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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산행 – (한북정맥)강씨봉,청계산
1. 강씨봉 가는 길, 안개 속 풍경
오를수록 우세(雨勢)는 맹렬했으나, 광풍이 안개를 헤칠 때마다 농무(濃霧) 속에서 홀현홀몰하는 영봉을 영송하는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산마루가 가까울수록 비는 폭주(暴注)로 내리붓는다. 1만 2천 봉을 단박에 창해(滄海)로 변
해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갈 데 없이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 가지고 비로봉 절정에 있는 차점으로 찾아드니, (…)
밖에서는 몰아치는 빗발이 어느덧 우박으로 변해서 창을 때리고 문을 뒤흔들고 금시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하다.
(…) 간장을 죄는 몇 분이 지나자, 날씨는 삽시간에 잠든 양처럼 온순해진다. 변환(變幻)도 이만하면 극치에 달한
듯싶다.
비로봉 최고점이라는 암상(巖床)에 올라 사방을 조망했으나, 보이는 것은 그저 운해뿐――운해는 태평양보다 깊으
리라 싶었다. 내외해(內外海) 삼금강(三金剛)을 일망지하(一望之下)에 굽어 살필 수 있다는 일지점(一地點)에서
허무한 운해밖에 볼 수 없는 것이 가석(可惜)하나 (…).
―― 정비석(鄭飛石, 1911~1991), 「산정 무한」에서
▶ 산행일시 : 2025년 6월 21일(토), 흐림, 안개
▶ 산행인원 : 4명(악수,메아리,하운,유수)
▶ 산행코스 : 강씨봉자연휴양림,도성고개,백호봉,강씨봉,한나무봉,오뚜기고개,귀목봉삼거리(886.2m),청계산,
청계산 제3코스,청계행복마을 늘해랑,청계저수지
▶ 산행거리 : 도상 14.2km
▶ 산행시간 : 7시간 50분(08 : 40 ~ 16 : 30)
▶ 갈 때 : 전철(명일역,천호역,별내역) 타고 가평역에 가서, 군내버스 타고 강씨봉자연휴양림 입구로 감
▶ 올 때 : 청계저수지에서 택시 타고 일동으로 가서 저녁 먹고, 시외버스 타고 동서울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22 – 가평역(용수동 가는 버스출발 – 07 : 45)
08 : 40 – 강씨봉자연휴양림 입구, 산행시작
09 : 06 – 도성고개삼거리, 강씨봉 3.5km, 도성고개 2.5km
09 : 16 – 도성고개 임도삼거리
09 : 37 – 도성고개(道城--, 631m), ╋자 갈림길, 휴식( ~ 09 : 53)
10 : 37 – 백호봉(806m)
10 : 57 – 강씨봉(姜氏峰, △830.2m), 휴식( ~ 11 : 10)
11 : 51 - △768.0m봉
11 : 58 – 오뚜기고개(761.8m), 점심( ~ 12 : 31)
13 : 05 – 886.2m봉, ┳자 갈림길, 귀목봉 1.4km, 청계산 2.1km, 휴식( ~ 13 :20)
14 : 43 – 청계산(淸溪山, △849.0m), 휴식( ~ 14 : 48)
16 : 04 - 청계행복마을 늘해랑
16 : 30 – 청계저수지, 산행종료
16 : 55 – 일동, 저녁( ~ 18 : 30)
19 : 39 – 동서울터미널
2. 산행지도(영진지도, 1/50,000)
▶ 강씨봉(姜氏峰, △830.2m)
장마철이다. 이번 주말에는 많은 비가 내렸고,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로 많은 국립공원이 전면통제 되었
다. 설악산과 지리산 전라도 지역만 개방되었을 뿐 모든 국립공원이 입산통제 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도 전면통제
다. 근교 산을 찾는다. 비교적 접근하고 탈출하기 쉬운 한북정맥 강씨봉이다. 그곳에는 오후 느지막이 비가 내린다
는 예보가 있어 우산(카메라를 씌우기 위해서다)과 우비(방한용이다) 등을 준비하고 나선다.
