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봉사의 개안(開眼)
<심청전>은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판소리다.
봉사 심학규는 딸을 낳은 지 7일 만에 아내를 잃어버리고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근근이 살아간다. 심청이가 열세 살이 되던 어느 날 딸이 돌아오지 않아 마중을 나갔던 심봉사는 그만 개울에 빠지게 된다. 때마침 화주승이 살려달라는 심봉사의 외침을 듣고 구해주면서 “공양미 삼백 석만 부처님께 바치고 진심으로 불공하면 어둔 눈을 떠서 대명천지를 볼지리다”라고 말해준다.
심봉사 눈 뜬다는 말을 듣고 앞뒤를 가리지 아니하고 덜컥 약속하였지만 삼백 석을 구할 길은 도무지 없어 캄캄하던 차에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심청이는 고민 끝에 남경장사에게 자기의 몸을 팔게 된다. 마침내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져 죽고 심봉사는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쳤으나 눈을 뜨지 못한다.
뺑덕어미에게 그나마 가진 것 다 빼앗겨 알거지가 된 심봉사는 부활하여 황후가 된 심청이가 벌인 맹인잔치에 참석한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잔치를 벌인 심청이는 아직도 눈을 못 뜬 아버지를 보자 기가 막혀 울기 시작한다.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드셨소. 인당수 풍랑 중에 빠져 죽던 심청이 살아서 여기 왔소.”
이 말을 들은 심봉사 “아니 누가 날더러 아버지라고 혀. 나는 자식도 없고 아무도 없는 사람이오.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꿈이거든 깨지 말고 생시거든 어디 보자” 하면서 감은 눈을 ‘휘번쩍’ 뜨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심청전>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가진 위대한 화두(話頭)라고 생각한다.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 석이 눈을 뜨게 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눈을 떠야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보려(見)하기보다는 눈을 뜨려고만 하였다.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 것은 공양미가 아니라 딸을 보고 싶은 절대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있었다면 딸을 죽이지 않고서도 미리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심봉사가 눈 뜨는 데는 평생이 걸렸지만 딸을 보는 것은 찰나에 불과하였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지만 우리 주님은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을 멀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한 우리들이야말로 눈 뜬 장님이며 심봉사이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심청이, 나의 주님. 주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두 눈을 심봉사처럼 휘번쩍 뜨게 하소서.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