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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혀낸 고구려말 어휘가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찾는 데 주력한다. 이는 우리말의 역사적 단일성을 증명하는 데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며, 국어사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될 수 있다. 다만 무분별한 대응과 추측은 과학적인 연구가 될 수 없으므로 철저히 배제하여 근거없는 어원론이 되지 않도록 한다.
犁山城 本 加尸達忽
이 자료에서는 '犁'와 '加尸', '山'과 '達', '城'과 '忽'이 각각 대응하고 있다. 그것은 뒤의 두 어휘가 다음의 예와 같이 다른 여러 표기자료에서도 '山:達', '城:忽'이 일률적으로 대응되기 때문이다.
① 山 (高):達
功木達 (一云 熊閃山)
兎山郡 本 高句麗 烏斯含達縣
土山縣 本 高句麗 息達
蘭山縣 本 高句麗 昔達縣
菁山縣 本 高句麗 加支達縣
山縣 本 高句麗 買尸達縣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僧山縣 (一云 所勿達)
高烽縣 本 高句麗 達乙省縣
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高城郡 本 高句麗 達忽
② 城:忽
陰城縣 本 高句麗 仍忽縣
白城郡 本 高句麗 奈兮忽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水城郡 本 高句麗 買忽郡
車城縣 本 高句麗 上(一作 車)忽縣
邵城縣 本 高句麗 買召忽縣
戍城縣 本 高句麗 首 忽
童城縣 本 高句麗 童子忽
峯城縣 本 高句麗 述 忽縣
堅城郡 本 高句麗 馬忽郡
開城郡 本 高句麗 冬比忽
津臨城縣 (一云 烏阿忽)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冬音忽 (一云 鹽城)
內米忽 (一云 池城)
漢城郡 (一云 漢忽)
取城郡 本 高句麗 冬忽
母城郡 (一云 也次忽)
岐城郡 本 高句麗 冬斯忽郡
野城郡 本 高句麗 也尸忽郡
城郡 (一云 加阿忽)
高城郡 本 高句麗 達忽
淺城郡 (一云 比烈忽)
節城 本 蕪子忽
豊夫城 本 肖巴忽
新城州 本 仇次忽 (或云 敦城)
{桃}城 本 波尸忽
大豆山城 本 非達忽
遼東城州 本 烏列忽
安市城 舊 安十忽(或云 丸都城)
甘勿主城 本 甘勿伊忽
屑夫婁城 本 肖利巴利忽
城 本 乃勿忽
牙岳城 本 皆尸押忽
鷲岳城 本 甘彌忽
積利城 本 赤里忽
木銀城 本 召尸忽
穴城 本 甲忽
銀城 本 折忽
似城 本 召尸忽
이는 고구려 지명자료의 대부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압록강 이북의 지역에 대한 땅이름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가장 대응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백제말 자료에서도,
寶城郡 本百濟伏忽郡
斌城縣 本百濟賓屈縣
城縣 本 骨
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말과 백제말이 매우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천소영(1990:30∼34)에서 논의되었듯이 고구려말 '達'에 대응하는 신라와 백제의 표기자료에서도 다음 예와 같이 '梁', '珍阿', '等良', '等也' 등으로 표기되어, 고대국어에는 /tara/∼/t r /의 방언차를 가진 동일한 어휘가 존재하였다.
獐山郡 祗味王時 伐取押梁(一作督)小國 置郡
梁縣 本高句麗僧梁縣 景德王改名 今僧嶺縣
鎭安縣 本百濟難珍阿縣;難珍阿(一云 月良)<여람34진안>
高山縣 本 百濟 高山縣(一云 難等良)<여람34고산>
이로부터 '山', '高'를 의미하는 고구려말 '達'과 '城'을 의미하는 고구려말 '忽'이 성립된다. 이 글자들의 당시 발음을 추적해 보겠다.
達 定月 t at/d - t t/d - t at/d- dat 달
이병선(1982:48)에서는 이 글자를 /*tara, *t r /의 표기로 보았고, 천소영(1990:26)에서는 /다ㄹ(tarV)/로 추정했으며, 박병채(1968), 손명기(1993)에서는 /tar/, 유창균(1980)에서는 /dal/로 보았다.
고대국어에 거센소리가 없었으므로, 첫소리 상고음 [t ]는 기의 자질을 잃고 /t/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a]나 [ ]로 재구된 이 글자의 홀소리도 역시 고구려말에 있는 소리인 /a/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상고음 입성끝소리 [t]는 최초 수입 당시부터 우리말 음절의 환경 때문에 닫음소리로 나지 못하고 뒤에 홀소리를 붙여 발음했으며, 이 홀소리 사이라는 조건에서 [-d-]로 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계속하여 앞뒤 홀소리의 공깃길을 닮아가서 흐름소리 /r/로 변해오는 것을 고대국어의 표기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말에서는 한자음에서 [d]>/r/의 변화가 거의 완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말 '達'의 경우에는 /tara/로 발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뒤의 홀소리를 앞 홀소리와 같은 것으로 보는 까닭은 다음의 예에서 닿소리로 끝나는 한자들이 발음될 때, 뒤에 붙이는 홀소리는 그 한자의 중심홀소리에 따라가는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忽;溝 者 句麗城名也<북사, 양서 고구려>
張保皐(羅紀作弓福)<삼사44열전>
單密縣 本武冬彌知
溟珍縣 本買珍伊縣
甘蓋縣 本古莫夫里
이 '山', '高'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쓰였던 말로, 중세 및 현대국어 '양달', '음달(>응달)' 등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천소영(1990:28)에서 지적되었듯이 중세국어 ' -/ 아매-(附·懸)'는 움직씨로 전성한 모습이고, '다락(樓)'은 '달'에 뒷가지 '-악'이 붙은 이름씨이며, ' 쥐( )'는 '달+(암)+쥐'로 분석되어 고구려말 /tara/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세국어 ' ㅎ(地)'와도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忽 曉物 w t xmw t xmw t xu t 홀
박병채(1968:82)에서는 /hol/ 또는 /xol/</*kol/로 읽었고, 유창균(1980:284)에서는 /k l/, 이병선(1982:85)에서는 /*k r /, 천소영(1990:43)에서는 /고ㄹ/ 또는 /골/로 각각 분석되었다.
위에 제시한 '忽'의 상고음 재구음을 보면, 첫소리로 재구된 [x]는 고대국어의 닿소리체계상 /k/로 반영되고, 중고음에서 홀소리 [w ], [u ] 등은 여는홀소리 [u-]에 이끌려 한국한자음에 '오/우'로 반영되는 사실을 지적한 박병채(1971:328∼334)의 논의에 따라 상고음에서도 같은 이치로 적용시켜 이 글자의 홀소리는 /u/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끝소리 [t]는 앞에서 분석한 '達'과 같은 방법에 의해 /VrV/로 반영되어서 '忽'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ru/가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溝 '와 '忽'은 다같이 /kuru/를 나타내는 다른 표기로 고구려말에서 '城'을 뜻하는 낱말임이 확증된다. 이는 중세국어 '골ㅎ', '골'과 이어지는 어휘이다.
이제 '犁'와 '加尸'의 대응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박병채(1968)에서는 /kal/로 읽고 중세국어 '가래', '갈-(耕)'에 이어진다고 보았고, 유창균(1980:348)에서는 /kar r/로 읽고 '犁'의 새김 '가 '로 해석하였으며, 손명기(1993:23)에서는 /kar/로 보았다.
여러 선학의 연구결과와 '加'의 상고음 '見歌 ka k kra keai' 등을 종합해 볼 때 '加'는 /ka/를 표기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尸'에 대해서는 좀더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남희(1999ㄴ)에서는 '尸'의 상고음 기층 고대한자음은 ' (s l)'로, 남방방언음 및 중고음 기층 고대한자음은 '시(si)'로 추정하였으며, 삼국시대 초기부터 고대국어 표기에는 '尸'로 음절 끝소리 '-ㄹ'을 표기하는 습관이 관용화하여, 고유명사와 향찰은 물론 고려시대 석독구결에까지 계승되었다고 했다. 또한 극히 예외적으로 '尸'의 첫소리 'ㅅ-'로 'ㅅ' 또는 '시' 표기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중심은 '-ㄹ'을 표기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 연구결과를 받아들이고, 여기에 앞서 기술한 열린음절의 원칙을 적용시키면 '尸'는 상고음 /s r /의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하는 것이 고대국어 차자표기의 관습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犁'를 뜻하는 고구려말 '加尸/kara/'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관역어>의 '種田 把敢大' 및 중세국어 '갈-(耕)', '가래'에 이어지는 어휘임이 확실하다.
∴ 加尸達忽 /kara-tara-kuru/
菁山縣 本 高句麗 加支達縣 景德王 改名今 汶山縣
'菁'과 '加支'의 대응에 대해 유창균(1980:331∼332)에서는 /kaki/로 읽고 '東'의 새김으로 보았으며, 최남희(1997ㄴ:146)에서는 /kati/로 읽고 중세국어 '가디'와 관계있는 고구려말로 보았다.
支 章支 k ie cie tjie c e 지
상고음에서 이 글자의 첫소리는 조음위치가 센입천장인 터짐소리 [c]였다. 이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말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음소로 이를 반영하려면 터짐의 자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대국어에 있던 터짐소리인 /k/나 /t/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센입천장 터짐소리 [c]는 /k/와 /t/의 한가운데 자리한 소리이기 때문에 고대국어에서 /k/로도 읽히고 /t/로도 읽혀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支'자이다. 여기서는 최남희(1997ㄴ:146)의 연구결과에 따라 /ti/로 읽고, 중세국어 '가디'에 이어지는 고구려말 /kati/로 추정한다.
∴ 加支達 /kati-tara/
唐嶽縣 本 高句麗 加火押 憲德王 置縣改名今 中和縣
'嶽'과 '押'에 대하여 먼저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安峽縣 本高句麗阿珍押縣;阿珍押縣(一云窮嶽)
唐嶽縣 本高句麗加火押
朽岳城 本骨尸押
牙岳城 本皆尸押忽
松岳郡 本高句麗扶蘇岬
이 예로부터 '峽, 嶽, 岳, 押, 岬'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岬'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다.
'岬'은 우리말로 '古尸'라 이른다. 그러므로 혹 말하기를 '古尸寺'라 하는데 이는 '岬寺'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岬'이 훈차자로 쓰인다는 점과 이를 읽을 때 '古尸'로 읽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기사인데, 실제로 고대국어 표기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菅城郡 本古尸山郡
猪 穴縣 (一云 烏斯押)
大楊菅郡 (一云 馬斤押)
岬城郡 本百濟古尸伊縣
[삼국유사]의 설명대로 '古尸'와 '岬'의 대응이 '押'으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古尸'의 해독이 중요한 열쇠가 되겠다. 먼저 '古'의 당시음을 분석해 보겠다.
古 見魚 ka ko k ka 고
만일 이처럼 상고음의 기층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ka/로 발음되었을 터인데, 최남희(1997ㄱ)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신라향가의 표기에는 중고음 기층의 한자음인 /ku/가 철저하게 반영되었다. 지명 표기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 고구려 지명의 예
獐項口縣(一云古斯也忽次);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穴口郡(一云甲比古次);楊口郡(一云要隱忽次);獐塞縣 (一云 古所於);玉馬縣 本 高句麗 古斯馬縣;鵠浦縣 (一云 古衣浦)
㉡ 다른 지명의 예
固城郡 本古自郡
昆湄縣 本百濟古彌縣
古祿只縣(一云開要)
甘蓋縣 本古莫夫里
龍山縣 本古麻山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북사94열전-백제>
㉠으로 볼 때 고구려말 표기에 쓰인 '古(=固)'자는 /ku/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다음의 고구려 사람이름 표기자료에서도 드러난다.
新大王 諱伯固(固一作句)
즉 신대왕의 이름에서 '固:句'의 동음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句'는 '侯'운부 중심홀소리 [-o-]로서, 고대국어에 /u/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固(=古)'의 고구려한자음을 /ku/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尸'에 대해서는 앞서 논의한 대로 상고음 기층의 고대한자음 /s r /에 의해 약음차된 /rV/의 표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기록될 당시 한자음은 중고음에 의해 많은 변고를 입어 한국한자음의 규범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므로, 일연의 기록 '古尸'의 '尸'를 상고음 기층의 /s r /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록 향찰표기에서는 관행적으로 /ㄹ/을 표기하는 데 쓰였지만 여기서 일연이 당시 우리말을 기술하는 데 쓴 '尸'는 그러한 것과 좀 거리가 있다고 본다. 더욱이 최남희(1999ㄴ)에서 논의된 바에 따르면 차자표기에서 '尸'는 약음차자로 /ㄹ/표기에 쓰이기도 하고, 중고음 기층의 한자음 /si/의 음차자로도 쓰였다. 이에 따라 '古尸'의 발음을 /kusi/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菅'의 중세국어 새김은 '골'로 나타나는데, 이 낱말은 고대국어에서는 /kusi/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kusi>*kuzi>*kori>kol'의 변천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岳, 岬' 등 '높은 곳'을 지칭하는 낱말로, 양주동(1942:94)에서는 현대국어 '봉곳하다'가 '봉(峰)+고지(岬)'의 합성어인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또한 김승곤(1984:207)에서는 [일본서기]의 '천손이 내린 산'이름 '久士布流多氣(kuzifurutake)' 등에서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龜旨峰'에서 '龜旨'도 '높은 곳'을 뜻하는 /kusi/의 표기라고 하였다. 결국 이 /kusi/는 고대 삼국에 공통하게 존재했던 낱말이다. 이는 다시 중세국어에 그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천소영(1990:127)에서처럼 중세국어 '항것'은 '한(大)+거시>한것>항것'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주인' 또는 '상전'을 뜻하는 칭호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서 증언하고 여러 지명 표기 자료에 나타난 '古尸(→岬→押;岳, 嶽)'는 /kusi/의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嶽'은 옛지명의 '押'에 대응하여 /kusi/로 읽는다.
박병채(1968)에서는 고구려말 '加火'를 '唐→中'의 의미로 보아 '火'를 차자표기의 일반적인 형태로 훈독하여 /kap l/로 읽고 중세국어 '가온 '에 이어지는 고구려말의 표기로 보았다. 이는 유창균(1980:321)에서도 같은 견해로 해석되고 있는데 /kab r/로 읽고 '가 →가 →가온'과 같은 발달을 상정했다.
'火'에 대한 다른 예를 찾아보기로 한다.
㉠ 고구려
曲城郡 本 高句麗 屈火郡
緣(一作 椽)武縣 本 高句麗 伊火兮縣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 景德王 改名今 洪川縣
縣 本 高句麗 伊伐支縣
㉡ 신라
大丘縣 本達句火縣;王欲移都達句伐 未果<삼사8신문왕>
比屋縣 本阿火屋縣(一云幷屋)
火王郡 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音汁火縣 婆娑王時 取音汁伐國置縣
伐休(一作發暉)尼師今
㉢ 백제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水軍不使入伎伐浦(卽長 又孫梁 一作只火浦 又白江)<유사1기이>
富林縣 本伐音村
淸音縣 本百濟伐音支縣
㉠에서 고구려말에 쓰인 '火'를 훈독해야 할 것을 확인하며, 그 새김은 '伐'의 고구려한자음에 가까웠을 것임을 알 수 있다. ㉡, ㉢에서도 '火'는 '伐'과 대응되고 있는데, 도수희(1984:90∼107)에서는 백제지명 '所夫里'와 '泗 '에 대하여 분석하고, 신라지명에 나타난 '火→伐'과 같은 백제말이 '夫里'로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伐'의 고구려한자음을 복원하여 '火'를 훈독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伐 月 b iwat b iw t biwat b wat 벌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에 대해 최남희(1999ㄱ:35)에서는 '발/pal/'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상고음 제7류 '歌月元'부의 중심홀소리 [-a-]가 강력하게 작용하여 고대한자음에 /a/로만 반영된다는 설명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여는홀소리 [i]는 흡수될 수 있지만, 앞뒤의 [w]와 [t]는 어떤 식으로든 중심홀소리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조음위치를 약간 끌어올려서 / /로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반영의 조건은 '[w]-[t]' 사이의 [a]로 한정된다. 이는 또한 지명 자료에서 중세국어 /ㆍ/와 이어지는 홀소리의 표기에 쓰이고 있어서 하나의 방증이 된다.
闕城郡 本闕支郡 景德改名 今江城縣
駒城 (一云 滅烏)
'闕/상고음 kiwat/'는 후대의 지명에 '江'과 대응되는데, 중세국어에 ' , '으로 나타난다. 또한 '駒'도 중세국어 ' 야지'로 나타나 '滅'의 홀소리가 / /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고대한자음에 상고음이 반영될 때, 합구음 여는홀소리 [w]와 끝소리 [t]사이의 [a]는 조음위치가 위쪽으로 이끌려 / /로 반영되는 규칙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伐'의 고구려한자음은 /p r / 정도로 읽혔을 것이다.
