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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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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읽기 스크랩 악보 / 도종환
동산 추천 0 조회 25 17.03.12 08:1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악보 / 도종환

 

 

상가 꼭대기에서 아파트 쪽으로 이어진

여러 줄의 전선 끝에

반달이 쉼표처럼 걸려 있다

꽁지가 긴 새들과 초저녁별 두어 개도

새초롬하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다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하늘에다 마련한 한 소절의 악보

손가락 길게 저어 흔들면 쪼르르 몰려나와

익숙한 가락을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 같은

노래 한 도막을 누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이제 그만 일터의 문을 나와

한 사람의 여자로 돌아오라고

누군가의 아빠로 돌아오라고

새들이 꽁지를 까닥거리며

음표를 건너가고 있다

 

 

 

 

*********************************************

 

글을 쓰면서도 그런 일이 있지.

그림에 치중하는 만큼 음표의 울림을 잊고 마네.

그림이 하나씩 들고 일어서서 떨리며 오거나 간절한

말씀으로 스며드는 모양이 바로 음표인 걸 보지

못하고 살았네.

어릴 적 나는 바다와 수평선을 들고 나는 갈매기나

배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도 불렀지.

그러고 보면 그림은 처음부터 모양만 있는 게 아니고

소리를 담고 있는 것이지.

바다를 건널 때면 너울너울 차오르는 파도의 리듬뿐

아니고, 김 파래 미역에 저음으로 깔린 멜로디가

들리는 걸 보면 세상은 온통 눈과 귀의 조화 속인

것을.

 

음표를 자주 만나는 것이 어디 수평선이나 전깃줄

뿐인가.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 휘어진

철망 사이를 오르던 넝쿨.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방향을 찾는 모양에서 음표를 구경하기도 하네.

그 모양을 바라보며 서 있는 나는 또 하루 살아낸

넝쿨식물과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지.

이렇게 ‘돌아오는 이들을 위해’ 거기 기다리는

것이나, 돌아오며 한눈 멈추다가 지상에서 한 소절

부르는 노래도 예쁘겠네.

 

문득,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 편지를

쓰려다가 악보를 만났네.

세상 건너가며 가끔 음표를 짚어보는 그대의 삶도

아름다운 노래가 되기를.

 

/ 필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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