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이천호 기자]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터지고 대한민국은 현재 유래 없는 정치적 위기상황에 빠졌는데 왜곡되거나 편파적인 정치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에게도 정치에 대해 무관심과 침묵을 택한 개인에게도 어느 정도의 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본다. 지난 19대 대선 기간에 자신과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대선후보를 알려주는 웹사이트 ‘누드대통령’이 큰 인기를 끌었다. ‘누드대통령’은 복지, 안보, 환경 등 참여자가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각 후보의 공약을 후보의 이름을 가린 채로 보여주고 가장 끌리는 공약을 선택하게 하는 서비스다. 이를 바탕으로 결과를 분석해 각 후보와의 정책적 지향이 분야별로 얼마나 일치하는지 퍼센트로 나타낸 ‘후보 매칭률’을 제시했다. ‘누드대통령’은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무려 7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의 장으로 떠오른 정치 플랫폼은 우리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정치 플랫폼
시민이 정치의 주인이라는 시대정신과 온라인플랫폼을 통해 참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대표자에게 전권을 위임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는 15세기 인쇄술의 발명에 따른 지식의 보편화, 대중화에 기반하고 있다. 그런데 인쇄술에 기반 한 주권의 행사는 선거 때뿐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이론에서 플랫폼은 그저 정보를 주고받는 장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들에 의해 정보가 가공되고 재생산되는 능동적인 공간을 의미한다. 정치 플랫폼 역시 단순히 후보의 공약이나 정책 같은 정치적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시민들이 실제로 정치에 참여하는 온라인 광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정치 플랫폼은 크게 정치 참여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플랫폼과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플랫폼으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 찬성을 촉구하는 청원을 넣을 수 있는 ‘박근핵닷컴’이나, 선거 투표·개표 과정에서 부정선거의 시비는 없었는지 감시하는 ‘시민의 눈’ 등은 적극적인 정치 참여형 플랫폼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누드대통령’이나 정치벤처기업 ‘와글’(WAGL)에서 운영하고 있는 성향이 비슷한 정당 및 후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온라인 투표 가이드’는 소극적 정보 전달형 플랫폼에 해당한다. 와글의 천영환 매니저는 창업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시민의 일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지방정부의 공무원으로 일했었지만, 정책이나 예산이 시민의 편익보다 소수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행정시스템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 시민들의 정치 참여 사례를 연구하며 우리나라 정치가 시민을 위한 정치가 되기 위해선 새로운 정치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정치 플랫폼의 등장으로 인해 시민들은 뉴스나 신문을 찾아보는 등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쉽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권혁준 씨(전기전자공학부·15)는 “평소 정치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누드대통령’을 통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각 후보의 정책 등 투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상의 아고라
21세기 오늘날 우리의 정치제도는 여전히 몇 백 년 전인 인쇄술에 의존하고 있다. 기술에 발전에 비해 우리의 정치제도와 시스템은 뒤떨어져 있다. 그저 우리는 4년마다 투표할 뿐이다.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에는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정치 플랫폼 참여가 활성화되는 등, 정치 플랫폼은 그 시기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에 의해 부침을 겪으며 과거에도 꾸준히 존재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다양한 정치 플랫폼이 나타나게 된 것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애플리케이션이나 SNS가 등장한 최근의 일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을 전후해 정치 플랫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원인을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서 찾는다. 이준웅 교수(언론정보학과)는 “탄핵과 그로 인해 촉발된 조기대선 정국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은 극대화됐고, 이로 인해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지며 정치 플랫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치 플랫폼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천영환 매니저는 와글의 목적을 “기존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직접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해 보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의영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정치 플랫폼은 정치에 대한 문턱을 낮춰 자신의 정치적 참여로 인해 세상이 실제로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를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기층 시민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정치 플랫폼은 외면받기 쉬운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의제를 공론화시키며 여론을 제고하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의회나 정당과 같은 정치세력들을 감시·견제하는 창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 1번가’라는 플랫폼을 통해 어떤 공약이 필요한지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받았고, 미세먼지 대책과 관련한 의견은 실제 후보의 공약에 반영되기도 했다. ▲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미디어카페 후에서 온라인 정치플랫폼 ‘움직여’(http://movenow.kr) 시연회가 열리고 있다.[사진=한겨레] 정치 플랫폼을 통해 시민들은 다양한 발신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수용하는 동시에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이준웅 교수는 “기존엔 정당과 후보자에 의해 생산되고 언론을 통해 걸러지는 정보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변화된 정치 플랫폼의 등장으로 여러 주체가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대선 토론회와 함께 등장한 JTBC ‘대선자문단’은 후보들의 공약이나 발언에 대한 시민의 궁금증을 실시간으로 해결해주는 플랫폼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자유롭게 대선 과정에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민들은 정치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수용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정치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재생산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됐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 플랫폼
이제 우리는 시민들의 수평적인 토론과 집단적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온라인정치플랫폼을 공개한다. 온라인정치플랫폼은 누구에게 독점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온라인플랫폼이란 토론의 장, 공론의 장, 논쟁의 광장이다. 참여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논쟁을 하고, 논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은 깊어진다. 그리고 집단적인 투표를 통해 정책을 결정한다. 정치적 행동이나 정책은 전문가나 정치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의 노력의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참여해서 만들어낸 결정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무관심이란 있을 수 없다. 이제 관심의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인 무관심을 물리칠 수 있는 참여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정치 플랫폼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우려 또한 존재한다. 소수의 인원이 논의를 주도함으로써 정치플랫폼의 여론이 한 쪽으로 쏠리고,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거나 극단적인 주장이 주류를 이룰 수 있다. 또한 아직까진 정치 플랫폼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생기는 한계도 있다. 천영환 매니저는 “대표자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현재 대의민주제에 익숙한 시민들이 정치 플랫폼을 통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에 생소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며 “이러한 점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뒷받침돼야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치 플랫폼의 역할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몇몇 우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정치 플랫폼의 미래가 밝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웅 교수는 “이러한 우려가 오히려 우려스럽다”며 “포퓰리즘과 같은 잘못된 담론이 유입되는 등의 부작용도 예상되지만 대다수 대중의 이성이 부작용을 압도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김의영 교수 역시 아직은 정치 플랫폼이 형성된 초기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학습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허허벌판이던 강남을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 변모시킨 지하철 2호선 플랫폼처럼 시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탓에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정치를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정치로 탈바꿈시킬 정치 플랫폼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tyche2005@naver.com http://www.newsfreezone.co.kr/detail.php?number=208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