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내 관심을 끌고 있는 여자는 도합 세 명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평생 여자가 끊어져 본 적이 없는 나에게 있어서도, 세 여자가 동시에 등장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이니, 절대 의심하지 말 것. 한 사람은 서울에 살고, 둘은 전주에 산다. 전주(삼례)로 이사 간 녀석이 어떻게 서울 사는 여자와 인연을 맺게 되었느냐고? 말이 안 된다고? 내가 매주 한 번씩은 서울로 올라와 공부 모임에 참석하고 밤차로 내려간다고 말했잖아? 그 때 만난 것이지. 아니 그 때 만나는 것이다. ‘그 때’라는 것은 월요일이야. 그러니까 서울 여자는 월요일 날 만나주고, 전주 여자 두 명은 월요일을 제외한 나머지 요일 날 (가급적 겹치지 않게, 그리고 돌아가면서 공평하게) 만나주는 것이다. 전주로 이사간 지 두어 달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새 여자를 둘씩이나 알게 되었느냐고?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다고? 이사 내려온 것은 두 달밖에 안되지만, 이곳에 직장을 잡은 것은 10년도 더 됐거든.
어느 쪽 이야기를 먼저 할까? 젊은 여자 이야기를 먼저 할까? 아니면, 이쁜 여자 이야기를 먼저 할까? 그것도 아니면, 돈 많은 여자 이야기를 먼저 할까? 전주 여자 중 한 명은 악기점 주인이고, 다른 한 명은 찐빵집 주인이야. 찐빵집 주인은 서른 살 쯤 되었을까? 아니면, 서른 둘? 어떻게 보면 처녀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새댁 같은데, 나로서는, 그녀가 처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악기점 주인은 나이가 많아. 마흔 다섯은 충분히 되었다. 그런 아줌마가 악기점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볼 경우, 우리들 손님들은, 이 아줌마의 남편이 가게 주인인데 이 아줌마가 잠시 가게를 봐 주고 있는 모양이라고 추측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그 악기점에서 그녀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남자를 보게 된다면, 나는 크게 실망하든지, 아니면 작지 않은 적대감을 느끼게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아, 이 친구, 마치 연애라도 하는 듯 큰 소리쳤지만, 알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니로구만. 그 ‘여자’라는 것은 자기가 드나드는 빵집 주인에, 기타 가게 주인으로서, 미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은밀한 상대이기는커녕, 뻔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니,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것도 없는 싱거운 상대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크게 실망할 (혹은 안도할) 사람들이 있겠지? 이 사람들은 “기껏해야, 이 쪽에서 그 여자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지, 그 여자들 쪽에서 이 친구한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겠구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신들의 자유지만, 그렇게 자유롭게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칠 걸. 물론 우리도 시작은 주인-고객 관계로 하였지. 남녀 관계라는 것은 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 아닌가? 악기점은, 이 고장 사람들이 ‘경기장’이라고 부르는 종합 운동장 근처에 있다. 나는 수영장에 오는 길에 이 악기점에 들러서 기타줄 같은 소모품을 사곤 하였다. 빵집은 전주 시내에서 삼례로 건너가는 큰 길 가에 있어서 나는 시내에 들어가는 길이나 삼례로 돌아오는 길에 찐빵을 사먹곤 하였다. 삼례나 전주 변두리 등 이 인근에는 몇 해 전부터 찐빵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이 찐빵집도 그 중 하나야.
나에게 있어서도 이 찐빵집은 수많은 찐빵집 중의 하나에 불과하였지.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날은, 이상하게도, 몇 번이나 불러도 주인이 나오지를 않더라고.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한번을 더 불렀더니, 그제서야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사람이 나오더군. 얼핏 보기에도 그녀는 정상이 아니었어. 약간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으며 눈도 약간 풀려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배시시 웃으면서 그녀가 한다는 소리를 들어 볼래? 혀도 좀 꼬인 상태로 하는 말이야.
