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차림 여고생, 손녀 유모차 끌고 온 할머니, 미국에서 온 교포 부부, 팔짱 끼고 온 동서지간 중년 여성들….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 일반 관람 첫날인 3일 전시 장소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온종일 세대를 아우르는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이날만 1600여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오전 10시 미술관 문을 열자마자 관람객들이 쏟아져 들어오더니 정오가 되자 점심 시간 쪼개 온 근처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다. "학교 때부터 워낙 익숙한 작가라 왔는데 역시 명불허전이네요. 덤으로 가족에게 보낸 편지 속 아기자기한 그림과 깨알 같은 그림 설명을 보니 '아빠' '남편'으로서의 새로운 이중섭을 만난 느낌이에요." 회사 출입증을 손에 든 직장인 한수영(39)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배우 이정재가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한 그녀는 "익숙한 목소리의 배우가 차분하게 그림 설명을 해주니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남편, 아들과 함께 다시 전시장을 찾겠다"고 했다.
전쟁과 가난했던 시절을 추억하는 중·장년층 관객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미국 텍사스에서 온 윤창근(67), 원순종(64) 부부는 "짧게 친지들 보러 한국에 왔다가 신문에서 전시 소식을 보고 왔다"며 "전쟁으로 인해 이산의 아픔을 겪은 우리 세대 이야기가 촉촉이 마음을 적셨다"고 했다. 머리 희끗희끗한 노년 관객들은 1940~ 1950년대 문학잡지 표지 그림과 신문 기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야마모토 마사코 여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가족이 피란 가 살던 서귀포 집과 제주 풍경을 담은 영상 앞에도 관람객이 소복했다.
'황소' '길 떠나는 가족' 같은 대표작도 인기였지만 관객들이 가장 오래 머무는 전시실은 편지화가 모인 3관이었다.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니까 '~했어요?' 하고 존댓말을 썼더라고요. 말투도 그림도 다정해서 재밌었어요." 김선·김예람·조유경(17), 교복 차림 여고생 셋이 까르르 웃었다. 미술 선생님과 함께 현장 수업 온 풍문여고 미술반 동아리 학생들이었다. 편지글 하나하나 꼼꼼히 읽던 윤효진(32)씨는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일제강점기와 6·25가 스쳐간 그 시대, 그 시절이 한 개인이 감내하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웠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요. 온 정성을 쏟아부어 그린 편지 그림을 보니 한 인간의 진심이 보여 보는 이를 염두에 두고 만든 작품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네요."
'이중섭 전'은 시작 전부터 문화·예술 전문가들 사이에서 올해 꼭 봐야 할 중요 전시로 꼽혔다. 전시장에서 만난 김상규 서울산업대 디자인과 교수는 "30년 전 호암미술관에서 열렸던 '이중섭 30주기전'을 봤다. 그땐 은지화가 눈에 띄었는데 이번엔 유화 작품이 맘에 와 닿는다"며 "에드워드 호퍼가 미국적인 차분한 미감을 보여준다면 이중섭의 그림은 한국적인 차분함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전시장 마지막 방, 이중섭이 제일 좋아했다는 가곡 '소나무야'를 배경 음악으로 이중섭의 흑백사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유학 시절 한눈에 띄는 호남(好男)이었던 이중섭이 가족을 일본으로 보낸 뒤 초췌하게 변한 모습을 보며 관람객들은 숙연해졌다. "하늘이 재주를 시기하셨나. 너무 빨리 가셨어…." 안타까운 탄식이 여기저기 새나왔다.
[이중섭, 백년의 신화展]
▲기간: 2016. 6. 3∼10. 3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입장료: 성인 7000원(덕수궁 입장료 1000원 포함), 유치원 및 초·중·고교생 4000원
▲문의: (02)522-3342 www.jungseob.com
▲주최: 조선일보사, 국립현대미술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