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 6-8
하나님이 가라사대
본문은
“⑥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⑦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⑧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입니다.
6절에 “궁창이 있어”라는 말씀에 둘째 날의 일은 하늘과 땅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이 지구 주위에 텅 빈 공간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뒤섞인다’ 라는 속담은 극도의 무질서를 나타내는 말이므로 하늘과 땅을 구분한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더욱이 (라키아)는 대기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머리 위에 펼쳐진 우주 공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 단어를 라틴어로는 ‘하늘’ 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늘이나 낮은 대기권을 아무 구별 없이 부릅니다. 그러나 때로는 두 가지를 의미하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한 가지만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헬라인이 이것을 (스테제오마)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라틴인도 헬라인을 본받아 같은 내용인 ‘넓게 펼쳐진 공간’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다윗이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매”(시104:2) 라고 말한 구절에서 다소 암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창조 이전에도 이러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천지를 구분하는 창조 사역 이후에 비로소 처음으로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온 땅에 물이 덮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즉 이전에도 혼돈된 혼합체는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 광활한 공간의 특별한 용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는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물이 하늘 위에 있다는 것은 상식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믿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풍유적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천사들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본래의 뜻을 바로 깨닫지 못한 소치입니다. 우리 견해에는 하나의 분명한 원칙이 있는데, 즉 이 구절에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모든 사람을 가르치므로 그레고리가 주장한 말은 창조의 사역에 잘 부합합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우리를 잘 교훈 해 줍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이 우주라는 극장을 이상한 모양으로 상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의미하는 궁창 위의 물이란 무식하고 둔한 사람들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궁창 위에 있는 물에 대해서 자신의 무지함은 생각하지 않고 신앙으로 그것을 깨달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세의 의도와는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공공연하고 명백한 문제에 대해 더 이상 파고든다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머리 위로 구름이 공중에 떠다니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름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우리에게는 쉼 쉴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의해 이러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비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홍수와 같은 하늘의 큰비를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시면 우리는 구름 속에서 쏟아지는 폭포에 휩싸이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이적을 묘사하면서 이와 같은 사실을 잘 묘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시104:3) 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하늘의 물도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외쳤습니다(시148:4).
하나님께서 구름을 만드시어 우리의 머리 위에 두셨으며 이 구름 속에서 갑자기 물이 터져 우리를 삼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지키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갈라 놓는데 있어서, 유동적인 공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것도 ‘물 사이에 광활한 공간을 두셨다’라는 말씀이 없었다면 이 공기의 작용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을 이 날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지상의 물이 있어야 할 적당한 곳에 모아지기까지는 유익한 점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 다음날에 행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이 두 번 반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