명 모여 다소 혼잡한 모습이었다. 뉴시스
2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 거리 곳곳엔 인파 관리용 안전펜스와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시민들이 우측으로만 통행하도록 연신 안내했다. 거리에서 만난 김모 군(17)은 “바리케이드를 활용해 일방통행을 유도하니 인파가 섞이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핼러윈 주말인 이날 이태원 거리 모습은 지난해와는 확연히 달랐다. 거리는 상대적으로 한산했고 핼러윈 의상을 입은 이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길에서 만나는 두 명 중 한 명은 경찰이라고 할 정도로 안전관리 인력이 대거 배치됐다.
핼러윈을 즐기려는 이들은 대신 홍대와 강남역 등으로 몰렸다. 28일 오후 9시경 서울 마포구 홍대 클럽거리 일대에선 30, 40명씩 입장 대기 줄을 서 있는 술집과 클럽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만난 고모 씨(17)는 고양이 코스프레(코스튬플레이)를 한 채 “주말이면 종종 홍대에 오는데 유독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축제를 즐기는 건 개인의 선택이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다”며 “홍대에 온 것도 이태원에 비해 골목이 넓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시 도시데이터 인구 추정치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경 홍대입구 일대에는 9만∼9만2000여 명이 몰렸다. 반면 이날 오후 10시경 이태원관광특구 일대에는 1만2000∼1만4000여 명만 모여 지난해의 4분의 1가량이었다.
강남역 인근에도 인파가 몰려 경찰과 소방 당국 등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저녁 동아일보 기자가 찾은 서울 서초구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 ‘스마트허브센터’에선 직원들이 새로 도입된 인공지능(AI) CCTV로 실시간 집계되는 인파 숫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후 10시경 “인파가 늘고 있다”는 말에 긴장이 흘렀지만 다행히 위험 수위를 넘진 않았다.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의 안전 관리 노력과 시민들의 달라진 태도 덕분에 인파 사고 우려는 크게 줄었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8일부터 이틀 동안 인파 관련 신고 3건이 접수됐는데 모두 오인 신고였다. 인파 관련 소방 출동 건수 역시 0건이었다.
다만 28일 오후 8시경 대구 중구 동성로 한 상가 앞 거리공연에 인파가 몰리면서 “걸어 다니기 힘들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후 경찰 기동대 10명이 투입돼 공연 장소를 옮겼다. 동성로 로데오거리에서도 클럽에 입장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며 혼잡 신고 2건이 접수됐지만 인명 피해 없이 상황이 마무리됐다.
일부 시민은 군복 등의 차림으로 거리를 걷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8일 오후 7시 반경 홍대 일대에서 군복과 군 배낭, 모형 총기를 든 채 걸어다닌 20대 남성을 군복단속법 위반 혐의로 적발해 즉결심판을 신청했다. 군과 관련 없는 민간인이 군복이나 군용 장구를 사용·휴대할 경우 벌금이나 구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상환 기자, 이수연 인턴기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한종호 인턴기자 성균관대 프랑스어문학과 수료
“이태원특별법, 즉각 제정하라”… 유족들, 1주기 추모행사서 촉구
[이태원 참사 1주기]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유족들은 추모행사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즉각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2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아 추모기도회에 참석한 후 추모의 벽에 헌화하고 중구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이태원 특별법 제정하라’ ‘진상을 규명하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 등의 손팻말을 든 채였다.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협의회) 대표는 이날 오후 5시경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연단에 올라 “이제 우리에게는 특별법만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진정성 있는 자세로 특별법 통과에 힘을 보태 달라”고 호소했다. 또 “참사 앞에는 여야가 없고 모두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특별법은 진상 규명을 위한 독립적 특별조사위원회 설치와 피해자 지원 대책 등을 담은 법안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유족들은 30일에도 서울광장 분향소 앞에서 참사 1주년 추모 미사를 진행한다.
주현우 기자, 김영우 인턴기자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