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김명인 시인의 ‘너와집 한 채’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속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온 자의 마지막 꿈이 다다른 곳은 산간 오지다.
거기서 세속으로 돌아갈 길을 아예 지우겠다는 것, 즉 길을 잃음으로써 온전한 삶을 회복하겠다는 도저한 역설을 내비친다.
꼭 전편을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황당하고 도발적인 이 문장 앞에 파르르 떨면서 무릎을 쳤다.
그 누구도 발설하기를 꺼리는 성역을 건드린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한술 더 뜬 사람은 김사인 시인이다.
그는 위의 구절을 아예 제목으로 삼아 한 편의 시를 발표했다.
시의 말미에 김명인 시인의 시에서 운을 빌려왔다고 밝혀놓은 이 시는 ‘나 어린 처녀’와 인생을 탕진해버리고 싶은 자아를 등장시킨다.
생업에 관심도 없이 날마다 주막으로 가서 술이나 얻어먹고, 그 처자의 몸에 아이를 벌레처럼 ‘슬어놓고’, 그저 자신은 무능하겠다고 공언하고, 몹쓸 병이 들어도 숨겨놓은 술을 마시겠다고 장담한다.
퇴폐와 방종과 무책임도 이쯤 되면 한 경지일까?
시적 상상은 일상의 윤리 너머를 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