따라서 '加火'는 /kap r /로 읽을 수 있고 그 뜻은 박병채(1968) 및 유창균(1980:321)에 따라 '中'으로 보며, 중세국어 '가 (中)'에 이어지는 어휘로 생각된다. 즉 <조선관역어> 자료 '江心 把剌 噴得 剛沈<085>'에서 ' 噴'은 권인한(1995)에서 'ka-p n'의 차음으로 분석된 바 있으며, '가 '가 15세기 국어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어휘의 원형을 '가 -'로 회고할 수 있다. 따라서 '가 '는 '갑+ + '로 분석되어 고구려말 '加火/kap r /'에 매김법 씨끝이 붙고 이름씨 ' (處)'가 이어져 한 낱말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 加火押 /kap r -kusi/
連城郡 高句麗 各(一作客)連城郡 景德王 改名今 交州;客連郡 (客一作各 一云加兮牙)
'各(一作客)'과 '一云加兮牙'의 이표기와 <태왕비>에 '各模盧城', '勾牟客頭' 등과 같이 쓰인 것으로 보아 '各', '客', '加'는 음차자임이 분명하나 뜻은 명확하지 않다. 유창균(1980:329∼330)에서는 '加兮'를 /ka r/로 읽고 '各(客)連'은 /kal r/로 읽어서 중세국어 '가 (岐)'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皆尸押忽-牙岳城'의 자료에서 '牙'의 고구려말 새김이 /k r/일 것으로 보고 '城'의 새김 /ki/의 이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牙'의 고구려말 새김이 /k r/일 것으로 본다고 해도 /ki/의 이형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구려지명에서 '牙'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長淺城縣 (一云 耶耶 一云 夜牙)
牙岳城 本 皆尸押忽
이 자료만으로는 음독자이거나 훈독자라고 단정내릴 수가 없다. 다른 지명표기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殷正縣 本赤牙縣 景德王改名 今殷 縣
陰峯(一云陰岑)縣 本百濟牙述縣 景德王改名 今牙州
이렇게 놓고 보면 고대국어 표기에서 '牙'자는 음차자로도 쓰고 훈차자로도 썼다는 결론으로밖에 나올 수가 없다. 만일 고구려지명에 훈차로 쓰였다면 '皆尸'를 그 새김의 음차 표기로 보아야 하며, 음차자로 쓰였다면 '耶'와 통용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차자표기의 원칙상 앞글자는 음독하고 뒷글자를 훈독하는 예는 찾기 어려우므로 여기에서는 음차자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牙'의 상고음을 살펴보겠다.
牙 疑魚 a ra ea
한국한자음에서 '疑[ ]'모 글자들은 대체로 반영되어 있지 않고 다만 한자말에서 개주(改鑄)된 귀화어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이전 시기의 한자음에서 반영된 적이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우리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여린입천장 콧소리 / /이 말머리에 오는 것은 음운환경의 제약에 의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牙'의 고구려한자음은 '아/a/' 정도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구려지명에서 '兮'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白城郡 本 高句麗 奈兮忽 景德王 改名今 安城郡
三峴縣 (一云 密波兮)
峴縣 (一云 斤尸波兮)
緣(一作 椽)武縣 本 高句麗 伊火兮縣
海阿縣 本 高句麗 阿兮縣
滿若縣 (一云 沔兮)
이는 다른 지명표기에도 여러번에 걸쳐 나타나 음차자임이 분명하다.
日谿縣 本熱兮縣(或云泥兮)
芼兮縣(一云化 )
南畿停 本道品兮停
新復縣 本加尸兮縣
八谿縣 本草八兮縣 景德王改名 今草谿縣
蘇泰縣 本百濟省大兮縣
秋成郡 本百濟秋子兮郡
珍原縣 本百濟丘斯珍兮縣
森溪縣 本百濟所非兮縣
務安郡 本百濟勿阿兮郡
菓支縣(一云菓兮)
奈西縣 本奈西兮
貴旦縣 本仇斯珍兮
皐西縣 本秋子兮
壁谿郡 本百濟伯伊(一作海)郡
이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兮'는 음차자로 /k-/첫소리를 가진 글자였음이 드러난다. 또한 '溪', '谿'와 대응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과 '兮'의 발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兮 匣 支 ie e e 혜
상고음에서 여린입천장 갈이소리 [ ] 또는 터짐소리 [ ]로 재구된 갑모(匣母) 첫소리는 우리말 음운체계에 따라 /k/로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운(支韻)의 중심홀소리 [e]는 첫소리가 잇소리일 때는 / /로 반영되고 그 밖에는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홀소리인 /i/로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상고음 기층의 고대한자음은 '기/ki/'였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대응 예에서도 /i/를 가졌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南畿停 本道品兮停
菓支縣(一云菓兮)
이에 따라 '兮'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을 '기/ki/'로 인정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볼 때 '加兮牙'는 전부 음차자로 쓰인 것으로 분석되며, /ka-ki-a/로 읽혔다는 결론을 내오게 된다. 이 중 /ka-k/을 음차자 '各(客)'에 대응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나머지 부분 /i-a/를 '連'의 새김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경덕왕 개명의 한자식 이름이 '連城'인 것으로 보아 개연성이 크다. 이 말이 중세국어 '닛-'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 各(客)連城 /kakia-kuru/
鷲岳城 本 甘彌忽
유창균(1980:347)에서는 /kam r-k l/로 읽고 중세국어의 '가마괴'에 이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岳'은 한자식으로 붙인 것이거나, '岬, 押'의 음상을 덧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다음의 예로부터 '岳'의 쓰임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朽岳城 本 骨尸押
牙岳城 本 皆尸押忽
大麓郡 本百濟大木岳郡 景德王改名 今木州
이 자료들은 신지명의 '-岳城'이 이전지명에서 '-岬忽'에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로써 '岳'은 '岬, 押'과 대응하며, '甘彌忽'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제 '鷲'의 새김과 '甘彌'의 발음이 대응되는데, 이에 대한 한자음을 추적해 보겠다.
甘 見談 kam k m kam kam 감
이로부터 '甘'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ama/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彌'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재구되었다.
彌 明 脂 mier mi r mjier m ei 미
이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mi/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脂' 운모를 가진 다음 글자들의 용례에서 /m/ 성모 아래에서 / i/로 반영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買召忽縣 (一云 彌鄒忽)
內乙買 (一云 內 米)
昧谷縣 本百濟未谷縣
이는 '買, 彌, 米, 昧, 未'의 발음이 같았다는 전제를 성립시키는 자료인데, 향찰 표기에서 '米, 未'는 ' /메'로 읽히는 글자들이다.
去隱春皆理米(모죽)⇒ 간봄 리
咽嗚爾處米(찬기)⇒ 목몌 외지
此矣有阿米次 伊遣(제망)⇒ 이 이사 멈흘이고
秋察尸不冬爾屋支墮米(원가)⇒ 안 너오히 디
自矣心米(우적)⇒ 저의
郞也慕理尸心未(모죽)⇒ 郞야 그릴
心未際叱 逐內良齊(찬기)⇒ 좆 아져
於內秋察早隱風未(제망)⇒ 어느 이른
今呑藪未去遣省如(우적)⇒ 여 더메 가고 다
따라서 최남희(1997ㄱ)에서 논의된 바에 따라 '米'의 신라한자음 ' /메(m i/m i)', '未'의 신라한자음 ' (m i)'와 고구려 지명자료 '買召忽縣 (一云 彌鄒忽), 內乙買 (一云 內 米)'에 의거하여 '彌'의 고구려한자음 ' /m i/'를 확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甘彌'는 /kama-m i/로 해독해 낼 수 있다.
'鷲'의 새김은 '수리'이다. 그런데 [훈몽자회]의 이 글자에 대한 기록은 주목할 만한 실마리를 주고 있다.
鷲 수리 츄 又呼 黑鷹<자회上15>
즉 '鷲'자에 해당하는 새김은 '슈리'이고 또한 '검은 매(黑鷹)'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甘彌'는 바로 이 '검은 매'에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검은 매(鷲)'를 뜻하는 고구려말이 /kama-m i/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낱말의 표기로 확인되는 자료가 백제지명에서도 '馴雉縣 本百濟甘買縣'으로 나타나 고구려 북부지역의 말과 백제말에 동일한 낱말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한편 이 고구려말 /kama-m i/는 합성어로서 풀이씨의 줄기 '감-(黑)'이 곧바로 ' (鷹)'에 붙은 것으로 분석되며, 중세국어의 시각에서 본다면 통어론적 짜임새에 부합되지 않는 비통어적 합성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말에서 그러한 합성이 통어적이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오히려 고대국어에서는 풀이씨의 줄기가 중세 및 현대국어보다 더 자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합성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 甘彌忽 /kama-m i-kuru/
穴城 本 甲忽
'穴'의 새김과 '甲'의 발음이 대응한다. 유창균(1980:348)에서는 /kap-k l/로 읽었다. 이 자료로부터 고구려지명의 다음 예와 함께 '穴'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찾을 수 있다.
穴口郡 (一云 甲比古次)
여기서 '比'는 어떤 문법적인 형태소와의 결합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穴'을 뜻하는 고구려말의 낱말은 '甲'의 발음과 유사했을 것이다.
甲 見 葉 kap k p kap keap 갑
이로써 추정되는 고구려한자음은 /kapa/이다. 따라서 '穴'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에 /kapa/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甲忽 /kapa-kuru/
遇王縣 本 高句麗 皆伯縣 景德王改名 今 幸州;王逢縣(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왕을 만나다'라는 뜻의 고구려말 '皆伯'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이기문(1968)에서는 이를 부여, 고구려의 관직명인 '加'와 일치하며 신라의 '干, 翰'과 비교되는 자료로 보았다. 그러나 '皆'는 '加/ka/'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 한편 박병채(1968)에서는 '皆'를 /kai/, /kai i/로 읽고 중세국어 '것(主)'에 이어진다고 보았으며, 유창균(1980:301∼302)에서는 '皆'는 '王'의 고구려 새김이고 '伯'은 훈차자로 ' '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k r-m ti/로 분석하였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王岐縣 (一云 皆次丁)
여러 선학들의 분석결과를 종합할 때 '皆', '皆次'가 '王'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고 '伯'과 '逢'이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추출할 수 있다.
皆 見脂 ked ker krer kei 개
상고음 제8운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국어 홀소리체계상 / /에 가깝다. 그러므로 고대한자음에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다(최남희 1999ㄷ:151). 이에 따라 '皆'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 /로 볼 수 있다.
次 淸脂 ied i r jier ei
최남희(1997ㄱ)에서는 향찰 표기에 쓰인 이 글자의 신라한자음이 남방방언음을 기층으로 하여 / /, / i/의 두 가지로 발음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고구려말의 닿소리체계상 붙갈이소리 / /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次'의 고구려한자음은 /s /, /si/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두가지로 추정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첫닿소리가 잇소리일 때 이어지는 여는홀소리 [i]는 흡수되고, 중심홀소리 [-e-(<- )]는 / /로 반영되는 원칙(박병채 1971:182∼191)에 따라 /s /를 추정할 수 있다. 둘째, '支', '脂'부의 중심홀소리 [-e-]는 여는홀소리 [-i-]와 이어지면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i/로 반영된다는 원칙(최남희 1999ㄷ:150)에 따라 /si/를 추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재구된 상고음의 홀소리로써는 두 번째의 추정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이러한 상고음을 가진 글자들이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i/로 읽히고 있음은 더욱 주목할 만한 증거라 할 수 있다.
㉠ 史 (生之) [-i -]
史毛達只 將來呑隱日(우적)⇒ 즈시 모 기 디녀오돈 날
臣隱愛賜尸母史也(안민)⇒ 臣은 실 어시야
耆郞矣 史是史藪邪(찬기)⇒ 耆郞 즈시 이시슈라
㉡ 賜 (心支) [-ie-]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모죽)⇒아 사ㆆ 됴히시온 즈시
吾 不喩 伊賜等(헌화)⇒ 나 안디 븟흐리시든
西方念丁去賜里遣(원왕)⇒ 西方 장 가시리고
㉢ 次 (淸脂) [-ie-]
栢史叱枝次高支好(찬기)⇒ 자시ㆆ 가지 놉호
또한 차자표기 용례에서도 잇소리와 결합한 '支', '脂'부 글자들의 고대한자음 홀소리가 /i/로 반영되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吉士(或云稽知, 或云吉次) <삼사38잡지>
思內(一作詩惱)樂 <삼사32악>
未叱希角干 一作未斯欣角干<유사1왕력>
尼師今, 言謂齒理也 <유사1기이>
第四脫解(一作吐解)尼叱今 <유사1왕력>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 <유사1기이>
居瑟邯(或作居西干)<유사1기이>
嘉瑟岬(或作加西, 又嘉栖, 皆方言也. 岬, 俗云: 古尸, 故或云: 古尸寺, 猶言岬寺也. 今雲門寺東九千步許, 有加西峴, 或云: 嘉瑟峴…)<유사4의해>
佐阿 西川(一云沙 祗之那)<삼사47열전>
이 자료들에서 문제의 '士', '次', '思', '師' 등의 홀소리는 '知', '叱', '詩'의 홀소리와도 같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i/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최남희(1999ㄱ:13∼16, 20∼22)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자료에서 '瑟:西, 栖'의 대응과 '斯, 師:叱'의 대응은 동음전사가 아니라 각각 '실: ', ' :속'의 유사음 대응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그것은 '賜, 次, 師, 子, 自, 慈' 등의 홀소리가 중세한자음에 / /로 나타나는 사실을 들어 상고음 단계의 고층 [- -(>-e-)]를 고대한자음에 / /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한 박병채(1971:182∼191)에서의 주장에 동의한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차자표기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 /의 흔적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i/로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 글자의 상고음도 /i/로 음대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瑟 生質 set siet siet et 슬
西 心脂 sied si r ser siei 셔
次 淸脂 ied i r jier ei
斯 心支 set siet siet s e
叱 昌質 t iet t i t t jiet t t 즐
이는 상고음 운미 [d]류를 고대한자음에 /r/로 반영하였다고 볼 때 /siri/, /tiri/로 정확한 음대응이 된다. 상고음 제8류 '質'부의 [-iet]는 최남희(1999ㄷ:151)에 의거하여 /iri/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고음 '支', '脂'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한자음에 수용될 때, 잇소리와 결합할 때에도 /i/로 반영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에 따라 '次'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i/로 추정한다.
이로써 '王'을 뜻하는 고구려말 '皆次'의 발음을 /k si/로 분석한다. 이는 [광주본 천자문]의 '긔 왕(王)'에서와 같이 중세국어까지 이어지는데, 신라왕의 표기에 나타난 '居西干'의 '居西'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서 지적한 '높은 곳'을 가리키는 '古尸/kusi/'와도 관련이 있는 낱말로 중세국어 '항것(상전)'의 '것'에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자료에서도 역시 고구려말은 남방의 백제, 신라말과 같은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伯'을 새김으로 읽어서 ' '으로 보고 '맞-(迎)'과 같은 동음어였다고 보는 견해(유창균 1980)보다는 백제 지명 자료인 '壁谿郡 本百濟伯伊(一作海)郡'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음차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伯 鐸 p k prak peak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aka/이다. 이는 중세국어 '보-(見)'에 이어지며, 여기에 어떤 활용형의 씨끝이 붙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끝에 이어진 /ka/는 끝홀소리가 /i/ 형태로 변이된 '城'의 뜻을 가진 뒷가지로 해석된다. 따라서 '王逢'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어휘 /k (si)-pa/를 추정해 낸다. 이는 고구려말이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와 같이 '부림말+풀이말'의 통어적인 순서를 가졌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 皆伯 /k (si)-pa-ki/
心岳城 本居尸押
'心'을 뜻하는 고구려말 '居尸'가 추출되는데 이에 대한 다른 예가 발견되지 않는다. 유창균(1980:346)에서는 /k s r/로 읽고 일본어 'kokoro'에 연결지어 본 바 있다.