가평역 도착시간 07시 20분, 강씨봉 들머리인 강씨봉자연휴양림 입구를 들르는 용수행 군내버스는 07시 45분에 있
다. 여유가 있다. 용변 보고, 달달한 자판기 커피 뽑아 마시고, 아침식사를 하지 못한 메아리 님과 하운 님은 절편으
로 때운다. 오늘따라 용수동 가는 버스에 등산객이 뜸하다. 우리 말고 홀로 등산객 한 분이다. 강씨봉자연휴양림
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보는 풍경이 가슴 설레게 한다.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다. 산정에 오르면 환상적인 가경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평천 주변 텐트촌 등 상가는 여름 한철 물놀이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이곳 가평에도 큰 비가 내렸다. 가평천
물살이 거세다. 용수동행 버스는 목동터미널에서 쉬었다 간다. 전에는 같은 버스인데도 환승절차를 거쳤는데 지금
은 잠시 정차했을 뿐이다. 버스 안내방송에 나오는 정류장 이곡리, 범바위, 재령리, 가둘기, 백둔리, 명지산 입구,
관청마을, 명화동, 논남 등등이 정겹다. 몽가북계, 화악산, 국망봉, 연인산, 명지산의 들머리이고 날머리이다.
강씨봉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버스에 내려 0.3km 정도 걸어가면 휴양림 매표소다. 성인 1,000원, 경로우대는 무료
다. 매표원이 나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은 게 섭섭하다. 강씨봉을 오르려면 휴양림을 지나지 않을 도리
가 없다. 지난번(벌써 4년이 다 되어간다)에는 계류 왼쪽 산자락 도는 ‘명언 읽고 가길’의 데크로드를 갔는데, 오늘
은 계류 오른쪽 임도로 계류 따라 오르는 ‘소리향기길’을 간다. 한적한 숲속 길이다. 새소리 물소리 들리고 풀꽃 향
기 나는 길이다. 열 걸음이 멀다 하고 큰소리치며 흐르는 와폭을 들여다보며 간다.
‘명언 읽고 가길’과 만나고 임도는 계속된다. 검은 납작 돌에 쓴 명언이 눈길을 끈다.
요컨대 믿음(신념)을 올곧게 가지라는 뜻이다.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되고,
네 생각은 네 말이 되며.
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되고,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되며,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 마하트마 간디―
영문과 병기했더라면 이해하기 더 쉬웠겠다.
Your beliefs become your thoughts. Your thoughts become your words. Your words become your
actions. Your actions become your habits. Your habits become your values. Your values become your
destiny.
―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휴양림관리사무소에서 1.5km를 가면 Y자 갈림길인 도성고개삼거리와 만난다. 오른쪽은 강씨봉 3.5km, 도성고개
2.5km이다. 왼쪽은 강씨봉 지름길로 0.61km인데 너무 짧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간다. 임도 오르막이다. 이 임도는
도성고개까지 이어진다. 하늘 가린 완만한 숲속 임도라서 그리 팍팍한지 모르고 오른다. 안개 속에 든다. 안개 속
그라데이션 농담의 풍경이 그윽하다. 자작나무숲 지나고 물푸레나무숲을 지난다. 채종림이라고 한다.
3. 강씨봉자연휴양림 가는 길의 가평천
5. 강씨봉자연휴양림 주변
8. 물푸레나무 채종림
10. 도성고개
11. 도성고개 주변 잣나무 숲
계류 물소리 밭고 조금 지나 도성고개다. 디지털포천문화대전의 지명유래다.
“토성(토성현은 가평군의 옛 이름)으로 넘는 고개라 해서 토성현(土城峴)이라 부르게 되었고, 또 태봉국 궁예(弓裔)
의 부인 강씨가 강씨봉에 피난했을 때 이 성을 쌓고 도성(道城)이라 했다고 하여 도성고개(道城峴)라고도 부른다.”
도성고개 너른 공터에서 첫 휴식한다. 맑은 날이면 서쪽 벌판 너머로 보장산, 금주산 등이 막힘없이 보이는데 오늘
은 안개 속 무망이다. 배낭 벗어놓고 입산주 탁주 분음한 다음 강씨봉을 향한다. 등로는 방화선이다. 아름드리 잣나
무 숲 이웃하여 어둑하다. 가파른 오르막에는 굵은 밧줄의 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안개 속을 마냥 걷기만 하기
무료하여 사면 풀숲을 누비기도 한다. 풀숲 빗물 털어 밤에 내린 비를 소급하여 맞는다. 금방 흠뻑 젖는다. 시원하다.
