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최용현(수필가)
이탈리아 출신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마카로니 웨스턴의 걸작으로 꼽히는 무법자 3부작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로 죽어가던 웨스턴 무비에 새 생명을 불러 넣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마침내 존 포드 감독이 정통서부영화를 촬영하던 미국 서부 모뉴먼트 밸리에서 할리우드 자본의 대규모 지원을 받아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찍을 수 있었다.
‘옛날 옛적 서부에서’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동부에서 서부로 향하는 철도건설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의 이야기로, 기존 서부극에서 보여주던 백인 중심의 영웅주의 세계관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이때의 서부는 미국의 건국신화에 담겨 있는 정의와는 거리가 먼 무법천지였으며, 더럽고 야만적이며 맹목적으로 부(富)를 추종하는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뉴 올리안즈 모뉴먼트 밸리의 플래그스톤 기차역에 악당 두목 프랭크(헨리 폰다 扮)가 보낸 세 명의 총잡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가 도착하자 철로 저편에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리더니 한 남자(찰스 브론슨 扮)가 나타난다. 잠시 대화가 이어지다가 바로 총소리가 난다. 의문의 하모니카 맨이 세 명의 총잡이를 간단히 처치하고 사라진다. 이 오프닝 장면은 디테일을 살린 정교한 연출로 14분 동안이나 이어진다.
한편, 플래그스톤 마을에는 맥베인이라는 홀아비 땅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와 혼인신고를 하고 동부에서 오는 질(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扮)을 맞이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하던 맥베인과 세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프랭크 일당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프랭크 일당은 탈옥한 건달 샤이엔(제이슨 로바즈 扮)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그의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플래그스톤 기차역에 내린 질은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자, 마차를 타고 맥베인의 집으로 향한다. 맥베인의 집에 도착하니 마당에 맥베인과 세 아이들의 시신이 널려있었다.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치른 질은 이 집에 혼자 살기로 한다.
프랭크 일당의 보스는 동부에서 서부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철도건설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 철도를 운행하는 증기기관차에는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맥베인의 땅에서 지하수가 나는 것을 알게 된 프랭크 일당은 이곳에 철도역을 건설하여 큰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걸림돌인 맥베인과 그 가족을 모두 죽인 것이다.
탈옥한 건달 샤이엔은 이 집으로 찾아와 질에게 자신은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며 자신이 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을 억울해한다. 곧이어 하모니카 맨도 이 집을 찾아온다. 샤이엔과 하모니카 맨은 프랭크 일당이 맥베인의 땅을 빼앗으려고 일가족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고, 이들은 프랭크를 처단하기로 의기투합한다. 프랭크는 맥베인의 유산을 상속하게 된 질을 유혹하고 협박하면서 그의 땅을 경매로 내놓게 하여 헐값으로 차지하려 하지만, 두 총잡이들의 방해로 일이 꼬이게 된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와이드 스크린 가득히 서부의 웅장한 풍광을 담고, 때로는 클로즈업 화면을 통해 인물들의 주름진 얼굴을 담거나 질을 통해 은근히 에로티시즘을 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요한 장면마다 맞춘 듯이 흘러나오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시너지 효과를 내며 마치 한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이제 결말로 치닫기 전에, 플래시백 장면으로 의문의 사나이 하모니카 맨의 정체를 밝힌다. 양손을 뒤로 묶인 어린 하모니카 맨은 목에 밧줄이 걸린 형을 목마를 태운 채 어깨 위에 받치고 있다. 젊은 날의 프랭크가 다가와 어린 하모니카 맨의 입에 하모니카를 물리며 ‘네 형을 즐겁게 해 주렴!’ 하고 말한다. 형이 발로 동생을 밀어버리고 죽음을 택하자, 하모니카 맨이 쓰러져 땅바닥에 얼굴이 처박히는 모습이 슬로모션으로 나온다.