'居'의 상고음 '見 魚 kia kio kja k a'로 보면 고구려한자음은 /ka/였을 것이다. 이는 최남희(1999ㄱ:11)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는데, 고대한자음 형성시기에는 여는홀소리의 영향력이 미미했으며 상고운미의 영향도 대부분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居'의 고구려한자음을 /ka/로 재구한다. 앞서 기술한 '尸'는 표기관습대로 /rV/를 표기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음차자로 /si/를 표기하는 데 쓰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心'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居尸/kasi/'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신라말에 ' /m s m/'으로 나타나 대조적이지만, 오히려 중세국어 '가 (胸)'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居尸押 /kasi-kusi/
瑞谷縣 本 高句麗 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谷縣 (一云 首乙呑)
'瑞谷'과 ' 谷'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 '이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한자로서 중국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김종훈 1983). 이 ' '과 '首乙'이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谷'과 '呑'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고구려 지명에서 '谷'이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永 郡本高句麗 大谷郡 景德王改名今 平州;大谷郡 (一云多知忽)
檀溪縣本高句麗 水谷城縣 景德王改名今 俠溪縣;水谷城縣 (一云買旦忽)
鎭瑞縣本高句麗 十谷城縣 景德王改名今 谷州;十谷縣 (一云 德頓忽)
五關郡本高句麗 五谷郡 景德王改名今 洞州;五谷郡 (一云 弓次云忽)
翊谿縣本高句麗 翼谷縣 景德王改名今因之;於支呑 (一云 翼谷)
習谿縣本高句麗 習比谷縣 景德王改名今 谷縣;習比谷 (一作 呑)
沸流谷, 帛愼土谷, 加太羅谷, 改谷, 梁谷<태왕비>
이들 예로부터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谷'과 '旦, 頓, 云, 呑' 등의 글자들이 대응하고 있는 점이다. '呑'이 '谷'을 잘못 쓴 글자라고 보기가 어려운 것은 이러한 대응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뒤엣것들은 음차자이고 '谷'은 훈차자임이 확실하다. '谷'의 새김에 대해서, 중세국어에서는 '골'이지만 고대국어에서는 이처럼 읽히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이기문(1972:64)에서 논의되었다. 이에 따르면 신라말에서 '谷'은 새김이 '실'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말에서는 신라말의 '실'에 해당하는 동의어가 따로 있었던 것로 생각된다. 천소영(1990:179∼180)에서는 '谷', '洞', '穴'에 해당하는 고대국어 어휘는 네 가지로 '고ㄹ, 시ㄹ, 단, 가비'가 있었으며, '단'과 '가비'는 고구려지명에서만 나타나고 대신 일본어와 비교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북방계어라고 추정하였다. 각 글자들의 고구려한자음을 추정해 보겠다.
旦 端元 tan t n tan tan 단
頓 端文 tw n tw n tw n tu n 돈
呑 透文 t n t n t n t n
만일 이와 같은 상고음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각각 /tana/, /tunu/, /t n /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이는 같은 말에 대한 여러 지역적인 방언차이거나, 표기의 차이일 것이다. 이를 유창균(1980:175∼176)에서는 '呑'을 대표형으로 잡아 /t n/으로 읽었다. 그런데 고대한자음에서 'ㄴ' 끝소리 글자들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 分津縣 本 高句麗 平唯{淮}押縣;平淮押縣 (一云 別吏波衣)
眞寶縣 本 柒巴火縣
賓汶縣 本 比勿
軍那縣 本 屈奈
㉡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海曲縣 本 高句麗 波旦縣;波旦縣 (一云 波豊)
貴旦縣 本 仇斯珍兮
㉢ 安賢縣 本 阿尸兮縣(一云阿乙兮)
道安縣 本 刀良縣
永安縣 本 下枝縣
喜安縣 本 百濟欣良買縣
㉣ irikasumi伊梨柯須彌(淵蓋蘇文) <일본서기23, 24>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泉井郡 (一云 於乙買)
㉠에서 '分'과 '別', '眞'과 '柒', '汶'과 '勿', '軍이'과 '屈'이 서로 통하여 쓰인 것을 알 수 있고, ㉡에서는 '子'와 '阿旦'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새김 '아 '과 이어짐이 확인되므로 '旦'이 /ㄹ/끝소리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波旦縣 (一云 波豊)'에서 '旦'의 끝소리에 '豊'가 대응함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는 중세국어 '바 (海)'에 이어지는 낱말로 볼 수 있다. 더욱이 '貴旦縣 本仇斯珍兮'에서 '旦'과 '珍'의 대응이 확인되는데 '珍'은 차자표기에서 '돌, 돌오' 등으로 읽히는 글자이다. ㉢에서는 '安'의 발음에 대한 자료인데, 역시 /r/ 소리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에서도 '淵'의 고구려한자음이 끝소리에 /rV/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상고음에서 [-n] 끝소리를 가진 일부 글자들이 고대한자음에서 /-rV/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첫소리에 올 때조차 /i/가 이어지는 조건에서는 /n/, /r/이 서로 통용되고 있다.
述 忽縣 (一云 首泥忽)
內乙買 (一云 內 米)
이는 고구려말에서 /n/과 /r/이 자주 통용되는 소리였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旦', '安' 등의 글자들이 /r/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旦', '頓', '呑'의 고구려한자음은 /t r /이고, 이에 따라 '谷'의 고구려말 새김을 '/t r /'로 추정한다.
다음으로 '首乙: '에서 '首'자는 음차자일 경우와 훈차자일 경우를 예상할 수 있는데, 다른 표기자료들에서도 음차자와 훈차자 양쪽 다 쓰인 것으로 보인다.
戍城縣 本 高句麗 首 忽
述 忽縣 (一云 首泥忽)
牛岑郡 (一云 牛嶺 一云 首知衣)
首知縣 (一云 新知)
牛首州 ( 首 一作 頭 一云 首次若 一云 烏根乃)
首原縣 本買省坪
유창균(1980:331)에서는 음차자로 보고 /sur l/로 읽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도 음차자로 보아 /sjul/로 읽었고, 천소영(1990:34∼37)에서도 음차자로 읽어 '수리(峰)'계 어휘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의 근거를 뚜렷이 제시한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명확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해결의 열쇠는 ' '에 있는데 이 글자가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글자임은 앞에서 말했거니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글자의 발음이 곧바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이었음이 확실하다. ' '에 대한 상고음은 중국에 없던 글자이므로 당연히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에서 이 글자를 만들 때 한자 형성의 원리에 의거해서 ' '을 뜻기호로 삼고 '京'을 소리기호로 삼았을 것이므로 ' '의 고구려한자음은 '京'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것은 상고음 시대가 분명하므로 중고음 [ki ]이 아니라 상고음 [kia ]을 반영했을 것이다. 즉 ' '의 고구려한자음은 /ka / 정도였을 것이며 따라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도 역시 /ka /, /puka /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 '과 '首乙'의 관계는 같은 말의 표기가 아니라 다른 이름의 표기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에 따라 '首乙'에 대한 해석은 보다 명확한 증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루어 두도록 하겠다.
∴ 谷 /ka -t r /
喬桐縣 本 高句麗 高木根縣 海島也 景德王 改名今因之;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高木根:達乙斬(→喬桐)'으로부터 '高, 喬:達乙'과 '木根:斬'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乙 影質 i t i t i t et 을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iri/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차자표기에서 독특한 표기자로 쓰인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우선 신라향가에 쓰인 것으로 보면 이 글자는 ' /을' 또는 '-ㄹ'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지명표기에서 이 글자가 쓰인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高烽縣 本 高句麗 達乙省縣
內乙買 (一云 內 米)
鐵圓郡 (一云 毛乙冬非)
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道臨縣 (一云 助乙浦)
仇乙峴 (一云 屈遷)今 州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加知奈縣(一云加乙乃)
이를 종합해 볼 때 乙'은 음차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대체로 지명 표기에서 /iri/, /ri/ 정도의 소릿값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손명기(1993:15∼16)에 의하면 '乙'은 오히려 '木'에 대응하며, 고구려말에서 '高, 山'을 뜻하는 말은 오직 '達' 하나로만 표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의 문제점은 '乙'과 '木'이 대응한다는 근거가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에 있는데, 이것이 좀 막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음의 자료와 비교할 때 오히려 '赤:沙非, 木:斤乙'의 관계가 추출되기 때문이다.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赤鳥縣 本百濟所比浦縣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천소영(1990:28)에 의해 이 '乙'이 끝소리 /rV/의 표기로 매김꼴의 문법적 구실을 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수용하기로 한다.
'木根:斬'의 대응은 '楊根縣 (一云 去斯斬)'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는 훈차자로서 중세국어 '불휘(根)'와 '버히-(斬)'에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고구려말에서 [ ], [ ]는 변별이 되지 않았으므로 / /로만 쓰여서 '根'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p r ki-/였고 이는 '斬'을 뜻하는 낱말과 동음어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이는 앞서 논의된 바, /h/이 전기고대국어의 /k/에서 발달한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더욱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根, 斬'을 뜻하는 고구려말 동음어 /p r ki/가 각각 'p r ki>*p lki>*p lh i>pulhuj>p uri(根)'과 'p r ki>*p r hi>p hi>p i>p j>pe-(斬)'의 변화과정을 겪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를 다시 정리해 보면, ① '根:斬'의 대응이 두 번 확인되어 그 개연성이 높다는 점과, ② 고구려말에서 / /, / /가 변별이 되지 않고 홀소리에 / /만 있었던 점과, ③ 우리말의 /h/는 전기고대국어에서는 /k/였다는 점, ④ '善射:朱蒙', '復舊土:多勿' 등에서처럼 풀이씨 줄기가 이름씨처럼 자립성을 가졌던 점, ⑤ 고대국어에서 'r>/V__V' 및 'V>/C__#'의 변화는 일반적이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말에서 '根'과 '斬'을 뜻하는 낱말은 동음어로서 /p r ki/였음을 도출해 낸다.
∴ 達乙斬 /tarari-p r ki/
玉馬縣 本高句麗古斯馬縣 景德王改名 今奉化縣
'馬'가 겹쳐 나타나므로 옛지명의 '古斯'는 '玉'의 새김에 대응한다. 이는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도 현대국어 '구슬'에 이어지는 어휘로 논의되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는 /kosa/로 읽었고 유창균(1980:326)에서는 /k s r/로 추정하였다. '古斯'는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음차자로 보는 것이 온당하므로, 이 글자들의 당시 발음을 추적해 보도록 하겠다.
앞서(3) '古'의 당시음이 /ku/였음은 이미 논의되었으므로 여기서는 '斯'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斯 心支 sie sie sie s e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고구려한자음은 앞에서의(7) 논의에 따라 /si/로 추정된다. '斯'는 지명자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松峴縣 本 高句麗 夫斯波衣縣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火王郡 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壽同縣 本斯同火縣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여기서도 '火:比斯:比自'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빛(光)'에 이어지는 /pisi/를 추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斯'는 /si/의 소릿값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玉'을 뜻하는 고구려말 '古斯/kusi/'를 추출해 낸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계림유사]의 '珠曰區戌(208)' 및 중세국어 '구슬/구 '에 이어지는 낱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슬'의 /ㄹ/이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는 원래 /kusiri/이었던 것이 '馬'와 결합되면서 /ri/가 탈락되었다고 본다. 이는 '馬'의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고구려 지명표기에서 '馬'는 '買省郡 (一云 馬忽)'에서 '買와'의 대응을 보여주는데,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에서도 '驍'와 '川'이 그 새김이 같았음을 알려준다. 또한 다음의 자료에서
駒城 (一云 滅烏)
臂城郡 (一云 馬忽)
'滅烏', '臂'와 대응하는데, 여기서 '馬'의 고구려말 새김은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의 자료들로부터 '水', '川'의 새김과도 대응하고 있어서 그 개연성이 크다.
買忽 (一云 水城 )
德水縣 本 高句麗 德勿縣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
이는 신라 지명 '泗水縣 本史勿縣', '淸川縣 本薩買縣' 및 백제 지명 '其買縣(一云林川)'에서도 확인되어서 '水', '川'을 뜻하는 고대국어가 '買', '勿'의 당시 한자음과 같이 발음되었음을 실증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買'는 '勿'이 그 원형이고 도수희(1999)에서 지적된 것처럼 'r>/V__V'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들 '馬', '臂', '水' 등을 뜻하는 낱말이 다 동음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비슷한 음상을 표기한 유사음 대응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馬'의 고구려 새김은 /m r /로 추정된다. 이는 '駒城 (一云 滅烏)'가 가장 원형에 충실한 표기로 볼 때, 뒤에 홀소리가 하나 있어서 두 음절로 발음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古斯馬'는 고구려말 /kusim r /를 표기한 것이 되며, '玉'의 새김 /kusiri/의 끝 음절 /r /가 /m r /와 연결되면서 탈락된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古斯馬 /kusi(ri)-m r /
朽岳城 本骨尸押
앞에서 논의된 '押'과 '岳'의 대응으로부터 '朽'와 '骨尸'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347)에서는 /k s r/로 읽고 '朽'의 중세국어 새김 '석-'과 부합되지 않는다 하여 일본말 'kusaru'과 연관지어 분석하였다.
그러면 '骨尸'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도록 하겠다.
骨 見物 kw t kw t kw t ku t 골
여러 학자들의 재구음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는데, 상고음 [w ]는 합구음인 여는홀소리에 이끌려 /u/로 반영되는 원칙(1)에 의하여,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ru/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1) 논의된 표기자료 ' 城縣 本 骨' 및 '骨正(一作忽爭)'과 연관지어 볼 때 '忽'의 고구려한자음과 동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尸'는 앞서 본 것처럼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한 것으로 본다면 약음차자 '尸' 앞의 글자 끝소리는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骨尸'는 /kuru/를 표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최남희(1999ㄴ:212∼213)에서는 '尸'에 대하여 고구려지명 ' 川郡 (一云 也尸買)'에서 '尸'는 고구려한자음 /si/로 읽혔음을 논증한 바 있다. 즉, 고구려에서는 이 글자가 상고음 기층의 /s r /와 중고음 기층의 /si/ 두 가지로 읽혔다는 설명이 된다.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본다면 '骨尸'의 '尸'는 /si/로 읽혀서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朽'의 고구려 새김이 중세국어 '곯-(膿)'과 관련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그 원형을 '곯-<*고 ㅎ-<고로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것은 이름씨 '고롬(膿)'이 '고 +(ㅗ)+ㅁ'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骨尸'는 '朽'를 뜻하는 고구려말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낱말은 소리의 바뀜과 더불어 뜻 범주도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나무가 썩은 상태'를 뜻하던 낱말이 '동물의 육질이 썩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그 범주가 옮겨진 것이다.
∴ 骨尸押 /kurusi-kusi/
荒壤縣 本高句麗骨衣奴縣 景德王改名 今 壤縣
이 자료에서 '荒-骨衣' 및 '壤-奴'의 대응을 얻을 수 있는데, 우선 '壤-奴'의 대응은 다음과 같이 지명자료에서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난다.
槐壤郡 本 高句麗 仍斤內郡
於斯內縣 (一云 斧壤)
黑壤郡 (一云 黃壤郡 )本 高句麗 今勿奴郡
穀壤縣 本 高句麗 仍伐奴縣
休壤郡 (一云 金惱)
이들 자료에서 '壤', '城'을 뜻하는 고구려말에 해당하는 표기자가 '內, 奴, 弩, 惱' 등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낱말의 의미에 대하여 이기문(1972), 유창균(1980), 이병선(1975) 등에서는 중세 및 현대국어 '나라(國)', '누리(世)', '내(壤, 土)' 등의 동원어임에 동의하고 있으며, 천소영(1990:74)에서는 하늘(天)에 대칭이 되는 막연한 땅(壤)이나 세상(世上)을 나타내는 말로, '川'을 뜻하는 고대국어와 동음어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글자들이 어떻게 읽혔는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內 泥微 nw d nw d nw nu i
弩 泥魚 na no na na 노/누
奴 泥魚 na no na na 노
惱 泥宵 n -- naw nau 노
첫소리가 /n/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홀소리가 각 글자마다 차이가 있다. '內, 惱'와 '奴, 弩'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큰 것으로 모인다. 최남희(1999ㄱ)의 논의결과에 의하면 '內'의 상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l/이며, 중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i/이다. 위의 고구려지명 표기에서 나타난 음 대응을 같거나 거의 비슷한 발음의 표기라고 전제한다면 '奴', '弩'는 상고음 기층일 때 고구려한자음은 /na/일 것이므로 '內'와 '惱'는 /nu/로 재구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같은 말의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한 표기로 본다. 이로써 '壤, 土'를 뜻하는 고구려말 /na/, /nu/를 재구할 수 있다.
'骨衣'에 대하여, 경덕왕의 고친이름은 '荒'으로 되어 있고 고려초 지명은 ' '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경덕왕의 개명의 경위에 여러 가지 임의성이 개입된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임의로 반대되는 뜻의 글자로 써서 바꿔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창균(1980:301)에서는 고려초 지명 ' '의 중세국어 '걸-(肥)'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 '이 원래 뜻일 수도 있고 '荒'이 워래 뜻일 수도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荒'이 더 가까운 시기의 개명이다. 글쓴이는 '荒'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이 '骨衣'로 표기된 것으로 본다.
'骨'은 고구려한자음 /kuru/임을 앞에서(12) 밝혔고, '衣'의 당시음을 추적해 보겠다.