덕순이가 만리발청향 내뿜으며 반긴다. 강씨봉을 내린 오뚜기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있다.
“덕이 넘치는 마을(강씨봉 마을터)
이곳은 오래전 강씨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자리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세 가지 덕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하나
는 송이버섯의 송덕이고 또 하나는 지붕을 잇는 데 썼던 억새의 새덕, 그리고 더덕이다. 모두 산간마을 사람들에게
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들이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이곳에 궁예의 부인 강씨의 집터가 있었다고 한다.”
물에 빠진 쥐 모양을 해가지고 덕이 넘치는 산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줄곧 잘난 등로 긴 오르막의 끝이 806m봉이
다. 누군가 ‘백호봉 820m’이라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벤치 놓인 쉼터다. 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오르내리다 한참
진득하게 오르면 강씨봉이다. 풀숲에 3등 삼각점이 있다. 일동 304, 2006 재설. 맑은 날이면 일대 경점으로 청계산
과 길매봉, 운악산으로 이어지는 첩첩 산릉이 장려한 모습인데, 오늘은 바람조차 없어 홀현홀몰하지 않고 지척도
어두운 자욱한 안개 속이다. 잠시 서성이다 오뚜기고개를 향한다.
▶ 청계산(淸溪山, △849.0m)
길게 내렸다가 잠깐 오르고 다시 길게 내리기를 반복한다. 그러기 오뚜기고개까지 6개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그중
764.2m봉은 ‘한나무봉’이라고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지형도에는 노브랜드이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이 산
서쪽에 화대리(禾垈里) ‘한나무골’이 있다. 한나무봉에서 약간 내렸다가 완만하고 길게 오르면 △768.0m봉이다.
삼각점은 ‘일동 411, 2006 재설’이다. 다시 한 차례 쏟아져 내리면 임도 갈림길 안부인 오뚜기고개다.
‘오뚜기嶺’이라 새긴 표지석을 기념비로 세웠다. 오뚜기부대(제8사단)가 임도(군사도로)를 개설하여 오뚜기령이라
고 불렀다. 기념비 뒷면에는 ‘초전 3일, 돌격 결전. 의지와 기백으로 폐허의 옛길을 뚫다. 1983.6.25. 군단장 오자
복’이라 새겼다. 군단장 오자복 아래로 당시 이 고개를 뚫는데 기여했던 사단장에서부터 소대장에 이르기까지 참여
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마멸되어 알아보기 어렵다.
오뚜기고개 쉼터의 탁자 겸한 벤치에 앉아 점심밥 먹는다. 이 적막한 산중에 오가는 사람 없이 우리 일행 4명뿐이
다. 오붓하다. 검은등뻐꾸기가 경쾌한 리듬으로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우짖는다.
어느덧 식후 입가심으로 커피는 필수가 되었다. 냉커피 조제(냉수 담은 물병에 믹스커피를 넣고 마구 흔든다)하여
마가목주를 살짝 얹어 마신다. 달콤하고 알싸하다. 산중의 정취다. 위스키를 넣은 아이리시 커피보다 훨씬 더 맛있다.
부른 배 어르며 한북정맥 청계산을 향한다. 임도 10여 미터를 더 가면 풀숲에 가린 소로가 이어진다. 안개는 공제선
마저 가린다. 서서히 올라 748.3m봉을 넘고 약간 내렸다가 가파르고 길게 오른다. 전에도 이랬던가 싶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적인 된 오르막이다. 이때는 핸드레일 붙들고도 비지땀 쏟는다. 가쁜 숨이 곧 넘어갈 듯하여 귀목
봉 갈림길인 886.2m봉이다. 이곳도 벤치 놓인 쉼터다. 귀목봉 1.4km, 청계산 2.1km.
13. 백호봉 가는 길
14. 강씨봉에서, 왼쪽부터 유수, 하운, 메아리 님
15. 강씨봉에서
17. 4년 전 가을날 강씨봉에서 조망, 맨 뒤는 운악산, 그 앞은 길매봉, 맨 왼쪽은 청계산
18. 꿀풀
19. 털중나리
20. ‘오뚜기嶺’ 표지석
21. 청계산 가는 길
청계산 가는 길이 갈 때마다 영 재미없고 따분하다. 숲속 돌길에 여러 잔 봉우리 오르내린다. 차라리 오늘처럼 안개
자욱한 날이 낫다. 전후좌우로 안개 속 풍경을 신비하게 느끼며 간다. 청계산이 멀리서는 발에 차일 듯 약간 도드라
진 모습이라 대깍 넘을 것 같은데 다가가면 대단한 준봉이다. 기어오른다. 발밑에 와글거리는 잡석 길에 이어 통나
무계단, 데크계단을 오른다. 여전히 만천만지한 안개다. 등산안내도에서 소개하는 청계산 어원이다.
