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2026년 7월 5일 05시 35분에 2026년 7월 4일 사랑하는교회 사사모임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있는 중에 15시 39분에 모든 "문제의 산"을 제거하여 주리라. 라는 말씀을하셨습니다.
문제의 산은 (막 11:23-24)"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당면(當面 :바로 눈앞에 당함)문제]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죄의본성'(本性)독립된 인격체로 부여된 하나님 자녀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에덴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거역하고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는(요한 1서 3:4, 8)“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이렇게 죄의 종노릇하는 인간쓰레기로 악령에 100% 지배를 받아 (약 3:14-16)“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에서 악행을 쉬지 않는 인간쓰레기가 ‘죄의 본성에 거한 자’들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체제에 죄의 본성에 인간망나니(망나니 :하나님께서 2025년 6월 11일 11시 2분에 언행이 항상 불일치 한 사람이 망나니라고 정리해 주셨습니다.)들은 세상 방법으로는 고쳐서 사용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나라의 진리의 성자와 하나님 나라에 성녀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의 어사와 세기적인 기도의 용사들이 분명하게 있어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언약에 따라 대한민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라고 하신 언약은 분명하게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2026년 7월 5일 06시 1분에 하나님께서 (슥 4:6)"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 나의 영이라는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에 의해 대한민국이 북괴 간첩들에 의한 반역에 종지부를 찍고 적폐청산에 의한 새판을 짤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무법자들이 깽판을 치고 있는데 저들을 하나님께서 훅 불어버리시는 그날이 왔습니다
"대한민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 설교 :김옥경 목사 , 일시 :22.3.12)
◆,추가 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 위한 자료 설명 부분==>18분 51초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하여 전하신 것입니다.
내가 대한민국을 결코(決 -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리라!
절대로 대한민국을 원수에게 넘기지 않으리라.
내가 세상을 사랑하고 아끼는 창조주임을 믿으라.
내가 반듯이 만유를 회복하리라.
그 일을 위하여 나는 대한민국을 택하였고 지목하였느니라.
지금 대한민국을 내가 흔들고 있다는 것을 믿으라!
내가 흔드는 이유는 쭉정이들을 날려버리기 위함이다!
그러나 내가 훅 불어버리는 날이 반드시 온다. 아멘
대한민국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내가 이 모든 잘못된 것들을 깨트리고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고 새 판을 짤 것이다. 지금 너희는 내가 그것을 위해 역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2025년부터 드디어 사랑하는교회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일하리라!"(24.12.21.김옥경 목사님)
8분 46초부터 타이핑==>이제 2025년은 만 20년이 되는해예요,
하나님께서 그걸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세상 가운데 열방 가운데 일하실 놀라운 그 때가 왔다. 하나님의 때가 왔다. 그 말씀을 주시는데 얼마나 제가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가지가지 은혜를 배푸시면서 저희들을 훈련시키셨지요. 준비 시키셨지요. 그런데 이제 만 20년이 된 2025년도에 하나님께서 본격적으로 일하시겠다는 거예요. 본격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시겠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교회를 통해서 열방을 살리고 정말 대한민국 살리고 수많은 영혼 살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세우셨던 하나님의 목적, 계획 뜻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제 성취되어지는 그런 해라는 것을 말씀하셨을 때'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생략)
참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국가를 '쥐ː락―펴락'(쥐락펴락 :남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부리는 모양.)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풀어지는 길은 (요 14: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통로가 되는 자들은 (요 15:7)"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행 4:29-31)"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현재 시제로 대한민국의 국가 반역 세력)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대한민국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악령의 지배를 받는 인간쓰레기와 영적인 전쟁에서 패하는 자들은 (벤후 2:19)'누구든지 '진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하나님께서 2024년 12월24일 14시 51분에 주신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단계적으로 확연(確然 :아주 확실하다.라고 하나님께서 07시 29분에 확연의 단어를 주셨습니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66년전 자유당 부정선거-4.19의거 데자뷰 느낀다 뉴데일리 2026년 6월 14일
이동복 칼럼 : 2030 분노의 현장 잠실 가보니
66년전 자유당 부정선거-4.19의거 데자뷰 느낀다
이동복 15대 국회의원 / 신아시아 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입력 2026-06-14 21:57수정 2026-06-14 21:57
4.19 파동의 전개과정 떠올라
《4할 사전투표》 실체, 파헤친 주체는
민주당 정권 아니라 5.16 군사혁명정권!