衣 影微 i d i r j r i 의
이와 같은 상고음의 기층을 반영했다면 여는 홀소리와 끝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는 그 중심홀소리가 [ ]이므로,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에 따라 /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 글자가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 /의'로 읽히는 것은 중고음의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자료에 상고음의 고층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1), 한자음의 [t]끝소리는 처음 받아들일 때 입성으로 나지 못하고 뒤에 홀소리를 붙여서 /tV/로 소리났음을 밝혔다. 그러한 흔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述川郡 (一云 省知買)
單密縣 本武冬彌知
玄雄縣 本百濟未冬夫里縣
加知奈縣(一云加乙乃)
바로 이러한 /tV/의 흔적이 일부 한자들에 남아 있음을 상기할 때 '骨'의 고층음은 /kutu/가 된다. 또한 '衣'의 상고음 입성끝소리 [d], [r]를 받아들여 고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때, 이 글자의 발음은 / r /가 되므로, '骨衣'를 그러한 음대로 읽게 되면 /kut r -/가 된다. 한편 신라말 표기자료인 '居柒夫(或云荒宗)'에서 '居柒'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것이 고구려말 '骨衣'와 같은 어휘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임병준(1999)에서 논의된 것처럼 't→ /-i,j'의 센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나지 않은 고구려말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며, 고대국어에서 '荒'을 뜻하는 그림씨 줄기가 센입천장 붙갈이소리 / /의 생성으로 인하여 '/kut r -/>/k ir-/'로 변화해 갔음을 보여 준다. 이는 다 같이 중세국어 '거츨-'에 이어지는 고대국어로 해석된다.
∴ 骨衣奴 /kut (r )-na/
功成縣 本高句麗功木達縣 景德王改名 今獐州;功木達(一云熊閃山)
이기문(1968)에서는 '熊'과 '功'의 대응을 추출하고 /ko /으로 읽었고, 박병채(1968), 및 유창균(1980:307)에서는 '功木'이 '熊'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아 /ko mok/, /komo/로 읽어서 중세국어 '곰, 고마(熊)'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하였다. 이는 천소영(1990:121∼123)에서 군왕을 일컫는 최상의 호칭으로 '神'의 의미까지 가지는 것으로 논의되었다.
'熊'에 대응하는 /kVmV(k)/ 어형은 여러 문헌의 표기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용비어천가>의 '고마 (熊津)'을 비롯하여 [일본서기](14, 26)의 '久麻那利, 久麻怒利'를 발견할 수 있으며, 중국측 사서에서도,
"창려에 험독현(險瀆縣)이 있다.…조선왕의 옛 도읍이다."
"(백제의) 다스리는 성은 '고마(固麻)'라 부르고 읍은 '담로'라 이른다. 중국어로 군현과 같다."
"(백제는) 그 도읍을 '거발성'이라 하고, 또한 '고마성(固麻城)'이라고도 한다."
과 같이 나타난다. 또한 <호태왕 비문>에 '古模耶羅城'으로 나타난 것도 장세경·최병선(1997)에서 이 자료와 동일지명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또한 지리지의 지명자료에서도,
龍山縣 本古麻山
熊神縣 本熊只縣
甘蓋縣 本古莫夫里
과 같이 나타나서 그것이 고대 삼국에 공히 존재한 낱말이었음이 실증된다. 이로써, '熊, 神, 龍' 등의 뜻을 가진 고대국어 낱말이 '功木', '古模', '固麻', '古麻', '熊只', '甘蓋', '古莫'으로 표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이들 표기자의 분석을 통하여 이 낱말의 당시 모습을 복원해보도록 하겠다.
功 見東 ku ku kew k
木 明屋 muk muk meuk m k 목
古 見魚 ka ko k ka 고=固
模 明魚 mwa m mwa mua 모
麻 明歌 mwa m mrwa meai 마
只 章支 k eie cie tjie c e 지
甘 見談 kam k m kam kam 감
蓋 見泰 kad kab/kad kar kai 개
莫 明模/鐸 mwa /-k ma /-k mwa /-k mua/mak 막
여기서 '功'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 /으로 볼 수 있으며, '木'은 /muku/로 볼 수 있다. '功木'에서는 / /은 무시되어 /kumuku/가 된다. 한편 '古模', '固麻', '古麻', '熊只', '甘蓋', '古莫'은 상고음 기층 고대한자음에 의해 각각 '古模/kamaka/', '固麻/kama/', '古麻/kama/', '熊只/kamaki/', '甘蓋/kamaka/', '古莫/kamaka/'로 해독한다. 이를 종합해 볼 때 '熊, 神, 龍' 등의 뜻을 가진 고대국어 낱말은 /kamaka/, /kumuku/, /kama/의 세 가지로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kama/는 뒤의 /k/이 탈락된 어형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므로 /kamaka/, /kumuku/가 원래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 功木達 /kumuku-tara/
巨黍縣 本高句麗駒城縣 景德王改名 今龍駒縣;駒城(一云滅烏)
駒城(一云滅烏)의 자료에서 '駒'와 '滅烏'의 대응을 얻는다. 앞서 여러번 지적되었듯이 '城'에는 고구려말 '忽/kuru/'가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는 '滅烏忽'에서 '忽'이 생략된 표기일 것이다. '滅烏'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滅 明月 miw t mi t mjiwat m at 멸
烏 影魚 a o a a 오
중국 한자음이 우리말에 반영될 때 두입술소리 아래에서는 여는홀소리 [i]가 흡수되어 없어지고, 뒤의 중심홀소리 [a], [ ]는 합구음 여는홀소리 [w]와 끝소리 [t]에 영향을 입어 그 자리가 위로 끌려가서 / /로 반영된다.(3) 따라서 '滅'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m r /가 된다. '烏'는 세 분의 재구음이 중심홀소리가 /a/인 것으로 되었으므로 다수의견을 좇아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 /a/로 본다. 여기서 상고음 끝소리의 고층이 반영되었다면 /aka/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駒'의 중세국어 새김은 ' 야지'인데, 이는 유창균(1980)에서 지적되었듯이 ' (馬)+아지(幼)'의 합성어로, 고구려말에서도 이러한 합성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렇다면 '烏'는 중세국어 '-아지'에 해당하므로 고층음의 반영이 나타나 /aka/를 표기한 것임이 분명하다.
한편 '滅/m r /'의 끝홀소리 / /는 뒤에 홀소리가 이어지면 그에 의해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므로 이에 따라 '滅烏'는 고구려말 /m raka/를 표기한 것으로 분석한다. 여기서 '작음, 어림'을 뜻하는 중세 및 현대국어 뒷가지 '-아지'가 고대국어의 고구려말에서도 존재하였으며, 그것이 /-aka/의 형태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느 시기엔가 뒤에 /i/가 덧붙기 시작하여 그에 따라 센입천장소리되기에 의해 /-a i/로 변화해 왔음을 논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馬)'을 뜻하는 고구려말 /m r /와 '작음, 어림'을 뜻하는 고구려말 뒷가지 /-aka/ 및 이들의 합성어 /m raka/(駒)를 재구한다.
∴ 滅烏(忽) /m raka-kuru/
曲城郡 本高句麗屈火郡 景德王改名 今臨河郡
유창균(1980:342)에서는 고친이름의 '曲'의 새김이 '屈火'에 대응한다고 설명하고 /kub l/로 해독하였다. 또한 앞서(3) '唐嶽縣 本高句麗加火押 憲德王置縣改名 今中和縣'의 기록으로부터 '唐(→中)'이 '加火'에 대응함을 지적하고 '火'는 그 새김을 빌린 표기로서 중세국어 '가온 '에 해당된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분석의 방향을 이 자료에 적용시켜 '曲'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屈火'를 추출할 수 있다. 앞에서(1) 검토한 고구려 지명의 '城'과 '忽'의 대응은 무려 49회로 나타나 있어서 예외로 나타난 것들도 '忽'이 생략된 표기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이 자료에서도 '曲城'이 원래 지명에 대한 충실한 한역이라면, 원래지명은 '屈火忽'이었어야 하는 것이다. '火'는 '城'의 의미가 아니라 '평원'을 뜻하는 어휘에서 '취락지', '읍락'을 뜻하는 말로 굳어진 것이다. '城'을 뜻하는 고구려말 '忽/kuru/'은 분명한 대응을 보여주고 있는데 반해, 백제의 '夫里'와 신라의 '伐'이 '城'과 규칙적인 대응을 보여주지 않는 사실은 고대국어에서 고구려말 '忽'과 남방의 '夫里', '伐' 등이 동의어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고 해석된다. 즉 '曲城'을 충실한 한역으로 볼 때 '屈火'는 '屈火忽'에서 '忽'을 생략한 표기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로써 '屈火'는 곧 '曲'을 뜻하는 고구려말임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다음의 자료에서도 입증된다.
河曲(一作西)縣 婆娑王時 取屈阿火村置縣 <삼사34>
梁州阿曲(一作西) 又云 求佛 又 屈弗 <유사5>
'火'는 차자표기에서 새김으로 읽는 것이 보편적이었음은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으므로 고구려말 새김은 '伐', '弗'의 발음 /p r /, /p r /로 읽는다. 여기서는 '又云 求佛 又 屈弗'의 자료에 따라 /p r /로 본다. '屈' 역시 새김으로 읽는 것이 온당할 것이므로 중세국어 새김 '굽-'에 의해 /kup r /를 추정하게 된다.
∴ 屈火(忽) /kup r -(kuru)/
嘉平郡 本高句麗斤平郡;斤平郡(一云 平)
유창균(1980:323)에서는 /k r-b r/로 읽어 중세국어 ' -( )'에 이어지는 낱말의 표기로 보았고, 천소영(1990:67∼71)에서는 '大邑'을 뜻하는 고대국어 낱말 ' '의 표기로 보았다. 둘 다 '斤'이 음차자로 쓰였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大邑'의 뜻을 가진다는 근거가 이 자료에서 나타나지 않으며, 그러한 개연성도 희박하다. '斤平'과 ' 平'의 대응은 동일지명에 대한 다른 표기로 '斤'과 ' '의 대응이 설명됨으로써 고구려말의 어휘를 찾아낼 수 있는데, 이러한 대응은 발음의 대응이 아니라, 이 두 글자의 새김이 관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斤'은 음차자로도 쓰이고, 또한 훈차자로도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斤'이 쓰인 예를 보면 고구려지명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槐壤郡 本 高句麗 仍斤內郡 景德王 改名今 槐州
黃驍縣 本 高句麗 骨乃斤縣 景德王 改名今 黃驪縣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東墟縣 (一云 加知斤)
大楊管郡 (一云 馬斤押)
이는 이 글자가 차자표기에 자주 쓰이던 글자임을 말해주며, 또한 그 쓰이는 자리도 자유로왔음을 알 수 있다. 백제, 신라지명에서도
臨汀縣 本斤烏支縣 景德改名 今迎日縣
武邑縣 本百濟武斤村縣
과 같이 나타나는데, 이 글자의 해독은 '文峴縣 (一云 斤尸波兮)'에서 음차자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고, 아직 모든 자료에서 명확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 글자에 대하여는 음차와 훈차의 두 가지로 두루 쓰였다고 할 수 있으며, 이 자료에서는 새김을 빌어 쓴 것으로 본다.
'斤'에 대하여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새김은 ' ㅎ'이다. 이는 고대국어에 /n r si/로 분석된다. 그것은 뒤에 분석할 고구려말 자료 '於斯內縣(一云 斧壤)'에서 '於'의 새김 /n r /와 '斯'의 음 /si/가 이어져 /n r si/로 해석되는데, 그것이 '斧'의 뜻을 가진 낱말이었음에서 확인된다. '平'은 '火, 伐, 夫里' 등으로 표기된 '平原'을 뜻하는 고대국어 /b r /로 해독한 유창균(1980:322)에서의 견해를 수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다음의 자료를 검토하면 그것이 /p r /의 음상을 가진 것일 가능성이 있다.
波平縣 本 高句麗 波害平吏縣
平淮押縣 (一云 別吏波衣)
別 月 b iwat b i t biwat b at 별
'別'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滅/m r /'에서와 같이 /p r /로 재구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平'의 해석에도 적용시켜 /p r /로 읽는다. 이로써 '斤'과 ' '의 고구려 새김이 동음어로서 /n r si/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 '의 새김과 관련하여 현대국어 '나란하-'에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명확하지는 않다. 뒷날의 과제로 미루어 둔다.
∴ 斤平( 平) /n r si-b r /
黑壤郡(一云黃壤郡) 本高句麗今勿奴郡 景德王改名 今鎭州
'黑', '黃'과 '今勿'의 대응에서 천소영(1990:145)에서는 중세국어 '거믄 차할 비단(金黃)<역下3>'을 들어 고대국어의 '거믈-'은 '黑'은 물론 '黃'도 함께 나타낸 낱말이라는 견해를 폈다. 또한 유창균(1980:288∼289)에서는 '今勿內郡 (一云 萬弩)<삼사37>'으로부터 '萬'의 새김과도 동음어였을 것은 지적하였다. 앞서 분석한 대로 '奴'는 음차자로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 /na/를 표기한 것으로, 하늘(天)에 대칭이 되는 막연한 땅(壤)이나 세상(世上)을 나타내는 말에서 '평지의 읍락'을 뜻하는 고대국어로 해석된다. '今勿'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今 見侵 ki m ki m ki m k m 금=金
勿 明物 miw t miw t mjw t m w t 믈
이러한 상고음의 기층을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각각 /k m /, /m r /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m /의 겹침은 앞의 것이 무시되는 경우가 차자표기에서 일반적이므로 '今勿'은 /k m r /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는 적어도 '黑'의 의미에서는 중세 및 현대국어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낱말이다.
∴ 今勿奴 /k m r -na/
城 本乃勿忽
' '과 '乃勿'의 대응과 관련하여 이기문(1968)에서는 /nam l/로 읽었고 박병채(1968)에서는 /naimul/로 추정하였으며, 천소영(1990:152)에서는 /naimr/로 해독하였다. 또한 손명기(1993:53)에서는 /namar/, 유창균(1980:347)에서는 /nam l/로 분석되었다. 여러 선학들이 다 같이 ' '의 새김이 '乃勿'의 발음과 같았음에 동의하며, <향약구급방>의 '鉛俗云那勿'에 이어지고 중세국어 '납'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乃勿'의 '勿'은 앞서(18) 분석했듯이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 /m r /이고, '乃'의 한자음을 살펴보겠다.
乃 泥之 n ne n n
상고음 제1류 '之職蒸'부의 중심홀소리 [- -]는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 /로 반영된다.(최남희 1999ㄷ:148) 따라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n /로 추정된다. 그런데, 다음의 표기자료에서 이 글자의 당시음이 이러한 원칙에서 벗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進乃郡(一云進仍乙)
加知奈縣(一云加乙乃)
여기서 '乃'가 '奈', '仍乙'과 통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적어도 차자표기에서 '乃'의 소릿값은 /n /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향찰표기에서 '乃'는 /na/, /n /로 읽힌다.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찬기)⇒ 누니 모 올 花判야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史(모죽)⇒아 나토히시온 즈시
史沙叱望阿乃(원가)⇒ 즈시사ㆆ 라나
無量壽佛前乃(원왕)⇒ 無量壽佛 前아
淨戒叱主留卜以支乃遣只(참회)⇒ 淨戒ㆆ主루 디니히 곡
글쓴이는 이러한 현상이 상고음 기층을 반영한 고대한자음 /n /가 우리말 안에서 어떤 변화를 겪은 결과, /na/로 토착화되어 지명 및 향찰표기에 소릿값 /na/로 반영된 것으로 본다. 이는 후대에 중고음 [n i]가 침투하기 쉬운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乃'의 고구려한자음은 /na/로 추정된다.
결국 '乃勿'은 /nam r /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乃勿忽 /nam r -kuru/
瀑池郡 本高句麗內米忽郡 景德王改名 今海州;內米忽(一云池城 一云長池)
'瀑池', '池城', '長池'로 표기된 데서 공통요소 '池'를 추출할 수 있다. 이는 '內米'의 발음과 '池'의 새김이 대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견해는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nami/, /naimi/ 등으로 읽고 '池, 長池'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의 표기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유창균(1980:316)에서는 /narm l/로 해독하고, '大水'의 뜻을 가지며 중세국어 '날믈'에 이어지는 낱말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內'의 고구려한자음을 /nar/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앞서 '14'에서는 '壤', '城'을 뜻하는 고구려말에 해당하는 표기자가 '內, 奴, 弩, 惱' 등으로 나타났던 사실을 들어, 그 발음이 상고음을 기층으로 살펴볼 때 고구려지명 표기에서 나타난 음 대응을 같거나 거의 비슷한 발음의 표기라고 전제한다면 '奴', '弩'는 상고음 기층일 때 고구려한자음은 /na/이고, '內'와 '惱'는 /nu/로 재구됨을 설명하였다. 또한 '大'의 뜻을 가진다는 주장의 근거가 '漢城:乃忽', '奈吐:大堤'의 지명표기 자료인데, 그렇다면 '內', '乃', '奈'가 다 같이 상고음 끝소리 [-d]류를 가지고 있어야만 /nar/을 재구해 낼 수 있다.
