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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는 반드시 온다>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중국의 실력자이자 세계 최강 대열의 기사인 구리 9단을 맞이했던 원성진 9단이 생각의 바다에 빠졌다. | 상하이에 가기 전에 잘나가는 신예 기사에게 물었다. 누가 우승할 것 같으냐고. 그 신예 기사는 말했다. “물론 성진이 형을 응원하지만 구리 9단이 우승할 가능성이 크다. 결승전이 적지에서 벌어지는 데다 구리 9단의 컨디션이 좋다. 또 경험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철한 형도 언젠가 그러지 않았나 ‘세계대회 결승전은 경험이 중요하다’라고. “
구리 9단은 세계대회에 결승에 일단 진출했다 하면 무조건 우승하는 우승제조기였다. 올 초 이세돌 9단에게 비씨카드배에서 패하기 전까지 7차례 결승 무대에서 중 7차례 모두 우승을 만들어 냈다. 난적이었다.
뭐, 그 신예기사의 예측은 별스런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점 한국과 중국의 전문가들은 모두 구리 9단의 우승 가능성을 크게 봤다. 제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3번기가 12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 연속으로 벌어졌다.
결승전 개막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기자회견에서 원성진 9단과 구리 9단은 이번 대회의 포인트는 ‘사흘 연속으로 치러지는 경기에서 어느 정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느냐’라고 봤다. 도중에 진 기사는 전열을 재정비할 시간이 줄어든 것이고, 이긴 기사는 오른 기세를 잃지 않고 가져가는 것이다.
당연하면서도 옳은 이야기였다. 이제 누가 잘 실천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원성진 9단은 60명이 넘게 자리한 한ㆍ중기자단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통역만 보고 이야기했다. 당차고 자신감 있는 내용으로 말을 이어가다가도 말이 갑자기 끊기거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나왔다. 목소리는 약간 떨렸고 얼굴빛은 평소와 달랐다. 기자회견장에서부터 긴장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결승 1국 하루 전날, 밤 공기를 마시며 바둑TV 제작진과 상하이의 거리를 걸을 때 원성진 9단이 긴장한 것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원성진 9단 자신이 강조한 마음의 평정을 잘 유지할 건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승전이 시작됐다. 원성진 9단의 표정엔 전날의 긴장감이 없었다. 바둑판 앞에 앉아 지은 진지한 표정이 부담감이나 긴장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그는 차를 고요히 마시며 차분히 초반을 풀어갔고 중반부턴 엄청난 화력으로 구리 9단의 대마를 공격했다.
한국 검토진의 표정이 재미있었다. 원성진 9단이 아주 유리하고 구리 9단의 대마가 살 길이 보이지 않는데도 안도하지들 못했다. 학습효과였다. ‘지난번 허영호 9단의 기세가 얼마나 좋았나 그런데도 결국은 구리에게 안 되지 않았나’라는 자기 다그침이었고 이번 기 콩지에 9단을 8강에서 꺾은 나현 초단이 구리 9단에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야던 순간 등 숱한 경험이 남긴 결과였다. 구리 9단은 여전히 한국 바둑계에 공포의 인물이었다.
좋은 형세 속에 많은 길이 있었지만 구리 9단은 여느 때처럼 ‘타개의 요술’을 부리지 못했다. 원성진 9단이 완벽하게 모든 수단을 봉쇄했다. 구리 9단이 거대한 대마를 헌납하고 나서 뒤늦게 다른 곳에서 안간힘을 쓸 땐 외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첫 번째 대국이 끝났다. 완승이었다.
한국 검토진은 원성진 9단의 승리가 반가우면서도 놀랐다. ‘힘의 구리’를 완벽히 힘으로 제압했다.
한국 보도진은 사이버오로, 월간바둑, 타이젬, 한게임, 중앙일보, 연합뉴스, 한겨레 등 매체의 기자들이었다. 이들은 같이 식사할 기회가 많았고 주요 화제 중 하나는 이번 결승전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까였다.
1국 원성진 9단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세는 구리 우승론이었다. 구리 9단은 회복력이 빠르고 원래 전력상 우세를 보였으며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예측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허망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예측은 설득력이 적고, 그 예측이 적중한다 할지라도 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예측뿐이라면 원성진 9단 우승은 예측 속에 좀처럼 등장하기 어렵다. 원성진 9단의 우승을 주장하려면 원성진 9단의 컨디션ㆍ기세를 강조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예측에 무게가 실리기 쉽다. 또 언뜻 그 편이 냉정한 듯 보이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원성진 우승론’은 응원이었지 논리이거나 과학이 아니었다.
원 9단은 2국에서 급격하게 무너져갔다. 마치 ‘거 보라는 듯’
바둑이 암울한 시점에 대마 공격을 시도했는데 그거라도 해보지 않으면 뒤집을 곳이 없다는 뉘앙스가 컸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원성진 9단이 초읽기에 몰리지 않고 시간을 다소 확보할 수 있었다면 대마를 잡을 수 있었다. 국후 복기에서 구리 9단의 머릿속에는 원성진 9단이 잡으러 가기 위해 읽었던 수단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놀라웠다. 알아주는 구리 9단의 수읽기를 원성진 9단은 능가하고 있었다.
‘한 판의 바둑을 두다 보면 적어도 3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단순한 속설은 아닌 듯싶다. 그 옛날 조치훈 9단도 동의했다고 하니까.
