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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 [列國誌] 868
■ 3부 일통 천하 (191)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1장 조정(趙政), 진왕에 오르다 (5)
춘신군 황헐(黃歇)의 예측은 적중했다.
진왕 정(政)과 승상 여불위(呂不韋)는 초ㆍ조나라가 주동이 되어 5개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진나라를
공격한 것에 대해 격분하고 있었다.- 보복하리라!먼저 초(楚)나라에 대해 보복의 칼을 내리려 했다.
그런데 초나라는 재빨리 도읍을 진현에서 수춘(壽春)으로 옮겨갔다.
진(秦)나라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오랫동안 나가 있게 되면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조ㆍ위ㆍ한나라가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약은 놈!'
여불위(呂不韋)는 생각을 바꿔 조나라를 응징하기로 했다.
그 이듬해, 장수 몽오(蒙鰲)와 장당(張唐)을 불러 명했다.
"군사 5만을 거느리고 가 조나라 경도(慶都)를 점령하시오!"
그런데 여기서 여불위(呂不韋)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명을 내렸다.
"후군으로 장안군과 장수 번어기(樊於期)는 군사 5만을 이끌고 나가 조나라를 함께 공격하시오!"
장안군이라면 진왕 정(政)의 동생인 성교(成嶠)를 말함이다.
즉 조희 사이에 낳은 진장양왕의 진짜 아들이다.
이때가 진왕 정 7년의 일이니 진왕 정의 나이는 20세, 성교는 17세였다.
장안군(長安君)은 나이도 어렸거니와 전투 경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장안군 성교를 조나라 정벌군 대장으로 임명한 것이다.여불위와 가까운 문객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장안군(長安君)은 너무 어립니다. 대장으로 삼기엔 적합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함양성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번어기(樊於期)는 유독 여불위를 미워했다.
상인 출신인 여불위가 교묘한 방법으로 자초에게 접근하여 진나라의 승상자리까지 오른 것에 대한
못마땅함이었다.- 내 어찌 저런 자 밑에서 벼슬을 살 것인가.
술에 취하면 공공연히 떠들어댔다.그런 번어기(樊於期)에게 어찌 함부로 군대를 맡기느냐는 충고였다.
그러자 여불위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그대가 어찌 나의 마음을 알리요!"
조나라 정벌군은 두 길로 나누어 함양을 출발했다.몽오(蒙鰲)와 장당(張唐)은 함곡관을 나와
상당 땅으로 들어가 지금의 하북성 일대인 경도 땅으로 향했고, 장안군 성교(成嶠)와 번어기(樊於期)는
지금의 산서성 둔류현에 해당하는 둔류(屯留) 땅에 이르러 영채를 세웠다.이 무렵 조(趙)나라는
조효성왕이 재위 21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조도양왕(趙悼襄王)이 왕위에 올라 있었다.
이 해는 조도양왕 5년에 해당하는 때로, 그 역시 어느 정도 진(秦)나라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조도양왕(趙悼襄王)은 즉각 재상 방난을 상장군에 임명하여 진나라의 공격을 막아내라 명했다.
방난은 장수 호첩(扈輒)을 부장으로 삼아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한단성을 나왔다.
"경도 땅 북쪽으로 요산(堯山)이 있다. 그 곳은 지대가 높아 진군의 영채가 있는 도산(都山)을
환히 내려다볼 수 있다. 내 마땅히 요산에 대채를 세우고 진나라 몽오(蒙鰲)를 격파하리라."
방난(龐煖)의 이 계책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진나라 장수 몽오(蒙鰲)는 경도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요산에 대채를 세운 조나라 대장 방난과 전투를 벌였으나 매번 패했다.
조나라 부장 호첩(扈輒)이 요산 꼭대기에 올라 깃발로써 대장 방난에게 진나라 군사의 움직임을
일일이 신호로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전황(戰況)이 불리함을 깨달은 몽오(蒙鰲)는 후군에 해당하는 장안군 성교에게 도움을 청했다.