內 泥微 nw d nw d nw nu i
奈 泥月 nad n d nar nat 나
乃 泥之 n ne n n
여기서 '內'는 두 분 학자가 [d]끝소리를 부인했으며, '乃'는 아무도 [d]끝소리를 재구하지 않고 오히려 [ ]류의 끝소리를 재구했다. 이는 이 낱말의 표기에 상고음 끝소리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內'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nu/가 된다.
'米'에 대해서는 앞서 '米 明脂 mied mier mer miei 미'와 지명자료에서 '彌', '買', '勿', '馬', '首'의 통용을 검토해 볼 때 지명표기에서는 /r/ 끝소리를 유지하고 있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상고음 지운(脂韻)의 글자들은 중심홀소리에 따라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므로(7), 이에 따라 '米'의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m r /로 재구된다. 결국 '內米'는 고구려말 /num r /를 표기한 것이며, 그 의미는 '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水'를 뜻하는 고구려말 '買', '勿'이 '內'의 뒤에 결합된 형태로 분석되는데, '內'는 앞서 논의한 대로 '平原'을 뜻하는 고대국어 낱말이었으므로 '內米'는 '평지에 있는 물'을 의미하게 된다. 즉 이 낱말이 '池'를 뜻하는 고구려말이었는데, 중세국어 '못(池)'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멸어로 생각된다.
∴ 內米忽 /num r -kuru/
奈堤郡 本高句麗奈吐郡 景德王改名 今堤州;奈吐郡(一云大堤)
이 자료에서는 '奈吐'와 '大堤'의 대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음의 자료에서도 '堤'와 '吐'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
長堤郡 本 高句麗 主夫吐郡
(一作 棟) 縣 本 高句麗 束吐縣
上縣 本 高句麗 吐上縣 (고구려)
漆 縣 本漆吐縣 (신라)
'吐'자는 이처럼 '堤, '와만 대응되고 다른 곳에 쓰인 예를 찾을 수 없다. 이로써 '大'에 대응하는 고구려말 '奈'와, '堤(≒ )'를 의미하는 고구려말 '吐'를 추출해 낸다. '堤:吐'에서 박병채(1968)에서는 /to/로 읽고 중세국어 '터(基)'에 이어지는 낱말로 보았으며, 유창균(1980:339)에서는 /d r/로 읽고 중세국어 '언덕'의 '-덕'과 유사했으리라 추정하였다. 또한 북한의 류렬(1990)에서도 '뚝, 덕'과 관련된 낱말로 해석하였다. '堤'의 새김이 '吐'의 발음에 대응한다는 점에서는 여러 학자들간에 이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글자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겠다.
吐 透魚 t a t o t a t a 토/투
고구려말에서 기(aspirated)의 있고 없음에 의한 닿소리의 변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기음 터짐소리 [t ]는 무기음 터짐소리 /t/로 반영된다. 만일 입성끝소리 [ ]를 반영했다면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taka/였을 것이다. 이렇게 상고음 끝소리 [ ]를 반영한 것으로 보는 이유는 '堤, '는 지명자료에서 반드시 '吐'와 대응하고 있어서 예외가 없다는 점과, 그것이 중세 및 현대국어 '둑, 뚝, -덕'에 이어지는 낱말로 끝소리에 /k/를 가지기 때문이다.
∴ 奈吐 /na-taka/
海皐郡 本 高句麗 冬 (一作 音)忽郡 景德王改名 今鹽州;冬音忽 (一云 鹽城)
유창균(1980:314)에서는 /t r m-k l/로 읽고 분명한 의미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冬音忽 (一云 鹽城)'과 다음 자료를 비교 검토하여 보면 의미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冬音奈縣 (一云 休陰)
이 '冬音'은 향찰 표기체계에서 나타나는 끝소리덧적음이 쓰여진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 鹽', '冬音', '休陰'이 다 같이 /-m-/ 끝소리를 가지는 글자이며, 향찰 표기에서 '音'으로 앞 글자의 새김에 대한 끝소리덧적음이 쓰인 예가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모죽)⇒ 모 거시사 우롤 이 시름
嫉妬叱心音至刀來去(수희)⇒ 嫉妬ㆆ 니르도오가
吾里心音水淸等(청불)⇒ 우리 믈
普賢叱心音阿于波(총결)⇒ 普賢ㆆ 아우바
吾衣身不喩仁人音有叱下呂(수희)⇒ 나 몸 안딘 사 이시아리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모죽)⇒다봊ㆆ 굴 헤 잘 밤 이시아리
年數就音墮支行齊(모죽)⇒ 年數 나 디히니져
伊留叱餘音良他事捨齊(총결)⇒ 이루ㆆ 나마 녀느 일 리져
火條執音馬(광수)⇒ 블긴 쥠마
誓音深史隱尊衣希(원왕)⇒ 다딤 깁흐신 尊 희
法界餘音玉只出隱伊音叱如支(참회)⇒ 法界 나목 나니 ㅅ다
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혜성)⇒ 三花ㅣ 오 보시올 듣고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찬기)⇒ 구룸 주 간 지하
菩堤叱菓音烏乙反隱(청전)⇒菩堤ㆆ 여름 오
이렇게 해석하면 곧 '冬音', '休陰'은 앞 글자의 새김이 뒤의 끝소리덧적음과 연결되어 있는 형태이며, 그 어형의 원모습은 ' 鹽'의 발음이 된다. 즉 여기서 '冬'의 새김과 '休'의 새김이 고구려말에서 동음어였거나 비슷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休'의 다음과 같은 쓰임에서 중세국어 '쉬-(休)'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休壤郡 (一云 金惱)
'休'와 '金'의 새김이 같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자료인데, 이는 원형 /sirV/를 추출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설명된다. '音', '陰'의 고구려한자음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 m /로 추정되고, 향찰에서처럼 /-m-/의 표기로 쓰인 것으로 본다면 '休音'은 곧 /sirVmV/의 표기가 된다. 이것이 '冬音'과의 다른표기로 쓰였다는 점을 통해 '겨울'을 뜻하는 고구려말 /sirVmV/가 도출된다. 이는 ' 鹽'의 당시 발음을 추적하여 보면 그 대응이 확연함을 알 수 있다.
禪支 ie -- d ie e 시
鹽 餘談 iam -- riam am 염
' '의 첫소리로 재구된 [ ], [d ], [ ] 등은 고구려말 음운체계상 /s/로 반영되어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si/가 되며, '鹽'은 혀옆소리 [ r], [ ] 등으로 재구한 견해를 따라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rama/로 추정한다. 따라서 ' 鹽'은 곧 /sirama/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로써 '休'를 뜻하는 고구려말 줄기 /sirV-/, '冬'을 뜻하는 고구려말 이름씨 /sirama/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두 낱말은 아마도 고구려말에서 동원어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休/siri-/'는 '>suji>sui>suj>swi'의 변화과정을 겪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冬/sirama/'는 중세국어 '겨 (冬)'에 밀려나 사멸해 버린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 鹽城 /sirama-kuru/
山縣 本 高句麗 買尸達縣 景德王改名 今未詳
이기문(1968)에서는 이 자료를 /mair/로 읽고 중세국어 '마 '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유창균(1980:332)에서는 /m s r/로 해독하고 '蒜'의 새김에 대응시켰으며, 중세국어 '마 '에 관련하여 홀소리 사이의 /s/가 /r/로 발달하여 '마 , 마 '로 변화해 갔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천소영(1990:157)에서도 /mar /로 읽고 중세국어 '마 '과 연결되는 자료로 보았다. 여러 선학들의 연구에서 확인되듯이 고구려말에서 '蒜'을 뜻하는 낱말이 중세국어 '마 '과 이어지는 형태로 존재했으며, 그것이 '買尸'로 표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買尸'의 발음을 추적함으로써 '蒜'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복원시켜 보도록 하겠다.
'尸'에 대하여는, 앞서(1, 3, 9, 13) 여러 번 분석된 것처럼 차자표기자료에서 약음차자 /rV/ 또는 음차자 /si/의 소릿값을 가지는데, '마 '과의 연관으로 볼 때 /si/는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한 것이 된다. '買'는 '5' 및 '20'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르면 /m i/와 /m r /의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뒤에(24) 자세히 논의되겠지만 도수희(1999)에서의 논증 결과에 따라 고대국어 음운변화 'r>/V__V'를 겪어서, 옛모습 /m r /가 /m i/로 변화해 간 것으로 본다. '買'의 상고음 운미는 /d/류가 아니므로 이는 변화된 모습을 반영한 것이 된다. 따라서 '買尸'는 고구려말 /m iri/를 표기한 것으로 해석된다.
∴ 買尸達 /m iri-tara/
水城郡 本 高句麗 買忽郡 景德王改名 今水州;買忽 (一云 水城)
고구려말에서 '水', '川'에 대응되고 있는 글자들은 '買' ,'勿'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 자료는 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를 확증하기 위해 다른 자료들을 들면 다음과 같다.
㉠ 川:買의 대응 예
黃武縣 本 高句麗 南川縣 景德王 改名今 利川縣;南川縣 (一云 南買)
(沂)川郡 本 高句麗 述川郡 景德王 改名今 川寧郡;述川郡 (一云 省知買)
沙川縣 本 高句麗 內乙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內乙買 (一云 內 米)
伊川縣 本 高句麗 伊珍買縣
潢川縣 本 高句麗 橫川縣 景德王 改名今復故;橫川縣 (一云 於斯買)
浚水縣 本 高句麗 深川縣 景德王 改名今 朝宗縣;深川縣 (一云 伏斯買)
狼川郡 本 高句麗 川郡 景德王 改名今因之; 川郡 (一云 也尸買)
㉡ 水:買의 대응 예
檀溪縣 本 高句麗 水谷城縣 景德王改名今 俠溪縣;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通溝縣 本 高句麗 水入縣 景德王改名今因之;水入縣 (一云 買伊縣)
㉢ 水:勿의 대응 예
德水縣 本 高句麗 德勿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 井:買의 대응 예
交河郡 本 高句麗 泉井口縣 景德王 改名今因之;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井泉郡 本 高句麗 泉井郡 景德王 改名今 湧州;泉井郡 (一云 於乙買)
이로부터 '川, 水, 井'과 '買, 勿'의 대응을 확증할 수 있는데, 이는 백제와 신라지명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나서 고대 삼국이 같은 낱말을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淸川縣 本薩買縣
泗水縣 本史勿縣<신라>
其買縣(一云林川)<백제>
즉 '水, 川'을 뜻하는 고대국어 낱말이 '買, 勿'로 표기된 것이다. 이기문(1968)에서는 /mai/, /mie/로 읽고 중세국어 '믈(水)'에 이어진다고 보았으며, 박병채(1968)에서는 /m i/로 읽었다. 또한 유창균(1980:283∼284)에서는 /m r/로 읽었으며, 손명기(1993:43∼44)에서는 /mi/로 재구하였다. '買, 勿'에 대한 상고음 자료를 살펴보겠다.
買 明支 me mre me
勿 明物 miw t miw t mjw t m w t 믈
이를 통해 살펴 볼 때 '買'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4'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支'운의 중심홀소리 [e]에 의하여 /mi/로 읽혔을 것이고, '勿'은 /m r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차자표기자료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 글자가 '米, 彌, 昧, 未, 麻' 등과 통용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內乙買 (一云 內 米 )
買召忽縣 (一云 彌鄒忽 )
昧谷縣 本百濟未谷縣
餘粮縣 本麻珍(一作彌)良縣
또한 다음의 자료를 살펴보면 이 낱말이 '驍', '宗', '馬'의 새김과도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
深川縣 景德王 改名今 朝宗縣;深川縣 (一云 伏斯買 )
買省郡 (一云 馬忽)
물론 이 자료들만 가지고 '水, 川'과 '驍, 馬, 宗'의 새김이 동음어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사한 발음을 가진 낱말이었을 가능성은 인정할 수 있다. 앞서 '5'에서는 '彌'의 고구려한자음 /m i/를 재구한 바 있으며, '15'에서 '馬'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m r /를 논증한 바 있는데, 이와 관련하여 '買'는 박병채(1968)의 논의결과와 같이 고구려말 /m i/를 표기하는 데 쓰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도수희(1985)에서 논의된 것처럼 '水'를 의미하는 고대국어 낱말이 두 가지 형태로 존재했던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勿/m r /∼馬/m r /'가 더 이른 시기의 옛모습을 보전한 형태이고, 이로부터 'r>/V__V'의 변화에 의해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m i/로 발달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水'를 뜻하는 고구려말 '買/m i/∼勿/m r /'는 중세국어 '믈(水)' 및 현대국어 '물', 그리고 현대국어 방언에서 /m /, /mi/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말임이 확인된다.
∴ 買忽 /m i-kuru/
文登縣 本 高句麗 文峴縣 景德王改名 今因之;文峴縣(一云 斤尸波兮)
'文峴縣(一云 斤尸波兮)'에서 '峴:波兮'의 대응이 다른 자료에서도 다음과 같이 여러 번 나타나므로 '文:斤尸'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
松峴縣 本 高句麗 夫斯波衣縣
三峴縣 (一云 密波兮)
猪 峴縣 (一云 烏生波衣)
平珍峴縣 (一云 平珍波衣)
이처럼 '峴'은 고구려말에서 '波衣', '波兮'의 두 가지로 표기되었는데, 이기문(1968)에서는 /p ai/, /paxe/로 읽었고, 박병채(1968)에서는 /pa i/, /pa ie/로 읽었으며, 유창균(1980)에서는 둘 다 /pa r/로 해석했다. 이 표기는 다음과 같이 '巖'과도 대응하고 있다.
孔巖縣 本 高句麗 濟次巴衣縣
城 (一云 租波衣 一云 巖郡)
따라서 '巖', '峴'을 뜻하는 고구려말이 '波衣', '波兮', '巴衣'로 표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衣'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앞서(13) 논의한 대로 / r /였고, '兮'의 고구려한자음은 역시 앞서(5) 논의한 대로 /ki/로 읽혔을 것이다. '波', '巴'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겠다.
波 歌 pwa pw pwa puai 파
巴 魚 pwa p prwa pea 파
이를 통해 볼 때 '波', '巴'의 고구려한자음은 다같이 /pa/로 반영되었을 것이다.(최남희 1999ㄷ:149∼151) 만일 '巴'의 끝소리 [ ], [ ]가 반영되었다면 이 글자는 /paka/로 읽혔을 것인데, 이에 따라 '波衣/pa r /', '波兮/paki/', '巴衣/pak r /'로 재구할 수 있다. 이는 지역방언의 차이를 표기에 반영시킨 결과로 해석된다. 여기서 그 원형에는 /k/가 있었던 것이 홀소리 사이에서 약화 탈락되는 현상에 따라 '波衣/pa r /'가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학자들이 다 같이 중세국어 '바회(巖)'에 이어지는 어휘임에 동의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이를 수용한다.
이제 '文:斤尸'의 대응에서 '文'을 뜻하는 고구려말이 '斤尸'로 표기되었음을 확증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이기문(1968), 박병채(1968), 유창균(1980), 손명기(1993) 등 여러 학자들이 '斤尸'가 오로지 음차자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데서 견해를 같이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수용하고, 그 발음을 분석해 보겠다.
斤 見文 ki n ki n kj n ki n 근
상고음 제6류 '微物文'부의 중심홀소리 [- -]는 원칙적으로 / /로 반영되는 것은 이미 앞서(13) 논의하였으므로, 이에 따라 '斤'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 n /로 재구할 수 있다. 한편 최남희(1999ㄴ)에서는 '斤尸波兮'의 '尸'가 약음차자로 /ㄹ/을 표기한 것임을 증명하였다. 이를 수용하여 약음차자 /rV/의 표기로 본다. 약음차된 '尸/rV/'가 이어지므로 '근/k n /'의 끝소리는 무시되어 '斤尸'는 곧 /k r /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는 여러 학자들이 같은 견해를 보이는 것처럼 [계림유사]의 '乞', <조선관역어>의 '根' 및 중세국어 '글(文)'에 이어지는 낱말이다.
∴ 斤尸波兮 /k r -paki/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 景德王 改名今 洪川縣
유창균(1980:322)에서는 /b r k-m r/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프르-(綠)'과 이어지는 어휘로 보았다. 이는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논의되었다. 이러한 견해에 기대어 보면 '伐力'은 고친이름의 '綠'의 새김에 대응하고 나머지 '川'은 '驍'에 대응한다. 그런데 경덕왕의 고친이름들을 살펴 보면 '驍'자를 특별한 의미 없이 덧붙인 듯한 경우를 찾을 수 있다.
