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온세복권, 대박을 터트리자.
점자새소식 제920호(2015년1월1일자) 사설
2015년 새해를 맞이하여 독자 여러분 모두 대박을 터트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대박하면 흔히 복권 1등 당첨이란 행운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복권의 연간 총 판매 수입은 약 3조원(2011년 복권백서)이며, 대략 당첨금 50% 복권기금 40% 발행 및 판매 비용 10% 정도로 사용된다. 이중 복권기금은 다시 35%는 법정사업에 사용하고, 65% 정도를 이른바 ‘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한다. 2011년 복권기금 8,442억원의 배분비율을 보면, 그중 장애인고용공단에는 80억원이 배정되었다. 그런데 이는 총판매수입의 0.27%, 총배분액의 약 1%에 불과하다. 그나마 시각장애인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전체 장애인에게 배정된 액수이다. 우리나라 복권의 발행과 판매는 시각장애인을 포함하여 장애인의 고용과 상관이 없다. 일부 온라인 복권판매점에 장애인 우선배정조항이 있긴 하나 시각장애인에게는 사실상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럼 시각장애인 복지선진국 스페인은 어떤가? 스페인 시각장애인연합회는 스페인어 이니셜로 ONCE 즉 ‘온세’라고 부른다. 홈페이지 www.once.es 첫머리를 보면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지구상 어디에도 스페인 온세 시스템에 비견되는 제도는 전혀 없다. 온세는 시각장애인 회원이 주도하는 그야말로 스페인 독창적인 제도이다.”
스페인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이런 자부심을 갖게 되었을까?
2013년 기준으로 온세와 산하 기관의 총자산 규모를 보면 온세 13.5억유로, 온세재단 54억유로, 온세기업법인 68억유로, 온세 푼도사그룹 47억유로 등이다. 이상 온세와 온세산하 그룹의 총자산을 합하면 한화로 26조원 대에 육박한다. 그리고 온세복권 총판매 수입은 22.4억유로(약 3조원), 온세복권 판매직원 인건비는 약 9.8억유로(약 1조 4천억원)에 달하며, 이러한 온세복권 판매수입만 해도 우리나라 전체 복권 판매 수입과 맞먹는 3조원 규모다. 자산만 가지고 경제규모나 부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는데 무리가 있지만,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엄청난 복권 판매 수입을 적극적으로 운용하고 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온세복권 시스템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즉 온세복권 판매직원은 전원 장애인이며, 온세복권 시스템은 결국 장애인 일자리 창출 및 보장 제도라는 점이다. 2013년 스페인 온세복권 판매직원은 총 19,804명이다. 이중 시각장애인은 7,751명이며 비시각장애인은 12,053명이다. 온세복권 측은 판매 이외의 직원도 16,695명 있는데, 이중 비장애인이 14,086명이다. 온세복권의 직원 수는 총 36,499명이다. 온세가 온세복권의 발행 및 판매를 다른 기관에게 위임 위탁하지 않고 직접 담당하며 그 수익에 대한 처분권도 가진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스페인 온세복권 시스템의 독창적 특성이다.
그런데 이 온세복권의 비중은 국가복권을 포함한 전체 스페인 복권의 7% 정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유수한 재벌급에 해당하는 경제규모다. 스페인 전역에 각종 호텔과 부동산은 물론이고 방송국과 프로축구 경기장까지 소유하고 있으며, 스페인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복지는 물론이고, 중남미 19개국 아프리카 유럽 등지의 시각장애인을 체계적 조직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스페인 시각장애인은 원하기만 하면 간단한 교육을 거쳐 온세복권 판매직원으로 전원 고용된다. 7만여 시각장애인 회원으로 이뤄진 온세와 온세재단은 그동안 8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냈으며, 2012년 한 해에만 4천 1백여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온세복권 판매직원은 물론 온세복권을 기반으로 온갖 사업들을 벌여 창출해낸 일자리를 모두 합한 수치임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온세 측은 향후 30년이 지나면 복권사업이 사양화될지 모른다며, 추가로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세탁공장사업을 벌여 스페인 세탁물량의 약 30%를 점유할 정도로 성장시켰다. 이미 1980년대 마드리드주립대학교와 학술협정을 맺어 온세물리치료대학을 설치 운영하고, 여기서 배출된 시각장애인 물리치료사들은 이 대학부속 물리치료클리닉에서 일하고 있다. 이 물리치료클리닉은 스페인 전역에 22개로 퍼져나가 일하고 있으며, 최근 ‘레비타스(Revitass)’라는 공동브랜드를 내걸고 스페인 국민건강증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스페인 국민들은 다른 일반 국가복권 못지않게 온세복권을 많이 구매한다. 당첨되지 않아도 복권수익금이 장애인을 돕는데 사용되어 결국 행운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온세복권은 사행성 게임이라기보다 기부의 실현으로 인식한다. 바로 이것이 온세복권 시스템의 토대이다. 1938년 창립한 온세 측이 77년 동안 온갖 어려움과 험난한 역경을 헤쳐 나온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 시각장애인계도 이젠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사실상 정안인이 거의 99% 점하며 그저 법조문으로만 시각장애인 안마독점이라는 안마업 실정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스페인 온세의 복권사업 벤치마킹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니 2015년에는 반드시 ‘한국형 온세복권’ 벤치마킹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하도록 해보자. 물론 온세복권 관계자 초청을 통한 공론화와 여론조성, 복권업계와 장애인복지 전문가들과 관련 단체 토론회, 지방의회 혹은 국회 입법과정 등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 꿈을 꾸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헬렌 켈러에게 설리번 선생이 있다면 강영우 박사에게는 석은옥 여사가 있었다. 서양에 브레일 점자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송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스페인에 온세복권 시스템이 있는데 우리에게 더 훌륭한 ‘한국형 온세복권’ 시스템을 실현시키지 말란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출처
www.hsb.or.kr/client/data/download.asp?doc...t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