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양차공춘란(題楊次公春蘭)
소식(蘇軾, 1036~1101)
춘란은 미인을 닮아서
캐어질지언정 스스로 바치지는 않네
이따금 바람결에 향기 흩날리지만
쑥대밭 무성해서 보이지않네
春蘭如美人(춘란여미인)
不採羞自獻(불채수자헌)
時聞風露香(시문풍로향)
蓬艾深不見(봉애심불견)
양 씨 문중의 둘째 아들이 난을 잘 쳤다. 어느 날 소동파를 초대하여
정성스러운 주안상을 올려 대접하더니 자기가 그린 난초를 보여준다.
그림의 여백에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소동파가 지그시 눈을 감고
시상을 떠올리더니 붓을 잡고 써 내려갔다. 난초는 뭇 잡초와 다른 품
위를 가진 미인과 같아서 스스로 남의 눈에 띄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
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기다리며 조용히 제향기를 준비할 뿐이다.
“난향천리 인덕만리(蘭香千里 人德萬里)”라 한다. 난이 꽃을 피우면
그 향기가 천리를 간다. 사람도 그렇다. 꼭 미인이 아니더라도 남자건
여자건 조용히 자신의 향기를 준비하고 있으면 만리 밖에서도 알아주
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작가소개]
소식[ 蘇軾 , Su Shi음성듣기 ]
출생 – 사망 : 1036(북송 경우 3)년 ~ 1101(건중 정국 1)년
출생지 : 중국 미주(쓰촨성) 미산
자 : 자첨(子瞻), 호 : 동파(東坡), 이칭 : 문충(文忠)
직업 : 시인, 서예가
중국 북송의 문인.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東坡), 시는 문충(文忠), 미주(쓰촨성) 미산 출신. 가우 2년(1057)에 진사가 되고 영종조(1063~1066)에 사관(史館)에 들어갔으나 왕안석의 신법에 반대하여 당쟁에 패하고 항주(저장성)등의 지방관을 역임했다. 철종조(1085~99)에 한림학사, 원우 7년(1092) 예부상서와 단명전한림시독양박사가 된다. 시인, 서예가로도 당대제일이고 서예는 처음 『난정서』를 배우고 안진경의 서예에서 인간성의 발로를 발견하였으나 후에 고인의 모방을 배척하고 일가를 이룬다. 당쟁에 의하여 혜주 경주로 유배되었다. 휘종의 대사로 일시 장안에 돌아와 벼슬을 하였으나 상주(장쑤성)에서 객사. 송대의 4대가의 한사람. 서예 작품은 『황주한식시권』, 『장규각비』, 『이태백선시권』 등이 유명. 저서에 『동파전집』이 있다. 또한 소식에 얽힌 고사는 화제(畫題)가 되어 『전∙후적벽부』에 의한 『적벽도』, 장쑤성 진강 금산사에서의 불인선사와 문답에 의한 『동파해대, 유대도』 해남도의 고사에 의한 『대리입리도』가 있다.
<작품>
황주한식시권, 장규각비, 이태백선시권
[네이버 지식백과] 소식 [蘇軾, Su Shi]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