靑驍縣 本昔里火縣 景德改名 今靑理縣
玄驍縣 本推良火縣(一云三良火)
黃驍縣 本 高句麗 骨乃斤縣 景德王 改名今 黃驪縣
이는 곧 개명에 있어서 이 글자가 중국식으로 좋은 뜻을 가진 글자이기 때문에 곧잘 붙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고 뒷가지 '川'의 음상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고구려지명의 '買省郡 (一云 馬忽)'에서 '水, 川'을 뜻하는 낱말과 '馬'를 뜻하는 낱말이 서로 동음어이거나 혹은 유사한 발음을 가졌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驍' 역시 '날랜 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앞서(15, 24) 분석한 '川(→買/m i/)'와 고구려말 '馬(→滅/m r /)'와의 연관성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驍:川'의 대응관계가 성립되고, 자연히 '綠'을 뜻하는 고구려말 '伐力'이 추출된다. '伐'은 앞서(3)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 /p r /로 추정하였고 '力'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力 來職 li k li k li k l k 녁/력
상고음 제1류 '之職蒸'부의 중심홀소리 [- -]는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 /로 반영되는 원칙(19)에 따라 이 글자의 고구려한자음은 /r k /로 읽혔을 것이다. 닿소리의 겹침은 앞의 것이 무시되는 경우가 차자표기에서 일반적이므로, '伐力'은 /p r k /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중세국어 '파라-(綠)', '프르-(綠)'에 이어지는 낱말로 생각된다. 특히, 전기 고대국어의 /k/는 '/k/, /h/'로 분화된 것을 앞서(2.2.2) 논의하였는데, 중세국어 '파라-'는 /p r k /의 /k/에서 연유된 것임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즉 '파라+(爲)'의 합성이 아니라 원래 한 줄기였던 것이 'k>'와 'k>h'의 두 가지 변화과정을 겪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 伐力川 /p r k -m i/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景德王 改名今未詳
'松'의 고구려말 새김이 '夫斯', '扶蘇'로 음차표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斯'의 발음은 앞서(7) 논의한 것처럼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si/였다.
夫 / 魚 b iwa /p- b iwo/p- bjwa /p- p wa/b- 부
扶 魚 b iwa b iwo bjwa b wa 부
고대국어에서 기의 있고없음에 의한 닿소리의 대립은 용인되지 않으므로, '夫'의 두 가지 발음 [p -]든 [p-]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같았을 것이다. 상고음 '魚'운의 중심홀소리 [a]는 /a/로 반영되고, 여는홀소리는 무시된다. 따라서 이 글자들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a/였을 것이다.
蘇 心魚 sa so sra sa 소
역시 이 '蘇'자의 고구려한자음도 /sa/였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지명자료에서 그리 간단하지 않은 상황을 찾아볼 수 있다.
㉠ 蘇山縣 本率已山縣
來蘇郡 本 高句麗 買省縣
蘇泰縣 本百濟省大兮縣
㉡ 蓋蘇文或云蓋金<삼사 열전>
肖古王(一云素古)<삼사 백제>
素那(或云金川)
㉠에서 '蘇'가 '率已', '省'과 음차로 대응되며, ㉡에서는 '金'의 새김과 '素', '肖'의 발음이 대응된다. 이는 도수희(1999:31)에서 지적되었듯이 고대국어에서 '/suri/>/sui/'였던 낱말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대국어 표기자료의 내적 분석을 통해 볼 때, 이 글자의 상고음 홀소리 [a]는 /u/로 변화해 온 것으로 판단되며, 이에 따라 '蘇'의 고구려한자음은 /su/로 추정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松'을 뜻하는 고구려말은 '夫斯', '扶蘇'로 음차표기되었으며, 이는 각각 /pasi/, /pasu/를 표기한 것이 된다. 역시 지역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낱말은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 그리고 천소영(1990)에서도 중세국어 '봇(樺)' 또는 '봇나모'의 전신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 夫斯達 /pasi-tara/
廣平縣 本 高句麗 斧壤縣 景德王 改名今 平康縣;於斯內縣 (一云 斧壤)
'壤'과 '內'의 대응은 앞에서(13) 밝혔으므로 '斧'와 '於斯'의 대응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즉 '斧'의 고구려말 새김이 '於斯'로 표기된 것이다. 이기문(1968), 박병채(1968)에서는 사멸어로 처리되었고 유창균(1980:307)에서는 일본어 [ono]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였다. '斯'는 앞서(7, 11) 살펴본 대로 지명자료에서나 향찰표기에서나 음차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i/이다. 그런데, 이 '於'자는 향찰에서 훈독과 음독의 두가지로 사용되고 있는 점에 주목된다.
於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도천)⇒ 어드릐 올 慈悲야 근고
於內人衣善陵等沙(수희)⇒ 어 사 善陵 사
此地 捨遣只於冬是去於丁爲尸知(안민)⇒ 이 리곡 어드리 가 디
'於'는 한문에서 주로 '위치·방위'를 나타내는 어조사로 쓰이는데, 이에 대한우리말 새김은 <유합>, <석천>, <왜해> 등에 모두 '늘 어(於)'로 나와 있다. 최남희(1997:145∼146)에 따르면 고대국어에 위치자리토씨로 ' /늘'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고, 다음의 중세국어 자료는 그 화석일 것으로 논의하였다.
蛟龍은 삿기 혀디나가고(蛟龍引子過)<두초七8>
보내여 너 주마(送將來與 )<노下17>
이러한 용례에 따라 '於'의 15세기 새김은 ' '로 볼 수 있다. 이 글자를 새김으로 읽는 관습은 후대에도 이어져서 ' 時調'는 '엇시조'라고 읽지만 사람이름 '李 同'은 '이늦동'으로 읽는다. 또한 서울 효제동의 옛이름 '느릿골'은 '於義洞'으로 나와 있어서 '於'를 새김으로 읽을 충분한 근거가 된다.(성원경 1993:501∼502) 이를 전기고대국어의 음운체계에 따라 열린음절로 발음하면 /n r /가 된다. 이로써 고대국어의 위치자리토씨에 /n r /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斧'의 중세국어 새김은 '도 '이다. 그런데, 같은 뜻을 가진 글자 '斤'이 <자회>와 <유합>에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斧 도 부<자회> 斤 근 又斧斤, 又十六兩爲一斤<자회>
斧 도 부<유합> 斤 도 근<유합>
여기서 '斤'의 새김 ' '은 이 글자의 두 번째 뜻인 '무게의 단위'에 대한 우리말 새김이 아니라, 원뜻 '도끼'에 대한 옛 새김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 '이라는 낱말이 15세기 이전에는 중세국어 ' ㅎ(刃)'이나 지금말 '날(刃)'과는 좀 다른 의미범주를 가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자의 새김은 현실언어보다 보수적이어서 이전 단계의 옛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회>가 전한 ' '이라는 새김은 아마도 이전 시기의 유습이 남아 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낱말은 중세 및 현대국어에서는 '도끼'의 뜻이 아니라 '刃' 즉 '칼이나 창 따위의 날카롭게 벼린 부분'을 뜻하는 것이지만 15세기 이전의 국어에서는 그보다 의미범주가 넓어서 '날붙이'를 일컫는 두루이름씨로도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전 단계로 거슬러 가면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데, 고려어의 흔적이라 할 수 있는 속요 '사모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호 도 히언 / 낟가티 들리도 업스니 다.<악장가사>
이를 현대국어로 옮겨보면,
호미도 날붙이건마는(날이 서 있지만) /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과 같이 되어, 고려어에서 '호 '의 상위어가 ' ㅎ'이라는, 즉 '호 ∈{ ㅎ}'이라는 낱말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어에서 ' ㅎ'은 '날이 서 있는 쇠붙이'를 뜻하던 두루이름씨였으며, 이는 고대국어에서도 그러했을 가능성을 확신하게 되는 증거이다.
이 '斧'와 '於斯'의 대응은 그러한 새김의 대응인 것이다. '於斯'는 훈차자 '於'의 고대국어 새김 /n r /에 음차자 '斯/si/'가 이어져서 /n r si/를 표기한 것으로, '斧'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이다. 이 낱말이 의미범주가 변하여 중세국어 ' ㅎ(刃)'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것은 'n r si>n lsi>n lh'의 음운변화까지 추출할 수 있어서, 중세국어 'ㅎ' 끝소리 낱말들의 'ㅎ'이 고대국어 /s/에서 발달한 것을 증명하게 되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는 고친이름에서 나타난 '廣'의 중세국어 '너르-, 넙-'과도 관계가 있다.
∴ 於斯內 /n r si-nu/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景德王 改名今 陽城縣
고구려말의 색채어 '赤:沙伏'이 추출된다. 이는 다음 자료에서도 찾을 수 있어서 고대국어에 '赤'을 뜻하는 그림씨가 '沙伏', '沙非', '所比'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다.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赤鳥縣 本百濟所比浦縣
유창균(1980:292)에서는 /sap r/로 읽고 중세국어 '새 '과 이어진다고 하였다. 각 글자의 발음을 알아보겠다.
沙 生歌 sa s sra eai 사
伏 職 b iw k b iuk/- bjw k/- b w k 복
所 生於 sa sio sia a 소
非 滂微 piw d piw r pjw r p w i 비
比 / 脂 b ied b i r bjier b ei/p- 비
'沙'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a/이고, '伏'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 k /였을 것이다. 따라서 '沙伏'은 /sap k /를 표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 표기에서 끝소리 /-k /는 무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표기 '沙非斤乙'과 '所比浦'에서 '斤乙'과 '浦'는 다 /k/첫소리를 가지는 낱말로, 같은 닿소리가 겹치면 앞엣것이 없어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非, 比'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다같이 /p r /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赤'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의 원형을 /sap r k /로 재구한다. 이것은 지금말에서처럼 '밟-', '읊-'과 같이 고구려말에서도 낱말이 이어질 때 끝닿소리가 탈락되는 현상이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즉 '沙伏忽'은 /sap -kuru/로 /-r k /가 탈락된 어형이고, '沙非斤乙'과 '所比浦'는 /-k-/가 겹쳐 탈락된 어형이라고 설명되는 것이다.
이는 [계림유사]의 기록 '紫曰質背'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낱말로 해석된다. 송나라 사람 손목의 개봉음 체계상 이 기록은 / i t-puai/를 표기한 것이고(강신항 1980:89), 이는 중세국어 '싯븕-'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沙伏', '沙比', '所比'는 다 같이 /sap r k /의 변이형태로서, '赤'의 뜻을 가진 고대국어이다. 또한 도수희(1984:52, 106)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이는 '沙'와 '伏'의 합성어로서, 중세국어 '새-(東, 新, 陽)'와 이어지는 낱말 /sa/에 '赤'을 의미하는 낱말 /p r k /가 합성된 낱말의 표기로 해석된다.
∴ 沙伏忽 /sap (r k )-kuru/
淸風縣 本 高句麗 沙熱伊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박병채(1968)에서는 /sanj li/로 해독하였고, 유창균(1980:323)에서는 /san li/로 읽었다. 최남희(1995)에서는 '사 -'에 매김법 씨끝 '-이'가 결부되어, '淸風縣'의 고구려말은 '사 리 縣' 곧 '서늘한 縣'이 된다고 해석하였다.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에서 '淸'의 새김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沙熱'로 표기된 것이고, 중세국어 '사 -(凉)'과 이어지는 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沙'는 앞에서(29) 밝혔듯이 고구려한자음은 /sa/였고, '熱'의 한자음을 살펴보겠다.
熱 日月 i t i t njiat at 열
첫소리로 재구된 [ ], [n]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n/으로 반영되었을 것이고, 중심홀소리 [a]를 반영하여(최남희 1999ㄷ:174)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nara/였을 것이다. 따라서 '沙熱'은 /sanara/를 표기한 것이다. 뒤에 붙은 '伊'를 맺음법씨끝 '-이'로 본 견해를 좇아 '沙熱伊'는 /sanari/로 해석한다.
∴ 沙熱伊 /sanari/
三嶺縣 本 高句麗 三峴縣 景德王 改名今 方山縣;三峴縣 (一云 密波兮)
'波兮:峴'의 대응을 앞서(25) 밝혔으므로, '密:三'의 대응을 추출할 수 있다. 이기문(1968)에서는 이 자료를 고구려의 독특한 셈씨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이를 고구려만의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 신라지명에서
玄驍縣 本推良火縣(一云三良火)
密城郡 本推火郡
密津縣 本推浦縣
㉡ 백제지명에서
玄雄縣 本百濟未冬夫里縣
우선 ㉠에서 신라말에 '玄'의 뜻을 가지는 말이 '推良', '三良'으로 표기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여기서 '推', '三'은 훈차자로서 그 새김은 '密'의 당시 발음과 같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에서 백제말에서도 '玄'의 뜻을 가진 말이 '玄雄', '未冬'으로 표기되었음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密', '推', '推良', '三良', '玄雄', '未冬' 등으로 표기된 낱말은 고대 삼국에 공히 쓰여지던 것으로, 그 본질적인 뜻은 '三'이 아니라 상징어로서 '玄', '玄雄'의 의미인 것이다. 더욱이 '三'이 나타나는 고구려지명에는 다음과 같이 중세국어 '세, 세ㅎ(三)'에 이어지는 /sa/, /si/로 해석되는 것이 발견된다.(천소영 1990:138)
三陟郡 本 悉直國 景德王 改名今因之;悉直郡 (一云 史直)
'玄'은 단순히 색이 검다는 뜻보다는 '아득하다', '현묘하다', '영검하다' 등의 추상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伊 慶永(永一作玄)<삼사신라>'에서 '永'과 상통하는 의미로도 나타난다. 게다가 백제지명에서 '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龍', '神'(陽物)의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三峴'의 '三'은 단순한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상장적인 의미로 '신령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密'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密 明質 miw t miet miw t m et 밀
상고음 제8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한자음에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끝소리가 혀끝소리일 때는 이의 영향으로 조음점이 앞으로 당겨져 /i/로 반영되므로,(10)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miri/였을 것이다. 이는 <조선관역어>의 '龍 米立 壟' 및 중세국어 '미르(龍)'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密波兮 /miri-paki/
車城縣 本 高句麗 上(一作 車)忽縣 景德王 改名今 龍城縣;上忽 (一云 車忽)
'上'과 '車'의 대응에서 두 글자의 새김이 같았으리라는 것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에서는 '峰, 上, 車'의 새김이 고구려말에서 같았을 것으로 보고 /sul/로 읽었다. 또한 천소영(1990:34∼43)에서도 '수리'는 '높은 곳, 존장자' 등을 뜻하는 말로 중세국어 '수릿날(端午)', 현대국어 '봉우리(峰)', '정수리' 등에 이어지는 어휘라고 하였다. 이 글자들의 중세국어 새김을 찾아보겠다.
上웃 <유합上21, 석천14, 아학下2>, 上 우희라<월석序17>
車술위 거<자회中26, 유합上29>, 술위 챠<광천22>, 車 술위라<월석二28>
이 새김이 고대에도 같았다면 '上:車'의 대응은 성립되지 않는다. '車'의 새김은 다음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고대국어에서도 비슷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俗以端午 爲車衣<유사2>
端午俗名戌衣 戌衣者 東語車也<동국세시기>
'車衣'는 '훈차자+끝소리덧적음'으로 표기된 것이므로 '車'의 고대국어 새김은 /surV/ 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때 '衣'의 발음은 일연의 당대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므로, 앞서(13) 살펴본 향찰표기의 소릿값에 따라 / i/로 본다. 따라서 '車'에 대한 고대국어 새김은 /sur i/로 밝혀진다. 고구려말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음의 낱말이 /sVrV/ 형태로 있었다고 본다.
이 /sur i/가 '上'의 고구려말 새김과 대응되고 있으므로, '上'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sVrV/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지명자료에서 '높은 곳'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찾아낼 수 있다.
峯城縣 本 高句麗 述 忽縣;述 忽縣 (一云 首泥忽)
'峯'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이 '述 ', '首泥'로 표기된 것을 알 수 있다.
首 書幽 io sio st j w u 슈
述 船物 d iw t diw t zdjiw t w t 슐
日之 nier -- njier ei
泥 泥脂 nied nier ner niei 니
우선 '首'의 첫소리로 재구된 [ ], [s], [ ]는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s/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자와 '述'자가 일차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으므로 '述'자의 첫소리도 역시 /s/로 보아야 한다. 즉 고구려말에서는 상고음 '船'모에 해당하는 닿소리를 발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를 가장 유사한 닿소리 /s/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首'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u/이고, '述'은 /suru/로 추정된다.