“미안해요...... 아저씨, 깜빡...... 잠이 들었네. 낮잠...... 자면 안 좋은데......”
이렇게 말하고 나서는, 팔을 기형적으로 꼬아 허심탄회하게 기지개를 켜는데...... 그 다음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래서 점점점점...... 그 날따라 그녀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마음껏 드러내는 꼭 끼는 티셔츠와 꼭 끼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런 여자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배시시, 아니 부시시 웃으면서, 몸을 비비 꼬아 대면서, 혀 꼬인 소리로 말을 건낸다고 생각해 봐. 화담 선생이 황진이한테는 넘어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 여자한테는 어쩔 수 없을걸. 나는 이 여자를 보고, 사람들이 백치미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똑똑하게 알게 되었다. 입은 또 왜 그렇게 큰지. 이 여자는 웃음이 헤픈 사람처럼 보여. 그런데, 실지로 자주 웃는 것인지, 아니면 입이 그렇게 가생겨서 항상 웃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일이 있고나서 나는 물론 즉시로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 작업은 먹혀들었다. 이 점은, 그녀가 나를 여느 손님과는 다른 특별한 손님으로 취급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찐빵 일 인분에는 다섯 개가 들어가고 2천 5백원을 받게 되어 있다. 물론 일 인분씩 사고 팔게 되어 있는 것이지.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는, 달라는 대로 다 준다. 4개(2천원)도 주고, 3개(천 5백원)도 주고, 2개(천원)도 준다. (단, 1개(5백원)는 빼고. “기름 값도 안 나오기 때문에”.) 물론 내 쪽에서도 성의를 보인다. 가끔씩은 1인분을 팔아 주기도 하는 것. (남은 찐빵을 나중에 데워서 먹으면 어떤 맛이 나는지 알아? 이상한 일이지만, 상당히 짜게 느껴져.) 이 찐빵집 옆 집은 사료 가게인데, 찐빵 가게도 원래는 사료 가게 주인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는 ‘빚에 몰린’ 사료 가게 아저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경험 삼아’ 그 아저씨와 동업으로 찐빵집을 운영하는 중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업상의 비밀까지 털어 놓는 깊은 관계가 되고 말았다. (계속)
첫댓글 중간에 글자가 다른 데보다 작게 나온 데가 있지? 아무리 키우려고 해도 안되네. 14포인트 정도가 제일 좋은데 말이야. 내 컴퓨터가 성능이 안 좋아서 그러나?
셋! 사진찍어 올려~~~!
세 여자라고 해서.. 난 마눌과 두 딸이야기인 줄 알았더니....넘 잼있게다.. 계속 발전되는 깊어가는 깊은 관계를 기대하며...
영태교수님 글은 언제보아도 재미가 있어 어디선가 굉장히 익숙한 많이 읽은듯한 표현들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매우 살값게 느껴지게 하는구나.나역시도 내가 자주 다니는곳 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름다운 여성(나에게만 특별대접해줄것같은,설사 아니더라도)이 그곳으로 가는 발길을 가뱝게 해주거나 약간의 호기심, 기대감을 갖게 해주는듯 싶구나 .
사진을 올리다니, 큰 일 날라꼬? ㅋㅋ 기모성 '깊은 관계'? 나만 그런 생각 하는 게 아니구나. 최소한 규태성은 그렇구나.
우리가 여자들 한테 항상 듣는 얘기 "남자들은 다 똑 같애 !" 뭐가 ? 껄떡대는거....ㅋㅋㅋ 남자보구 늑대라고 그러는데 늑대가 억울하단다. 왜냐 ? 늑대는 일부일처를 고수한단다...
아따따따~~ 울 교수님..... 흥미진진한데~~ 아 그 화장실 비정규직 아짐은 아직도?? 다음편 기대 만땅!!ㅋㅋ
그 아짐씨는 아직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본 지 오래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