- 속히 이 곳으로 달려와 함께 경도성을 들이칩시다.
앞서 얘기했듯이 장안군 성교(成嶠)는 나이도 어릴 뿐 아니라 싸움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군사에 관한 모든 것을 장수 번어기에게 맡겼다.
몽오로부터 도움 요청을 받은 장안군 성교(成嶠)는 번어기를 불러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그런데 여기서 상황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번어기(樊於期)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열었다."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원래 번어기(樊於期)는 함양성을 떠나올 때부터 딴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딴 핏줄인 진왕과 패륜아 여불위를 몰아내고 원래의 선왕 핏줄인 장안군(長安君)을
왕으로 세워야겠다.'문제는 언제 어디서 거사를 하느냐였다.기회를 노리는 중에 몽오(蒙鰲)로부터
도움 요청이 왔다.번어기(樊於期)는 순간적으로,'바로 지금이다.' 라고 직감했다.
앳된 티가 나는 장안군 성교(成嶠)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열정적인 어조로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군께서도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지금 왕위에 있는 정(政)은 실은 선왕의 혈육이 아니라
여불위의 자식입니다. 선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분은 오로지 대군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불위(呂不韋)는 대군을 몹시 경계하며 미워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번에 대군에게
군사를 주어 싸움터로 내몬 것도 사실은 대군을 싸움터에서 죽게 하거나, 패하면 그것을 핑계로
벌을 내리려는 속셈에서 입니다."
"설사 이기고 돌아간다 해도 무슨 명목의 죄를 뒤집어씌울지 모릅니다.
대군께서 돌아가시면 우리 진나라 영씨(贏氏)의 왕통은 영영 끊어지고 맙니다.
대신 여불위의 핏줄이 이 진나라를 지배하겠지요.""저는 이 점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오름을 느낍니다. 대군께서는 이를 알면서도 조(趙)나라와 싸우시겠습니까?"
장안군 성교(成嶠)도 진왕 정(政)과 여불위에 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어쨌든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번어기(樊於期)의 말을 들은 장안군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나도 귀가 있는데 어찌 여불위(呂不韋)에 관한 소문을 듣지 못했겠소?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장군의 말대로 우리 진나라 왕통은 여씨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하지만 내가 힘이 없는데
어쩌란 말이오? 장군에게 무슨 묘책이라도 있소?"바로 번어기(樊於期)가 바라던 대답이었다.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한층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마침 지금 대군에게는 5만의 군사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마련하십시오.""백년대계라면?"
"지금 몽오(蒙鰲)는 조나라 군사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반면 우리 군사는 한 명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각처에 격문을 돌려 여불위와 조태후와
진왕의 관계를 만천하에 폭로하여 그들을 성토하십시오."
"그러면 진(秦)나라 백성들과 신하들은 여불위의 간악한 수법에 경악할 것이며, 선왕의 핏줄이신
대군을 왕위에 모시고자 일제히 들고 일어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백년대계가 아니겠습니까?"
장안군 성교(成嶠)의 눈에 광채가 일었다. 의자를 차고 일어나 칼을 뽑아들며 외쳤다.
"선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몸으로 어찌 천하 장사꾼의 자식놈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으리오.
바라건대 번어기 장군은 나를 위해 앞일을 도모해주시오!"
번어기(樊於期) 또한 장안군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맹세했다.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대군을 위해 몸 바치겠습니다."이렇게 장안군 성교(成嶠)의 반란은 시작되었다.
869편에 계속
열국지 [列國誌] 869
■ 3부 일통 천하 (192)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1장 조정(趙政), 진왕에 오르다 (6)
- 우리가 곧 도우러 갈 터이니 몽오(蒙鰲) 장군은 안심하라고 전하라.
번어기(樊於期)는 일단 몽오가 보낸 사자를 돌려보냈다.그런 후 격문을 써서 사방에 널리 뿌렸다.