' ', '泥'의 첫소리로 재구된 [ ], [n]은 다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n/으로 반영되었을 것이고, 중심홀소리 [e]는 /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만일 상고음 끝소리 [r]류를 반영했다면 이 글자들은 다 같이 /n r /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결국 '述 ', '首泥'는 각각 /sun r /, /sur n r /를 표기한 것이 되며, 이는 '峯'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로 중세국어 '수늙(嶺)'에 이어지는 낱말임이 드러난다. 이것은 /surV+n r /의 합성어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것은 '述 :首泥'의 대응이 /r /가 그 사이에서 탈락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한 흔적을 말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上'의 뜻을 가진 낱말로 '述/suru/'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종합해 보면 '上忽(一云車忽)'에서 '上:車'의 대응은 동훈대응이며, '上'을 뜻하는 고구려말과 '車'를 뜻하는 고구려말이 동음어로서 /suru/였음을 결론할 수 있다. 이는 중세국어 '수늙(嶺)', '술위(車)'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낱말이다.
∴ 上(車)忽 /suru-kuru/
安市城 舊 安十忽(或云 丸都城)
유창균(1980:345)에서는 '安十忽'이 '安寸忽'로 나와 있고 /an-t n-k l/로 해독하였다. 그러나 판본에 따라 '寸'은 '十'으로 기록된 곳이 많으므로 '十'의 잘못적음으로 보고자 한다. '安十忽(或云 丸都城)'에서 '安十'이 '丸'의 새김에 대응한다. '都'는 '도시'라는 뜻으로 붙은 한자식 이름의 뒷가지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또한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 今云安民江<유사1>'이라는 기록에서 미루어 볼 때 이는 '鴨 '이라는 강이름과 관계 깊은 땅이름일 것이다. '안시성'은 고구려 말기에 당나라 침략군과 큰 전투가 벌어진 성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舊安十忽'이라고 기록된 것은 고구려 말기보다 더 오랜 시기의 지명이 '安十忽'이라는 설명이 된다. 그러나 이는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라 단순히 표기가 변한 것으로 판단된다. '安十'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安 影元 an n an an 안
十 禪緝 i p i p dji p p 십
'安'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ana/였을 것이다. 그러나 차자표기자료에서 이 글자의 /-n-/이 변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景德王改名 今安定縣
㉡ 道安縣 本刀良縣
㉢ 咸安郡 法興王以大兵滅阿尸良國(一云阿那加耶)
위의 예 ㉠로부터 安=阿尸=阿乙…安定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고, ㉡에서는 '安:良'의 대응으로부터 '安'이 /r/ 음소를 보유한 소리의 표기로 쓰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더욱이 ㉢에서 安=阿尸=阿那 의 대응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어서 '安'은 /ara/를 표기하는 데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향찰 표기자료에서도 '安'은 '알/ '로 읽힌다.
安支尙宅都乎隱以多(우적)⇒ 알지 尙宅 모돈이다
白雲音逐于浮去隱安支下(찬기)⇒ 구룸 주 간 지하
이에 따라 '安'은 /ara/의 표기인 것으로 인정한다.
다음으로 '十'은 첫소리로 재구된 [ ], [ ], [dj], [ ]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 체계상 /s/로 받아들여지고, 중심홀소리 [ ]는 / /로 반영되어서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 p /였을 것이다. 그런데, '安市'의 '市'와 대응되기 때문에 끝소리 /p /는 무시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安十'은 /aras /를 표기한 것이 된다.
'丸'의 새김에 대응되므로 고구려말 '安十/aras /'는 중세국어 '알ㅎ(卵, 個)'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여기서도 중세국어에 '-ㅎ' 끝소리를 가진 낱말이 고구려말에서 /sV/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고구려말의 강한 생명성을 웅변해 주는 자료로서, 중세국어에 나타난 '-ㅎ' 끝소리 낱말의 원형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 安十忽 /aras -kuru/
兎山郡 本 高句麗 烏斯含達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신지명의 '兎'의 새김에 '烏斯含'이 대응된다. 이기문(1968)에서는 /osaxam/으로 읽었고, 박병채(1968)에서는 /osaham/으로 읽었다. 또한 유창균(1980)에서는 / s r am/으로 읽고 일본어 [usa i]와 연관된 낱말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 '烏斯含'의 '烏'는 잘못 쓴 글자일 가능성이 크다. 박병채(1968)에서는 다음의 자료들에서 '烏'는 '鳥'의 잘못일 것으로 논의하고 그에 대한 한자음을 재구하여 밝힌 바 있다.
津臨城縣(一云 烏阿忽) → tjoa 중세국어 '닿-(臨, 接)'
猪足縣(一云 烏斯逈) → tjos 중세국어 '돋(猪)'
猪 峴縣(一云 烏生波衣 一云 猪守)
猪 穴縣(一云 烏斯押)
이 '烏'와 '鳥'는 글자의 모양이 비슷해서 서로 섞갈릴 위험이 많고, 또 실제로 그렇게 잘못 쓴 예도 문헌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예컨대 [계림유사]의 고려어에 대한 기록에서 '斧曰烏子蓋<304>'의 '烏'는 '鳥'를 잘못 쓴 것이고, '來曰鳥 '<322>의 '鳥'는 '烏'를 잘못 쓴 것임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욱이 [삼국사절요]에는 이 '烏斯含達'이 '鳥斯含達'로 기록되어 있다. 원전의 잘못을 따져 고치는 일은 물론 함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보는 이유는, '烏斯', '烏生' 등이 [삼국사절요]의 기록을 증거로 '鳥'의 잘못으로 해석함으로써 중세국어 '돋'과의 연관성이 입증된다면, 마찬가지의 논지로 해석함으로써 중세국어 '톳기(兎)'에 이어짐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사절요]의 기록을 올바른 표기로 인정하고 '烏斯含'의 '烏'는 '鳥'의 잘못으로 본다.
鳥 端幽 tio tio te w tiu 됴
含 匣侵 m m m m 함
상고음 제2류 '幽'부의 중심홀소리 [io], [iu], [ u] 등은 고구려말 홀소리체계상 /u/로 받아들여서, '鳥'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tu/였을 것이다. '斯'는 앞서(7) 밝혔듯이 /si/이고, '含'의 첫소리로 재구된 [ ], [ ] 등은 고구려말 닿소리체계상 나는 자리가 같은 /k/로 반영되어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k m /로 추정된다. 따라서 '鳥斯含'은 /tusik m /로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세국어 '톳기(兎)'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임병준(1997)에서는 말머리닿소리떼의 통시적인 연구를 위해 중세국어에서 끝소리의 'ㅅ'이 지금처럼 [t ]로 중화되지 않고 제 소리대로 갈이가 일어나 /s/로 발음되었음을 논증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중세국어 '톳기'도 /t oski/로 발음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구려말 /tusik m /는 '>*tusik wi>*tusk i>t oski'의 변화를 거쳐 현대국어 '토끼/t ok i/'에 이어져 온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 烏(→鳥)斯含達 /tusik m -tara/
翊谿縣 本 高句麗 翼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於支呑(一云翼谷)
'谷:呑'의 대응은 앞서(9) 확인하였으므로, '翼'의 새김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의 표기 '於支'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332)에서는 '於'를 새김으로 읽어 /narki/로 해석하고 중세국어 ' 개(翼)'에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최남희(1997ㄴ)에서도 이어져서 '於'는 훈차자로서 고대국어 위치자리토씨 ' '로 읽어야 함을 밝혔다(28). 이 견해를 좇아 '翼'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n r ki/를 재구한다. 이는 선학들의 논의에서 밝혔듯이 중세국어 ' 개'에 이어지는 낱말이다.
∴ 於支呑 /n r ki-t r /
交河郡 本 高句麗 泉井口縣 景德王 改名今因之;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앞서(3) 논의하였듯이 '口'는 '串'와 대응하여 '古尸/kusi/'로 읽는다. 따라서 '泉井:於乙買'의 대응을 찾아 낼 수 있다. 이는 다음의 자료에서도 나타나서 그 대응 관계가 더욱 명확하다.
井泉郡 本 高句麗 泉井郡 景德王 改名今 湧州
泉井郡(一云於乙買)
여기서 '買'는 '水, 川'을 뜻하는 고구려말 /m i/의 표기에 쓰였으므로 '於乙'을 떼어내어 볼 수 있는데, 이기문(1968)에서는 이를 / l/로 읽고 '泉'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로 보았다. 박병채(1968)에서도 같은 견해로서, 중세국어 '우믈(井)'에 이어지는 말로 보았으며 나아가 고친이름 '交'와 관련하여 중세국어 '어르-, 얼-(交, 合)'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이같은 견해는 유창균(1980)에서도 이어져 於乙買/ l-m r /에서 첫홀소리 / /가 뒤의 입술소리 /m/의 영향으로 /u/로 닮아가고 /l/이 탈락되어 중세국어 '우믈'이 형성된 것으로 논의되었다. 또한 천소영(1990:106∼107)에서도 '於乙買'는 '泉'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 rV/ 혹은 / rV/에 '買'가 합성된 낱말로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구려말 '於乙買'는 모두 음차자로만 쓰였으며, '於乙+買'의 합성어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즉 '於乙買'가 중세국어 '우믈'의 뜻범주를 가진 낱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於乙'이 '泉'과 관계가 있음은 다음의 고구려말 표기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高句麗大臣 淵淨土<삼사6>;蓋蘇文弟淨土<신당서220>
有蓋蘇文者, 或號蓋金, 姓泉氏, 自云生水中以惑衆.<삼사49열전, 신당서220>
大臣伊梨柯須彌[irikasumi]弑大王<일본서기24>;大臣入霞<太子傳曆>
즉 연정토라는 사람이 개소문의 동생이라는 <신당서>의 기록에서, 개소문의 성이 '淵'씨였음이 확인되는데, 여러 기록에서 '泉'으로도 썼고, 그것이 [일본서기]에 [iri]로 전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성으로 쓰인 한자 '泉'을 고구려사람들은 한자음으로 읽지 않고 고구려말 새김으로 읽었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이기문(1968)에서는 '淵'과 '泉'이 모두 훈차자인 것으로 보았으나, '淵'은 '깊은 연못'을 뜻하고 '泉'은 '물이 솟아나는 곳' 즉 '샘'을 뜻하므로 두 글자는 의미상 거리가 있다. 그래서 지명자료 '…高句麗 泉井郡…今 湧州'에서 고려초 지명이 '淵州'가 아니라 '湧州'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淵'은 의미의 유연성을 지닌 음차자였을 것이다. 이는 다음의 고구려지명자료에서도 그 대응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酒泉縣 本高句麗酒淵縣
즉 원래 이름의 '淵'은 '泉'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의 음차표기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금까지의 증거로 '泉:於乙:淵:iri'의 대응이 성립된다.
먼저 '於乙'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겠다. '乙'의 고구려한자음은 /iri/로서 주로 약음차자 /ri/를 표기하는 데 쓰였던 글자임은 앞서(10) 이미 논의되었다.
於 影魚 ia io ja a 어
상고음 제5류 '魚'부의 중심홀소리 [a]를 /a/로 받아들이는 원칙에 따라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을 /a/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과는 달리 향찰에서는 /u/, / /로 읽히는 것으로 보아, '魚'부의 운모가 홀소리만으로 음절을 이루는 글자들은 상고음 홀소리가 달리 반영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컨대 '阿[a]'자같이 오로지 한 홀소리만으로 이루어진 글자와 '於[ia]'자처럼 여는홀소리가 있는 글자들의 발음이 고대국어에 전사될 때, 겹홀소리를 명확하게 따라서 발음할 수는 없었겠지만 분명한 차이를 인식하기는 하였을 것이다. 여기서는 향찰표기의 해독례에 따라 / /로 읽혔을 것으로 추정한다. 즉 '於乙'은 / ri/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는 '淵'의 한자음을 살펴봄으로써 '於乙:淵'의 음대응도 확인할 수 있다.
淵 影眞 wen iwen wen iwen 연
상고음 제8류 '眞'부의 중심홀소리 [e]에 혀끝소리가 이어지므로, '淵'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ini/ 정도였을 것이다. 앞서(9) 지명표기에 나타난 /n/ 끝소리 글자들이 /r/의 표기로 쓰인 예를 찾아 논의한 바 있는데, 이에 따라 '淵'의 고구려한자음을 /iri/로 추정할 수 있다. 이는 '於乙/ ri/'와 유사음 대응으로써, 곧바로 [일본서기]의 '伊梨[iri]'와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종합하여 보면 '泉'에 대응하는 고구려말이 / ri/, /iri/의 두 가지로 있었으며, '於乙買'는 / rim i/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계림유사]의 기록 '井曰烏沒'과 <조선관역어>의 '井 五悶 整' 및 중세국어 '우믈(井)'로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 於乙買串 / rim i-kusi/
夫城 本 肖巴忽
이 자료에서는 옛이름의 '肖巴'가 고친 이름의 '豊夫'에 대응한다. 우선 뒤에 붙은 '巴'와 '夫'에 대해 살펴보겠다.
巴 魚 pwa p prwa pea 파
夫 / 魚 b iwa /p- b iwo/p- bjwa /p- p wa/b- 부
고구려말 닿소리에는 울림과 안울림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첫소리가 [p]든 [b]든 상관없이 /p/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따라서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두 글자가 다 같이 /pa/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巴'와 '夫'는 음 대응이 된다. 그것은 다음의 고구려 지명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屑夫婁城 本 肖利巴利忽
이에 따라 신지명 '豊'의 새김에 옛지명 '肖'의 발음이 대응한다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다시 '夫'가 '巴'에 음 대응을 하고 있으므로 이는 끝소리덧적음으로 해석된다. 즉 '豊'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이 두 음절로 '肖巴'의 발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豊'은 지금에는 '풍년 풍( )'자의 약자로 쓰이지만 원래 '禮'의 옛글자로서, 제사에 쓰이는 굽 높은 그릇을 뜻했고, 따라서 '술(酒)'과 관계가 있는 낱말을 새긴 표기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이를 '醴(단술 례)'의 약자로 보고 있다.(류 렬 1990:205 및 김수경 1989:180) 또한 '豊'의 고대국어 새김에 대하여 또하나의 실마리를 주는 자료가 있다.
比豊郡 本百濟雨述郡
즉 '豊:述'의 대응에서 '豊'의 백제말 새김이 '述/suru/'에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豊'의 의미범주를 '酒'의 고대국어 새김으로서 중세국어 '수울(酒)'와 관련지어 해석하고자 한다. '肖巴'는 두 글자 다 음차자로 쓰인 것이 분명하므로 '肖'의 발음을 살펴보겠다.
肖 心宵 si sio sjiaw s au 쇼/쵸
이 글자의 상고음 첫소리에 따라 고구려한자음에서도 첫소리 /s/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최남희(1999ㄷ:57∼62)에 따르면 이 글자의 운부로 재구된 홀소리 [au] 등은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u/로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글자에 대해서는 신라 인명표기에서 /a/로 반영되었다고 논의하였다. 그러나 앞에서(27) 살펴본 '夫斯', '扶蘇'의 발음과 지명 표기자료의 용례에 따르면 이 글자의 홀소리는 /u/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에 제시한 재구 상고음에서도 '肖'의 중심홀소리는 [ ], [o], [aw], [au]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이 글자의 상고음 중심홀소리를 [a]로 명확하게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령 뒤의 두 분의 재구음을 인정하여 이 글자의 홀소리를 [au]로 본다 하여도, 이러한 중국음의 홀소리 [au]는 현대중국어에도 존재하는데 이는 현대한국한자음의 /o/와 대응한다. 한자음의 차용과 반영의 입장에서 볼 때 고대국어의 음운체계에서 [au] 식의 홀소리는 /u/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肖'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u/로 보는 것이 온당하다.
이러한 분석에서 '肖巴'는 '酒'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supa/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해 낼 수 있다. 이는 다음의 신라말 자료와도 비교할 수 있다.