▲ 66년전의 데자뷰. 2030은 왜 매일 잠실을 찾나. ⓒ 챗GPT
■ 매일 저녁 몰려드는 청소년들
토요일인 6월 13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고등학교 동문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과 함께 잠실 올림픽 핸드볼 경기장에서 9일째 계속되고 있는 6.3 지방선거 선거 부정 항의 시민 시위에 동참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름철 무더위 한낮의 현장이라 필자가 동참했던 시간대에는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이 경기장 건물이나 수목 아래의 그늘로 분산되어서 더위를 피하면서 무리 단위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동문들이 수풀 속의 그늘에 마련한 자리에 앉아 있기는 했지만, 세 시간 가까이 되자 90 나이의 필자로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오후 3시반 철수했다.
철수하면서 보니 올림픽 경기장 지하철역으로부터는 삼삼오오 새로 도착하는 젊은 청소년들의 대열이 꾸역꾸역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녁 7시쯤에 가면, 참석 인원이 피크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보면서 필자의 상념에는 지금부터 66년 전인 1960년 한국일보 정치부 국회-정당 출입 기자로 취재 보도했던 3.15 정부통령선거로부터 4.19 학생의거와 7,29 총선거를 거쳐서 다음 해 5.16 군사혁명에 이르렀던 일련의 정치 상황 전개 과정에 대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현장. ⓒ 정상윤 기자
■ 이승만 아니라 이기붕 당선 시키려다…
3,15 정부통령선거의 대통령선거는 야당인 민주당의 조병옥(趙炳玉) 후보가 2월에 미국에서 병사(病死)했기 때문에 단독 출마한 자유당 이승만(李承晩) 후보의 부전승이 확보되어 있었다.
태풍의 눈은 자유당 이기붕(李起鵬) 과 민주당 장면(張勉) 후보 사이의 부통령선거전이었다.
이해 이기붕과 장면의 대결은 1956년에 이은 두 번째 대결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대결의 결과가 놀라운 것이었다.
1956년의 1차전에서의 승자는 4,012,654표를 득표한 장면.
3,805,500표를 얻은 이기붕과의 표차가 불과 207,154표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4년 뒤인 1960년의 재대결의 결과는 이기붕의 역전승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엄청난 표차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뉴스였다.
이때의 표차는 이기붕 8,337,059표 대 장면 1,843,758표로 표차가 무려 6,493,601표였던 것이다.
4년의 시차를 두고 실시된 재대결에서 이기붕과 장면 사이의 승패가 역전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치자.
그러나, 불과 4년 전에 20만표의 표차로 고배(苦杯)를 들었던 이기붕이 4년 뒤에 승패를 역전시켰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무려 650만표의 표차로 승리했다는 것을 과연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있겠는가?
■《4할 사전투표》의 추억
3.15 정부통령선거의 무리(無理)는 결국 몇 가지 사건의 전개를 통해 실체가 드러났다.
① 선거 당일인 3월 15일, 전통적인 야당 지지 텃밭인 경남 마산에서 투표번호표를 받지 못해 투표를 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시청으로 몰려가 항의를 하자, 경찰관이 이들에게 발포하여 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② 선거 다다음날인 3월 17일에는 기자회견을 자청한 승자(勝者) 이기붕의 입에서 “총은 쏘라고 있는 것이지 가지고 놀라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망언이 터져 나왔다.
③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선 눈에 총류탄이 박힌 고 김주열 군의 시신이 물 밑에서 부상했다.