지금의 왕은 영씨가 아니고 여씨다.여불위(呂不韋)는 교묘한 수단으로 자신의 자식을 임신한 조희를
진장양왕에게 바쳤다.뿐만 아니라 진효문왕(秦孝文王)과 진장양왕(秦莊襄王)마저 독살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자식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서였다.이 어찌 하늘과 땅과 사람이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가.뜻있는 사람들이여!
진정한 진(秦)나라의 왕통을 세우기 위해서라도 봉기하여 여불위와 여불위의 자식을 쳐없애자!
그러고는 둔류(屯留) 땅 일대의 모든 장정을 징집하여 자신의 군대에 편입시켰다.
이어 북을 울리며 진류성 안으로 들어가 '장안군' 이라는 깃발을 성벽 높이 내걸었다.
장안군 성교(成嶠)의 반란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것은 오히려 함양성 안에 있는 여불위였다.
그는 진작부터 첩자를 풀어 장안군과 번어기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걸려들었군.'회심의 미소를 지은 후 궁으로 들어가 진왕 정에게 아뢰었다.
"장안군(長安君)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진왕 정(政)은 깜짝 놀랐다."장안군이 무엇 때문에?"
"어찌 나이 어린 장안군(長安君)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이는 필시 수하 장수인 번어기(樊於期)가
어린 장안군을 꼬드겨 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번어기는 용기만 있을뿐 꾀는 없습니다. 신이 반드시 그놈을 사로잡아 바치겠습니다."
그러고는 장군 왕전(王翦)을 대장으로 삼고 환의(桓齮)와 왕분(王賁)을 부장으로 삼아 장안군 성교를
토벌하라 명했다.그 무렵, 진나라 장수 몽오(蒙鰲)는 조나라 대장 방난(龐煖)과 대치한 채
원군이 당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장안군의 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궁금해하던 참에 뜻밖의 소식이 날아들었다.- 장안군(長安君)과 번어기(樊於期)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평생을 싸움터에서 보낸 백전노장 몽오(蒙鰲)는 길게 탄식했다.
"내가 조나라를 치러 왔다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는데, 이제 또 장안군마저 반역을 했으니
어찌 이 죄를 벗어날 수 있으리오."이어 그는 부장 장당(張唐)을 비롯한 모든 장졸을 불러놓고 명했다.
"진류성으로 진격하여 역적을 토벌하라. 그런 후에 다시 경도성을 치리라!"
그런데 이것이 몽오(蒙鰲)로서는 결정적인 실책이었다.요산 꼭대기에 올라 진군의 움직임을
내려다보고 있던 조나라 대장 방난(龐煖)은 즉각 부장 호첩을 불러 명을 내렸다.
"그대는 궁병(弓兵) 1만 명을 거느리고 샛길로 빠져나가 태항산 골짜기에 매복해 있으라.
몽오(蒙鰲)는 필시 우리가 추격할 것을 알고 맨 나중에 태항산 골짜기를 지나갈 것이다.
제1대(隊), 2대는 다 지나갈 때까지 내버려두고 나중에 몽오가 나타나거든 일제히 화살을 쏘아라."
호첩(扈輒)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움직였다.방난(龐煖)의 예상은 적중했다.
진나라 군대는 3대(隊)로 나뉘어 진류성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
장당(張唐)이 이끄는 제1대와 2대가 태항산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길이 좁고 험했다.
그 양편 숲 속에 매복해 있던 호첩(扈輒)은, 그러나 그들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반나절 후, 제 3대(隊)가 나타났다.몽오(蒙鰲)가 직접 지휘하는 군대였다.
골짜기는 동굴처럼 어두웠고 그 사이로 가늘게 나 있는 산길을 타고 몽오가 앞장서서 지나가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던 호첩(扈輒)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동시에 좌우 숲 속에 매복해 있던 1만 명의 궁사(弓士)들이 일제히 활을 쏘았다.아아, 가련하다.
몽오(蒙鰲)가 제아무리 백전노장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1만 개의 화살을 피할 수 있으리오.