酒多後云角干<삼사1신라>
大角干(或云大舒發翰)<삼사38직관>
太大角干(或云太大舒發翰)<삼사38직관>
伊伐 (或云伊罰干 或云于伐飡 或云角干 或云角粲 或云舒發翰 或云舒弗邯)<삼사38직관>
즉 '酒'와 '角'의 고대국어 새김이 동음어로서 신라말에 '舒發' '舒弗' 등으로 음차표기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말에서 '肖巴/supa/'로 나타나고, 백제말에 '述', 신라말에 '舒發' 등으로 나타난 고대국어 낱말은 [계림유사]와 <조선관역어>의 다음 기록에 이어지고 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 계림유사
酒曰 <187>
飮酒曰 李麻蛇<197>
煖酒曰蘇 打里<198>
㉡ 조선관역어
酒飯 數本把 主半<396>
酒 數本 主<498>
黃酒 努論數本 主<510>
凉酒 燦數本 兩主<511>
熱酒 得本數本 耶主<512>
이러한 자료들은 중세국어 '수을, 수울, 슈을, 술(酒)' 등이 그 전 단계에는 /sVpV(r)/ 형태로 존재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따라서 고구려말 /supa/는 이 기록에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肖巴忽 /supa-kuru/
海曲(一作 西)縣 本 高句麗 波旦縣 景德王 改名今未詳;波旦縣 (一云 波豊)
고친 이름의 '海曲'은 고구려 지명의 '波旦', '波豊'과 대응한다. 즉 '海'를 뜻하는 고구려말의 표기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자료는 고구려 지명 자료 '海利縣 本 高句麗 波利縣'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또한 신라말 표기자료 '波珍 (或云海干)<삼사38잡지>'에서도 나타나서, 고대국어에 '海'를 뜻하는 동일한 낱말이 공존했음을 알 수 있다. 박병채(1968)에서는 이를 /pari/, /padan/으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바 , 바다(海)'에 이어지는 낱말의 표기로 보았다. 유창균(1980:340)에서도 이를 /par r/, /pat n(r)/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바 , 바 '과 연관된 낱말로 논의하였다. 또한 천소영(1990:148)에서도 이 자료는 고대국어에서 '海'를 뜻하는 낱말 /par r(<*pat r)/의 표기로 해독하였다.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 '海:波旦, 波豊, 波利'의 대응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글에서도 이를 수용하여, '海'의 의미를 가진 고구려말의 표기로 '波旦', '波豊', '波利'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자 한다. 이제 이들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겠다.
'波'의 고구려한자음은 앞서(25) 논의한 것처럼 /pa/이고, '旦'은 '9'에서 논의한 대로 /t r /였다. 따라서 '波旦'은 /pat r /를 표기한 것이 된다.
다음으로 '豊'은 앞서 (37)에서 밝혔듯이 '풍년 풍( )'의 약자가 아니라, '禮, 醴'의 옛글자이다.
利 來脂 lied li d li r l ei 리
豊 來脂 lied li r ler (liei) 례
이 두 글자는 상고음 재구음도 같은 음으로 보아 무방할 것이다. 상고음 제8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 /로 반영되는 원칙(7)에 따라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r /로 볼 수 있다. 만일 이 글자의 상고음 운미 [d], [r] 등이 반영되었다면 이 글자의 고구려한자음은 /r r / 정도였을 것이다. 즉 '波利', '波豊'은 다 같이 /par r /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말의 '海'에 해당하는 낱말은 /pat r /, /par r /의 두 가지로 나타난 것으로 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하거나, 자체 내의 변화를 반영한 표기로 해석된다.
∴ 波旦 /pat r /
潢川縣 本 高句麗 橫川縣 景德王 改名今復故;橫川縣 (一云 於斯買)
'橫'의 새김과 '於斯'가 대응한다.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는 이를 / s/로 해독하고 중세국어 '엇(橫)'과 연관지어 논의하였으며, 유창균(1980)에서는 / s r/로 읽고 이의 축약형이 / s/라고 했다. 이에 따라서 '於斯買'의 '於斯'는 두 글자 다 음차자로 쓰인 것으로 본다.
앞서(7, 36) 분석한 이 글자들의 고구려한자음에 의하여 '於斯'는 / si/를 적은 음차표기로 해독할 수 있다. 이는 선학들의 논의에 따라 중세국어 '엇(橫)'에 이어지는 낱말로 본다.
∴ 於斯買 / si-m i/
金壤郡 本 高句麗 休壤郡 景德王 改名今因之;休壤郡 (一云 金惱)
'壤:惱'의 대응은 앞서(13) 논의한 바 있으므로, 이에 따라 '惱'의 고구려한자음 /nu/로 읽는다. 이 자료에서는 고친 이름의 '金'과 고구려지명의 '休'가 대응하고 있다. 이것은 '休壤郡 (一云 金惱)'에서 다시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두 글자가 새김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음의 자료에서도 근거를 찾아낼 수 있다.
諱斯由(或云釗)<삼사18고구려>
眞智王立 諱舍輪(或云金輪)<삼사4신라>
省良縣 今金良部曲<신라지명>
鐵冶縣 本百濟實於山縣<백제지명>
즉 '金'을 의미하는 고대국어 낱말이 삼국에 공존했다는 것인데, 고구려말에서는 또한 '休'의 새김과 동음어였거나 유사한 발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천소영(1990:150∼151)에서는 이를 /*s ri>sui/로 재구하였고, 도수희(1999:31)에서는 /*siri>*sori>soj/의 변화를 추정하였다. 고구려말의 '休壤郡(一云 金惱)'를 유창균(1980:338)에서는 /s r-nar/로 해독하여, 고구려말의 '金'을 뜻하는 낱말은 /s r/로 보았다. 이 글에서는 위에 든 자료 중에서 고구려말의 표기에 가장 가깝다고 판단되는 '諱斯由(或云釗)<삼사18고구려>'로부터 이 자료에서 나타난 '金'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을 복원하여 보고자 한다.
'釗'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고유한자로, 중국의 전고에 없으므로 이 글자의 상고음은 아예 있어 본 적이 없다. 따라서 이 글자의 발음은 그 시대의 '金'의 새김에 해당하는 낱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동음대응이 '斯由'로 나타나 있으므로, 고구려말의 '釗'에 해당하는 낱말의 발음은 '斯由'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斯'의 고구려한자음은 /si/이고, '由'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由 餘幽 dio dio ri w iu 유
상고음의 '餘'성모로 재구된 [d], [r], [ ] 등은 고대한자음에 /r/로 반영되었음을 앞서(22) 논의하였으므로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ru/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斯由'는 /siru/를 표기한 것이 된다. 이로써 '休', '金'을 뜻하는 고구려말 /siru/를 복원해 낸다. 이는 도수희(1999)에서 '鐵冶縣 本百濟實於山縣'을 근거로 '鐵'에 해당하는 고대국어 원형을 /*siri/로 재구한 것과 매우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천소영(1990:151)에서 지적되었듯이 [계림유사]의 '金曰那論歲(207), 銀曰漢歲(209), 鐵曰歲(211)'와, <조선관역어>의 '銀 遂 引(479), 鐵 遂 迭(483)'에 이어지는 낱말이며, 중세국어 '쇠(金, 鐵)'로 이어지는 말로 볼 수 있다. 또한 도수희(1999:31)에서의 언급과 같이 현대국어 '떡시루, 시루(熟鐵)'에서 그 옛모습이 남아있다. 더욱이 중세국어 '쉬-(休)'와도 밀접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 休壤(金惱) /siru-nu/
Ⅴ. 고구려말의 어휘와 특징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복원해 낼 수 있었던 고구려말의 어휘 56개를 분석한 순서에 맞추어 한눈에 볼 수 있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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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 발음 뜻 백제, 신라말 고려어 중세국어 현대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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達 tara 山, 高 珍阿, 梁, 等良 大 -(附), ㅎ(地) 양달, 다락
忽 kuru 城 忽, 屈, 骨 골ㅎ(洞, 州) 골, 고을
加尸 kara 犁 把敢大 갈-(耕), 가래 갈-, 가래
加支 kati 菁→茄 가디(茄) 가지
押, 岬 kusi 嶽, 串 菅, 古尸, 岬, 串 古尸 곶(串), 골(菅), 곶, 봉곳,
加火 kap r 中(←唐) 噴 가 (中) 가운데
加兮阿 kakia 連 (닛-(連)) (잇-)
甘彌 kamam i 鷲 鷲 黑鷹 검은 매
甲, 甲比 kapa 穴 (구무) (구멍)
皆(次) k si 王 居西, 居瑟,吉支 항것(主), 긔 (王)
伯 pa(ki) 逢 보-(見) 보-
心 kasi 居尸 ≠心音 가 가슴
ka (광(倉庫))
呑, 旦 t r 谷
木根, 斬 p r ki 根 블휘(根) 뿌리
木根, 斬 p r ki 斬 버히-(斬) 베-
古斯 kusi(ri) 玉 區戌 구슬(玉) 구슬
馬, 勿, 買 m r /m r /m i 水, 川 勿, 買 沒, 悶 믈(水) 물
骨尸 kurusi 朽 곯-(膿) 곯-, 곪-
內, 奴, 惱 na/nu 壤 나라(國), 누리(世) 나라, 누리
骨衣 kut (r ) 荒 居柒 거츨-(荒) 거칠-
功木 kumuku 熊 固麻, 熊只, 甘蓋 고마(熊), 곰 곰
滅烏 m raka 駒 야지(駒) 망아지
烏 aka 幼, 少 -아지 -아지
滅 m r 馬 末 (馬) 말
屈火 kup re 曲 屈阿火, 求佛 굽-(曲) 굽-
別, 平吏 p r 平原 夫里, 火, 伐 벌(野) 벌, 벌판
斤 n r si (나란하-)
今勿 k m r 黑 今勿 검-(黑) 검-
乃勿 nam r 那勿 납(鉛) 납
內米 num r 池
吐 taka 堤 吐 둑(堤), 언턱 둑, 언덕
鹽 sirama 冬 (시리-)
買尸 m iri 蒜 마 (蒜) 마늘
巴衣, 波兮 pak r /paki 巖 바회(巖) 바위
斤尸 k r 文 乞, 根 글(文) 글
伐力 p r k 綠 噴 파라-(綠), 프르- 파랗-, 푸르-
夫斯, 扶蘇 pasi/pasu 松 봇(樺)
於斯 n r si 斧 날ㅎ 날ㅎ(斤, 刃) 날, 칼날
於 n r 위치자리토씨 /늘
沙伏, 沙非 sap (r k ) 赤 所比 質背 싯븕-(赤), 새배(曉) 붉-, 새벽
沙熱 sanara 淸 사 -(凉) 서늘하-
伊 i 맺음법씨끝 -이 -이
密(三) miri 龍(←玄) 密, 推, 彌知, 三 米立 미르(龍)
述 suru 車 車衣 술위(車) 수레
述, suru 上 수리(端午) 수릿날
首泥, 述 sun r 峯 수늙(嶺)
安市, 安十 aras 丸 安良, 阿乙 알ㅎ(丸, 卵) 알
鳥斯含 tusik m 兎 吐吉 톳기(兎) 토끼
於支 n r ki 翼 개(翼) 날개
淵, 於乙 ri 泉 烏沒, 五悶 우믈(井) 우물
肖巴 supa 酒(←豊) 述, 舒發, 舒弗 , 數本 수울(酒) 술
波旦, 波豊 pat r /pat r 海 波珍 把剌 바 , 바다(海) 바다
於斯 si 橫 엇-(橫) 엇-
金, 鹽 siru 休 쉬-(休) 쉬-
釗, 斯由 siru 金, 鐵 舍輪, 省良, 實於 歲, 遂 쇠(鐵) 쇠, 시루(熟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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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씨 40 움직씨 5 그림씨 7 기타 4 합계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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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된 고구려말 어휘 56개 중에서 중세국어까지 명확하게 그 연관을 찾을 수 있는 자료는 49개, 명확하지 않거나 이어지지 않는다고 판단된 자료는 7개로 나타났다. 또한 고구려말 표기자료가 백제 및 신라말 자료에도 나타나고 있음이 명확한 자료의 수는 56개 중 17개, 백제와 신라말 자료에 없는 것으로 중세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고 있는 어휘가 32개로 나타났다. 신라말을 계승한 것이 중세국어라는 견지에서, 중세국어와 고구려말의 이 같은 일치는 신라말과 고구려말의 단일성을 확증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특히 기존의 논의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성과를 얻은 자료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鷲:甘彌'의 대응을 추출해 내고 다시 '鷲'의 중세국어 새김 '黑鷹'을 찾아내어 그것이 '검은 매'의 고구려말 /kamam i/임을 증명하였다. 또한 '甘彌'의 고구려한자음을 추적한 결과, 그것이 풀이씨 줄기+임자씨의 합성임을 밝히고 고구려말에서 그러한 합성이 통어적이었을 가능성을 논의하였다.
② '心:居尸'의 대응으로부터 '心'의 고구려말 새김이 신라말 ' '과 달리 /kasi/였음을 한자음의 분석을 통해 밝혔으며, 중세국어의 '가 (胸)'과 연관되는 낱말로 해석하였다.
③ '木根:斬'의 대응을 추출하고 두 표기가 동일한 어휘의 다른표기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p r ki'를 재구해 내었으며, 이는 중세국어 '블휘(根)'와 '버히-(斬)'에 이어지는 어휘임을 음운변천의 과정을 도출하여 증명하였다.
④ '朽:骨尸'의 대응에서 '骨尸'가 고구려말 /kurusi/를 표기한 것임을 밝혀내고, 중세국어 '곯-(膿)'에 이어지는 어휘로 해석하였다.
⑤ '荒:骨衣'의 대응에서 고구려말 /kut r /를 해독하고, 신라말 자료 '居柒'과의 비교를 통하여 고구려말이 입천장소리되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음을 논의하였다
⑥ '駒:滅烏'의 대응에서 고구려말 /m raka/를 해독해 내고, 중세국어 ' 야지(駒)'가 ' +아지'의 합성어라는 사실로부터 고구려말의 '작음'을 뜻하는 뒷가지 '烏/aka/'를 밝혀내었다.
⑦ '斧:於斯'에서 '於斯'의 '於'는 훈차자임을 밝히고, 중세국어 새김으로부터 '於'의 고대국어 새김 /n r /를 재구하여 '於斯'가 고구려말 /n r si/의 표기임을 밝혔다. 또한 중세국어 '날ㅎ(刃)'의 의미를 추적하여, 이 낱말이 고대에는 '날붙이'를 뜻하는 두루이름씨였으며, 그것이 고구려말에 /n r si/로 표기되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⑧ '丸:安市'의 대응으 로부터 '丸'에 해당하는 고구려말 /aras /를 한자음과 차자표기자료의 비교 분석을 통해 복원해 내고, 중세국어 '알ㅎ'에 이어지고 있음을 논증하였다.
⑨ '兎:烏斯含'에서 '烏'는 '鳥'를 잘못 적은 것임을 문헌을 통해 고증하고, 한자음의 분석으로부터 '兎'를 뜻하는 고구려말 /tusik m /를 재구하여, 그것이 중세국어 '톳기'에 이어지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Ⅵ. 맺는 글
지금까지 고구려의 언어에 대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이를 기록한 차자표기자료 중 [삼국사기] 권35, 37의 고구려지명 자료 40건을 선정하여 전면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분석에서 나타난 결과를 통하여, 이 논문의 성과라고 생각되는 것을 요약하고 앞으로의 연구 전망을 제시함으로써 맺고자 한다.
① 분석한 대부분의 어휘에서 고구려말은 낱말의 음절 수가 중세국어에서보다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대국어의 전반적인 특성에도 합치되는 사실로써, 고구려말은 다음절어 구조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② 고구려말의 풀이씨 줄기는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에서와 달리 일정하게 자립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고려어의 자료에서도 확인되고 있는데, 이로써 우리말은 원래 풀이씨 혼자만으로도 자립하여 쓰일 수 있던 것이 고대국어에서부터 점차 씨끝이 발달하여 오늘에 이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③ 고구려말의 어휘자료에 합성어와 파생어가 많이 발견되는 사실은 고구려말에서 낱말의 조어력이 매우 풍부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④ 고구려말에서 발견되는 낱말 끝의 /s/, /k/가 중세국어의 'ㅎ'끝소리의 원형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중세국어에서 'ㅎ'을 끝소리에 가지는 임자씨들의 원형이 고대국어의 /s/, /k/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실을 확증하여 주는 근거라 할 수 있다.
⑤ 고구려말의 표기자료에는 백제 및 신라말 자료에 나타나지 않고 중세국어에 이어지는 어휘가 상당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 찾아낸 32개 어휘는 고구려말이 가지는 고대한국어로서의 단일성을 확증함과 동시에, 중세국어 어휘의 원형을 복원하는 데 있어서 실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고대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언어학은 물론 역사학과 고고학 및 인류학에서도 지대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의 성과에만 기대어 국어사를 기술할 수는 없는 것처럼, 고대국어에 대한 기술이 언어학의 기반 위에서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는다면 이를 섣불리 역사학의 논의자료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접 학문과의 공조와 협력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각 분야의 전문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만이 종합적인 고대문화의 인식이 가능할 것이다.
고구려의 언어에 대해서 그 동안의 학문적 업적은 사실상 역사학자들의 지명 고증으로부터 시작되어, 80년대에 이르러 거의 멈추어졌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언어학의 책임이다. 자료의 빈궁과 복잡성 등을 이유로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에서 회피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안일과 답보를 극복하고 이 방면에 대한 보다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지속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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