이 세 개의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전국의 대학생은 물론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4.19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4.19의거는 자유당 정권을 전복시키고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켰다.
1960년 선거에서의 이기붕과 장면 사이의 엄청난 표차의 원인도 드디어 밝혀졌다.
소위《4할 사전투표》가 그 범인이었다.
자유당의 선거전략을 관장했던 최인규(崔仁圭) 내무장관의 지시로 당시의 선거관리위원회가 전국 유권자의 4할에게 투표번호표를 보내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투표권을 박탈하고, 그 대신 4할에 해당하는 투표지에《이기붕》을 기입하여 투표함에 투입한 것이다.
이것은 당시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60% 이내라는 통계수치에 근거하여 40%의 기권을 조작하고 이《기권표》를 이용하여《이기붕》의 몰표 40%를 조작해도 안전할 것이라고 오판 한 것이었다.
■ 민주화 외친 민주당 정권이 고작 한 일
그러나, 3.15 정부통령선거 이후의 정국이 4.19 학생의거와 7.29 총선거를 거쳐, 단명의 민주당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동안 문제의《4할 사전투표》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민주당 정권에서 다루어진 선거 부정 시정 실적은 7.29 총선거에《자유당》간판을 메고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국회에 들어온 7명의 의원을《반민주행위자》로 몰아 국회에서 쫓아낸 것이 고작이었다.
이때 제정된 법률이 이른바《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이었다.
《4할 사전투표》 행위가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은 1961년 5.16 군사혁명을 통하여 등장한 군사혁명 정권 때였다.
군사정권은《4할 사전투표》의 전모를 밝혀낸 뒤 그 책임을 물어 최인규-이정재 등을 사형에 처했다.
■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 뭘 해결할까
필자는 이번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자행된 것으로 의심되는 선거 부정행위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투표용지 부족 물의를 보면서, 1960년 3.15 정부통령선거 때의 부정선거 의혹과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데자뷰를 실감한다.
어제 잠실 핸드볼 경기장에서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 구호를 연창하는 군중 속에 묻힌 필자의 뇌리에서는, 그동안 국회의 절대 다수 의석을 무기로 1930년대 히틀러 의 나치 독일 탄생 과정을 연상시키는 입법 독재 몰입 민주당 천하에서 과연 선거 부정 문제에 관한 공정한 해결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솟구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의 3.15 정부통령선거의 경우는 그로부터 35일 이후인 4월 18일 서울 청계천 4가 천일백화점 앞에서의 정치폭력배들에 의한 고대생 시위대 야습 사건을 거쳐 다음날 4.19 전국 학생 시위로 이어졌다.
4월 19일 계엄령 선포에 의거 서울로 투입된 조재미 장군의 15사단은 광화문을 봉쇄하기는 했지만, 시위 학생을 적극 단속하기는커녕 광화문에 배치된 전차들을 시위대들이 사실상 점거하는 것을 용인할 정도로 대처가 느슨했다.
4.19를 전후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학생 시위 발생 여부를 계속 물었으나, 최인규 (내무)-홍진기 (법무)-김정렬 (국방) 등 국무위원들은 “아무 일도 없다”고 대통령을 기망하는 일을 계속했다는 사실이 당시의 국무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결국 4월 23일 “다친 학생들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니 가보자”고 병원행을 강행한 이승만이 병상의 부상 학생들을 보고 어루만지며 “불의를 보고 일어난 학생들이 자랑스럽다. 학생들이 원한다면 나는 물러날 것이고 잘못된 선거는 다시 해야 한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태가 전개되었다.
그리고는 4월 26일 이승만이 청와대를 떠나 이화장으로 하야하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4월 28일에는 이기붕 일가가 청와대 구내에서 집단 자살을 결행했다.
3.15로부터 4.19 학생 시위까지 25일,
4.23 교수 데모까지 29일,
4.26 이승만 하야까지 32일,
4.28 이기붕 일가 자살까지 34일의 시일이 소요되었음을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