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까지 젖을 빠는 건 사내들이 유일하다고
떠도는 진실을 우습게 희롱했다가
여교사들에게 고발당했다
아파트 계단에서 담배 피고 오줌 쌌다는 주민 신고 받고
홧김에 장구채 휘둘렀다가
애한테 고발당했다
자지는 성기로 고쳐 부르겠다
젖 같은 얘긴 하지 않겠지만 만약 하게 될 일이 있다면
사람이나 포유동물에게서 분비되는,
새끼의 먹이가 되는 뿌연 빛깔의 액체로 고쳐 말하겠다
그리고 애들 문제는 경찰에 직접 맡기겠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
수목 한계선에 있는 학교여
- 시집 『과업』 (삶이보이는창, 2006)
........................................................
강원도 인제의 한 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중인 시인이 일선현장에서 겪은 자신의 교육이념과 현실간의 괴리를 솔직 담대하게 표현한 시다. 현실에서 교사의 수업권과 학생의 학습권이 충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양질의 수업을 받을 권리가 학생에게 있듯이 교사에겐 수업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동시에 학생도 수업을 방해하지 않아야할 의무가 있으며, 교사는 수업을 혼란 없이 잘 유지하여야할 의무가 주어져있다. 교육현장에서는 이러한 권리와 의무가 보장되고 존중받아야함에도 여러 형태로 그렇지 못한 사례들이 자주 발생되고 있다.
언젠가 지방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들에게 주관식 20문제로 수학시험을 치면 반에서 절반은 빵점이 나오는 게 현실이란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포기한 학생들이 뒤섞여 있어 가르치기 어려운데다가, 수업시간에 공부를 놓아버린 학생들을 관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여자선생님에 대한 요즘 잣대로 보면 성희롱과 성추행도 횡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실정임에도 웬만하면 넘어가고 학교당국이나 교육청에서도 뾰족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중고생이 여교사보다 물리적인 힘이 센 상황에서 학생의 거친 언동은 충분히 위협적이다. 특히 초보교사로서는 수치심을 넘어 자칫 서툰 대응을 했다가 더 큰 해코지를 당하거나 그 염려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사에게 교육적 권위를 갖게 하고 학생에게는 실효성 있는 인성교육이 처방일 터이지만, 교육현장은 학생과 교사의 역할과 관계가 무너진 지 오래인 비극적 환경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교권침해가 급증하면서 교사들의 고충이 날로 늘고 있다. 교권침해 행위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 매뉴얼도 없고 학교에 맡기는 형편이다.
학교의 자율권은 교사가 교육의 주체로서 우뚝 제 자리를 지켰을 때 순기능을 다한다. 경쟁과 성적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학생의 인성교육과 올바른 사제관계의 정립은 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되지만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며 체벌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학생생활지도범위의 한계가 모호하여 시에서처럼 갈등을 빚는 사례가 잦아 교사가 소신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기 힘든 실정이다. 교권이 실추되면 학교가 무너지고, 나아가 사회까지 무너지는 무서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변소에 갔더니/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볼라고 볼라고 한다/ 그렇지만그렇지만 나는 안 보여줬다” 초등3학년 아이가 작시한 백창우의 동요 ‘내 자지’다. 어떻게 ‘너무 무겁게’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지’는 국어사전에 등록된 우리의 표준어이다. 언급 자체만으로 망측하게 여기는 학부모가 있다면 그 또한 문제다. 근원적인 문제는 다른데 있는데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 교육부 성교육 교재에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자극을 주는 옷차림을 피하라.”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성차별적이고 성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남학생들은 점점 거칠어지고 여학생들의 치마 길이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열린 교육이 절실하다. 열린 교육은 루소로부터 시작된 진보주의 교육실험이란 삐딱한 시선도 있지만 미래를 짊어질 우리 아이들에게 인간의 균형적 발달을 강조하는 전인교육과 인성교육의 좌표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그 실천과 정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리라. 그래야만 날로 잣대가 엄격해지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추행과 성희롱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권순진(201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