순간, 다시 현재로 돌아와 하모니카 맨과 프랭크가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발사하는데, 프랭크는 권총을 미처 총집에 꽂지 못한 채 비틀거리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프랭크가 힘겹게 ‘넌 누구냐?’ 하고 묻는다. 하모니카 맨은 말없이 하모니카를 꺼내 프랭크의 입에 물린다. 드디어 프랭크의 얼굴이 땅바닥에 처박힌다.
질의 집에서 기다리던 샤이엔과 형의 복수를 마친 하모니카 맨은 이곳을 떠나기로 한다. 하모니카 맨은 말을 타고 가다가 총상(銃傷)의 후유증으로 쓰러진 샤이엔을 말 등에 싣고 함께 길을 떠난다. 철도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집 앞에서 질이 인부들에게 줄 물을 길어 나르는 라스트 신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악당은 서부극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다. 늘 주인공을 맡던 푸른 눈의 백인은 악당이 되고, 늘 주인공을 괴롭히던 인디언이 주인공이 된 것이다.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1946)에서 주인공 보안관을 맡았던 헨리 폰다는 냉혹하고 비열한 악당이 되고, 인디언의 후예로 설정된 찰스 브론슨은 주인공이 되어 복수극을 펼치는 것이다. 또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서부의 어머니상으로 그려지는 여주인공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동부의 매춘부 출신으로 설정된 것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헨리 폰다가 악역으로 캐스팅된 것에 충격을 받은 배급사가 배급을 거부하는 바람에 배급사사 중간에 바뀌었다고 한다. 또 찰스 브론슨이 연기한 하모니카 맨은 원래 마카로니 웨스턴의 영웅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기로 했으나, 외모가 인디언의 후예로는 어울리지 않아 교체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원래 러닝 타임이 4시간으로 제작되었는데, 2시간짜리로 줄여서 개봉하는 바람에 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제대로 표출되지 못했고, 결국 그해 아카데미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항상 10위권 안에 드는 웨스턴 무비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Once Upon A Time In ~’으로 시작되는 영화 제목은 대충 찾아봐도 10편이 넘는다. 뒤에 장소만 붙이면 ‘옛날 옛적 ~에서’가 되니 참으로 효용가치가 높은 제목이다. 이 영화의 제목을 창안(創案)한 사람이 왜 상호등록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첫댓글 서부영화를 많은 한국인들이 좋아하지요. 서부영화가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얘기이지만, 미국에서는 서부개척의 역사를 담고 있는 역사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처음 가던 날 내 책상위에 지도교수님께서 한 권의 책을 놓아 두었습니다. 'Two Wagons on the Hill'이란 책이었는데....Seattle의 개척사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Two Wagons on the Hill'이면 '언덕위의 두 역마차' 쯤 되나요?
역마차 하니 흑백영화로 본 존 웨인의 역마차가 떠오르네요.
그 영화도 에세이로 써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역사는 인디언과 싸우며 땅을 빼앗고 넓혀간 서부개척사죠.
@월산거사 미국은 서부개척사를 매우 중요시하는 나라입니다. 개척당시의 frontier 정신이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정 역사가 짧은 나라이다 보니 그렇겠지요.
역사가 짧으면 어떻습니까.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이 서부영화의 제목을 보면 중학죠 댕길때 영어책에 나오던 문귀가 생각납니다
Once upon a time there was once man. He had bird.......ㅎㅎ
챨스 브론슨이 얼굴 덕을 보았군요
허긴 그 얼굴이라면 인디언이 맞을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서부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는 개인적으로 크린트이스트 우드 가 좋습니다
다방면으로 젤 좋아하는 배우는 율브리너 이지만ㅎㅎ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반세기 전의 영어문장을 기억하시다니요.
정통서부영화 주인공은 죤 웨인이고, 악당은 대부분 인디언이죠.
마카로니 웨스턴 주인공은 클린트 이스트 우드, 아니면 리 반 클립, 악당은 멕시코인?
그러나 저러나 007영화가 그렇듯이 서부극도 이제 한물간 장르죠.
율브리너의 대장 부리바~~~
율 부리너 하면 대장 부리바 외에도 왕과 나, 황야의 7인, 솔로몬과 시바 등 많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