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나이아가라에 지난 크리스마스 때와 같은 대 폭설이 3일간 지속될 것이란 주의보가 내렸다. 첫날은 비가 먼저 내려 얼어 붙은 위에 눈보라가 밤새 몰아 쳤다.
이번 주의보도 좀 빗나간 것인지, 둘째날은 태풍전야 같은 먹장 구름이 잔뜩 찌프린 적막 속에 온종일 통행이 끊기다 시피했다. 창가에 앉아 옛날 청춘 드라마 "맥랑"을 발견해 온종일 보게 되었다.
마침 시골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이 중심이 된 것이어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내 젊은 날과 많은 것에 공감하고 추억을 되새기게 했다. 공부에 목을 매고 모인 학교라 학폭같은 얼빠진 일들은 없었다는 것이 드라마와 좀 달랐다.
더 먼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와서 자취하는 학생을 돕는 급우들의 이야기에 먼저 떠난 별나게 함께 했던 옛 친구들 생각이 겹쳐 눈물까지 훔치게 되었다.
서울근교의 시골과 경계선 위에 자리잡은 우리 학교는 드라마 처럼 도시와 시골의 양면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전학생 장학금을 받는다는 특혜 때문에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시골 수재들이 몰려 와 학교 주변에서 자취방 촌을 이뤘다.
축구말고는 놀만한 것이 없던 그 시절, 우리에게 그들의 자취방이 해방 공간이었고, 그들에겐 외로움을 달래며 미래를 꿈꾸는 터전이었다. 드라마 속 멋진 담임같은 선생님들에게 서둘러 배운 술로 이런 저런 기념의 막걸리 축배를 드느라 용돈을 일찍 축내는 일도 잦았다.
고향에 돈을 보내 달라고 자주 손벌리기가 어려운 친구들 중에는 점심 싸오기도 귀찮고, 재미도 있어 젓가락만 들고 다니는 장난꾼도 있었다.
시오리 떨어진 곳에서 논 농사와 과수원을 하던 우리 집이 그들에게는 많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자취방에 놀러 가 쌀통이 빈 것이 보이거나, 시골서 돈 보내 오기 한참 전에 쌀이 떨어졌다고 하면 큰 방아간을 하신 고모네 자전거를 빌려 쌀과 밑 반찬들을 갔다주곤 했다.
학교를 떠난 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년이 훌쩍 지나 갔다. 술도 많이 안하던 녀석은 간암을 앓으면서도 씩씩하게 18년이나 살다 떠났다. 천재로 천상 선비였던 부장 판사도 하늘이 주신만큼만 살겠다며 자연치료도 거절하고 암으로 떠났다.
지난 해에는 지리산 깡촌에서 올라 와 참으로 열심히 살고, 우리 과수원 집을 쥐가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며 어른들에게도 잘 했던 녀석도, 글을 좋아하다 다시 사제의 길을 걷는 급우 신부님을 찾아 가 전화를 하겠다더니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졸업 후에도 우리 집에 할아버님, 어머님 생신등을 핑게로 놀러 와 땅에 묻어 둔 포도주 항아리까지 비우며 자고 가곤 했다. 술은 많이 마셔도 운동을 열심히 해서 오래 살 것이라 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코로나 후유증인지 간단한 폐수술한다고 들어 가 수술대에서 가족들도 못보고 떠났다.
가장 꿈도 많고 고민도 많이 했던 고교시절처럼, 이미 쌓인 폭설 위로 내리는 이슬비를 보며 다가 온다는 더 큰 폭설에 대한 두려움을 달래며 지샌 하루였다.
그 험할 것이란 세째 날인 오늘은 새해 들어 오랫만의 햇살이 폭설 주의보를 비웃듯 화사하다. 폭설 주의보 덕분에 옛날을 회상할 수 있어 가슴이 저렸고, 먼저 간 친구 녀석들이 하늘도 맑게 해준 것이다 싶어 감사하다.
첫댓글 오늘 새벽 기온이 영하 8도 였는데
내일은 눈이 온다네요.
꽃샘추위치곤 너무하죠?? ㅎ
그곳은 더 춥겠네요.
네째날인 오늘
영하 5도에 살짝 눈이 내립니다.
캐내디언들은 춥다가 버릇처럼
나오는데, 이민자인 저희는 해마다
기온도 올라가고 눈도 덜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가끔 잠깐 퍼붓는 폭설로 며칠씩 눈 치우는 것이 좀 번거롭긴 해도...
- 대학시절. 대학주변 친구 하숙방을 전전하며 술 마시고 밤새 토론하다 그곳에서 꾸겨자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거칠것 없던 패기만만한 시절이었습니다. 인생이 참 만만하게 보였는데...
- 드라이덴 깡촌에서 모텔 할 때. 눈 치우는것 힘들고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죠.
심심하시면 유투브에서 "맥랑시대"라고 보세요. 우연히 발견했는데 옛날을 회상하기 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