기회는 반드시 온다. 2국까지 원성진 9단은 확실히 큼지막한 기회를 맞이했다. 1국에선 초반에 그 기회를 잡았고 2국에선 마지막에 잡았다가 놓쳤다.
2국이 패전으로 끝나자 한국과 중국의 검토진의 우승 예측은 더욱 구리 9단으로 기울었다. 원성진 9단과 구리 9단이 조심했던 상황이 원성진 9단에게 닥친 것이었다. 원성진 9단은 승리하고 패했으며 구리 9단은 패한 뒤 승리했다. 그리고 그곳은 중국 땅이었고 구리 9단은 풍부한 경험이 있는 기사였다.
검토실은 들뜬 중국말로 떠들썩했다. 중국 기자들도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고 노트북으로 송고하고 있었고 축하하고 악수하는 일로 바빴다.
최종국이다.
실리로 앞서던 원성진 9단은 중앙에서 밀려버렸다. 차를 한 모금 조용히 마셨다. 원성진 9단은 3ㆍ三까지 차지하면서 소중히 쌓은 귀의 실리를 깨끗하게 포기했다. 대신 백의 장대한 중앙에 맞섰다. 견제책에 불과했지만 훗날을 기약했다.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느니 이 편이 나은 것 같았다.
이 시간 검토실엔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과 박치문 중앙일보 바둑전문위원이 검토에 열중하고 있었다. 절망이 찾아와 있었다.
양재호 총장은 원성진 9단이 매우 어려운 상황으로 진단했다. 중국 검토진은 구리 9단의 우세를 확신하면서도 샴페인을 일찍 터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바둑 한 판 두다 보면 3번의 기회는 온다고… 이 말은 사실일까.
구리 9단은 중반 들어 완착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꺼림칙한 부분을 원성진 9단이 추궁해올 까봐 문닫기에 급급했다. 실상 구리 9단이 그렇게 여유부릴 상황은 아니었다.
원성진 9단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행마의 속도가 증가했고 눈부신 추격을 시작했다. 구리 9단은 거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사이 차이는 자꾸 좁혀졌다. 한국 검토실은 찬탄했다.
“기적이다.”
끝내기는 더욱 구리 9단의 발목을 잡았다.
원성진 9단의 절친 박영훈 9단에게도 여러 번 끝내기로 역전당한 쓴 맛을 본 적 있는 구리 9단은 흔들리는 마음을 좀체 잡지를 못했다. 어른거리던 우승 생각이 눈 앞에서 녹아버린 듯했다. 원성진 9단은 후반, 형세를 완전히 반전시켰고 구리 9단의 어떠한 도발도 막았다.
중계가 멈췄다. 검토실 밖에서, 구리 9단을 돌을 거두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중국 검토진도 마음의 준비를 한 듯 무거운 발걸음을 대국장으로 옮겼다.
원성진 9단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계대회 우승을 맛봤다. 한국에서 응원하던 바둑팬들에겐 기쁨을, 기자들에게는 짜릿한 승부의 묘미를 안겨줬다. 너무나도 박했던 예상평을 원성진 9단은 보란 듯이 극복해 줬고 훌륭한 내용의 바둑으로 천하무적 구리 9단을 제압했다.
이날 사이버오로 기사 댓글에는 ‘원성진’이름으로 삼행시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이벤트가 걸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상하이 푸동 공항에서 원성진 9단에게 삼행시 이야기를 했더니 원성진 9단도 봤다고 한다(원성진 9단은 그동안 인터넷에 뜬 기사를 꼼꼼히 살펴본 듯했다).
한편 결승전을 전후한 인터뷰에서 구리 9단은 두 가지 정도에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자신의 약점이다. 큰 승부에서 중국기사들이 결정적인 시점에 흔들리며 자신도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구리 9단의 경우 기세를 중시하면서 세심함은 떨어진다고 밝혔다.
그 둘은, 90년 이후 출생 기사들을 의식한다는 점이다. ‘90후 세대’라는 표현으로 중국에서 먼저 쓰였다. 구리 9단, 콩지에 9단, 천야오예 9단, 씨에허 7단 등 80년대에 출생한 기사들이 아직 중국을 꽉 잡고 있지만 탄샤오, 장웨이지에, 미위팅, 양딩신 등 신예기사들의 기세가 거세다는 문맥 속에 등장했다.
구리 9단은 ‘80년대 출생 기사’들은 90년 이후 출생한 기사들에게 서서히 밀려날 것이고 자신들은 아직 버티는 정도라고 말한다.
푸동 공항 내 한 스낵코너에서 일본식 우동을 씹던 원성잔 9단은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박정환 9단을 비롯해서 나현 초단, 이동훈 초단 등 점점 어린 기사들이 많이 나오면서 위기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18살밖에 안 되는 박정환 9단은 자신보다 어린 나현 초단에게는 온라인바둑에서 자주 졌다고 들었다.
나이 어린 기사에게 밀리는 거고, 또 나이 어린 기사는 더 나이 어린 기사에게 추격당하는 형국이다. 나도 처음엔 긴장하고 진땀을 흘렸지만 이제는 뭐랄까. 즐기게 됐다고 할까. 최연소라는 이동훈 초단과 맞붙을 기회가 있다면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같다.”
이제는 즐기면서 강력한 후배들과 맞서겠다며 쾌활하게 웃는다. 원성진 9단의 우승 앞 뒤로 일주일간 85년생 동갑내기 삼총사 최철한 9단과 박영훈 9단도 또 다른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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