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미 각오한 우중산행이다. 오지팀이 향하는 영동지역은 금요일 부터 일요일까지 쉼없이 비가온다고 예보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의 비가. 최근 장마가 일찍 시작되면서 유독 영동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영동지역에 장마철 폭로우로 인한 피해가 더러 있었다. 지난주 산행에서 이름모를 벌레에 물린 상처들이 가렵고 진물이 흘러, 온몸 여기 저기에 반창고 붙이고 집을 나선다. 비는 여전히 내리나 우산없이 나선다. 이미 각오는 하였기에. 나에 있어 우중산행의 각오란 등산화에 물이 차오르는 시점이 산행 후 4시간 이내를 말한다.
동서울에 도착하니, 비가 와서인지 오지버스 승차장에 있어야 할 오지팀원들이 다를 강변역 역사 벤치에 모여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멀리서 호탕히 자지러지는 팀원들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ㅎㅎ. 우르르 오지버스로 오른다. 신갈 승차로 예상한 다올님이 이미 버스에 있고, 약간 피곤해 보이는 영희언니와도 인사한다. 최근들어 적지 않은 인원 13명이 출발한다. 이번 산행은 1부 종료 후 우두령에서 점심먹는 코스이라, 편히 배낭짐 풀어 놓는다. 2015년 오지산행 신입시절에는 꽤 빈번히 2부로 나눈 산행을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한번 올라서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2부로 운영되는 우중산행은 아주 유혹이 많다. 이럴줄 알았으면 여벌 등산복과 등산화를 준비해와 그대로 1부 용 2부 용으로 나누면 되는데. 아마 나는 오늘 2부 산행은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새벽잠 청한다.
몇번의 수면과 깸을 반복하니, 오늘 들머리인 영동군과 김천시의 경계 지역인 상촌면 흥덕리에 도착한다. 가랑비 속 스패츠하고 랜턴키고 나선다. 농로를 지나 바로 산으로 스며든다. 바로 엄청난 경사의 오름이 이어진다. 역시 오모스러운 코스다. 여지없다.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오르니 비옷입은 대원들 모두 비옷을 벗는다. 나는 비옷을 가지고 왔으나 입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왔기에!
얼마지나지 않아 날은 밝아오고 비는 점점 많이 내린다. 급 경사 오르막을 지나니, 내리는 비에 몸이 춥다. 우비 꺼내 입는다. 여미지는 않는다.
중간 휴식시간에 해피님의 꿈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는 곳으로 놀러가던 중 우연찮게 수담님을 만나게 되고, 수담님의 꾀임에 빠져 두 사람은 안면없는 어느 국회의원 사무실을 가게되고, 수담님의 강압적인 권유로 거기서 처음보는 국회의원과 술을 마시게 되는데, 재미있는 여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지금 술자리를 빠져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 고민하다가 잠을 깼다는..... 역시 오지팀 유흥 지존들의 꿈이야기이다. 술. 여자. 놀이. 어느하나 빠짐없는 짧지만 찐한 구운몽 같은 꿈 이야기.
얼마 지나지 않아 막기항산 정상에 도착한다. 나는 이 산의 이름을 연상할 때면 항상 더덕향이 같이 떠오른다. 오지 초입 시절 여기서 많은 더덕을 캔 경험과 이 산의 이름이 막기항산. 막기향산. 향. 냄새가 있을 것 같은 산. 그리고 거기에 더덕을 씌우면 더덕향이 나는 산. 나에게 있어 막기향산은 언제나 더덕향이 함께 아우러진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각오했듯이, 오전 9시를 기점으로 등산화에 물이 차오른다. 몇번 양말짜고, 등산화 깔창 닦고, 내부 물기 제거라려 휴지 2롤로 물기 빼본다. 소용없다. 각오했듯이 깨끗이 포기한다.
새벽부터 계속힘들어 하던 우공이었다. 사진찍을 때도 안보이고, 어디갔나 찾아보니 저기 구석에서 졸고있다. 오전 내내 쉬는 포인트 마다 저렇게 졸고 있다.
다올님은 등산 내내 마주칠 일이 몇번 없었다. 나는 등로로 길찾으러 다니고, 다올님은 다올님만의 책무로 능선을 누비고. 오지에서는 어떻게든 하나씩의 역할을 해야한다. 나는 배짱이 역할이다. ㅎㅎ 놀고 먹는다.
백두대간 능선을 만나자 조망이 뻥 열린다. 비는 오지만 그래도 가슴이 시원하다. 우비 모자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비구름 사이로 보이는 조망에 취해 한동한 멍 때린다. 좋~~~다~~~~.
석교산에서 우두령 가는 길은 약 4키로 인데, 지리하게 길게 느껴진다. 빗소리 없이 밋밋하다면 꽤 지루한 길이었을 것이다. 빗소리 들으며, 등산화 물소리 들으며, 허기진 몸 이끌고 달릴 듯 진행한다.
우두령에 내리니 오지버스가 와 있다. 다들 허겁지겁 점심자리 편다. 나는 배고픔 보다는 조금이라도 눅눅함을 없애고 싶었다. 버스 뒤에서 옷 갈아입고, 양말짜고 등산와 물빼고 나서 식사 마지막에 자리잡고 라면 끓인다. 라면 3개 팀원들과 순삭하고, 2부 채비한다. 사실 오늘 나는 2부 할 마음이 없었다. 1부 2부 나눈다는 이야기를 듣자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채비 마치는데로 능선으로 오른다. 대단하다 무불.
여성봉 인근에서 오른쪽 임도로 내려오려고 무던히 설득을 했지만, 오늘 줄그은 오모님은 어떻해서든 그은 줄 그대로 찾아 가이드 하였다. 2부 내리는 길은 보드랍고 길었다. 근데 너무 길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니 바로 그리워졌다. 아주 비가 많이 내리는 막기항산 오늘도 향기로운 산행으로 기억이 된다. 2부 산행에 사진이 없다. 영희언니가 2부 산행에 없었구나.
첫댓글 우중산행도 나름대로 정취가 있습니다.
어차피 안은 땀으로 젖고 밖은 비로 젖을 것.
우비는 방비가 아니라 방한입니다.
오지의 전사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직도 힘드네요
함께여서 가능했던
우중산행..
다음날
흐뭇해하는 함박웃음
모두들 고맙습니다!
선배님들의 묵묵한 오지사랑덕에 후배들도 힘이 납니다.
우중에도 목표를 항해 전투산행 이라 정말 대단 하십니다.
오지 산꾼님들의 열정에 발수를 보냄니다~짝짝짝~
ㅎㅎㅎ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더욱 가열찬 산행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