“계곡 물이 맑아 청계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일동 시내에서 볼 때 동쪽에 위치해 있어 오행 개념
에 따라 ‘푸른 닭의 의미’를 담아 청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계저수지를 기점으로 청계산 등산로는 세 개 코스가 있다. 하산의 경우, 제1코스는 길마고개 지나 길매봉(길마봉)
을 올랐다가 그 북릉을 내리고, 제2코스는 길마고개에서 골짜기로 내리고, 제3코스는 청계산 정상에서 북릉을 타고
가다가 649.5m봉 직전 안부에서 왼쪽 골짜기로 내린다. 이중 제3코스가 가장 짧고 등로 또한 가장 순하다. 우리는
조망이 무망이고 가망 없어 제3코스로 간다. 가장 순하리라고 여겼던 하산길이 뜻밖으로 사납다.
청계산 정상을 내리는 것부터 오를 때보다 더 힘들다. 가파른 내리막 바윗길이 빗물에 젖어 미끄럽다. 숲속 길 길게
내리고 649.5m봉 직전 안부에서 왼쪽 사면을 내린다. 직진 능선은 막았고 인적 또한 보이지 않는다. 오늘 산행의
정작 험로는 지금부터다. 너덜 닮은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걸핏하면 미끄러워 넘어진다. 잴잴거리는 계류를 건너가
기 여러 번이다. 인적이 흐릿하여 이쪽저쪽 쑤셔보고 풀숲을 발로 더듬어 길 찾는다.
펜션이 보이고 대로 만나서야 안도한다. 청계행복마을이다. 청계저수지 0.6km를 계류 기웃거리며 알탕할 데 살핀
다. 청계저수지에 가까워서야 옹색하지만 사람들이 드나든 계류를 찾아낸다. 큰물이 물보라 일으키며 흐르는 계류
가장자리에 바위 붙들고 살그머니 담근다. 이런, 계류가 차디차다. 불과 몇 초를 버티지 못하고 계류 밖으로 나온다.
금방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지난주 오대천은 온탕이었는데, 오늘 청계는 냉탕이다.
지난 일도 그렇지만 오늘 일도 내일이면 ‘그때가 좋았다(Those were the days)’고 여길 것이다. KBS 클래식FM에
서 전기현이 진행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에 ‘Those were the days’가 흘러나왔다. 나는 이 노래를 메리 홉킨의
감미로운 목소리로만 들어왔는데, 전기현의 해설을 듣자 더욱 정감 있게 들렸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러시아의 작곡가 보리스 포민(Boris Fomin, 1900~1948)이 1924년에 작곡한 ‘머나먼 길’의 영어 번안곡이다.
메리 홉킨(Mary Hopkin, 1950 ~ )의 1968년 데뷔곡이다.”
옛날에 술집 하나가 있었어요
우리가 술잔을 들며 웃고 떠들던 곳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나요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온갖 거창한 이야기들
그 시절이 좋았어, 친구여
우린 그런 날이 영원할 줄 알았지
끝없이 노래하고 춤추던 날들
우리가 택한 인생을 살 거라 믿었지
싸우고, 결코 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우린 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어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tavern
Where we used to raise a glass or two
Remember how we laughed away the hours
Think of all the great things we would do
Those were the days, my friend
We thought they'd never end
We'd sing and dance forever and a day
We'd live the life we'd choose
We'd fight and never lose
For we were young and sure to have our way
23. 청계산 가는 길
27. 청계산
28. 청계행복마을 가는 길
31. 얼룩자주달개비(제브리나, Zebrina pendula)
첫댓글 무중산행, 그 은하수 꿈속 같은 숲길을 헤치며 같이 거닐어 봅니다. 악수님 덕에 시원한 시간을 향유해봤네요. 감사합니다!
산에 가서 산을 보지 못하고 숲만 보고 왔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산행이군요. 잘 보았습니다.
오가는 사람 없이 한갓진 숲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