몽오(蒙鰲)는 수백 대의 화살을 동시에 맞고 고슴도치가 되어 그대로 말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 진군 대패.장안군 성교의 반란이 낳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반란군 토벌군 대장 왕전(王翦)은 함양성을 떠나 바람처럼 달려 장안군 성교의 거점인 둔류성을 포위했다.
성벽 위에 올라 사방을 살피던 17세 소년 장안군(長安君)은 메뚜기 떼처럼 몰려드는 토벌군을 보고
크게 겁을 먹었다."우리가 어찌 저들을 이길 것인가. 차라리 지금이라도 항복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낫지 않겠소?"번어기(樊於期)가 질책하듯 장안군에게 말했다."대군께서는 이미 호랑이 등에 타신 격입니다.
이제 와서 약한 마음을 가지시면 군사들만 오히려 어지러워집니다.
제가 성문을 열고 나가 저들을 무찌를 터이니 대군께서는 마음을 굳게 먹으시고 힘차게 북을 치십시오."
다음날,번어기(樊於期)는 군사 3만을 거느리고 성밖으로 나가왕전(王翦)의 군사와 대치했다.
번어기가 말을 몰아 앞으로 내달리려는데 적의 진문(陣門)이 열리며 한 장수가 앞으로 나왔다.
토벌군 대장 왕전이었다.왕전(王翦)은 진소양왕 대부터 활약해온 노련한 장수였다.
무적 군단을 자랑하던 무안군 백기의 뒤를 이은 명장이다.
반면 번어기(樊於期)는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젊고 씩씩한 용장,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세대였다.
두 장수 모두 서로를 잘 안다.번어기(樊於期)는 왕전을 보자 대뜸 그가 웅변으로써 자신을
설득하려들 것임을 알았다. 과연 그의 짐작은 맞았다.
왕전(王翦)이 긴 수염을 휘날리며 번어기를 향해 외쳐댔다.
"우리 진(秦)나라가 그대를 소홀히 한 적이 없는데,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장안군을 앞세워
역모를 꾀하는 것인가.여기서 그만두고 투항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번어기(樊於期)는 이미 머릿속에 대답할 말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는 먼저 말 위에서 왕전에게 군례를 올려 경의를 표한 후 당당하게 소리쳤다.
"장군께서는 새삼스레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우리 나라 왕인 정(政)이 선왕의 아들이 아닌 여불위의 자식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백성도 아는 사실을 장군만이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장군도 저도 대대로 진(秦)나라의 국은(國恩)을 받아 왔습니다. 우리 나라 영씨(赢氏)의 왕통이
천한 신분의 상인 놈 손에 의해 끊어질 판인데 장군은 오히려 저를 보고 역모 운운하시는 것입니까?
역모의 주범은 바로 여불위입니다.""이에 소장(小將)은 선왕의 유일한 혈육이신 장안군을 받들어
위기에 처한 이 나라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하리라 마음먹은 것입니다.
장군께서도 조금이라도 이 나라 은혜를 받으셨다면 장안군을 모시고 함양으로 쳐들어가 음탕하고
교활한 여불위(呂不韋)를 쳐죽여야 할 것입니다."
번어기의 위풍당당하고 논리정연한 언변에 왕전(王翦)은 할 말을 잃었다. 안색이 돌변했다.
그러나 그는 역시 노련했다.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응수했다."그대는 열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
태후(太后)께서는 분명 열달 만에 왕을 낳으셨다.이것 하나만 보아도 우리 왕은 선왕의 혈통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근거없는 말에 현혹되어 만세에 대역죄의 오명을 남기려 하는 것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라.그것만이 그대가 살고 장안군(長安君)이 살 길이다!"
번어기(樊於期)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공연히 말싸움에 휘말렸다가 잘못하면 군사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칼을 빼어들고 말의 배를 찼다.순간, 번어기의 말은 쏜살같이 왕전(王翦)을 향해 달려갔다.
870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