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도에 슬로박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왔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이번엔 정명훈이 지휘하는 KBS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천안에서 공연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보니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을 만나는 게 더 큰일인 듯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지휘자 정명훈을 만날 수 있는 일이 더 큰 사건이다
오래전 서울시향을 이끌고 와서 베토벤 연주회를 했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이번 KBS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고대했었다
서울 시향에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지방으로부터 러브콜을 많이 받는데 천안처럼 꾸준히, 일관되게 러브콜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왔노라고 해서 많은 박수를 받았는데
오늘 또 만나게 되니 설렘 가득한 기다림에 행복했다
이 연주회 티켓팅을 위해 얼마나 심장 떨리는 클릭을 했는지 지금도 손끝에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임윤찬 전에 우승한 피아니스트가 선우예권이다
그 후에도 꾸준히 콩쿠르에 나가 8번을 1위 한 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오늘 연주한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다
이 곡은 수없이 듣고 연주회 영상을 많이 봐와서 주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지만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객석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드디어 눈으로 감상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3악장 전곡을 말이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움직임을 따라
알레그로 였다가 아다지오였다가 논 트로포로 이어지는 과정을 함께 했다
건반을 두드리고 누르고 강하게 내리쳤다가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마지막 건반을 누르고 손을 올릴 때의 격한 감정이 쉽게 가라앉질 않는다
쏟아지는 박수에 앙코르곡을 연주하는데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꿈결 같은 곡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마치 드뷔시의 달빛을 듣는 듯 좀 전의 격한 두드림 온데간데없고
건반을 어루만지는 듯한 연주로 우릴 조용한 달빛으로 이끌어 가는 느낌이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이어지는 연주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이다
1악장은 비장하게 시작되더니 점점 서정적으로 경쾌하게 흘러가다가
4악장에선 격정적으로 쏟아내다가 화려하게 끝이 난다
팀파니와 지휘자와의 캐미가 너무 흥미롭다
팀파니의 말렛 종류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그냥 2개 가지고 나와서 연주하는 줄 알았는데
팀파니 연주자 앞에 말렛을 여러 개 걸어놓고(거치대가 있었음) 서로 다른 음을 내려는지
말렛을 계속 바꾸어 잡고 연주한다
연주자의 몸짓이 어찌나 다채로운지 흥미 있었다
박자를 맞추는 방법으로 스윙자세를 잡듯 뒤로 한껏 밀어 올렸다가 내리치는 모습도 보이고
팔을 돌려 박자수를 맞추거나 음을 따라가는 모습이 아주 재밌다
연주자의 동작 하나하나가 다 음악이다
음을 자아내는 지휘자 정명훈의 온몸은 절제미가 있고 카리스마가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에 이끌려 나온 지휘자가 지휘대에 올라서자마자 음이 흘러나와 깜짝 놀랐다
카운트도 준비동작도 없이 갑자기 물로 뛰어드는 수영선수처럼
첨벙하고 뛰어들어 우리가 앉은 객석까지 물보라가 튄 것 같은 화들짝 한 순간이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파트너를 부르더니
아주 경쾌하게 춤을 추며 달려 나간다
박수를 너무 강렬하게 쳤더니 팔이 뻐근하다
일요일 오후 4시의 연주회
끝나고 나왔는데 밖이 환하니 짠딸이 이상하다고 한다
맞아!
아름다운 밤이에요 하려도 할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