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8. 큐티
마태복음 18:1 ~ 10
천국에서 큰 자(天國大人)
관찰 :
1)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
- 1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시는 상황에서 성전세를 요구하는 이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그들이 실족하지 않기 위하여 성전세를 내신 주님이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 제자들의 질문은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어떤 논쟁이 오갔던 듯싶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자신들이 변화산에도 같이 가고 했으니 자신들이 크다고 했을 법도 합니다. 돈을 맡은 가룟 유다는 자신이 주님의 신뢰를 받고 공동체의 신임을 입었기에 재정을 맡았으니 자신이 크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천국에서 누가 큰 가에 대해서 논쟁을 했고, 그로 인해 주님께 물어보기로 결정을 한 듯합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태는 이것을 고의적으로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17:27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들으면서 매우 근심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근심의 핵심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자신들이 천국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것에 있지 않았다면, 이렇게 천국에서 큰 자를 논하고 죽음과 부활을 논하고 계신 주님께 질문을 하는 것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 제자들의 천국에 대한 개념이 아직도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상황에서 주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 마태는 “그 때”라는 표현을 통해 그렇게 삐딱선을 타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당시의 제자들의 형편과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A => 천국에서 큰 자(天國大人)
- 2절.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혹자는 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속사도 중에 가장 유명한 폴리갑이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3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교만한 가운데 서려는 모습을 주님은 꿰뚫어 보시고 돌이켜서, 되돌아가서, 어부였다가, 세리였다가, 열심당원이었다가 주님을 좇던 그 때의 첫 마음으로 겸손하게 돌아가지 않으면 천국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 주님의 결론은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천국은 겸손하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며, 천국에 들어갔어도 어린 아이처럼 자신이 아이임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는 자가 큰 자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서로 내가 더 크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큰 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이 어리고 부족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중요합니다. 교만해서 어린아이를 보고 어리다고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바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가르침 B => 실족하게 하는 자
-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드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어린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이라고 전제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개인의 부주의한 실수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하는 모든 상황을 다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함으로 실족하는 이가 발생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 이 표현은 당시의 가장 지독한 저주의 말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소나 말이 돌리는 거대한 연자맷돌을 사람의 목에 달아서 물에 빠뜨리면 익사하기 전에 목이 꺾여서 죽습니다. 그것을 물에 빠뜨리면 그것은 확인할 필요도 없는 죽음입니다.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은 완전히 소망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소망을 찾을 수 없는 저주 중의 저주입니다. 마치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신 것과 비유할 수 있는 이러한 저주의 말씀으로 주님은 이렇게 강력하게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는 행위에 대해서 엄중하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지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주님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무리가 아닙니다. 즉 교회의 리더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신앙에 바로 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인 것입니다.
- 7절.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 주님은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족한 사람보다 실족하게 하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모든 원인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어떤 행위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감추어진 원인과 결과를 다 보시고 바르게 판단하실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 8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거보다 나으니라”
- 9절.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 육체의 연약함으로 범죄한다면 그것을 잘라내서라도 영생에,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것은 작은 자, 어린아이 같은 자를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수호천사의 존재에 대하여
- 10절.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주님은 어린아이와 같은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천사들이 하늘의 하나님을 항상 뵈는 상황에서 그들의 상태를 보고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각 성도들에게 천사가 배정되어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베푸신다는 것을 보게 되는 본문입니다.
- 이 본문을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되고 있지만, 이 본문이 수호천사의 존재에 대하여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본문이 됩니다.
- 주님이 보시고 아시는 것을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에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수호천사의 존재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 주님이 이렇게 수호천사의 존재를 말씀하시면서 까지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지 말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점은 누가 크냐가 아니라 누가 더 낮아지고 누가 더 사랑하는 존재냐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천국에서 큰 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입니다.
2) 천국에서 큰 자는 이 땅에서 연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지 않은 자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교회에서 지도자로 사역하는 이들에게 무서우리만치 엄밀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큰 교회의 목사들이 성도들을 실족하게 하고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교회로 나가서 개척하여 목회를 다시 한다던지, 설교권을 일정기간 정지당했어도 그냥 그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더 애쓴다던지 하는 일들이 한국 교회에 있습니다. 더 추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로 인해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주님의 책망이 얼마나 큰지 오늘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하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주님이 아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종들을 때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맞는 것이 당연하고 맞아서 고쳐질 것이라면 맞는 것이 복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맞고서도 또 실족하게 하는 자는 주님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지옥불에 떨어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차라리 손이나 발, 한 눈이라도 빼어버리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이라 여기는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주님의 가르침에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3) 수호천사는 존재합니다.
적용 :
1) 겸손. 겸손만이 살 길입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나를 주님의 종으로, 사역자로 부르셨기에 언제나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의 종이지 살아있는 김태수가 아니어야 합니다. 죽어야 사는 것이고, 어린아이 같이 낮아지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이 미래를 다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련해도 아빠를 최고로 여기고, 엄마를 최고로 여기는 아이처럼 나는 주님을 최고로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미래를 최고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2)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자는 화가 있도다. 주님이 이렇게 까지 말씀하셨음에도 사역자의 길을 쇠밥통으로 아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내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고 사역을 하기에 더더욱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힘써야 할 것이고, 본을 보이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이고, 신실한 본을 보이기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3) 나로 인해 실족한 이들이 있는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회개합니다.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두려움으로 구합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나의 인격과 삶의 태도가 더욱 온전해 짐으로 실족하는 이들이 없기를, 그럴 수 없다면 줄어들기를 바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참 두려운 본문입니다.
4)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오늘도 힘을 내서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